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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층에 정착하기

To Settle Down in the Middle

중간 층에 정착하기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31세 / 안은진

물리치료사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구조 복층 오피스텔
26.4㎡(8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65만 원

 

Room History

 

27세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분리형 원룸 반지하(보증금 500만 원, 월세 40만 원)
28세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원룸 5층 옥탑방(보증금 500만 원, 월세 49만 원)
30세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복층 오피스텔(보증금 1000만 원, 월세 65만 원)

 

 

안은진에게 최적의 집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인생을 사는 법과 같다. 첫째, 함부로 구분 짓지 않기, 둘째, 일단 실행하기. 이와 같은 식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했고, 연고지 없는 삼성동의 반지하에서 살았으며, 구의동 옥탑방에서 지냈다. 지금은 문래동 15층짜리 건물의 10층에서 살고 있다. 세 번의 시도 만에 지하도, 옥탑방도 아닌 ‘중간의 집’에서 살며 처음으로 풍부한 빛과 조망을 맛보았다. 직업은 물리치료사. 9년째 일하고 있지만 언제든 물리치료사가 아니어도 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나는 그것이 어리지도 늙지도 않아서 늘 중간에서 표류하는 청년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가장 빛나면서도 보편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이름 모를 곳으로 출렁이고 있다.



은진 님은 직장인이죠? 어떤 일을 하나요?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어요. 부산에서 살 때부터 지금까지 햇수로 9년 차인데, 3년 차 되던 해에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해보고 싶어서 그만두었어요. 그때까지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일하다 보니 제가 정말로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부산의 진시장이라고, 서울의 동대문종합시장과 비슷한 곳에서 부자재 판매와 수업을 해줄 선생님을 찾고 있다는 구인 글을 보게 됐어요. 그때 50만 원을 줘도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주머니밖에 없는 곳에서 젊은 애가 비장한 표정으로 이력서를 들고 가니 흔쾌히 뽑아주시더라고요. 거기에서 팔찌 만드는 기술을 섭렵하고,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서울로 왔어요.

서울엔 혼자 왔나요?
아뇨, 여동생도 같이 왔어요. 동생도 서울에서 무언가를 해보자 해서 온 거였죠. 저는 DIY 카페에서 일했어요. 저녁이면 술도 팔았는데 혼자서 음료 만들고, 팔찌 만든 거 봐주고, 안주 만들고, 맥주 따르다가 문득 느낀 거예요. 부산에서 나름 선생님 소리 들으면서 일했고 페이도 지금보다 훨씬 센데 왜 이러고 있지? 물리치료사 하기 싫어도 해야겠구나! 그렇게 다시 시작하니까 너무 좋더라고요.(웃음)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죠.

짧은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네요?
네, 한 2년간 이것저것 하면서 쉰 것 같아요. 그래도 물리치료사로 평생 일하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서울 와서 패턴 디자인과 카르토나주 Cartonnage라는 프랑스 공예 전문가 과정까지 배우고, 재봉틀을 사서 제가 만든 패브릭으로 가방을 만들어서 팔기도 했어요. 한 가지 일을 깊게 파고드는 성격이 아니어서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일단 하고 봤죠. 저기 있는 다양한 책만 봐도 아시겠죠?(웃음)



바쁜 와중에 ‘프롬 더 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영상도 찍잖아요. 그 기록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이전 집에선 여러 상황 때문에 제대로 꾸밀 수가 없었는데, 이 집에 오고 나서 제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으니까 행복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게 됐고, 그걸 보는 사람들도 힐링하기를 바랐어요. 제가 항상 타임랩스로 노을을 찍거나 라이브 방송을 하는데, 그때가 거의 퇴근 시간이거든요. 지하철이나 버스에 있어서 하늘을 제대로 못 보는 사람들에게 지금 해가 얼마나 아름답게 지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전에 어떤 형태의 집에서 살았나요?
스물일곱 살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일터와 가까워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삼성동으로 갔어요. 그때 보증금이 500만 원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삼성동에 그런 집이 어딨겠어요.(웃음) 그래서 반지하에 살게 된 거죠. 사실 그 건물에 층이 꽤 많았는데,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반지하밖에 없었어요. 동네엔 포스코 사거리가 있고 비싼 단란주점이 모여 있어서 회사원과 주점에서 일하는 분이 많았어요. 건물 앞에 외제차가 나란히 서 있고…. 1년 계약을 했지만 10개월 만에 나와버렸어요. 겨울이어서 전기장판을 깔고 있느라 몰랐는데 바닥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더라고요. 울산에 사는 집주인이 수리 기사를 계속 보내줘도 집이 하도 오래되다 보니까 소용없었죠. 결국 모든 옷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됐어요. 곰팡이도 중독되는 거 아세요?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너무 아팠어요.

