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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 쇼핑이 어려운 이유가 다 있어요

Why Shopping for Home Appliances is Difficult

가전 쇼핑이 어려운 이유가 다 있어요

Writer. Alex Kim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나는 약 18년 정도 전자 제품 리뷰를 해온 리뷰어다. 주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태블릿 같은 디지털 기기를 리뷰하고 기사를 써왔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를 추천해달라고 메시지나 전화를 할 때가 많다. 큰 어려움은 없다. 일반적으로 최근에 나온 제품 중 예산에 맞는 제품을 추천하면 된다. 디지털 제품은 최신 제품일수록 좋으니까. 그런데 곤혹스러운 분야가 있다. <디렉토리>가 의뢰한 ‘가전제품 추천’이다. 디지털 제품과 가전제품은 전자 제품 몰에서 함께 팔고 있으며, 제품에 전원이 들어가야 하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마치 타자기와 컴퓨터처럼 전혀 다른 물건에 가깝다. 솔직히 말하면 오븐이나 냉장고, 건조기 등에 대한 나의 지식은 일반인과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필 <디렉토리>의 첫 원고 청탁이 가전제품에 대한 주제라니··· 담당 에디터가 원망스럽다.


원고 청탁을 받고 나서 왜 가전제품 추천이 어려운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정리해봤다. 읽고 나면 디지털 기기 리뷰어에게 가전제품 추천을 부탁하면 안 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우선 가전제품은 기술적 스펙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노트북은 프로세서의 클록스피드와 코어 개수만 알아도 어느 정도 성능을 예측할 수 있다. 또 네트워크 버전이나 세대(generation)를 알면 대강 기술적 스펙을 알 수 있다.
반면 냉장고의 예를 들어 보자. 냉장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숫자는 도어의 개수다. 그런데 1도어 냉장고와 4도어 냉장고는 숫자가 다르지만 기술적 차이나 성능의 차이를 나타내지 않는다. 라이프스타일이나 용량의 차이에 따른 구분일 뿐이다. 2도어 자동차와 5도어 자동차의 차이와 비슷하다. 스펙에 적힌 몇몇 숫자가 제품 성능이나 기술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않는 것이다. 스펙을 읽었지만 성능의 차이를 알 수 없다면 리뷰어로서는 혼란에 빠진다. 제품 간의 편차나 성능 차이가 느껴지는 숫자는 용량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으레 “용량 큰 거 사면 된다”라는 미신이 생겼다. 용량이 크면 가격도 비싸고, 가격이 비싸면 가장 좋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지만 제조사도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역이용하기도 한다. 같은 냉장고라도900L짜리보다 750L짜리가 더 비싼 경우가 있다. 역시 좋은 대답은 아니다. 
 


기술적 메커니즘도 제품별로 아주 다르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은 전혀 다른 제품군이지만,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네트워크 등이 비슷하다. 그래서 어느 한 분야에 통달했다면 다른 디바이스도 어느 정도 지식이 생긴다. 그런데 TV와 냉장고는 공통점이 없다. TV는 디스플레이 종류와 영상 처리 엔진, 백라이트 방식 등이 중요한 선택 요소다. 그런데 냉장고에는 TV에 사용한 부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냉매와 온도 조절 시스템, 그리고 컴프레셔 등이 중요하다. 완전히 새로운 학습이 필요하다. 진공청소기로 가보면 또 새로운 부품이 잔뜩 등장한다. 진공청소기는 모터와 배터리, 브러시, 그리고 필터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TV에 대한 지식이 많아도 그 지식이 냉장고나 진공청소기를 고를 때는 아무 쓸모가 없다. 따라서 나 같은 리뷰어라 해도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제품에 대한 지식은 제로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디지털 기기 리뷰어에게 가전제품 추천을 부탁하지 말기를.


