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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근처의, 이토록 현명한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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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근처의, 이토록 현명한 쓰임

Editor.Juhee Mun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김기석 / 32세

공간 디자이너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구조 다세대주택 2층 투룸
면적  36m²(11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40만 원

 

Room History

23세 호주 올버니 Albany 다세대 1층 투룸
(보증금 90만 원, 월세 45만 원)
30세 30세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단독주택 스리룸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55만 원)

김기석의 중고 거래 스토리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갓 스무 살이 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대략 12년 가까이 사고팔면서 공간 디자인 일에도 중고 거래를 끌어들였다. 그는 공간 크기도, 프로젝트 예산도, 어떤 제약도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어떻겠냐는 물음에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거예요” 하고 웃어 보이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의 능력은 제약이 따를 때 빛을 발하고,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도 그 면목이 여실히 드러난다. 나는 불현듯 현명한 번역가를 떠올린다. 여러 출판사를 거치며 전해내리고 전해내려진 오래된 이야기를 맛깔나게 번역하는 자. 평일 오후, 오래된 역사와 이를 증명하는 물건들로 새롭게 번역된 김기석의 집을 탐험하기로 했다.



집 이름이 flat-2예요. 집에 이름을 붙일 생각을 어떻게 한 거예요?
보통 집이라는 게 몇 동, 몇 호처럼 호실로 이름이 붙잖아요. 《타인의 삶 The Lives of Others》이라는 책을 보다가 집과 이름에 관한 내용을 읽었는데, 집을 사물로 대하지 않는 정서적 태도와 인간적 관계성이라는 측면이 좋더라고요. 그 글이 좋아서 본격적으로 내 공간에 이름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flat-2는 어떤 의미의 이름인가요?
이중적 의미로 지었는데요, 일단은 단순하게 영국이나 호주 등에서 주거를 칭하는 이름으로 쓰는 flat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이 집이 2층이기도 하고, to라고도 읽혀서 집으로부터 이어지는 일들에 연결성을 갖고 싶어서 숫자 2를 붙였어요.


지금 사는 집을 직접 디자인했어요. 공간 디자이너라서 특별히 더 유리한 점이 있었나요?
일단은 행복한 일이었어요. 사회 초년생이 아무리 건축을 전공하고 공간 디자이너로 일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서울에 원하는 수준의 집을 누리며 살긴 어렵거든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물리적이고 환경적인 제약을 깨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공간을 구성하는지 알게 됐어요. 그 부분을 이 집에 잘 반영하려 했죠.


예를 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보통 월셋집에서 대공사를 할 수는 없는데 재개발을 앞둔 집을 찾았거든요. 제가 마지막 세입자라서 그 점을 이용해 집주인과 협의를 했어요.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적극적으로 벽을 부수든 뜯어내든 마음대로 고쳐서 쓸 수 있도록요.


마지막 세입자라고요? 재개발 시기가 언제인데요?
예상은 내년 5월 정도고요, 법적으로 인가가 다 떨어져서 시기만 고르면 된다고 해요. 지금 집에 더 살고 싶은데 결국 재개발로 건물을 부숴야 하니 많이 아쉬워요.



채광도 좋고, 분위기도 독특한 게 애정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손을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요. 특히 가구가 다른 집과 달라 보여요.
제일 크게 다른 건 주방인데요, 보통 집에서는 싱크대를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하거든요. 알고 보면 아주 단순한 구조인데, 전세나 월세로 들어가는 세입자들은 주방 고치는 걸 엄두를 못 내요. 저는 조만간 이사 가는 게 정해져 있으니까 나중에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기능별로 제작을 했어요. 화구 하나, 싱크대 하나, 냉장고 들어가는 장 하나 이렇게요.


그래서 달라 보였나 봐요. 다른 가구도 직접 제작했어요?
새것도 있고, 개인 전시하면서 만든 것도 있고, 빈티지 가구도 있어요. 지금 에디터 님이 앉아 있는 빈티지 의자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취미공간 대표님이 본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옥션을 열어서 산 거예요. 마감 시간을 정해두고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이 낙찰받기로 했는데 제가 최고가를 불러서 싸게 가져왔죠.


