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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딱 한 발자국만 멀어져서 일할까요?

Would We Work Only a Step Away?

우리 딱 한 발자국만 멀어져서 일할까요?

Editor.Jayeo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조한나/ 32세

VMD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
구조 아파트
면적  79.3㎡(24평)
보증금 3억 원대(전세)

 

Room History

27세 서울 관악구 봉천동 5평 빌라 원룸(보증금 4000만 원, 월세 10만 원)
29세 서울 마포구 망원동 12평 빌라 투룸(전세 1억4000만 원)

 

내가 조한나를 알게 된 건 중학교에서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벌써 18년 지기다. 내가 지켜본 그는 두 볼에 인디언 보조개가 깊게 파이도록 잘 웃고, 실없는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몇 년 전인가부터 말수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하더니, 입꼬리는 축 처졌고 자주 울었다. 새로 적응하는 회사 분위기 속에서, 산처럼 장대해 보이는 상사 앞에서 조한나는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다. 팬데믹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한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올 즈음, 예전처럼 생기를 머금은 그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던 사회적 거리가 어떤 누군가에겐 숨을 쉬기 위해 필요한 최소의 유지 거리였는지 모르겠다. 홀로 집에 있으라고 두었더니, 그는 어느새 집을 온실 삼아 무럭무럭 자라난 나무가 되어 있었다.


일요일에 뵙게 되었어요. 재택근무를 하니까 월요병도 없겠네요?
월요병이 없을 수 있나요?(웃음) 정도만 다르고 월요병은 계속 있어요. 새로운 일주일의 시작을 해야 한다는 건 바뀌지 않으니까요.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해보니 어떤가요?
너무 좋아요! 회사가 집이랑 많이 멀어요. 집도 회사도 서울에 있지만 출퇴근하는 데 왕복 3시간 정도 걸리거든요. 길에 버리는 시간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그때 명상이든 독서든 제 마음대로 여백의 시간을 조정할 수 있어서 좋아요. 물론 초반에는 이런 경험이 없어서 스스로도 의구심이 많이 들었어요. “이게 정말 굴러가나?” 하면서요. 그런데 잘 굴러가더라고요.

낯선 변화에 바로 적응하긴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까 본사인 홍콩과 소통해야 하는 일이 코로나19 이전부터 많았어요. 줌으로 화상회의를 하고, 저도 면접을 온라인으로 봤어요. 출퇴근을 한다는 점 아닐까 외에는 이미 구조적으로 재택 시스템과 비슷했죠. 그래서 코로나19 이후에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재택근무를 시작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재택근무한 지 얼마나 됐죠?
코로나19 이야기가 처음 나온 1월 말에 시작했으니 벌써 9개월 정도 됐네요. 중간중간 확진자 수 추이에 따라 요일제로 변경된 적도 있지만, 부분이냐 전체냐의 차이일 뿐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어요.



원래 외국계 기업에 입사하는 게 가장 큰 꿈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아서 입사 초반에 당황했다고 들었어요.
아주 큰 환상이 있었죠. 유튜브에 나오는 것처럼 “하이 찰리!” 하면서 대표님이랑 하이파이브하고 스케이트보드 타고 출근할 줄 알았거든요. 물론 외국계 기업마다 분위기는 각각 다르겠지만 한국 문화가 스며들면 결국 한국 기업 분위기와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보통 한국 패치라고 하죠? 그래도 다른 점은 개인주의적 성향을 띤다는 거예요. 그 전에 국내 기업 다닐 때는 ‘우리’를 많이 강조했어요. 뭘 해도 같이 하고, 먹어도 같이 먹으면서 “우리는 가족이다!” 했거든요. 팀워크를 위해서 야유회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업무적인 것 외에 개인적 이야기를 할 시간도 이유도 없는 것처럼 보여요. 개인의 퍼포먼스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초 단위로 바쁘고, 개인 KPI(핵심성과지표)를 아주 상세하게 짜요. 개인주의와 조직주의 사이에서 중도를 지키는 게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동료애가 필요한 저에게 이런 회사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지기는 했어요.

게다가 팀원의 성향은 나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잖아요.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상사 때문에 한동안 힘들어한 기억이 나요.
맞아요. 저를 부를 때 ‘야, 너’로 호칭하는 게 힘들었어요. 상대방을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성격이 급해서일 수도 있죠. 실제로 그만한 친분이 있으면 저도 그런 호칭을 부를 수 있는 배경에 납득이 가잖아요. 그런데 그게 조금 부족한 상태였거든요. 서로가 편한 사이가 아닌데 편한 호칭으로 부르니까 균형이 안 맞은 거죠. 그리고 저는 칭찬받을 때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더 잘하는 유형인데, 상사는 칭찬에 야박하고 평가에 엄격한 유형이에요. 그런 게 저를 힘들게 했죠. 그 사람이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저랑 안 맞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점점 내일 있을지 모를 실수에 강박이 생기더라고요. ‘내일은 실수하면 안 되는데’, ‘내일은 꼭 아무 일 없이 지나가야 하는데’ 하면서요. 마음속에서 저는 이미 실수를 한 사람인 거예요. 저는 원래 종종 덤벙거리고 무언가를 빠뜨리는 저 자신을 사랑했어요. 그렇게 천천히 성장하는 제가 좋았는데, 이런 저의 원형이 용납 안 되니까 버거워지더라고요.

