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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갖는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데요?

What Does It Mean to Have My Own Taste?

취향을 갖는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데요?

Editor.Hamin Kim / Illustrator.Eunjeong Yu Article / opinion

네이버 블로그 검색창에 ‘취향’이란 단어를 검색해보니 10개 단위로 정렬된 게시글 모두 ‘취향 저격’을 타이틀로 달고 있다. 취향에도 어떤 합의된 답이 있는 건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일면식 하나 없는 누군가가 내 취향의 길잡이가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취향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도대체 취향을 갖는다는 건 어떤 상태일까?




위건(28세, IT 관련 업계 직장인)
지역: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구조: 원룸형 오피스텔
면적: 7평
전세: 1억6000만 원
거주 형태: 혼자 거주
좋아하는 공간: 매트리스에 누워 귀 높이에 맞춰놓은 스피커 음악 소리와 우퍼의 쿵쿵거림을 들을 때

저는 흔하디흔한 타입의 인테리어나 스타일을 보고 유난스럽게 본인 취향이라 떠드는 사람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져요. 취향에 대한 별다른 성장통 없이 단순히 유행을 기준 삼아 예쁨을 판단하는 게 시답잖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가부터 미의 기준이 심플함에 있고, 아르누보풍 그림은 그저 촌스럽게 여기는 지금의 유행을 마치 자신의 고매한 취향인 양 떠드는 사람을 보면 과연 그들의 자발적인 취향인지 의구심이 들거든요. 저는 취향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좋고 나쁨의 근거에 대한 무지를 무조건 “그냥 좋아”라고 대신하는 게 결코 쿨한 게 아니라고 보거든요. 특정 제품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공부했는지, 비슷한 타입의 무언가를 보고 어떤 부분에서 차별점을 갖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임이레(29세, 디자이너)
지역: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
구조: 원룸형 오피스텔
면적: 7평
전세: 1억3000만 원
거주 형태: 혼자 거주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볕이 드는 아침, 초록색으로 가득한 포근한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두 달 전 그토록 고대하던 독립을 했어요. 이사한다고 하니까 부모님은 식기, 수저, 찻잔 등 이것저것 다 챙겨가라고 했는데, 하나도 안 가져왔어요. 세탁소 흰색 옷걸이랑 일면식 하나 없는 이름 적힌 취임식 수건은 정말이지 가져오고 싶지 않았거든요. 집에 남아돌지만, 굳이 돈 들여 나무 옷걸이랑 호텔 수건을 샀어요. 독립을 결정하고 가장 신중하게 고른 건 침구였고요. 컬러부터 재질까지 일일이 따져보면서 고민만 한 달을 넘게 했죠. 사실 침구는 본가에 살 때부터 사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모님 집에서 살다 보니 내가 덮고 자는 이불 사는 데도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엄마는 시장에서 사 온 핑크색 꽃무늬 이불 있는데 왜 또 사냐고 나무라기만 하셨죠. 물론 엄마가 골라준 이불이 제가 고른 이불에 비해 따뜻하긴 해요. 하지만 저는 기능만큼 미감도 중요하거든요. 세대주에 제 이름 석 자를 적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취향의 자립은 부모님 손길이 닿지 않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요.


이자연(32세, 에디터)
지역: 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구조: 빌라 투룸
면적: 13평
전세: 1억7000만 원
거주 형태: 혼자 거주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부엌 창가. 무려 부엌의 창문이라니!

취향의 사전적 의미가 ‘유난히 좋아하는 것’을 가리키다 보니 좋다는 감정에만 치우치는 것 같아요. 기대한 만큼 나와 잘 맞지 않는데 왠지 좋아해야만 하는 압박감이 밀려든다는 거죠. 하지만 세간의 화제가 된 영화가 내 스타일이 아니고,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한 노래가 내게 띵곡이던 순간,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보지 않았나요? 이때 ‘취향의 상대값’에 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다수의 선택이 제 선택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저는 실패한 경험이 무척 자랑스러워요. L.A.는 많은 이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는 도시지만, 저는 그곳에서 역대 가장 지루한 여행을 했어요. 이 경험을 말하면 누군가는 <라라랜드> 안 봤냐고, 디즈니랜드 싫어하냐고 물어요. 물론 <라라랜드> 재밌게 봤고, 디즈니랜드도 잘 다녀왔어요. 하지만 L.A.는 여전히 제게 지루한 곳이에요. 아쉽지 않느냐고요? 남들이 다 좋다고 해도 저게 권태로운 이유가 명확하고, 무엇보다 나의 취향에 대해 잘 알게 됐으니 미련은 없어요. 불호 없는 취향은 없는 법이니까요.


