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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의 공중누각

Three Women’s Castle in the Sky

세 여자의 공중누각

Editor.Hyuna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백장미, 황예지, 최현지

25세, 27세, 29세 / 카페 ‘FELT’ 바리스타&DJ, 사진가&목공 스튜디오 ‘Studio Aeir’ 디렉터, 프리랜서 성우&카페 겸 펍 아르바이트생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구조 다세대빌라 스리룸
면적 약 40㎡(12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65만 원

Room History

예지

25세 다세대 빌라 투룸,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45만 원

 

두 살 터울의 세 여자는 매달 일정한 금액을 계좌로 보낸다. 65만 원, 65만 원, 65만 원. 석 달이면 195만 원이 되어야 정상이겠지만, 이 돈은 쌓이는 법이 없다. 월세이기 때문이다. 성실한 월세가 누구를 먹이고 입히는지 이들은 영원히 알 수 없다. 세 여자를 보호해줄 집의 벽돌이 되거나 콘크리트 기둥이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돈으로 세운 이들의 2년짜리 공중누각에는 불안의 실, 연대의 실, 가느다란 희망의 실이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얽혀 있다. 세 여자는 이 실을 풀어내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엮어나간다. 단단한 벽이 아니라 느슨한 끈으로도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세 여자의 공중누각에서 한 계단씩 내려오는 동안 잘 짠 해먹에 사이좋게 누운 이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나는 이 장면이 신기루가 아니길 바란다.



세 분 모두 여러 직업을 갖고 있는데, 정체를 밝혀주세요.
(장미) 저는 스물다섯 살 백장미이고, 이 집 막내입니다.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디제잉을 배우고 있어요.
(예지) 둘째 황예지이고, 스물일곱 살이에요.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목공 스튜디오에서 디렉터로 일하고 있어요.
(현지) 제 이름은 최현지이고, 성우 공부를 5년째 하고 있어요. 카페 겸 펍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도 벌고요.

동갑내기가 아니라 두 살 터울인데, 이 우정의 역사를 듣고 싶네요. 어떻게 친구가 되었나요?
(예지) 우선 셋 다 같은 대학을 나왔어요. 저와 현지 사이의 공통분모가 장미였는데, 늘 저희를 이어주고 싶어 했어요. 그러다 을지로에 있는 바 ‘신도시’에서 같이 논 적이 있는데, 그때 서로 잘 맞는다는 걸 알았죠.

세 분 나이 즈음이면 보통은 함께 살다가 독립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함께 살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예지) 제가 살던 자취방에서 나오게 됐거든요. 트위터에 한탄하듯 “독립해야 하는데, 같이 살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올렸어요. 그런데 채 5분도 되지 않아 장미랑 현지가 댓글을 단 거예요. 같이 살겠다고. 서로 다섯 번도 만나보지 않은 상태에서 룸메이트가 됐고, 살면서 더 친해지고 끈끈해졌어요.
(현지) 저는 본가가 수원에서도 교통편이 좋지 않은 시골 동네였어요. 성우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려고 서울을 오가던 상황이었죠. 멀기도 하고 힘들어서 서울에서 살고 싶었는데, 예지가 같이 살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나오게 됐죠. 장미는 친척 집에서 살다가 나오게 됐고요.



연고가 없는 남가좌동에 집을 구한 이유는요?
(예지) 장미가 무조건 마포구 근처에 살기를 원했어요. 친구들 대부분이 살기도 하고 자주 가는 가게나 카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그 조건과 우리가 가진 보증금으로 최대한 넓고, 채광이 좋은 집을 찾다가 직방 어플로 이곳을 발견했죠. 제가 집 보는 눈이 꽤 밝은 편이거든요. 그런데 현지랑 저는 일을 하고 있어서 보러 갈 수 없었고, 당일 시간 여유가 있던 장미를 보냈어요. 트위터에서부터 계약까지, 이 모든 게 하루에 이루어졌어요.

하루 만에요? 굉장히 즉흥적인 결정이었는데, 살아보니 어때요?
(예지) 뭐랄까, 적당한 동네예요. 완전 주택가도 아니고, 유흥가도 아니고요. 가게도 있고 시장도 있고, 옛것과 현대의 것이 적절하게 잘 섞인 동네 말이에요.