좋다. 그렇다면 디지털 기기를 고르는 방법인 “최신 기기를 사라”를 대입해보자. 물론 최신 가전제품이 가장 좋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니까.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면 딱히 그렇지 않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칩셋은 1~2년에 한 번씩 업그레이드하지만 냉장고의 냉매나 세탁기의 모터는 1~2년에 한 번씩 업그레이드하지 않는다. 아니 거의 업그레이드하지 않는 제품도 많다.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 제습기 등 모든 기술은 50년 전에 이미 완성됐다. 선풍기, 헤어드라이어, 청소기 등은 100년 전 제품과 현재 제품이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가전제품의 모델 체인지 주기는 보통 10년이고, 이 말은 10년 전 제품과 현재 제품이 디자인이나 세부적 편의 기능 외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나오는 가전제품 역시 기능적 개선보다는 도어의 색상을 바꾸고 용량을 늘리는 방식 정도다. 따라서 무조건 최신 제품을 고르는 것은 같은 기술을 가장 비싸게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합리적 소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커뮤니티나 다른 사용자의 노하우를 얻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그런데 가전제품은 사용자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 흔히 가전제품은 “거거익선(크면 클수록 좋다)”이라는 말이 일반화돼 있다. 하지만 1~2인 가정에서는 그런 추천이 무의미하다. 어떤 이는 냉장고의 온도 유지에 크게 민감하지 않지만 냉장고 소음에 민감할 수 있다. 반대로 냉장고를 보조 주방에 둔다면 소음은 민감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내가 아는 사람이 잘 썼다고 해서 나에게 꼭 맞는 제품일 리는 없다. 나와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하거나 가족 수가 비슷한 사람의 예를 수집하는 게 그나마 유용하다. 그리고 누군가의 경험도 사실 제한적 정보일 가능성이 있다. 냉장고는 매년 구입하는 제품이 아니다. 


만약 10년에 한 번 정도 바꿨다면 40대 소비자가 평생 접해본 냉장고는 서너 대 정도일 것이다. 시중에는 수천 대의 냉장고가 나와 있는데 겨우 서너 대 써본 사람의 경험이 크게 유용할까? 따라서 미리 써본 사람의 추천은 최악의 제품을 피하는 방법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좋다.


그 밖에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가전제품의 추천이 어려운 점은 교체 주기가 너무 길고, 사용자가 여러 제품을 경험하기 힘들며, 가전제품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뭉뚱그리기에는 제품의 메커니즘과 주요 부품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쇼핑몰의 별점이나 광고 외에 가전제품을 잘 고르는 방법은 없을까? 예산이 가장 중요한 선택 요소가 아니라면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카테고리의 원조 격인 회사를 선택하는 방법이다. 가전제품은 대부분 기술 발달이 느리기 때문에 제품에 대한 디테일한 노하우나 사용자 경험이 중요하다. 이런 노하우는 마치 골프의 구력과 같다. 개인의 재능도 중요하지만 결국 다양한 날씨와 필드, 자신의 컨디션을 경험해본 사람의 노하우가 평균 타수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가전제품 역시 몇 가지 아이디어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서 반짝 히트를 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오래 만들며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디테일한 부분을 고집스레 개선하며 살아남은 회사의 노하우를 단기간에 따라잡기 힘들다. 회사 규모와는 상관없이 되도록 해당 가전제품을 가장 오랫동안 만들어온 회사를 고르면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캐리어 에어컨이나 위니아 김치냉장고, 다이슨 무선 청소기 등은 세계 최고의 전자 회사는 아니지만 해당 카테고리에서만큼은 원조 격인 회사들로 그 노하우와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직접 써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만약 해외 제품의 AS가 걱정된다면 국내에서 오랫동안 만들어온 제품을 고르는 것이 차선책이다. 다만 에어컨을 잘 만든다고 냉장고를 잘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에어컨과 냉장고는 전기가 들어가는 것과 전자 제품 몰에서 판다는 공통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두 번째는 핵심 부품에 대한 AS 기한이다. 각 제품별로 핵심 부품이 있다. TV는 패널이고, 청소기나 세탁기는 모터, 냉장고는 컴프레셔 등이다. 이런 핵심 부품은 가전제품의 교체 주기상 적어도 5년 이상 10년 가까이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품질이나 내구성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제품 자체는 1~2년의 AS 기한을 두지만, 이런 핵심 부품들은 예외적으로 2년 이상 보증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10년 가까이 보증하는 부품도 있다. 그만큼 좋은 부품을 썼다는 뜻이고,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런 핵심 부품을 따로 오랫동안 보증하는 제품을 사용하면 적어도 제품을 쓰면서 스트레스받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정보를 모아봤는데 독자분에게 도움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디 이 글을 많은 사람이 읽고 디지털 기기 리뷰어는 가전제품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알렉스 김

유튜브 ‘기즈모’ 채널 크리에이터, 2004년 이후로 얼리어답터, 더기어 등의 테크미디어를 운영하며 디지털 기기 리뷰를 해왔다. 저서는 리뷰에 지쳐 제주도 살면서 펴낸 《제주도 절대가이드》가 있다.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