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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이 식탁을 찾아올 때

When Every Morning Visits My Table

매일 아침이 식탁을 찾아올 때

Editor.Hyuna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30세 / 정지은

일러스트레이터


Conditions

지역 서울시 광진구 화양동
구조 다세대빌라
면적  26㎡(8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51만 원

 

Room History

 

 

일러스트레이터 정지은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오전 8시였다. 덜 말린 머리를 늘어뜨린 채 그의 집 안에 들어서자 직사각형의 빛이 길쭉하게 들어왔다. 우리는 이 빛이 머지않아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커피잔에 허겁지겁 입술을 갖다 댔다. 목을 축이고 식탁 반대편에 앉은 말간 얼굴을 마주하자 분주히 달리던 시간이 제 속도대로 가는 듯했다. 정지은은 이 작은 식탁에 곧게 앉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장면을 맞이한다. 아침이라는 호사를.



아침 8시부터 11시까지 가장 빛이 좋다고 해서, 일찍 찾아왔어요. 오전 시간은 보통 어떻게 보내나요?
제가 약간 할머니과라 아침잠이 없어요. 가끔은 오전 6시 전에 일어날 때도 있어요. 일어나면 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아침도 먹고 그래요.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길잖아요. 간단한 집안일을 마치면 보통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거나 미술 관련 수업 준비를 하며 시간을 보내요.

아침은 주로 어떻게 먹나요?
아침 시간이 넉넉한 편이라 급하게 나갈 때 말고는 늘 잘 챙겨 먹어요. 보통은 커피와 함께 과일이나 샌드위치를 먹는데 가끔은 파스타 같은 면 요리를 하기도 해요. 전날 밤부터 먹고 싶어 하다가, 밤에 먹기는 부담스러우니 아침에 눈뜨자마자 먹는 거죠.(웃음) 사람들이 혼자 살면 잘 챙겨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자취하면서 배달 음식을 한 번도 시켜본 적이 없어요.

아침 식사를 꼭 챙겨 먹는 이유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아침을 거른 적이 없어요. 지각하더라도 늘 밥을 챙겨 먹었고, 대학교 때도 수업에 늦을 것 같으면 학교로 뛰어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에 앉아 밥을 먹었죠. 습관이 되니까 아침을 안 먹으면 할 일을 안 한 느낌이 들기도 해요. 가족과 같이 살 때 몸에 밴 습관인데, 혼자 살면서 일일이 반찬을 꺼내서 밥상을 차리는 게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회사 다닐 때 아침을 종종 거르곤 했는데, 굉장히 우울했어요. 잠도 오고, 배는 고프고, 일은 눈에 안 들어오고. ‘내가 뭐 하려고 사나?’ 싶은 거죠. 그래서 뭘 먹든 아침을 챙기는 시간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밥 먹는 풍경 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영상을 꼭 틀어놓거든요.
저는 밥 먹을 때 영상 보는 걸 싫어해요. 영화 볼 때 팝콘도 안 먹어요. 음식을 먹다가 한 장면이라도 놓치면 다시 돌아가야 하잖아요. 뭔가 놓치는 걸 못 견뎌 해서요. 적막이 흘러도 그게 좋고요. 무언가 할 때는 그 행위에만 집중하는 게 좋더라고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가 머문 식탁’이라는 제목으로 그림과 글을 연재하고 있죠. 식탁을 기록으로 남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는 엄마가 한 음식을 찍어서 남기다가, 사진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집밥은 보통 비슷해서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식당이나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면 보이는 풍경을 그리다가 음식을 그리는 일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게 됐지요. 저는 SNS에 음식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자기 전에 음식 사진을 보면 함께 음식을 먹은 사람과 그와 나눈 대화가 생각나요. 사소하고 별거 아니지만, 그 기억이 좋아서 계속 그리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이 다른데, 지은 씨는 ‘식탁’을 매개로 기억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매개가 되나요?
음식에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 냄새나 맛보다는 날씨나 공간 온도, 분위기 자체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음식과 연관 있는 것이 유독 기억에 잘 남기도 해요. 며칠 전에는 피자를 먹다가 남아서 포장해왔어요. 작은 포장 박스를 들고 버스를 탔는데, 어릴 때 아버지가 기념일만 되면 동네 피자집에서 책과 피자를 사 오시던 게 생각나더라고요. 그 피자 체인점에서는 기념일이 되면 동화책처럼 두꺼운 책을 만들어줬거든요. 버스를 타고 가는데 생리통도 심하고, 피자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피자를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요.

