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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일의 쓰임이 될 때

When the Space Is Used for Work

여유가 일의 쓰임이 될 때

Editor.Juhee Mun/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서은교, 김진형 / 33세, 35세

서비스 기획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Conditions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구조 아파트
면적  99㎡(37평)

 

Room History

김진형

20세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 하숙
(보증금 200만 원, 월세 55만 원)
24세 서울시 중랑구 상봉동 아파트
(전세 약 1억 원)
26세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아파트
(전세 약 7000만 원)
27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아파트
(전세 1억2000만 원)
29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아파트
(전세 1억4000만 원)
31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아파트
(전세 1억7000만 원)
33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아파트
(매매 8억 원)

서은교, 김진형은 많이 가진 듯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큰 방이 3개 있는 넓은 아파트에는 물건이 그리 많지 않고 대체로 여백이 듬성듬성 있었다. 집은 쾌적하고 조용했다. 어느 호텔방처럼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부지런히 집을 관리했다. 부부가 한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물었을 때 그들은 ‘그런 게 있어?’ 하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희도 싸우긴 싸우죠” 하고 이내 말을 이어갔지만 그 대답이 가볍게 들린 이유는 집을 관리하는 노력만큼이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사람들이라는 게 엿보였기 때문이다. 커다랗고 정갈한 집이 만들어주는 여유라는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 느껴지는 여유는 단지 집의 크기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되레 그들에게 깃든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만든 것처럼 보였다. 단정하고 고요한 집은 그들을 더욱 움직이게 했다.


그동안 다녀본 곳 중에 가장 단정한 집인 것 같아요. 집 자체가 고요하기도 하고요.
은교
처음에 이 집으로 이사하고서 덩그러니 앉아 말을 하는데 제 목소리가 울리는 거예요. 분명 우리 집인데 약간은 낯설게 느껴져서 오히려 좋더라고요. 호텔, 리조트에 가면 낯설면서도 안락한 분위기가 있잖아요. 막연하게 우리 집이 그런 느낌이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보면 가구를 비롯해 조명, 싱크대 수전 등 디테일도 신경을 많이 쓴 태가 나는데요, 평소 집을 꾸미는 데 관심이 많았나요?
은교
자취할 때 놀러 가서 깜짝 놀랐던 게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액자도 있고, 라탄 바구니도 있다는 거였어요. 집을 꾸미고 살더라고요.
진형 첫 회사가 N사였어요. N사 사옥을 보면 의자 하나도 디자인 체어를 둘 만큼 잘되어 있거든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회사에서 계속 보다 보니까 눈이 높아지더라고요. 좋은 가구가 있으면 이렇게 마음이 좋구나, 하는 걸 느끼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제가 사는 곳에도 두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런데 가구 위에 놓인 물건이 거의 없어요. 평소에도 이렇게 깔끔하고 단정하게 지내나요?
은교
바로바로 치우는 편이긴 한데 사실 평소에 이 정도까지 깔끔하진 않아요.
진형 촬영한다고 치운 건데, 다 아시잖아요…. 보통은 어느 정도 어지르고 널브러지면서 편하게 살아요.


두 분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은교
저는 N사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고 있고요.
진형 저는 H사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어요.


팬데믹 이후 집에서 같이 일하게 됐는데, 서로 일하는 모습을 보니까 어때요?
진형
아주 열심히 해요. 기획자면 재밌는 일도 있고 단순 반복하는 일도 있는데, 모든 면에서 즐겁게 하는 모습이 보기 좋던데요.
은교 비개발자 입장에서는 영어와 숫자로 된 데이터를 입력해서 코딩하는 게 멋있어 보이거든요. 입고 있는 것은 잠옷인데, 눈빛은 프로페셔널하달까요.(웃음) 남편이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항상 녹초가 됐거든요. 저는 얘기하거나 같이 놀고 싶은데 그게 잘 이해가 안 됐어요. 어쨌든 저도 똑같이 일하다 왔으니까요. 그런데 옆에서 보니까 진짜 만만치 않더라고요. 긴 시간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집중력을 쏟는 걸 직접 보니 왜 그랬는지 이해되더라고요.


두 분은 같이 일하면서 서로의 도움도 받나요?
은교
의견 교환을 하면서 업무의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런 걸 했는데 혹시 불편하진 않아? 이렇게 할 땐 어떤 생각이야? 하는 걸 바로바로 물어볼 수도 있고요. 저는 개발자가 아니기 때문에 회사 개발자랑 의사소통하기 전에 바로 제 앞에 있는 남편한테 먼저 물어봐요. 혹시 이렇게 하면 개발 공수가 많이 들지 않을까, 하면서 조언을 구할 수 있으니 일을 할 때 좋더라고요.
진형 사람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면 만족감을 많이 느끼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기획이 약하기 때문에 플로어에 대해 많이 묻거든요. 어떨 땐 스스로 먼저 와서 이야기해주기도 하고요. 이런 기능이 있으면 어떤 게 더 들어가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요. 이 집에서 함께 공유하는 것들이 저는 좋아요.


