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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웅하는 여자

Woman Who Goes to See You off

배웅하는 여자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이현아

30세 / '퍼블리' 에디터


Conditions

지역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구조 다세대 빌라
면적 약 50㎡(15평)
보증금 2500만 원
월세  45만 원

Room History

24세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5층,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5만 원
27세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다세대 빌라 1층, 보증금 2500만 원, 월세 45만 원

현아 씨는 나의 전 직장 동료다. 같은 시기에 회사를 다닌 건 아니고 프리랜서가 된 내가 외주 일을 맡으면서 얼굴을 익히게 됐다. 그러다 그녀의 집에 가서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신촌 어디 즈음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언덕을 올라 ‘맨숀’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 자그마한 빌라에 도착했다. 말테라는 고양이가 있었고 기다란 테이블 앞에 푸른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막차를 놓칠 만큼 즐거운 시간을 가능한 한 오래 주무르다가 택시를 불렀다. 나는 그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잠시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 집을 떠올렸지만, 택시를 타고 좁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오래 서 있던 현아 씨를 보고 그냥 이곳은 그녀의 집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다정한 집이었다.”




현아 씨 집은 오랜만이네요. 한 2년 반 만이려나요? 그사이 살림이 좀 는 것 같아요.
사실 책이 좀 는 것 말고는 크게 바뀐 건 없어요. 아, 저 수납장은 전 직장의 실장님이 쓰시던 그릇장인데 저한테 가져가라고 해서 지금까지 잘 쓰고 있어요.

이 집에서 산 지는 얼마나 됐나요? 원래 고향이 충주라고 했죠?
네, 고향이 충주고 학교는 충남 홍성에 있었는데 공연기획과이다 보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어요. 건물이 대학로에 있었거든요. 워낙 통학버스 운행이 잘되어 있어 서울에 살면서 학교 다니는 애도 많았어요. 저는 개포동 주공아파트 친척 집에서 얹혀살았어요. 그러다가 단지 내 이사를 하면서 혼자 살게 되었고요. 주공아파트에서만 한 6년 살다가 2년 반 전에 여기로 이사 왔어요.

그럼 대학 전까지 계속 충주에 살았을 텐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충주에서 살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중학생 때부터 ‘넬NELL’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공연기획과에 갔고요. 어릴 때부터 넬 공연 본다고 서울에 자주 왔다 갔다 했어요. 보통 홍대 쪽에서 공연을 하니까 그쪽에 집을 얻는 게 오랜 꿈이었어요.

그런데 개포동에 오게 됐네요?
사실 개포동은 임대료 자체는 싼데 자취하는 사람들이 가는 동네는 아니거든요. 가족 단위나 사회생활을 좀 하신 분들이 오는 동네예요. 저는 뭐 친척 집이 여기 있어서 온 거죠. 그러다가 원룸, 투룸 단위로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단지가 있다고 해서 알아봤더니 투룸인데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가 35만 원 정도 하더라고요. 괜찮죠? 그게 왜 쌌냐면 계약이 1년이었거든요. 1년 후에는 재개발 때문에 나가야 했어요.

개포동에서 연희동으로 온 이유는요?
연희동에 사는 디자이너 한 분을 인터뷰를 하러 갔거든요. 그런데 동네가 괜찮은 거예요. 그 디자이너도 얼마 전에 이사를 왔다고 해서 부동산을 추천해달라고 했죠. 그날 인터뷰가 끝나고 집 보러 다녔어요. 그리고 세 번째로 본 이 집을 계약했지요.



저는 여기 오는 길도 그렇고 집 구조가 희한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로로 긴 거실은 흔치 않잖아요?
이 집은 원래 두 모자가 살았어요. 거실은 거의 죽은 공간이었고요. 집 보러 왔을 때 웃기던 게 그전 집들이 너무 별로였거든요. 내가 이 돈으로 이런 곳밖에 못 가는구나 하고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집이었어요. 여기 올 땐 부동산 아저씨랑 등산하듯 올라왔는데, 도어 록이 고장 나서 안 열린다는 거예요.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집도 못 보고 갈 순 없잖아요. 그래서 어떡하지 하다가 거실 창문으로 들어왔어요. 저는 이 창과 화단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리고 집주인이 세를 받는 생활이 낯설어서인지 시세를 잘 모르시더라고요. 좀 싸게 나오긴 했어요. 월세 40만 원인데 지금은 올라서 5만 원 더 내고 있어요.