온라인 옥션이라니, 그거 신선한데요? 기석 씨는 온라인으로 중고 물건을 사는 데 익숙한 편인가요?
중고나라에서 기록을 찾아보니 2008년부터 거래를 했더라고요. 스무 살에 중고로 필름 카메라를 산 게 시작이었어요. 온라인으로 직거래를 알아보다가 15만 원에 원하는 카메라를 찾았죠. 써보니까 다른 필름 카메라도 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가격에 다시 팔고 또 다른 모델을 사고 또 같은 가격에 팔면서 서너 대를 써본 것 같아요.


같은 가격으로 다시 판다고 하니 중고 물건의 속성을 정확히 파악한 거래 같아요.
이미 중고로 거래했기 때문에 언제 판매해도 같은 가치를 가져요. 그때 카메라는 1980년대에 생산된 중고 물건이라서 3개월을 써도, 1년을 더 써도 컨디션만 잘 유지하면 동일한 시세로 값을 매길 수 있었어요.



최근에도 거래한 중고 물건이 있어요?
3일 전에 당근마켓에서 전시에 쓸 메트로놈을 샀어요.


예쁜데요? 얼마 주고 샀어요?
이거 1만1000원요.(웃음) 아날로그 제품은 기본적으로 고장이 없어요. 건전지를 넣을 필요도 없고 태엽으로 감아 쓰니까 오래돼도 기능적으로 딱히 문제가 생기지 않아서 좋죠.


이 동네에서 거래한 거예요?
아현역 쪽에서요.


연희동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반경이 넓네요?
당근마켓에서 ‘메트로놈’을 검색을 했어요. 그런데 보통은 주변 지역에 뜨는 중고 물건을 보긴 해요. 중고나라와 다르게 스크롤하면서 쇼핑하듯 나한테 필요한 게 있나 뒤적거리며 보죠.


요새 당근마켓 이용자가 정말 많더라고요. 전엔 ‘중고’ 하면 떠오르는 게 ‘중고나라’였는데, 이제는 ‘당근마켓’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아요. 둘 다 써본 입장에서 중고나라와 당근마켓은 어떤 차이가 있어요?
정확한 모델명이 있는 물건을 찾을 땐 중고나라를 쓰고요, 당근마켓은 범위가 넓은 검색어를 넣을 때 써요. 예를 들어 당근마켓에 ‘의자’를 검색해서 브랜드, 디자이너, 모델명 상관없이 나오는 결과를 쭉 보는데, 시장에 가면 구경하러 가서 보다가 마음에 들면 사잖아요, 당근마켓을 보면 그와 비슷하게 오프라인에서 쇼핑하는 느낌이 들어요.


뭔가 유럽에서 빈티지 마켓이 열리는 것처럼 당근마켓에서 빈티지 마켓이 펼쳐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우리나라는 주거 형태 때문인지, 문화적인 부분 때문인지 20~30대가 쓸 만한 뭔가를 볼 곳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있다고 해도 보통 아파트 앞에 어린이용품이나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을 위한 마켓이 열리잖아요. 당근마켓이 그동안 없었던 장을 활성화시킨 것 같기도 해요.



당근마켓 이용자가 한 달에 평균적으로 20일을 접속한다고 하던데, 기석 씨는 얼마나 자주 들어가서 보는 편이에요?
저도 대략 비슷해요. 필요할 때는 훨씬 더 많이 보고요. 특히 최근 공간 프로젝트를 할 때는 필요한 가구를 찾으려고 하루에도 두세 번씩 들어가서 확인했어요.