재택근무가 부부 사이에 도움이 되었네요.
진형
맞아요. 서로의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돼서 서로를 보는 눈이 좀 더 관대해진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지금 반강제적으로 집에서 일하는 건데, 몇 달간 해보니 어떤가요?
은교
저는 사실 코로나19만 아니면 회사에 나가서 사람들이랑 소통하고 싶어요. 회사에서 동료들과 업무 얘기도 하고 커피 마시며 시시콜콜 나누던 얘기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거든요. 가끔은 적막한 집에서 혼자 키보드를 두드릴 때면 ‘내가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도 들고, 계속 혼자 일하는 게 외롭기도 해요. 특히나 저는 기획 업무를 하다 보니까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필요한데요, 집에서 화상회의를 하거나 메신저로 주고받으면 의미 전달이 잘 안 되어 조금은 고립됐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또 일하는 데 몸은 편하지만 아무래도 집이다 보니 다른 에너지를 써야 하기도 하고요. 일단은 삼시 세끼를 해 먹어야 하잖아요.


식사를 집에서 직접 해 먹어요?
은교
네, 매일 요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간편식은 건강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일 끝나면 다음 날 먹을 걸 미리 준비해둬요. 온라인 장보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밥을 해 먹는데, 귀찮긴 해도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크게 부담이 되진 않아요.
진형 코로나19가 있기 전에도 제 도시락을 싸줬거든요. 원래 부지런한 성격인 것 같아요.


두 분은 부부이지만 집이라는 한 공간을 공유하는 동료이기도 한데요, 일하는 공간을 따로 두면서 서로의 업무를 존중하기 위해 정해놓은 규칙이 있나요?
진형
특별히 세운 규칙은 없고요, 다른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일하는 게 규칙인 것 같아요. 그리고 각자 혼자 일하니까 외롭잖아요. 전 가끔 장난을 치거든요. 한 대 툭 치기도 하고 먹을 걸 가져다주기도 하죠.
은교 저는 저쪽 방에 혼자 있지만 남편은 공간을 옮겨 다니거든요. 뭐가 필요하거나 부엌에 가서 뭘 마시려고 할 때 눈치를 보게 되는 건 있어요. 회의할 때 지나가야 하면 제가 안 보이게 바닥을 기어 다녀요.(웃음)


두 분이 일하는 자리가 어딘데요?
은교
저는 주로 서재에서 일하고요, 남편은 안방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서 일해요. 조도도 낮고 좁은 복도 같아 독서실 분위기가 나는데, 거기로 의자를 옮겨서 일하거나 제가 일하는 서재를 제외하고는 자리를 바꿔가면서 해요.


처음부터 일하는 방을 서로 달리하자고 정한 거예요?
진형
아뇨, 처음에는 같이 일했어요. 그런데 붙어 있으니까 계속 얘기하고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자꾸 얼굴을 쳐다보게 돼요.


아!(웃음) 신혼부부라 그런가요? 마침 따로 일할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게 좋네요. 지금 집이 따뜻한 분위기잖아요. 사실 회사의 사무 공간은 따뜻한 느낌과 사뭇 거리가 있는데요, 집의 아늑하고 단정한 느낌 때문에 모순적으로 일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나요?
은교
그런 것 같아요. 방에서 일하다가 거실로 나오면 햇살이 부엌 안쪽까지 쭉 들어와 있어요. 그럼 물 마시다가 놓고 카메라 들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죠. 안방은 상대적으로 해가 덜 들어오는데, 조도가 낮으니까 일하다가 잠깐 앉으면 녹아내려요. 회사에서는 보는 눈도 많고 핸드폰을 하더라도 자리나 카페에서 하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 마음만 먹으면 누울 수 있으니까 확실히 일을 방해하는 유혹이 생기긴 하죠.
진형 저는 어디에 있어도 일을 잘하는 스타일이라서.(웃음) 그런데 그런 건 있죠. 집이다 보니까 평소 취미 생활로 하던 게임도 그렇고 좋아하는 침대가 옆에 있으니 눕고 싶긴 해요. 하지만 제 일이 계속 채팅을 주고받으면서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기는 힘들어요. 어쨌든 집에서 일할 때는 개인의 양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집에서 아프면 어떻게 해요? 병가도 내나요?
은교
회사 지침에 재택과 휴가, 병가는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이를 구분해서 명확하게 하라는 가이드가 있어요. 그래서 명확하게 지키면서 일하죠.
진형 아파서 늦게 일어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늦게 일어나더라도 근무시간을 줄이진 않고 늦게까지 일해요. 퇴근 시간을 미루더라도요.


자신을 잘 컨트롤하지 않으면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할 수 있잖아요? 두 분은 집에서 출퇴근 시간을 지키고 있나요?
은교
자율 출퇴근제를 하고 있어 회사에서 정한 업무 시간은 없어요. 본인이 맡은 일을 할 수 있는 선에서 출근과 퇴근을 하죠. 저는 보통 10시에 출근해서 7시에 퇴근하고, 업무를 더 해야 할 때는 야근해요. 아무리 집에서 흐트러지기 쉽다고 해도 보이지 않을 때도 열심히 일한다는 걸 회사에 보여줘야 한다는 사원의 마음이 있어요.