충주가 완전 시골은 아니잖아요. 막상 서울에 와보니 어땠나요? 타지인이 본 서울의 첫인상이 궁금해요.
아니요, 우리 집은 버스가 안 들어올 정도로 시골이었어요. 이사 가본 적 없이 거기서 쭉 살았지요. 그래서 개포동 친척 집에 살 때 당황한 게 한두 번이 아니죠. 주공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가려면 도곡역 입구로 나가야 하거든요. 역에서 내리면 타워팰리스와 연결되는데 건물이 너무 똑같이 생겨서 방향을 못 찾는 거예요. 그때 뭐 스마트폰 기능이 좋았던 것도 아니니까 할 수 있는 게 전화뿐이었는데 친척 집엔 전화를 못 하겠더라고요. 눈치 보여서. 그래서 항상 다산콜센터에 전화해서 주공아파트 가려면 몇 번 출구로 가야 하는지 물어봤어요. 약간 짠하죠?(웃음)

현아 씨는 충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돌아보니 어떤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영향이 좀 큰 것 같아요. 제 친구 중 한 명은 신축 건물로만 이사하는 애가 있거든요. 반면 저는 옛날 집을 찾아다녀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어릴 때 기억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흔적이 없는 집은 익숙하지 않은 것 같고 좀 무서울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제가 식물을 잘 키우진 못하지만 나무가 많은 동네가 좋더라고요. 지금 이 집의 화단도 좋고 개포동 주공아파트 단지 내에 조성된 녹지도 좋았어요.

이 커다란 창으로 바라보는 사계절은 어떤가요? 어떤 계절이 가장 예쁜가요?
제가 여름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화단이 푸릇푸릇해서 정말 예뻐요. 제가 가을에 이사 와서 이 나무가 뭔지 몰랐는데 무슨 나무일까 궁금해하면서도 찾아보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봄이 되니까 노란 꽃이 피더라고요. 개나리였던 거예요.



회사에 다니지만 재택근무도 많이 하죠? 일과 생활을 동시에 하는 공간으로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어요?
책상을 거실에 놨다가 방 안에도 놓고 일하는데 사실 집에선 일이 잘 안 돼요. 그래서 가끔은 책장 위에 있는 라디오를 치워놓고 서서 일해요. 허리가 아파서요. 회사에서도 라운지 같은 데서 서서 일하고요.

프리랜서로 일할 땐 수입이 불규칙하잖아요. 그런데 달마다 내야 하는 월세는 있고, 불안한 마음은 없었어요?
8개월 정도 백수였는데 엄청 불안했죠. 그래서 이렇게 살 순 없다고 생각해서 서점에서 일한 거잖아요.

어릴 때 막연히 ‘이때쯤이면 내 집 마련할 수 있겠다’ 생각한 적 있어요?
그런 생각은 아예 안 했어요. 우리 집이 곧 우리 땅이니까 당연히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 거라 생각했지요. 일단 어딜 가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런데 서울에 와서 깨달은 거죠. 친척 집에 얹혀살기도 했으니까 아예 집을 마련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죠. 아니 못 한 거죠.

부모님과 얘기하면 서로의 세대가 얼마나 살기 힘든지 대결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마다 시대의 사정은 있지만 주거에 관해선 요즘이 더 막막하지 않나 싶어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되게 좋은 세대인데? 우리 아빠는 현실감각이 조금 없으세요. 시골에서만 사셨으니까 내가 45만 원 내고 산다고 하면 그냥 노할 노 자예요. 언젠가 할머니랑 아빠가 서울에 오셔서 저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셨는데, 여기 앞은 다 고급 주택 단지잖아요? 그런데 할머니는 시골 평지에서 살던 분이니까 언덕에 따닥따닥 붙어 있는 집들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저 보고 달동네에서 사는 거냐며 엄청 딱하게 보셨어요.



현아 씨 부모님은 결혼하라는 말씀 안 하세요? 우리 엄마는 진짜….(웃음)
저는 부모님에게 뭘 강요당한 적이 없어요. 약간 방목형이에요. 그래서 어릴 때도 빨빨대면서 서울에 갈 수 있었던 거죠. 남자 친구가 고향에 몇 번 온 적이 있어서 이제 좀 갔으면 하는 눈치를 주는 것 같지만 말은 안 하시죠.

결혼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신혼집 때문인 것 같아요. 여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대출은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이거 인터뷰 나가면 안 될 것 같은데.(웃음) 저는 대출을 떠안고 고민을 해야 한다면, 그냥 혼자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제가 친구와 얘기하다가 깨달았는데, 어쩔 수 없이 부모님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 아빠는 다정하진 않지만 우리 집 경제는 모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부장적 사람이에요. 지금은 많이 유해지시긴 했는데, 어릴 땐 되게 무서워서 초등학교 때까지는 아빠랑 뭘 한 기억이 없어요. 다만 내가 뭘 하고 싶을 때 “돈이 없어서 안 돼”라는 얘기를 하신 적은 없고요. 그런 탓인지 경제적으로 책임감 있는 사람이 좋더라고요.