독자들이 그림도 그렇지만 글에도 공감을 많이 해주시죠. 이야기 범위가 엄청 다양하기도 해요. 음식 취향, 연애, 우정, 커리어…. 이 이야기를 다 식탁이 둘러싸고 있더라고요. 왜 식탁 앞에서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걸까요?
공적 자리가 아닌 이상 대체로 음식은 편안한 상대방과 먹잖아요. 그런 상대방과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앉으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리고 너그러워지는 것 같아요. 고민도 이야기하게 되고, 평소 생활에서 화두인 것에 대해서도 나누고요. 또 굳이 식탁 위에 그 주제를 올리지 않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식사를 통해 개인의 생각이 확장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작가 요네하라 마리는 자신의 저서 《미식견문록에서》에서 ‘밥 먹는 습관, 먹는 속도, 음식을 입에 넣기까지 일련의 행동, 씹는 법’ 같은 식습관으로 사람의 성향을 알아본다는 이야기를 쓰기도 했어요. 지은 씨의 거의 모든 그림이 ‘누군가’와 함께한 장면인데요, 식탁에서 상대방의 어떤 점을 보는지 궁금해요.
아침에 온 가족이 모여 밥 먹을 때, 잔소리를 가장한 이런저런 예절 교육을 받아서 몸에 밴 습관이 있어요. 젓가락질하는 법이나 반찬을 깔끔하게 덜어 먹는 법, 소리 내지 않는 법 같은 거요. 어린 시절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짜증 내기 바빴지만요. 그래서 이성일 경우에는 젓가락질이 엄청 신경 쓰여요.(웃음) 식당에서 서비스직에 근무하는 분을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집밥이든 외식이든 기록을 하다 보면 대충 때우는 일이 줄어들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가요?
기록도 물론 영향을 주지만, 엄마 영향이 되게 커요. 고향에서 종종 반찬이 담긴 택배를 받곤 하는데, 어떤 음식이 들어 있고, 어떻게 조리하라고 간단히 적은 메모를 같이 보내주세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냐는 말도 덧붙여서요. 엄청 감동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엄마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어요. 그래서 편의점에서 김밥이나 빵, 전자레인지에 플라스틱째로 데워야 하는 도시락을 먹기보다는 직접 해 먹거나 식당에 가서 밥 먹자고 생각하는 편이죠. 바빠서 오늘 아침은 대충 먹어야지, 하다가도 이것저것 다 꺼내서 하다 보면 대충 차리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먹을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뭐예요?
음식의 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짜지 않게 하는 거 말고 딱히 신경 쓰는 건 없어요. 오히려 간을 거의 하지 않으니까 재료가 신선하기만 하면 음식 만드는 데 손이 덜 가요.

지금의 식생활에 가장 영향을 미친 기억은 무언가요?
어릴 때부터 제사 음식을 좋아했어요. 전, 구이 말고 나물 종류요. 어떻게 조리해도 우리가 아는 그 맛이고, 어떻게 조리했는지 보이고, 자극적이지 않잖아요. 친할머니, 외할머니, 어머니에 걸쳐 내려오는 맛을 먹는 음식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도 복잡하고 화려한 조리 과정이 필요한 요리를 하기보다 재료 맛을 그대로 살리는 요리를 하려고 하죠.

도구 욕심도 있죠? 이사하고 싶은데 부엌살림부터 찜하고 있다는 글을 읽었어요. 바라는 부엌 모습이 있나요?
접시나 잔 욕심이 되게 많아요. 엄마도 오래전부터 도자기를 모으셨는데, 서랍을 열어서 어떤 작가가 만든 어떤 그릇이라고 말씀하는 걸 종종 들었어요. 도자기를 사러 멀리 청도에 가시기도 하고요. 혼자 살면서 다 갖출 수는 없지만, 식기는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나중에는 접시를 찬장에 쌓아두지 않고 모두 진열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부엌을 갖고 싶어요. 세련되지는 않아도 넓은 공간요.