월세와 공과금, 생활비는 똑같이 부담하고 있나요? 보증금은 어떻게 마련했는지도 궁금해요.
(예지) 보증금은 제 부모님과 장미 부모님이 도와주셨고요, 월세는 똑같이 나눠 내고 있어요.
(현지) 대신 저는 보증금을 보태지 않았으니까 방 선택권을 가장 나중에 갖기로 했죠. 장미는 집도 보러 가고, 계약도 맡아 했으니까 제일 먼저 고르게 했고요.
(장미) 생활비는 두 달에 한 번씩 10만 원을 내요. 밥은 각자 알아서 먹거나 그때그때 나누고요, 생활비는 공과금이나 생필품 사는 데 써요.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살다 보면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세 분은 다섯 번도 만나지 않은 채 함께 살게 됐으니, 미세하게 주파수를 맞춰야 하는 일이 있었겠네요.
(예지) 소리 지르며 싸울 일은 없었고요, 설거지하러 갔는데 전에 식사한 사람이 라면 국물을 버리지 않아서 기분이 상하는 등 사소한 일은 있었죠. 집안일은 각자 분담하고, 바쁜 일이 있으면 양해를 구하는 편이라 큰일은 없었어요.
(현지) 아냐, 난 있어.

역시 양쪽 말을 모두 들어봐야 해요.
(현지) 제가 아무도 없을 때 이 집에 처음 입주한 사람인데요, 택배가 온다거나 대신 받아달라는 말도 없이 가구와 생필품 택배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퇴근하고 오면 박스가 산처럼 쌓여 있으니, 그때 조금 막막했죠. 저로서는 ‘아주 기본적인 일인데, 이런 것도 말을 안 하면 어떻게 살지?’ 싶었거든요. 처음엔 혼자 택배를 풀고 가구 설치도 하다가, 결국 얘기를 했어요. 처음이라 싫은 소리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2년을 같이 살아야 하니까요. 알고 보니 둘은 택배가 와도, 장을 봐와도 별로 궁금해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스타일이더라고요. 요즘은 제가 방 안에 넣어두거나 던져둬요.
(예지) 장미나 저는 택배가 오거나 말거나 무심한 편인데, 현지는 택배가 오면 노래 부르면서 언박싱을 해요.(웃음) 저는 그런 모습이 신기했죠.

자취가 처음인 현지 씨나 장미 씨는 살 물건이 많았겠네요.
(예지) 음, 사실 인터뷰한다고 할 때도 “우리 있어 보이게 얘기하자”고 말했는데요, 사실 인테리어고 물건이고 저희는 다 가성비예요.(웃음) 2년 살다 나갈 집이니 뭘 하려고 해도 어차피 내 집 아닌데, 곧 나갈 건데,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현지) 인테리어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받았는지도 말해야 한다기에, 제가 “사실은 쿠팡이지!”라고 했거든요.(웃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기 다 있어요. 그랬더니 예지가 인터뷰하는데, 쿠팡은 좀 아니지 않냐고 하더라고요.
(예지) 괜히 어느 가구 브랜드의 이런 라인이 좋더라는 식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한 거죠.



제가 아까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칫솔이 4개더라고요. 연인이나 친구들이 자주 오가는 것 같은데 외부인에 대한 규칙 같은 게 있나요?
(예지) 처음에는 그런 규칙이 없어서 제가 친구들에게 불편을 많이 줬어요. 지금은 누가 올 일이 있으면 장난식으로 “친구가 오는데, 결재해주시겠습니까?” 하며 허락을 구하죠.

집을 구할 때도 마음에 드는 순간이 있긴 하지만, 진짜 내 집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따로 있더라고요. 세 분은 이곳에서 언제 내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지 궁금해요.
(예지) 아무래도 물리적 부분보다 정신적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집이라고 부를 수 있고,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집에 들어왔을 때 누군가가 있다는 것. 이런 부분에 대한 자각이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새벽이 되면 다들 거실에 슬금슬금 모이거든요. 그때 오늘 하루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깔깔 웃다가, 피곤하면 한 명씩 들어가서 자고, 여기서 다 같이 쓰러져 자기도 하고요. 그런 순간에 이곳이 집이라는 위안을 받고 가족이 됐다고 생각해요.

방금 예지 씨도 ‘가족’이라고 셋을 칭했고, 장미 씨도 인스타그램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라는 글을 썼죠? 룸메이트가 아니라.
(현지) 어, 그거 사실 제가 처음 쓴 말이에요!