아이고, 그 정도면 엄청나게 습한 상태였겠네요?
낮인지 밤인지 겨우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만 빛이 들어왔거든요. 보통 괜찮은 조건의 반지하는 3분의 1 정도 내려가 있지만, 제가 살던 곳은 3분의 2가량 내려가 있었어요. 한마디로 반지하보다 더 지하인 곳이었어요. 창을 열어놓으면 가림막 사이로 담배 냄새와 하루살이도 많이 들어왔고요. 커튼 용도는 햇빛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라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죠.

다음 집은 어땠어요?
이제는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하는데 2호선에 그나마 들어본 역이 있어서 그쪽 라인을 둘러보다가, 그중 낯선 이름의 동네면 좀 싸지 않을까 해서 구의로 가게 된 거예요. 잠실이나 강남도 가깝고… 그냥 좋아 보이잖아요. 지방 사람의 기준이어서 이해 못 하실 텐데, 유명한 곳에서 가까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웃음) 인터넷에 나와 있는 집을 봐도 잘 몰라요. 그래서 맨 처음 보이는 부동산에 들어가서 이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달라고 했지요. 여기저기 보다가 다락방 같은 옥탑방을 계약했어요. 고작 5층이었지만 그 건물에서 가장 높은 층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어요. 그때 저는 지하만 아니면 다 좋아 보였거든요. 큰 창이 2개나 있었는데 낮에 집 보러 갔던지라 빛이 잘 들어온다고 착각했어요. 그런데 살아보니 북향이어서 직접적인 빛은 전혀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조망은 좀 나았으려나요?
반지하보다는 나았죠. 완전 탁 트인 뷰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주말 아침에 종종 창 앞에 앉아 과일 주스를 마시며 바깥 구경을 했어요. 해가 질 무렵이면 화장실에 있는 창 앞에서 노을도 구경했고요. 거기만큼은 눈앞을 가리는 건물이 없었거든요. 생각해보니 그때 조망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진 것 같아요. ‘좋은 집에서 편안히 노을을 바라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방충망이 없다면 더 생생한 하늘을 볼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 집으로 오기까지 어떤 노력이 필요했나요?
우선 돈을 모으는 거였죠. 사실 처음 집의 보증금 500만 원은 제 돈이 아니라 동생 것이었어요. 그전에 부산에 있는 집도 저와 동생이 돈을 보탰고, 3년 차에 물리치료사 일을 그만뒀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엔 애매한 상황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서른 넘어서 돈 모은 게 이것밖에 없냐고 할 수 있는데, 저는 그 대신 배우고 싶은 것을 다 배웠으니까 후회가 없거든요. 그리고 따지자면 동생에게 500만 원을 돌려준 뒤 보증금이 1000만 원인 집으로 왔으니까 저는 총 1000만 원을 모은 거예요. 그 정도면 많이 모았다고 생각해요.



이제 큰 창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잖아요. 어떤 변화가 생기던가요?
뭘 많이 찍어요.(웃음) 빛이 강하게 들어와서 보통 커튼을 치고 있다가 노을 질 때 슬쩍 열면 혼자 감동해서 사진 찍고, 영상 찍고 난리가 나요. 사람들은 본인이 살고 싶은 데 사는 사람을 엄청 부러워하잖아요. 저는 좋아하면 그걸 해야 하고, 갖고 싶으면 가져야 하는 성격이에요. 부러워만 하는 걸 싫어하죠. 이 집도 그런 식으로 살게 된 거예요.

이 집은 어떻게 발견했나요?
집 꾸미기 사이트에서 이 집 저 집 구경하다가 이 라인에 사는 분의 사진을 봤어요. 제가 서칭을 되게 잘하거든요. 집 위치를 밝히진 않아서 “안양천 보이고 너무 좋네요” 하는 댓글을 보고 찾게 됐어요. 그런데 사실 이 오피스텔 자체보다 삼면이 창으로 되어 있고, 층이 높은 곳에 사는 게 중요했어요. 운 좋게 마침 이사 가는 분이 나타나서 집을 얻게 됐지요.