1인 가구의 경우 부엌은 쉽게 소외되는 공간 중 하나죠. 요리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부엌을 만나려면 집 구할 때 어떤 점을 봐야 할까요?
아, 제가 집 구할 때 치명적인 실수를 했어요! 제가 집을 보러 왔을 때 주로 본 요소가 ‘채광’, ‘시장과 한강과의 거리’였는데, 이 조건이 충족되는 집이라 바로 계약금을 걸었거든요. 그리고 집에 와서 다시 사진을 보는데, 뭔가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한참을 보다가 ‘가스레인지가 없잖아!’ 하고 깨달은 거죠. 뒤늦게 부동산에 연락했지만 계약금을 지불해서 취소는 안 된다 하고, 엄마도 인덕션 쓰면 괜찮을 거라고 해서 그냥 들어오게 됐어요.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쓰다 보니까 익숙해졌죠. 원하는 조건이 충족되면 다른 걸 놓치기가 쉽더라고요. 곧 이사할 집을 알아보러 다녀야 하는데, 이번에는 체크리스트를 뽑았어요. 놓치지 않고 꼼꼼히 봐야겠다 싶어서요.

건물이 꽤 크고 세대가 많은 편인데, 전부 가스레인지를 쓰지 않나 봐요?
네, 전체가 다 안 쓴대요. 학생들도 있고, 직장인도 많이 사는데 요리를 잘 안 하나 봐요. 그래서 아예 개수대 자체가 없는 집도 있어요. 그런 집은 조금 더 저렴하고요. 대신 1층과 6층에 부엌이 따로 있어요. 아예 요리하지 않는 사람은 거기서 간단히 먹기도 한대요.

혼자를 기르는 일에는 많은 수고와 노동과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잖아요. 자취 4년 차로서 자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끼니를 챙길 때 스스로 대접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사촌 동생이랑 자취하면서 파스타를 해 먹은 적이 있어요. 마땅한 접시가 없어서 팬을 그대로 식탁에 올리고, 찻잔 접시랑 컵을 놓고 엄마한테 자랑한다면서 사진을 찍어서 보냈어요. 그런데 엄마가 “나가서 살수록 제대로 된 접시에 덜어서 먹는 습관을 들여라”고 하시더라고요. 대충 만들어서 냄비째로 먹지 말고, 설거짓거리가 나오더라도 그렇게 먹어버릇해야 스스로 만족감도 높아진다고요. 처음에는 ‘요리하는 것도 귀찮은데 무슨 만족감이야? 그냥 대충 먹으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니 그 중요함을 깨닫고 있어요. 갖춰 먹는다고 기분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식탁에 곧게 앉아서 천천히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짧지 않은 자취 기간 중 한 단계 성장했다거나 자립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요?
옛날에는 집에서 고기나 생선을 굽는 건 제 역할이 아니었어요. 손이 가고 기술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늘 부모님이 담당했으니 언제까지나 제 영역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러다가 혼자서 정육점이나 생선 가게 가서 재료를 고를 때 “어머, 나 봐. 나 진짜 어른 됐나 봐” 하면서 혼자 호들갑을 떠는 거죠.(웃음) 예전에는 고기 이름도 모르고 뭐가 신선한지도 모르고 그랬는데 말이에요.


지은 씨는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정적으로 하는, 그야말로 삶을 정성스럽게 사는 사람처럼 보여요. 그 정성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묻고 싶어요.
저는 정적인 걸 좋아하고, 단체 생활도 싫어하고, 이태원에 가도 오후 6시에 가서 10시 전에 돌아오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운동할 때는 좀 다른 것 같아요. 함께 운동하고 땀 흘리고 끝나면 하이파이브하고 집에 가는 게 되게 좋아요. 일요일 빼고는 매일 운동하러 가고, 제 생활의 가장 우선순위여서 친구들도 약속 잡을 때 배려해줘요. 내면에 있는 걸 그림으로도, 운동으로도 적절히 풀 수 있어서 균형이 맞는 것 같아요.

자립해서 살려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지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은 씨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건 무엇인가요?
집 근처에 사는 대학 동기의 집은 신축 건물에 넓고 깨끗하고 정말 좋은 오피스텔이에요. 그런데 부엌에는 딱 젓가락 한 벌밖에 없어요. 접시도 없어서 슈퍼에서 산 종이 접시에 밥을 먹고요. 제가 음식을 사 가거나 해 가도 덜어서 먹을 식기가 없는 거죠. 살림살이를 대단하게 갖춰야 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대접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그런 도구는 갖추는 게 생활의 우선순위인 것 같아요. 엄마 말씀대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니까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광진구 화양동
구조 다세대빌라
면적  26㎡(8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51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