김정현(27세, 에디터)
지역: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
구조: 분리형 원룸
면적: 7평
전세: 6000만 원
거주 형태: 혼자 거주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자기 계발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딴짓을 할 때

어려서부터 음악 듣는 걸 워낙 좋아해 어떤 날씨나 계절, 공간에 어울리는 노래를 찾아 듣는 게 취미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음악 스트리밍 앱에 곡은 쌓여가는데, 이대로 방치해두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군다나 졸업을 앞둔 시점이라 포트폴리오 하나 만들어놓으면 좋을 것 같았고요. 그렇게 유튜브에 ‘pipe dream records’라는 뮤직 큐레이션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크리스마스 시즌 처음 유럽 여행을 간 대학생이 북적거리는 거리에서 들으면 좋을 법한 노래, 지나가는 여름이 아쉬워 루프톱에서 친구들과 파티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 등 최대한 상황을 구체화해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하고 있어요. 제가 고른 노래를 누군가와 공유하려면 그동안 어렴풋하게 정리한 플레이리스트에 디테일을 더해야 해요. 노래와 분위기가 어떻게 맞물릴 수 있을지 연결 고리를 촘촘하게 만들어야 하죠. 자신의 감각을 평가받는 입장이 되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고, 그러면서 내 고유한 감각은 점점 더 섬세해지는 것 같아요.


최나래(29세, 취준생)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조: 아파트 스리룸
집세: 부모님 자가
거주 형태: 가족과 함께 거주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내 책상에 앉아 디자인 서적을 살펴볼 때

기억이 흐릿한 초등학교 시절, 누가 제게 좋아하는 색깔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죠. 분명 좋아하는 색이 있을 텐데, 선뜻 답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창피하더라고요. 하나쯤 이야기할 수 있는데, 마냥 모른다고 답하는 게 싫었던 거죠. 그 후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있고 나서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아끼던 노트에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차근차근 적기 시작했어요. 백문백답처럼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뭔가요, 지금 당장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면 어떤 나라에 가고 싶나요 등등. 처음엔 답을 채우는 게 목표였지만, 점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어요. 요즘엔 ’독립하면 내 공간에 어떤 걸 들일까?’ 고민 중인데, 새하얀 구름으로 덮인 하늘 사진과 웅장하면서 서사가 있는 민화를 얇은 액자에 넣어 걸어두고 싶어요.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대답조차 못 하던 꼬마가 아직 생기지도 않은 방을 상상하는 걸 보니 제 취향이 점점 정착해가나 봐요.


정태윤(36세, 가구점 브랜드 매니저)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구조: 빌라 투룸
면적: 12평
전세: 1억2000만 원
거주 형태: 아내와 거주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잡동사니가 있는 방에서 읽지 않은 책의 먼지를 떨 때

누군가와 함께 살면 취향이 여러모로 공격받을 수밖에 없어요. 부부 관계도 예외가 아니지요. 제 취향은 공교롭게도 물리적 공간을 꽤나 필요로 하는데, 대표적으로 조립형 자전거 두 대, 판형이 큰 다수의 책들, 카메라 장비가 있어요. 하지만 각자 아끼는 물건을 모두 들이기엔 신혼집 공간이 턱없이 비좁아요. 함께 살려면 어느 정도 취향을 조율해야만 하죠. 그중 전 처음 조립한 자전거 한 대를 포기했어요. 당연히 ‘처음’이라는 애정 딱지를 떼는 게 쉽지 않았지요. 하지만 변속기가 없고, 싱글 기어인 자전거를 소장용으로 두자니 자개장을 포기한 아내에게 미안하더라고요. 아내와 한 공간에 살다 보니 크게 느낀 게 하나 있어요. 취향을 향유하는 것보다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 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요. 나중에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면 아내가 그토록 가져오고 싶어 하던 그 자개장을 꼭 들일 생각이에요.


이창대(28세, IT 개발자)
지역: 서울시 관악구 조원동
구조: 분리형 원룸
면적: 8평
보증금: 6000만 원
월세: 30만 원
거주 형태: 여동생과 거주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잔업을 마친 주말 오후, 책상에 앉아 게임할 때

현재 제 라이프스타일은 취향보다 생존에 맞춰져 있어요. 알뜰살뜰한 부모님에게 소비보다 저축하는 습관을 배운 것도 있지만, 지금 취향을 따라 사는 건 약간 사치스러운 일이에요. 6개월 전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창업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더군다나 올 초 신혼부부 행복주택에 당첨돼 결혼할 계획이에요. 과외해서 번 돈으로 겨우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으니 취향을 누리기엔 빠듯한 형편이죠. 가급적 식사도 대부분 집에서 직접 해 먹거나, 외식을 최소화하고 있어요. 덕분에 요리 실력은 점점 느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최근 1년 사이 옷을 새로 산 적이 없네요. 허리띠 졸라매는 시기가 지나가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의 범위도 좀 넓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