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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집다워지는 순간

When ‘House’ Becomes ‘Home’

집이 집다워지는 순간

Editor.Hyemin Lee / Photographer. Juyeon Lee Knock, Please

김민지, 천휘재

34,35세 / 건축가, 뮤지션


Conditions

지역 서울 종로구 가회동
구조 한옥 스리룸
면적 대지 약 130㎡(40평), 건물 약 65㎡(20평)

Room History

민지

21세 학기 40만 원
(학교 기숙사)
22세 보증금 300만 원, 월세 25만 원
(다세대주택 옥탑방)
23세 보증금 300만 원, 월세 30만 원
(단독주택 곁다리방 분리형 원룸)

 

휘재

27세 월세 40만 원
(고시원 1인실)
27세 보증금 500만 원, 월세 25만 원
(원룸 셰어)
29세 보증금 500만 원, 월세 20만 원
(다세대주택 2층 스리룸 셰어)
32세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10만 원
(단독주택 1층 스리룸 셰어)

북촌 한옥마을 초입에서 골목길을 따라 네 번쯤 방향을 바꿔 올라가다 보면 만나는 막다른 곳. 그 맨 꼭대기에 아담한 한옥 ‘3ㅈhouse’가 있다. 셰어하우스라는 단어조차 생경하던 9년 전 각자의 고향을 떠나온 3명의 친구는 어느 날 각자의 원룸에서 나와 이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저마다의 삶을 찾아 떠난 뒤에도 이 집은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함께 살기’를 택한 누군가에게, 단지 잠을 자는 곳이 아닌 서로 복닥거리며 온기를 나누고 드나들 수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집에는 결혼한 지 두 달 된 신혼부부와 반려견, 또 한 명의 하우스메이트가 함께 살고 있다. 물론 이들 모두 여전히 서울 이주민이다. 


와, 전망 좋은 북촌 꼭대기 한옥이네요. 이 집에는 어떻게 살게 된 건가요?

(민지) 전망 좋죠? 이 집에 제가 처음 살기 시작한 게 2009년이니까 어느덧 9년 전이네요. 학교 친구 셋이서 같이 살면서 작업도 할 공간을 찾고 있었어요. 한옥이 적합할 것 같아 서촌과 북촌을 다녔죠. 그때는 이 동네가 지금과는 좀 달랐거든요. 아주 조용하고 집세도 적당했지요. 그때 우연히 구한 집이 이곳인데, 운 좋게 지금까지 살고 있네요.

(휘재) 저도 원래는 서울의 다른 동네에서 고향 친구들이랑 모여 살다가 이 집에는 민지와 결혼하면서 7개월 전에 들어왔어요.

대문에 ‘3ㅈhouse’라고 쓰여 있던데, 무슨 뜻이에요?

(민지) 그때 처음 같이 살기 시작한 친구 3명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ㅈ’이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집 이름을 ‘3ㅈhouse’로 지은 건데, 어쩌다 보니 지금 같이 사는 휘재와 반려견 지온이까지 전부 ㅈ이 들어가네요.(웃음)

그때는 지금처럼 우리나라에 셰어하우스 개념이 없었던 걸로 아는데, 어떻게 집을 셰어해서 살 생각을 했나요?

(민지) 저도 이 집에 오기 전까지는 학교 기숙사에서도 살아보고, 혼자 옥탑방에서도 살아보다가 우연히 일본 드라마에서 셰어하우스라는 걸 본 거죠. 제가 그때 건축과 3학년이었는데, 프로젝트 주제를 셰어하우스로 잡았어요. 그때부터 주변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는지 수소문해서 인터뷰도 하고 친구들과 스터디도 하고 그랬지요. 그러다 “우리도 같이 한번 살아볼래?” 해서 이 집을 구하게 된 거예요. 같은 과 동기들이다 보니 생활 패턴도 비슷하고 관심사도 비슷해서 집을 아지트 삼아 독립 출판 같은 것도 해보고요. 참 재미있게 잘 살았어요. 

지금은 친구가 아닌 불특정한 사람과도 집을 셰어하고 있잖아요.