그땐 혼자서 어떤 해결책을 찾았나요?
아침마다 눈뜨면 그때부터 괜스레 불안했어요. 심장이 너무 떨렸거든요. 이걸 진정시키려고 가장 먼저 명상을 했어요. 일어나서 20분 동안 무조건요. 명상을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확언을 했죠.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내 기분을 바꿀 수 있다” 같은 긍정적 문장을 육성으로 외치는 거예요. 그리고 반신욕도 해보고 템플스테이도 해봤고요. 내가 아무 문제 없다는 걸 확신하기 위해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애썼죠.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심리상담소도 찾았어요. 선생님한테 요즘 가만있어도 눈물이 난다고 하면서 막 울고 그랬다니까요. “이것 보세요. 또 울려고 하잖아요” 하면서요.(웃음) 당시 제 주변에 있는 친구, 남편 등 주변 사람들이 저 때문에 힘들어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돈 내고 저의 감정을 받아줄 곳을 찾은 거죠.



이렇게 주눅 든 상황에서 재택근무를 막 시작한다고 하면 원격 의사소통을 벌써부터 걱정했을 것 같아요.
보통 재택근무한다고 하면 더 편할 것 같아서 설레잖아요. 그걸 들킬까 너무 걱정됐어요. 제가 혹여 논다고 생각할까 봐. 그래서 저는 재택근무하면서 잠깐이라도 누워 있거나 편의점 다녀온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점심도 전자레인지용 핫도그처럼 간단히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걸 찾았고요. 먹고 있는데 혹시 전화 오면 씹는 소리만으로 제가 뭐 먹으면서 놀고 있다고 생각할 것만 같았거든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이런 것만이라도 책잡히고 싶지 않았던 거죠.

막상 재택근무를 해서 상사와의 거리를 갖게 됐잖아요. 이 물리적 거리가 불안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됐나요?
그럼요, 엄청요. 옆에 있으면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말들이 있었어요. “저거 왜 그래?”, “이거 왜 안 했어?” 같은 말들요. 그런데 같은 공간에 없으니까 우리에게 필요 없는 말은 사라지고, 업무 확인에 필요한 말만 남더라고요. 메신저나 전화는 용건만 정확히 말해야 효율적이잖아요. 그래서 대화 자체에 필수적인 내용만 남는 거예요. 또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키보드 소리만 들리던 무거운 분위기에서 멀어진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내가 점점 괜찮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던 현상이 있나요?
내일이 덜 두렵다고 해야 하나? 그 전에는 오늘 퇴근부터 내일 출근이 걱정되고 금요일 퇴근부터 월요일이 걱정됐어요. 진정한 의미의 퇴근을 한 적이 없는 것처럼요. 근거 없는 걱정들에 불안해하면서 불면에 시달렸거든요. 요즘은 그런 게 없어요. 일하는 꿈도 안 꾸고요. 어머 진짜, 나 요즘 꿈을 안 꾸네?

이러한 안정감이 결과적으로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세요?
정서적으로 편한 환경에서 일하니까 효율성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더라고요. 먼저 재택근무에서는 업무 우선순위를 혼자서 결정하고 주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요. 누군가 중간에 흐름을 끊지도 않고, 혹여 다른 업무 요청이 들어와도 원래 하던 일을 먼저 한 다음에 메일을 확인하면 되니까요. 결과적으로 속도도 더 붙고 퀄리티도 높아졌어요. 이런 게 개인적 느낌만은 아닌 것이, 상사로부터 “와, 이렇게까진 안 해도 되는데. 고생했네”라는 말을 듣기도 했거든요. 엄청난 칭찬을 받은 거죠.


그런데 결국 집에서까지 의사소통을 이어가야 하는 거잖아요. 나만의 공간에 업무적 불안감이 섞이는 게 싫지는 않았나요?
답답한 적은 있어요. 왜냐하면 출퇴근할 때 심리적 부담감은 있지만 진짜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6시가 지나도 전화나 메신저 알림이 오면 바로바로 확인을 해요. 지시만 받고 처리하지 않으면 또 너무 불안한 상태가 되니까 곧바로 완수해버리고요. 그러면 업무 시간이 무한정 길어져요. 야근도 늘어나고요. 하지만 크게 불만은 없어요. 재택근무가 아니었다면 나에게 무엇이 얼마큼 힘든지 너무 잘 아니까. 일이 끝나면 업무 내용이 안 보이게 치우려고 노력하긴 해요. 바로 셔터 내려요.