아, 저작권이 현지 씨한테 있었군요.
(현지)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가족은 선택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인지 가끔은 강요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친구들은 제가 가족 품에서 떨어지면서 선택한 사람들이고, 돈이든 뭐든 삶의 규칙을 나누는 사람들이잖아요. 거기서 이상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저는 어떤 형태이든 간에 주어진 가족이 아니라 선택한 가족을 만들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오히려 선택하지 못한 가족에 대해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요.
(현지) 맞아요. 부모님과 살 때와는 정말 달라요. 부모님의 사랑은 어쩌면 당연한 거니까 받을 때도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이 친구들이랑은 확실히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느낌이 있어요. 같은 또래니까 투닥거릴 때도 있고 짜증 날 때도 있지만, 동시에 서로가 있어서 고맙고 다행이고. 이상하고도 새로운 감각이죠. 사실 우리가 밖에서 친구로만 만난다면 보이고 싶은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고, 싸우면 안 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한집에서 같이 살면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계약 기간이 2020년 3월까지라고 들었는데, 이후를 생각해봤나요?
(현지) 장미는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라, 그 이후를 생각하는 걸 정말 싫어해요.(웃음)
(장미) 지금이 너무 좋은데, 각자의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래도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그때 가서 이야기해도 되는데, 꼭 지금 얘기를 해야 하는 건가… 
(예지) 제가 장난으로 나중에 고양이들 못 보면 어떡하냐고 말하니 장미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더라고요. 다신 이런 장난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특별히 얘기하는 건 없지만, 올해 말부터는 계약 기간 이후에 관해 얘기하겠죠.




예지 씨가 두 분을 찍은 사진이 항상 인상적이더라고요. 어떤 사진에서는 우정 이상의 끈끈한 가족애가 느껴지기도 했고, 또 어떤 사진에서는 서로가 굉장히 낯선 존재처럼 보였거든요. 함께 살면서 매일 보는 사람을 낯설게 바라보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무엇이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지 궁금했어요.
(예지) 우선 저는 어릴 때부터 사진을 찍어서 초상 사진에 훈련이 되어 있는 편이에요. 다만 제가 처음 두 사람에게 놀랐던 건 생각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장점을 부각하지 않고 살았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단순히 곁에 있는 친구라서 찍는 게 아니라, 제삼자가 봐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제가 처음 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두 분은 여러 번 피사체가 되었는데,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은 어땠나요?
(현지) 처음 하는 이야기지만, 저는 어릴 때 거울 보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했어요. ‘아, 이 얼굴에 키만 조금 더 크고 날씬하면 완전 모델인데.’(웃음) 저는 성우, 연기 공부를 오래 해와서 타인의 시선으로 본 제 모습이 낯설거나 충격적이진 않아요.
(장미) 사실 셀카를 찍을 땐 내가 원하는 모습을 의도하고 연출하잖아요. 그런데 예지의 사진 속 저는 낯설 때도 있고, 오히려 내가 생각한 진짜 내 모습처럼 보일 때도 있어요. 자주 찍히면서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고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셋이어서 좋을 때도 있지만, 간절히 혼자만의 순간이 필요할 때도 있겠죠?
(예지) 그럴 때 저희는 문의 각도로 얘기해요. 각도에 따라 허용되는 정도가 다르거든요.(웃음) 완전히 닫혀 있으면 혼자 있고 싶다, 건드리지 마라. 살짝 열려 있으면 기분은 별로 좋지 않지만 들어가서 얘기해도 되는 정도?



세 분 모두 단체나 회사에서 9 to 6로 일하지 않고, 생계를 위한 일을 병행하고 있잖아요. 서울에서 20대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각자 어떤 불안과 희망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예지) 저는 완전히 상업사진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보니 수입 편차가 심해요. 그 불균형에서 오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크죠. 사실 돈 걱정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이 문제를 회피하면서 살아왔어요. 그런데 친구들이랑 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같이 산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처음으로 수입·지출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올해는 적금이랑 주택청약도 들었고요. 수입의 불균형은 계속 숙제로 남아 있지만, 서로의 치열함도 공유하고 고민도 나누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요.
(현지) 저는 서울에서 살던 사람이 아니니까 저축하는 돈이 아니라 월세라는 고정 지출이 생긴 셈이죠. 물론 셋이 나눠서 내지만 제 상황에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고, 어딘가에 남는 돈이 아니니까 허탈할 때도 있어요. 가끔은 너무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요. 굳이 서울에 와서 살고 있는데, 이루는 성과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커요. 월세를 내고 서울에 살면서 누리는 혜택이라면 교통비가 아주 조금 절약되고, 데이트를 쉽게 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사실 서울에 살아보니까 더 재미있고 다양하게 놀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저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서울에 사는 거거든요. 월세만큼의 금액을 저축하기 위해 본가로 가고 싶지도 않고요. 정말 이상하게 사람들이 한번 서울로 오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거지가 되든 망하든 알바만 하면서 게으르게 살든. 돌아가려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어요. 그게 저랑 비슷한 마음일 것 같기는 해요. 뭐라도 잡히는 건 없지만, 여기서 살면 언젠가는 뭐라도 잡을 것 같거든요. 희망이라고 한다면 그런 거겠죠. 나한테 투자하고 열심히 붙잡고 있으면 되겠지, 생각하는 정도요. 나머지는 불안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장미) 저도 본가가 서울은 아니에요. 서울에 살고 싶어 친척 집에서 지내다가, 결국 나와야 하는 상황이 생겨 이 집에 오게 된 거죠. 제가 지금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데, 이 일을 머니 잡으로 가져가겠다고 결심한 상태예요. 생각해보면 이것도 다 여기서 살기 위함인 것 같아요. 서울에 사는 게 뭐길래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걸까? 출생이 서울인 사람은 어떤 권력 같은 걸 이미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그런 얘기를 많이 하게 돼요.