(민지) 그때 그렇게 살다가 학교 졸업하고 친구들이 유학을 가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저만 남았죠. 그때 반려견 지온이랑 함께 살고 있었거든요. 이 친구랑 계속 살 수 있는 집이 서울 시내에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집에서 계속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때부터는 정말 셰어하우스로 오픈해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살아보게 된 거죠. 

이 집을 거쳐간 사람이 몇 명 정도 되나요?

(민지) 꽤 많아요. 다 합해보면 11명 정도 살았던 거 같아요. 그중에 제 친구들도 있고요. 이런 주거 공유의 취지에 공감하는 분은 오래 살기도 하지만, 보통은 이곳이 종로와 가까우니까 어학원이나 직장 때문에 잠시 머무르려는 분이 많아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씩 살다 가더라고요. 지금도 저 건넛방에 휘재의 SNS 친구의 친구가 들어와 살고 있고요. 

(휘재) 그 친구도 건축을 하기도 하고, 공유 주거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고 해서 같이 지내보고 있어요. 
 


요즘 셰어하우스는 매니저도 있고 규칙 같은 것도 있던데, 이 집도 그런 게 있나요?

(민지) 저희 집은 없어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규칙 없이 ‘서로 조금씩만 더 하면 모자란 부분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지냈거든요. 룰이 생기면 불만이 생기고 누군가 안 지키면 오히려 그걸로 다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안 만들었고, 그래도 꽤 잘 돌아가는 편이에요.

그래도 사람마다 깨끗함의 기준이나 우선순위가 다르잖아요. 혹시 거쳐간 사람 중 도저히 같이 살기 힘든 경우도 있었나요?

(민지) 물론 잘 안 되는 사람도 있긴 있더라고요. 한 친구는 방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놓았어요. 진짜 쓰레기를 모아서 버리지 않고 방바닥에 두는 거죠.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얘길 했는데, 그때뿐이고 고쳐지지는 않더라고요. 또 한번은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온 친구가 있었는데, 전혀 책임감이 없는 거예요. 배변 패드도 안 갈아주고 산책도 안 시켜요. 그러니까 애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아무 데나 배변을 하고… 제가 퇴근하고 와서 그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거죠. 몇 번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안 되더라고요. 그런 경우엔 반년 정도 같이 살다가 계약 연장을 안 했고요.

요즘 셰어하우스가 많이 생기고 있잖아요. 대부분은 셰어하우스에 대한 환상을 갖고 찾는 경우가 많을 텐데, 최소한의 노력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민지) 누군가와 같이 살려면 주체적이어야 해요. 그리고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고요. 어쨌든 혼자 살 때보다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 같이 사는 거잖아요. 조금의 주체성과 사교성을 발휘해보는 노력은 필요한 거니까요.

(휘재) 노력도 필요하긴 한데, 제 생각에 혼자 원룸 살 때 엄마 오시면 등짝 맞는 사람은 누구랑 같이 살면 안 되는 거 같아요.(웃음) 우선 내가 혼자 살아야 할 사람인지, 아니면 여러 사람이랑 살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근데 두 분은 지금 신혼부부잖아요. 둘이서 오붓하게 지내고 싶은 적은 없나요?

(휘재) 사람마다 물어봐요. 신혼인데 괜찮으냐고. 근데 저흰 정말 그런 거 없어요.(웃음) 결혼한다고 내 삶이 극적으로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도 아닌데, 그냥 원래 살던 대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민지) 그리고 오히려 저희 둘 다 이런 주거 방식이 결혼 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보통 결혼하면 1년 동안 엄청 싸운다고 하잖아요.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살거나 혼자 살다 갑자기 누군가와 전혀 새로운 공간에서 생활을 공유해야 하니까 충돌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저희는 둘 다 계속 누군가와 같이 살아왔기 때문에 이미 몸에 체득된 게 많은 거죠. 그래서 그런 생활적인 것 때문에 싸우는 일은 거의 없어요.

휘재 씨도 결혼 전까지 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공유 주거를 해왔다고 했잖아요. 그 얘기도 좀 들려주세요. 