공간 프로젝트를 하면서 당근마켓을 이용해요?
부산 카페 리뉴얼 작업이었는데, 1980년대에 지은 고택에 있는 카페였어요. 고객이 고택 느낌에 맞춰 앤티크 가구들을 배치했는데, 이태원 가구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것을 흉내 낸 모조 앤티크였어요. 고택은 1980년대 당시의 한국, 일본, 서양의 문화가 두루 섞인 재밌는 맥락을 가졌는데, 그곳에 서양의 가짜 앤티크 가구를 채운 게 아쉽더라고요. 리뉴얼을 고민하면서 한국 빈티지로 공간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우선 집에 있던, 소격동에서 주운 원장실 테이블, 삼청동에서 주운 책상 하나, 책장 하나, 의자 5개를 화물차로 보냈어요. 꽤 보냈는데도 모자라더라고요. 추가로 더 필요해서 현재 판매하는 우리나라 중고 가구를 당근마켓에서 찾기 시작했어요.


와, 당근마켓을 작업에 반영한 게 정말 똑똑한데요? 고객이 당근마켓으로 가구를 구한 걸 알아요?
그럼요.(웃음) 고객한테도 당근마켓을 계속 보라고 했어요. 원래는 고객과 함께 부산에서 차를 타고 재활용센터를 다녔거든요. 아무리 다녀도 원하는 느낌의 가구가 없어 저는 서울로 올라와서 찾아보고, 고객은 부산에서 계속 찾아봤죠.


리뉴얼이니까 더 화려하고 멋지게 하고 싶었을 텐데, 한국의 중고 가구를 쓰는 것에 고객이 거부감을 드러내진 않았어요?
저예산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엄청 고마워했죠.(웃음) 디자인 맥락으로 봐도 오래된 건물에 국내에서 제작한 중고 가구를 쓰는 게 이질적이기보다 자연스러웠고요.


그렇게 몇 개를 더 샀어요?
추가로 소파 두 세트, 티 테이블 하나를 당근마켓에서 샀어요. 그렇게 화물차로 두 번 가구를 보냈죠.


프로젝트가 끝나고 집이 텅 비었겠는데요? 집에서 쓰던 것까지 보낼 생각을 어떻게 했나 싶어요.
어쨌든 재활용 가구잖아요. 필요한 사람과 필요한 공간에 준다는 생각이 쉽게 들었고요. 프로젝트 예산도 빠듯해서 그런 생각의 과정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당근마켓으로 가구를 구하는 동안 실패는 없었어요?
물건을 고르기 전에 판매자의 기록을 잘 파악해요. 당근마켓엔 판매자의 매너 온도도 있고, 재거래 희망률, 응답률, 후기 등이 있어요. 뭔가 미심쩍거나 거래 내역이 없으면 아예 리스트에서 제외해요. 그래서 사기당하거나 잘못된 걸 받아본 적이 없어요.(웃음)


슬슬 노하우가 나오네요. 중고로 가구를 거래할 때 알아두면 좋을 팁이 있을까요?
보통 목재는 나사로 조인 부분이나 결합 부분을 잘 살펴보는 게 좋아요. 주변부가 갈라지거나 고정이 안 돼서 흔들리면 특히 의자는 안정성에 문제가 생겨요.


온라인으로 가구를 살 때 오리지널을 확인하는 것도 어려운 점이에요. 사진으로는 잘 분간이 안 되거든요.
그건 전문가들도 꼼꼼하게 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긴 해요. 최근 나온 레플리카는 금방 구분이 되는데, 정품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레플리카는 상태가 오래돼서 분간하기 어려워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작사가 바뀌는 경우도 있어 본제품이라도 디테일에서 달라지는 부분이 생기고요. 저도 찾아보지만 온라인에서 오리지널 가구는 매물이 잘 없기도 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하기도 어려워요. 오히려 잘 모르는 브랜드에 유니크한 형태일 때 거래하려고 해요.



거래할 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기석 씨는 어때요?
매너는 온라인 거래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에 친절하고 정중하게 하려는 편이에요. 이모티콘도 좀 붙이고요. 그러고 만나면 어색해요.(웃음)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보통 거래만 깔끔하게 하고 끝내려 해요. 동네에서 만나는데 어떤 일을 하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아는 게 없잖아요.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목적으로 만나서 거래하는데, 오프라인에서 잠깐 본다고 해서 정서적으로 뭔가 생기지도 않고요.


