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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인 가구 가전 답사기

Exploring my home appliances

나의 1인 가구 가전 답사기

Writer. Mina Hwang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매일 아침 출근길에 꼭 마주치는 광고가 있다. 레드카펫 방식으로 설치된 지하 통로 위로 벽면을 가득 채운 이미지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잠에서 덜 깬 몸을 에스컬레이터에 싣고서 눈 둘 곳 없던 나는 그걸 멍하니 들여다본다. 사진 속 회색빛 대리석 깔린 바닥과 그에 어울리는 새하얀 벽지로 꾸민 거실이 보인다. 거실 오른편에는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펼쳐진 스테인리스 싱크대가 자리한다. 그 한가운데 대문짝만 한 도어 4개가 달린, 정수기까지 장착한 최신형 냉장고가 주인공 모습으로 늠름하게 서 있다.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시선이 향하는 곳은 정직한 고딕체로 적혀 있는 광고 카피 문구 “가전은 나답게”. 볼 때마다 헉 하는 광고. 나다운 가전이라니‧‧‧ 가전이 나다울 수 있을까? 왠지 모를 반발심에 이러쿵저러쿵 속으로 볼멘소리를 해본다. ‘이 정도 사이즈의 냉장고 하나 들어가려면 거실이 꽤 커야 할 텐데, 그럼 어떤 집에 살아야 하는 거지? 빼어난 디자인의 냉장고는 차치하고 과연 멀쩡한 냉장고를 내 힘으로 사볼 수는 있을까?’ ‘나의 가전 답사기’라는 주제로 원고 청탁을 받고 나서 첫 문장을 쓰기까지 꽤나 긴 시간을 방황했다. 이 주제에 대해 무언가 쓸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주거 환경은 가전을 답사할 만큼의 여유와 선택지를 쉽게 허락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 글은 답사기라기보다 답사의 불가능기에 가까울 것이다.



가족과 떨어져 독립하기 이전, 어릴 적 살던 집은 부모님의 경제 상황에 따라 내부가 채워졌다. 내 방이 있었지만 가구와 가전 구매는 오롯이 부모님 몫이었다. 생애 절반 이상을 그곳에서 보내고 성인이 되어서야 부모님 집을 떠나 홀로 상경했다. 학생 신분으로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벅찼기에 처음에는 친척 집에 머물렀다. 전세 아파트에 살던 친척 덕분에 1인 생활을 하면서 운 좋게 4인 규모의 가전제품을 누릴 수 있었다. 나에게 할당된 공간은 조그만 방 하나였지만 주말마다 진공청소기로 방을 치우고,주방에 있던 700L짜리 냉장고에 먹다 남은 식빵 한 줄을 통째로 보관하는, 저녁에는 거실에서 42인치 텔레비전으로 예능을 보며 깔깔대는 호사를누렸다. 대신 눈치가 보였다. 내 것인 게 하나도 없어서였다. 돈을 벌자마자 자취방을 구해 독립했다. 이사할 때 들고 나온 건 2만 원짜리 기본형 철제 책상 하나와 100권 넘는 책 그리고 옷가지 등이었다. 가전제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세탁기와 가스레인지를 제외하고 빌트인 가구 하나 없는 7평 월세방. 나의 첫 주거 공간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40%는 보증금 있는 월세방에 살고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40m2 이하 공간에 거주한다고 한다. 당시 23m2 크기의 방을월세 50만 원에 임차했으니 나 또한 평범한 1인 가구였다. 방바닥에 누워 두 바퀴 정도 데구루루 구르면 3초 이내로 바닥의 처음과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공간. 책상을놓고 매트리스를 깔고 행어를 설치하고 나니, 코딱지만 한 자투리 자리가 남았다. 나는 그 소중한 자리의 일부를 처음 구매해본 선풍기한테 내주었다. 선풍기를 살 수밖에 없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해 폭염이 찾아왔고, 집주인이 설치한 5년 넘은 에어컨은 분무기처럼 허공에 물을 뿌려댔다. 선풍기를 사기 위해 온라인 검색을 시작했다. 상품을 고르고 결제하기까지 30분은커녕 10분도 채 안 걸렸는데, 모름지기 나에게 선풍기란 튼튼하고 날개만 잘 돌아가면 되었기에 여러 상품을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하얀색이냐 검은색이냐만 고민하느라 조금 애썼다.