(휘재) 아, 저도 얘기가 좀 긴데… 제가 서울 올라온 게 2011년이었는데 처음엔 혼자 잠깐 고시원에 살다가, 구로동 원룸에서 친구랑 2년 정도 살았어요. 그러다 친구가 결혼하면서 다시 혼자 살아야 하는데, 생각해보니 고시원 사는 비용과 원룸에서 둘이 사는 비용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러면 친구 셋을 모으면 더 나은 집에서 살 수 있겠구나 싶었죠. 당시 각자 서울 어딘가에서 살고 있던 고향 친구들에게 연락해봤더니 마침 다들 이사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돈을 모아서 사람 살 만한 집을 구해보자 했던 거고요. 그래 봤자 마지노선이 셋이 합쳐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이었어요. 그 돈이면 홍대 근처에서는 반지하밖에 얻지 못하는데, 재개발 예정지이던 아현동에서는 정말 넓은 집을 찾은 거죠. 거실도 있고 방도 3개이고 화장실이 거의 거실만 했거든요. 그 집을 계약해서 2013년 4월부터 살기 시작하면서, 많은 게 달라졌죠. ‘아현동 쓰리룸’이라 이름도 붙이고 같이 많은 일을 했거든요.


‘아현동 쓰리룸’ 저도 들어봤어요. 그 집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했잖아요.

(휘재) 그 집을 아지트 삼아 친구들과 ‘피터아저씨’라는 이름의 밴드를 만들어서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요. 공연을 하고 싶은데 할 데가 없으니 집에서 하기 시작했죠.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집이니까 밥을 먹일 수가 있더라고요. 그게 목요일마다 같이 밥 먹는 집밥 모임으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우리 집 말고 다른 집을 찾아가면서 공연하는 ‘홈메이드 콘서트’로 연결되는 식이었어요.

(민지) 근데 재미있는 건 비슷한 시기에 저도 이 집에서 같이 살던 친구가 음악을 했는데, 여기가 주택가이다 보니까 마이크나 전자 기기 없이 하는 공연을 기획해서 했거든요. ‘쌩목 콘서트’라고.(웃음) 

어머, 서로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네요. 정말 신기해요.

(민지) 어렴풋이 그런 친구들이 있다고 듣긴 해서, 그냥 서로의 존재만 알고 있었죠.

(휘재) 알고 있었지만 바로 연락하진 않았어요. 뭐랄까, 경쟁업체 같은 느낌이랄까.(웃음)

(민지) 그렇게 쌩목 콘서트를 1년 정도 했는데, 휘재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저희 집에서 같이 홈메이드 콘서트를 해보고 싶다고요. 

(휘재) 그게 2015년 5월이었죠. 같이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하게 됐고, 그러다 눈 맞아서 결혼까지 했고요.(웃음)


신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인연 같아요. 그 후로는 집에서 어떤 걸 같이 했나요?

(민지) 사실 그 뒤로는 아현동에 ‘언뜻가게’라고 별관(?) 같은 게 생겨서 거기서 많은 걸 했어요. 매주 목요일엔 공연도 하고, 전시도 하고, 수요일마다 독서 모임도 하고, 일요일에는 제가 브런치 장사도 하고요.

(휘재) 그건 어떻게 생기게 된 거냐면, 저희가 집을 공유 공간처럼 사용하다 보니까 자주 오는 친구들이 생기더라고요. 다들 저희처럼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생활하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친구들이었죠. 함께 뭔가를 해보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즈음 바로 옆 건물 1층 자리가 저렴한 가격으로 나왔길래 8명이서 조금씩 돈을 모아 작은 공간을 꾸리게 된 거죠. 그때 아현동은 저희가 각자 자립 기반을 함께 다져가는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현동은 재개발 지역이었잖아요. 그 후에는 어떻게 됐어요?

(휘재) 정해진 엔딩이었죠.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다 쫓겨났지요. 집이랑 가게 모두.
   

그때 상실감이 꽤 컸겠어요. 

(휘재) 사실 들어올 때부터 재개발은 알고 있던 거였지만, 막상 살던 동네에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는 불안감이 피부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때의 좌절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거 같아요. 그 이후로 한동안 하던 프로젝트도 거의 중단됐지요.