저도 요즘 제일 부러운 사람이 부모님 고향이 서울인 사람이에요.
(현지) 서울의 괜찮은 직장에 지원할 때 주소를 거짓으로 적을 순 없으니까 수원으로 넣었는데 정말 다 떨어지더라고요. 확신할 순 없지만, 집이 너무 멀어서인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건 달라진 게 없고 지금은 거주지를 서울로 적을 수 있으니까 상황이 달라졌어요. 일단 면접을 볼 수는 있거든요.
(장미) 다른 친구들도 취업 지원할 때 서울에 사는 다른 친구들 주소를 빌려서 적는 일이 꽤 많아요.

어쩌면 서울이 치열함에 중독되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떠날 수 없도록.
(현지) 사실 인맥도 서울에서 만든 건데, 이게 끊기면 저는 밥줄도 끊길 수 있어요. 주변 사람들이 소개해주는 일도 많거든요. 이런 생각이 더욱 서울을 떠날 수 없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예지) 요즘 친구들이랑 서울은 과부하 상태라고 많이 이야기해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조금만 잘하는 건 티도 안 난다고. 인테리어든 디자인이든 사진이든 뭐든 평균치가 올라가서, 아는 분은 오히려 다른 지방으로 거주지를 옮긴다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은데, 잘하는 사람이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드물게 들려오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고, 친구들도 있다면 서울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살 수 있을까요?
(예지) 저는 제 나름대로 땅을 다질 수 있다면 어디라도 상관없어요. 작게나마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도 있고요. 친구들 집도 지어주고, 작은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싶기도 하고. 서울살이 지치면요.



세 분이 ‘친구’라고 일컫는 사람 중에는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도 있지만, 비슷한 연대감을 공유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 연대감을 느끼나요? 지금 이 상황, 이 나이에.
(예지) 저는 친구들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걸 좋아해요. 만약 장미가 디제잉을 하는데 무언가 필요하면,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친구를 소개해주죠. 서로 알고 지낼 경우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과 비슷한 속도로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여성끼리의 연대도 존재하고, 창작자들과의 연대도 생겨나고요.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랑 서로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제가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잘 이루어지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이 집에서 살았던 날이 어떤 장면으로 남을 것 같나요?
(현지) 예지가 직업적으로 성장을 도와주고 지원해주려고 한다면, 장미나 저에게도 각자의 역할이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장미나 예지는 멘털이 자주 흔들리는 편이에요. 그럼 제가 억지로 불편한 감정을 꺼내서 이야기하고, 다시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요. 장미는 밝아요. 소리도 크고, 귀엽고. 딱 막냇동생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내요. 이렇게 연결되어 있어 자취방에서 누군가와 동거했다고 줄이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해요. 괜찮은 부분부터 밑바닥까지, 한 사람에 대해 현미경으로 보는 느낌이랄까요. 아마 다시 이런 경험을 할 일도 없겠죠? 제 인생에서 이런 날들은 사람에 대한 경험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예지) 저는 이 집에서 타인에 의해 제 우울함이 지워지는 경험을 처음 했어요. 장미는 제가 기분이 안 좋으면 방에 꽃을 올려놓거나 다이어리를 사다 놓곤 해요. 강아지처럼 와서 몸을 비비기도 하고요. 저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게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결국엔 기분이 나아지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왠지 부모가 된 것처럼 ‘그래, 장미가 있으니까 열심히 살아야지’ 이렇게 마음먹게 되기도 하고요. 현지는 저를 강하게 키워요. 문을 쾅쾅쾅 두드리면서 “일어나, 이 새끼야! 언제까지 누워 있을 거야!” 하며 감정에 깊이 빠지지 않도록 꺼내주죠. 타인에 의해 제 우울함이 사라지는 기억이 너무 소중해요. 나중에 혼자 살거나 다른 누군가와 같이 살아도 이 장면이 오래 생각날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구조 다세대빌라 스리룸
면적 약 40㎡(12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65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