동네에서 거래를 자주 하면 버스를 타다가 혹은 슈퍼에서 장 보다가 만나는 경우는 없어요?
그런 적은 없는데, 전에 연희동 주택에서 소파를 구매한 적이 있거든요, 그 사람과는 아무런 연결 고리도 없고 그냥 집에서 거래했던 것뿐인데, 그 뒤로 그 집을 지날 때마다 거래했던 일이 생각나 기분이 이상하긴 하더라고요.


동네와 이웃의 개념이 흐려진다는 생각도 들어요. 가까운 이웃이 많다면 오가다가 필요한 물건을 교환할 수도 있을 텐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잖아요?
당근마켓이 표방하는 게 이웃 간 거래, 커뮤니티 활성화일 수도 있지만, 제 경우는 멀리 가지 않아도 물건을 가까운 곳에서 쉽게 거래하는 편리성 때문에 쓰는 것 같아요. 이웃 거래라고 해서 공동체 의식이나 지역 간 소통을 느끼지는 못했고요. 어쩌면 매개가 생길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땅덩이도 좁은데 과연 서울의 어디까지가 우리 동네인가 싶기도 해요.


그럼 기석 씨에게 당근마켓은 로컬 거래의 매력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빨리 살 수 있기 때문인 거예요?
저는 그 지점이 좋은 것 같아요. 보통 사고 싶은 걸 빨리 갖고 싶기도 하잖아요.


빨리 갖고 싶죠. 갑자기 뒷북이긴 한데, 기석 씨는 당근마켓을 어떻게 알았어요?
어머니를 통해서 알았어요. 어머니와 얘기 중에 “당근! 당근!” 하면서 핸드폰 알람이 울리더라고요. 어머니가 당근마켓에서 오만가지를 다 파셨대요.


한번 빠지면 집에 있는 오만가지가 다 판매할 거로 보인다고 하던데, 기석 씨는 이 집에서 어디까지 팔 수 있어요?
딱히 없어요. 빨리 처분하고 싶을 땐 진짜 싸게 내놓아서 10~15분 내로 거래하고 확 치우는 타입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것 중에는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인터뷰 전에 기석 씨 지인들에게 이 질문을 해봤거든요?
네? 뭐라고 그래요?


그 형은 집까지 다 팔 것 같다고···.
어휴··· 내가 다 어떻게 모은 것들인데.



팔면 돈이 되는 게 당근마켓의 쏠쏠한 재미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어느 날 가까운 지인이 당근마켓으로 사업을 해보려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아요?
글쎄요, 가능성 있는 얘기긴 한데, 사업이라 할 만큼의 비즈니스가 될까요? 소일거리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동네에서 하는 거래인데 당근마켓에서 가격을 더 붙여 팔 수도 없을 거고. 이 앱의 취지와 맞는 방향인지도 모르겠어요.


기석 씨에게 당근마켓은 뭐예요?
합리적 거래의 수단요. 특히 아날로그 제품은 단종돼서 구하기 어려운데, 합리적 가격에 올라오니까 그런 제품을 구하는 수단인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웃과 지역이라는 정서적인 것 때문에 이용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게는 합리성이 가장 커요.


언젠가 재활용품을 모으는 슈퍼 쓰레기 프로젝트 ‘수레기’를 하고 싶다는 글을 SNS에서 봤어요. 실제로 주변에서 길가에 버려진 가구나 물건을 보면 기석 씨한테 연락하던데, 중고 물건에 관심이 큰 만큼 하고 싶은 일도 있어요?
동네에서 길을 걸을 때면 항상 레이더가 켜져 있어요. 실제로 버려진 가구에서 영감도 받고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가구들이 일부 파손된 채로 길가에 나온 걸 보면 형태적으로 재밌는 게 떠오르거든요. 쓸 만한 데 버려진 가구들은 수집하고 싶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게 항상 재밌고, 늘 찾고 있다고나 할까요? 나중에는 넓은 공간에 마음껏 모아서 판매하는 재활용품점을 하고 싶긴 해요. 꿈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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