서재에서 일하다가도 소파 위나 바닥에 내려와서도 한다고요. 저도 그래요. 사무실에서는 책상에 오랫동안 앉아 잘만 하는데, 왜 집에선 이렇게 공간 전환을 하는 걸까요?
회사에서 지급한 노트북 화면이 작으니까 더 큰 화면으로 보려고 보통 서재에서 일하거든요. 그런데 날씨가 너무 좋다, 집 안으로 햇살이 환하게 들어온다, 바람을 쐬고 싶다 하면 이제 바로 거실행인 거죠. 소파, 바닥, 테이블, 데스크 등 어디든 가요. 한 곳에만 있다 보면 너무 답답하잖아요. 앉는 곳곳 풍경이 달라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사무실은 눈 돌리는 곳마다 컴퓨터와 책상이 전부인데, 집에는 강아지도 있고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도 있고요. 왜 그렇게 일상적이고 소소한 풍경을 멍하니 보는 게 재미있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집멍인가? 근데 실제로 피로 사회에서 멍 때리기는 필요하다고 해요. 멍 때리는 동안 습득한 정보를 다시 정리한다고 하더라고요.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 53%가 전화 공포증을 경험했다고 해요. 콜 포비아를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유연한 전화 통화를 위한 유용한 팁이 있을까요?
보통 전화보다 메신저 소통을 선호하는 이유는 말실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장 크고, 원하지 않는 이야기 주제나 대답을 유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두 가지 사항을 전화 통화에 적용해보면 일단 할 말을 미리 스크립트로 짜두는 게 도움이 돼요. 완전한 대화체로 적으라는 게 아니라, 간단한 키워드로 적는 거죠. 오늘 꼭 확인해야 하는 것, 물어볼 사안 같은 거요. 한 번 전화할 때 다 말하려는 용기를 내는 게 더 필요해요. 까먹은 게 있어서 두 번 전화하는 건 더 힘들잖아요. 그리고 제가 메시지를 전달받는 입장일 땐 메모를 엄청 꼼꼼하게 해요. 놓치는 내용이 없도록요. 그리고 그것보다 한 단계 나아가서 방금 말씀해주신 내용을 메신저로 한번만 더 남겨달라고 요청하죠. 아주 중요해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고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남기는 게 좋아요.

많은 사람이 재택근무 이후 번아웃을 경험한다고 해요. 출근 시간은 단순히 이동 시간이 아니라 업무를 앞두고 오늘의 일정을 정리하고 가다듬는 일종의 예열 과정인데, 그게 사라지면서 번아웃 증가가 가속됐다는 평가가 있더라고요. 이 해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되나요?(웃음)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일하면서 예열 과정이 필요한 건 맞아요.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예열 과정은 중요하죠. 하지만 원하면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아침에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일어나서 러닝하면 예열할 수 있잖아요. 그게 꼭 재택이 아니어야 할 이유는 아닌 것 같거든요.


재택 추종자가 되었군요. 재택이 끝나면 어떨 것 같아요?
(갑자기 심장을 부여잡으며) 아유!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그 환경에 적응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재택근무의 힘을 많이 빌렸지만, 이번 재택 경험으로 회사 내에 적당한 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 잘 알게 됐으니까 관계적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할 것 같아요. 또 지난 9개월을 지나오면서 완전한 출퇴근제로 돌아가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게 생겼어요. 사무실에 스피커를 갖다 놓는 거예요.

다 같이 노래 들을 수 있게요?
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과연 노래를 틀 수 있을까?’ 하고 의심이 들다가도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어요. 가사가 없고 잔잔한 뉴 에이지나 재즈풍의 음악만 틀 수 있겠죠?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사무실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질 거라고 믿어요. 재택근무 경험을 통해 긴장을 풀어주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거든요. 아직 추측일 뿐이지만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지는 않아요.

VMD는 브랜드 콘셉트에 따라서 공간을 기획하고 전시하는 일을 하잖아요. 효율적인 재택근무를 위해 필요한 데스크테리어로 뭘 추천하세요?
식물요. 아까 말한 릴랙싱한 환경과 연결되는 건데요, 사무실엔 모든 게 다 죽어 있잖아요.

네? 사람이 살아 있잖아요.
아뇨, 다 죽어 있어요. 다들 일할 때 죽어 있잖아요.(웃음) 그럴 때 화분에서 초록색 새잎이 나면 정말 심리적 치유가 돼요. 실제로 자연이 결핍된 공간에 식물을 두어 작은 정원을 만드는 것을 바이오필릭 biophillic 인테리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바이오필릭 공간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고 해요. 또 식물은 사람들의 생산성과 집중력을 높여주니까 일하는 데 도움도 받고요. 정서적 안정감은 물론, 일의 능률에도 긍정적 힘을 얻는 거죠.

사무실에서만 할 수 있다고 믿은 것들을 집에서 해냈어요. 앞으로 집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바뀔 것 같아요?
환경은 바뀌었지만 집에서도 회사에서와 같은 능률을 내야 해요. 이 사실은 바뀌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점점 장빗발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게임방에 식탁 의자를 갖다 두고 간이로 사용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좋은 의자와 좋은 사무 가구, 사무용품을 구비해놓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도 그런 것을 눈여겨보게 되고요. 공간 규모에 신경 쓰기보다는 뛰어난 능률을 올리도록 도와줄 도구에 투자하고 싶어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
구조 아파트
면적  79.3㎡(24평)
보증금 3억 원대(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