특별히 좋아하는 풍경이 있나요?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하시느라 바빠서 주로 할머니 집에서 지냈거든요. 할머니 집에서 문을 열면 저 멀리 고속도로가 보였어요. 반짝이는 헤드라이트를 보면서 “엄마, 엄마” 하면서 운 기억이 나는데, 차가 지나가면 엄마가 오는 줄 알고 그랬던 것 같아요. 여기도 야경이 예뻐요. 특히 해가 질 때요. 그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노을을 보면 뭔가 하루가 끝나가는 느낌이어서 괜스레 마음이 울렁거려요.



창을 내려다보면 바로 학교 운동장이 보이던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되게 평화롭겠어요. 어른이 된 후로 유년의 풍경을 계속 지켜볼 기회는 흔치 않잖아요.
산통 깨는 얘기지만 저는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직장인이잖아요.(웃음) 주말엔 다 축구하시는 분들뿐이에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문 열어놓으면 “빨리, 빨리! 여기, 여기!” 이런 외침이 들려요.(웃음)

저희 집 앞에도 중학교가 있는데 등·하교하는 애들을 보고 있으면 동네가 꽤 괜찮게 느껴져요. 아이들을 지켜주려는 울타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적어도 안전한 동네라는 느낌을 받는 것 같거든요. 은진 님이 본 이 동네의 인상은 어땠어요?
이전 동네엔 식당과 술집 같은 상점이 많아서 시끄러웠거든요. 제가 살던 건물의 1층도 고깃집이어서 계속 냄새가 올라왔고요. 그러니까 저는 안정된 생활 분위기가 묻어나는 동네에서 살고 싶었어요. 처음 이 집을 보러 올 때 문래역에서 걸어왔는데 아파트도 많고, 학교도 있고 하니까 사람 사는 동네 같아서 좋더라고요.

바라던 조망도 있었을 테죠?
자연이 어우러진 조망이 필요했어요. 누군가는 단지 시티뷰라고 여길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저게 다 벚나무여서 봄이면 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엔 푸르르고 가을엔 또 가을대로의 멋이 있거든요. 겨울엔 나무가 앙상해져서 안 예쁠 것 같지만 그 덕에 안양천이 더 잘 보이고요. 나뭇가지 사이로 수면이 반짝이는 게 보여서 너무 아름다워요. 아마 다음에 이사한다면 신혼집이 될 것 같은데 이만큼 만족하는 뷰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요.



유튜브에서 지인의 집을 꾸며주는 영상을 봤어요. 그 제목이 ‘50만 원으로 현실적인 집 꾸미기’였는데, 은진 님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범주가 궁금하더라고요.
지인은 항상 병원 기숙사에서 지내거나 하숙을 해서 자기만의 공간이 있은 적이 없었어요. 이사 간 곳은 4~5평 정도로 아담한 곳이었는데 짐이 너무 많았죠. 그래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했어요. 잡동사니가 눈에 많이 띄면 집이 어수선해지거든요. 수납 정리함을 사기에는 집이 너무 작아서, 행어를 만든 다음 커튼을 쳤어요. 그 안에 옷, 여행용 가방, 생활용품 등 잡다한 것을 넣었고요. 그런 게 저한테 현실적인 거예요. 비현실적이었다면 예쁘고 큰 옷장을 샀을 테죠.

20대의 현실적인 범주를 브랜드화하면 다이소와 이케아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또한 두 브랜드의 제품을 이용하지만, 가끔은 가성비에 굴복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도 들어요.
저도 두 브랜드의 제품을 많이 사용해요. 그런데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책상이나 의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을 사려고 몇 날 며칠을 서칭해요. 어쩔 수 없이 잘 알려진 흔한 제품을 사야 할 때면 그 위에 천이나 오브제를 올려놓아 제 스타일대로 꾸미고요.

이 집에서 마지막 영상을 찍는다면 어떤 풍경이 될 것 같아요?
이미 생각해놨어요. 이 집을 비우는 모습 말이에요. 물론 그다음 것도 생각해놨죠. 새로운 집을 채우는 모습! 유튜버 관점에서 콘텐츠를 생각하다 보니까 머릿속에 다 그리게 되더라고요.(웃음) 누가 이런 일 좀 맡겨줬으면 좋겠어요.

뭐가 되고 싶어요? 우린 이미 어른이지만….
모르겠어요. 매일매일 바뀌어요. 어떤 책을 보니까 저처럼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이거 했다가 저거 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일들이 모이면 나중에 하나의 길이 된대요. 저는 그 ‘무엇’을 믿으면서 이렇게 많은 일을 꾸미는 게 아닌가 싶어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구조 복층 오피스텔
26.4㎡(8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65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