원룸에 살면서 생활 물건을 살 때 생긴 나만의 기준이 있다. 첫번째, 색깔이 시야에 거슬리지 않기. 방 하나에 온갖 종류의 세간을 배치해야 하는 원룸 특성상 제품이 저마다 개성을 갖고 있으면 곤란하다. 각각의 자태는 예쁠지 몰라도 매트리스에 누워 비좁은 곳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놓인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눈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다소 마음이 심란할수 있다. 서울의 원룸 평균 넓이가 약 22m2 라고 하니 가전제품의 크기도 크기지만, 그 공간에서 안온한 일상을 누리려면 두 번째로 가전의 소음도 중요하다.


소음을 고려하는 이유는 바로 냉장고 때문이다. 집주인이 유일하게 제공한 가전은 냉장고였는데(에어컨도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으니 구태여 제공받았다고 말하기 싫은 이 마음‧‧‧), 내 허리 정도 오는 세로 길이와 가로로 달걀 10구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7평에 딱 어울리는 아담한 제품이었다. 이 냉장고가 문제였다. 에너지 효율이 5등급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원룸용 가전제품 대부분은 에너지 효율이 5등급인데, 용량이 작은 가전일수록 당연히 저가이기 때문에 고효율 기술이나 고가 제품을 사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니면 연식이 오래되어서였을까? 팬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크고 그 소리의 주기 또한 잦았다. 그때 처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주 예민해지곤 했던 나는 냉장고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한번 귀에 각인된 불편함은 쉽게 떠나지 않았고 잠을 뒤척이기 일쑤였다. 안 되겠다 싶어 월세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바로 이사를 결정했다.


지금 사는 집은 7평 신축 오피스텔이다. 기본 가전이나 가구가 다 빌트인으로 구비되어 있고 천장이 높아 평수는 비슷하지만 이전 집보다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다. 거기에 창고까지 있어 선풍기나 전기장판 같은 계절용 가전제품을 따로 보관할 수 있다. 조금의 여유가 생기자 위시 리스트에 적어놓은 가전제품의 구매를 하나씩 실행했다. 43m2 범위까지 커버할 수 있는 공기청정기를 구매했고, 가사 노동시간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2년간 쓰던 빗자루를 버리고 적당한 중형 브랜드의,할부로 살 만한 가격대의 무선 청소기로 교체했다. 하루하루 공기 질이 어떤지 더욱 신경 쓰게 되었고, 청소할 맛이 생겨 자주 집 안을 돌보게 되었다.싱크대도 넓어져 다기능 전기밥솥도 구비했는데 손쉽게 찜 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 에너지 효율 2등급인 빌트인 냉장고는 소음으로 속을 썩이지 않았다. 정상 작동하는 신형 에어컨을 위해 선인장이 그려진 커버를 씌워주었다.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아주 조금은 취향이 생긴 기분이었다.


오늘도 아침 출근길에 졸린 눈으로 파스텔 톤의 무지개 빛깔로 자태를 뽐내는 냉장고와 식기세척기 광고를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동시에 얼마 전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원룸에서 거실 딸린 투룸으로 거처를 옮긴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답게 그가 제일 공들여 꾸민 곳은 감상실. “이사하니깐 뭐가 좋아?” 물으니 친구가 답했다. 


“상상력이 조금은 커졌다고나 할까. 텔레비전이랑 침대가 분리된 공간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원룸에 오래 살았으니까. 처음에는 새로 생긴 방에 뭘 채워야 할지 몰랐는데, 굳이 텔레비전이 침대 앞이나 옆에 있을 필요는 없겠더라고. 근데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어. 그때까지도 원룸 크기에 머물러서 공간을 생각한 거지.”


친구 말을 곱씹으며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과 그곳을 채운 제품들을 떠올렸다. 내 상상력과 취향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가전은 나답게”라고 적힌 광고 카피를 훑어보며 생각했다. ‘정말로 나다운 가전으로 채울 수 있는 집에서 살아볼 수는 있을까?’
        

     

   

황민아

CBS ‘씨리얼’에서 콘텐츠 만드는 PD로 일하고 있다. 이전에는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출판 단지에서 책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