(민지) 그때 저도 재개발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 것 같아요. 지금이야 운이 좋아서 이 집에 아직 살고 있지만, 막상 지온이와 같이 살 만한 주택을 찾으려면 이제 다 재개발되어 서울 시내에는 남아 있는 주택이 거의 없어요. 아파트뿐이죠. 이런 식의 개발 방식이 모든 사람을 똑같은 주거 형태로만 살게끔 만드는 거 같아요. 선택지가 점점 없어지는 거죠. 
 

서울 이주민의 서글픈 주거 방랑기네요. 

(휘재) 그렇긴 한데, 우린 또 어떻게든 살길은 찾아야 하니까요. 다시 명륜동에 스리룸을 구해서 또 모여 살았고, 다행히 그 집은 재개발 구역이 아니어서 집에서도 계속 프로젝트를 이어나갔죠. 제가 결혼하면서 나가게 되어 지금은 그 집에 제 동생이 셰어하우스로 사람들과 살고 있어요. 

함께 살기의 달인들이네요. 물론 처음에는 도시에서 자립하려고 함께 살기를 택한 거였지만, 살면서 경제적 부분 말고도 여러 면에서 에너지를 얻기도 했을 것 같은데, 어때요?

(휘재) 경제적 문제가 처음 셰어하우스를 시작하게 해준 계기이긴 했지만, 함께 살면서 많은 걸 시도해볼 수 있었고 그런 경험이 결국 또다시 함께 사는 삶의 방식을 이어나갈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 때 집은 그저 잠을 자는 공간이었거든요. 근데 사람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집이 서로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도 있는 온전한 ‘집’이 된 것 같아요.

(민지) 저는 확실히 아지트로서 집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여기가 한옥이라 그런지 더 열린 공간으로 느껴져서 사람들이 빈번하게 드나들거든요. 제가 가끔 “우리 집은 공공시설 같다”고 말할 정도예요.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은 에너지가 돼요. 또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였다면 같이 뭔가 해볼 수도 있고요.
 


한옥이라서 가족이 아닌 개개인이 함께 살기에 더 적합한 부분도 있겠네요.

(민지) 일반 아파트는 핵가족에 맞춰서 만들어 방마다 크기도 다르고, 도시라는 특성 때문에 점점 고층으로 올라가다 보니 외부 공간은 적어서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 같아요. 거실이 있어도 왠지 조심스럽잖아요. 그런 면에서 한옥이 주거 공유를 하기에는 진짜 좋은 것 같아요. 방도 필요에 따라 칸을 트면 큰 방이 되고, 막으면 작은 방 2개가 되니까 편리하고. 마당이라는 트인 공간도 있잖아요. 이런 열린 공간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긴장감도 풀리는 것 같아요. 뭔가 같이 하기에도 좋고.

개인적으로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휘재) 음… 저는 사실 아직 적응 중이에요. 좀 더 살아보고 대답할게요.(웃음) 

(민지) 저희 집이 겨울에 엄청 추워요. 침대에 텐트 쳐놓고 살고, 발에 동창도 걸릴 만큼 추워요. 그런데 새벽에 조용히 눈이 내릴 때 방에서 이불로 몸을 돌돌 감싸고 창밖을 보면 그게 너무 아름다워요. 다시 잠들기 싫을 정도예요. 휘재도 곧 그 매력을 알게 될 거예요.(웃음)

근데 나중에 두 분 사이에 아이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때도 공유 주거를 지속할 수 있을까요?

(민지) 네! 저는 오히려 제 짐을 나눌 수 있어서 좋을 거 같아요.(웃음) 아파트에 혼자 갇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생명체와 지낸다고 생각하면 너무 힘들 것 같거든요.

(휘재) 저도 공동육아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분명 좋은 점이 더 많을 거예요.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휘재) ‘탈서울’요. 그동안은 서울에서 살기 위해 이렇게 모여 살았지만, 이제는 서울이 아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곳에서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같이 모여 살면서, 아이가 있다면 서로 키워주고 그렇게 살면 좋겠다 싶어요.

서울 이주민의 탈서울이라.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겠네요. 응원할게요!

(민지, 휘재) 감사합니다!



Conditions

지역 서울 종로구 가회동
구조 한옥 스리룸
면적 대지 약 130㎡(40평), 건물 약 65㎡(20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