보여줘야 한다는 사원의 마음요?
은교
네, 성과가 안 나오면 회사 입장에서도 재택근무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잖아요. 이 자리에서 좀 더 열심히 해야 재택근무를 정상 근무의 한 형태로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형 저는 10시에 출근하면 밤 9~10시까지 일하는 것 같아요. 개발자는 좀 더 일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요. 밤에도 메신저나 줌을 해요. 재택근무를 하면 아무래도 휴식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을 끝내는 시간이 늦어지기도 하고요.


재택근무를 경험하면서 출퇴근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된 회사가 많다고 해요. 실제로 사무실 규모를 줄이는 곳도 있다고 하고요. 회사의 의미가 이제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은교
저도 공감하는데, 업무에 따라 다르지만 독립적으로 일하는 직군도 있잖아요. 그럴 경우는 회사라는 공간이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들긴 하더라고요. 이제는 회사가 책상과 컴퓨터만 놓고 나만의 일을 하는 곳이기보다 사람들과 얘기하는 공간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은 어디를 가도 회의실이 부족한 경우가 많죠. 그걸 보면 회사에서 회의실이 더욱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진형 그래도 여전히 필요하긴 한 것 같아요. 대기업의 경우, 일의 체계가 잘 잡혀 있고 룰도 명확해요. 그런데 스타트업이나 작은 업체는 룰이 명확하지 않거든요. 개발자가 기획도 하고 어느 부분에선 디자인도 조금씩 하죠. 제 전문 분야가 아닌 일도 해야 하니까 역할이 다른 주변 동료와 더 많이 대화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의사소통하기 편하니까 회사에 공간이 더 필요한 것 같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재택근무로 완전히 집중해서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이 늘다 보니 좋더라고요. 그래서 출근과 재택근무를 어느 정도 섞어서 하면 업무 효율이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종일 집에 있으면서 알게 된 낮의 모습은 어떻던가요?
진형
회사에 있으면 보통 햇살이 잘 안 들어오잖아요. 다 막아두고 일하니까요. 그런데 집에선 일출부터 일몰까지 다 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은교 낮에 일하면서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의 소리를 듣게 됐어요. 택배받는 소리, 옆집 아줌마가 강아지와 외출하는 소리,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 오가는 소리요. 그 전에는 어떤 이웃이 있는지도 모르고 누가 오가는지도 몰랐거든요. 이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재택근무 이전과 이후에 이 집에서 가장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은교
사실은 저희가 방 하나를 서재로 만들어뒀지만 형식적인 공간이었어요. 그냥 책 놓고 잘 사용하지 않는 집기류를 두는 곳이어서 정말 많이 안 들어갔죠. 그런데 지금은 제일 많이 쓰는 공간이 됐어요.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잠깐의 휴식도 서재에서 하게 되고요. 사무실처럼 일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요.


처음엔 몰랐지만 마치 재택근무를 예상했다는 듯 참 잘해뒀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진형
안방에 있는 책상과 서랍요.
은교 원래는 붙박이장이 있던 곳인데,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떼어내고 새로 제작한 가구를 뒀어요. 용도는 잠자기 전에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는 생활 공간 정도로 생각했는데, 재택근무할 때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죠.
진형 거기서 일하면 집중이 잘돼요. 살짝 어둡고, 뒷벽이 가까운 데다 책상도 아담해 독서실에서 일하는 느낌도 있어요. 공간이 좁다 보니 화상회의를 할 때 목소리 전달도 잘되고요.


재택근무를 하면서 부부들에게는 전에 없던 일이 많이 생기나 봐요. 근래 새로 생긴 신조어가 코로나 이혼(Covidivorce)이라고 해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고 하는데요, 미국은 이혼 서류 구매량이 크게 늘었다고 해요. 그만큼 부부가 한 공간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겠죠. 한집에서 일 잘하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진형
저희도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당연히 싸울 때가 있죠. 그런데 어차피 나중에 은퇴하면 평생 같이 있어야 하는데(웃음) 그때를 연습한다는 느낌으로 멀리 보면서 지내요.
은교 남편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까 같이 놀다가 잠들고 피곤해하더라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 집이 두 분의 신혼집으로서 의미가 있었을 텐데, 이제는 업무 공간의 역할이 더해졌어요. 그런 면에서 집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요.
은교
이전에는 집에서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소중했다고 느꼈다면, 이제는 한집의 독립적 공간에서 서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해졌어요.
진형 전에는 쉬는 공간으로 집을 생각한 것 같아요. 저는 집에 돌아오면 TV 보면서 누워 쉬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집에서 일은 물론 거의 모든 생활을 하니까 자주 쓰는 가구에 눈이 가더라고요. 먼지가 수북이 쌓인 것이 눈에 들어오니까 더 잘 닦게 되고요. 집 안의 물건을 관심 있게 보면서 더 소중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구조 아파트
면적  99㎡(37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