학생 때는 학자금 대출 안 받은 애들이 부러웠고, 지금은 전세 대출이라도 받은 친구가 부러워요. 대출도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거더라고요. 워낙 절차가 복잡하거니와 서류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많거든요.
학자금 대출은 한 학기 정도만 받아서 금방 갚았어요. 예전 직장 동료와 제가 집을 구하는 시기가 비슷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는 전세 대출을 받으면서 저더러 왜 월세를 내냐고, 대출받아서 이자를 내는 게 더 낫다고 하더라고요. 그 당시 너무 어리고 생각이 없으니까, 아니 사실 대출이라는 게 너무 크게 느껴져서 하지 못했어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가요? 가끔은 집 구하는 게 똑같이 어렵다면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어디서 봤는데 독일에선 집을 렌트하면 20~30년이 보장된대요. 그게 법적으로 임차인이 세를 올리지 못하게 돼 있고, 세입자를 위한 법이 더 잘 마련돼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을 산다는 개념이 없는 거죠.

저는 최근에 달로 인해 환해지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빛 공해가 없어야 하고, 주변에 높은 건물도 없어야 하더라고요. 현아 씨는 그런 상상한 적 없어요?
제가 밝은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이 집도 거실을 제외하면 약간 어두운 편이고요. 저는 햇빛이 쨍하게 드는 집은 별로더라고요. 그냥 내가 안전하게 자연을 볼 수 있는 집이 좋아요. 제 로망이 뭐냐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배경인 여름 별장. 그곳이 나무 그림자 때문에 어두울 거란 상상은 했어도 직사광선이 비출 거란 생각은 안 해봤거든요. 저는 그런 집이 좋아요.



현아 씨의 SNS를 보면 장자크 상페의 《사치와 평온과 쾌락》이 빈번히 등장하더라고요. 얘기 나온 김에 현아 씨의 사치, 평온, 쾌락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사실 그런 게 있는 삶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책장에 세워놨어요. 가끔씩 집에 왔다 갔다 할 때 약간 어이없긴 하거든요. 아니 무슨 책을 이렇게 사놓는지…. 책을 소비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삶 자체가 사치이자 평온이자 쾌락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 참 많이 컸구나’ 이런 생각을 해요.(웃음)

미술을 좋아하시죠. 누가 그랬는데 자신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찾는 건 소개팅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첫눈에 반할 확률과 비슷하다고. 그만큼 어렵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고 하던데, 현아 씨는 언제 소개팅에 성공했어요?
사실 미술관에서 와닿은 그림을 본 건 최근 일이에요. 회사 다닐 때 트렌디함을 찾아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저는 레퍼런스도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 이미지 대신 영화를 캡처하거나 그림을 가져갔거든요. 물론 설득하기는 더 어려웠죠. 그때 컴퓨터 바탕 화면에 던컨 한나 폴더가 있었어요. 그의 그림이 좋았지만 훅 와닿은 건 아니었고, 그냥 조금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직접 보는 것도 좋지만 컴퓨터로만 봐도 쉽게 감동하곤 해요.

집을 엿볼 수 있는 그림도 참 많잖아요. 지금 생각나는 그림 있나요?
로트레크의 그림요. 로트레크는 하녀를 많이 그렸는데 보통 그 배경이 방이거든요. 저는 ‘세탁부’라는 그림을 좋아해요. 이 여자처럼 방 안에서 창밖을 바라볼 때 뭔가 다음 상황이 예측되지 않는 게 좋아요. 세탁부잖아요. 그런데 이제 세탁부로 안 살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월급을 안 쓰고 11년을 모아야지 서울 평균 7억짜리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사를 봤어요. 11년 뒤면 현아 씨 나이가 40대인데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우린 이런 기사를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솔직히 월급으로는 집을 사기 어려울 것 같아요. 사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사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데 별생각이 없어요.

별생각이 없을 수밖에요. 특히 우리 같은 직업은 돈도 못 버는데 집은 무슨….
도대체 왜 이 돈 안 되는 직업을 택했을까 고민해보면 어린 시절에 닿아 있어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꾸준히 글을 썼거든요. 그게 시골에선 굉장히 큰 유희였어요. 그런데 글 쓰는 직업은 굶어 죽기 십상이라고 생각해 절대 직업으로 가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결국 이 직업을 택하게 됐고요. 잡지사 정규직 에디터로 일하게 됐을 때 아빠한테 전화하니까 딱 한마디 하시는 거예요. “너 원래 글 쓰는 일 하고 싶어 했잖아.” 저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거든요. 아빠가 알고 계신 게 신기했어요.



Conditions

지역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구조 다세대 빌라
면적 약 50㎡(15평)
보증금 2500만 원
월세  45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