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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자아를 품게 된 나의 집에 대한 고찰

Thoughts on My House with Multiple-self

다중 자아를 품게 된 나의 집에 대한 고찰

Writer. Byungjin Kang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4년 전, 혼자 살려고 9평 반 되는 이 오피스텔을 마련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방 3개에 화장실 2개, 앞뒤로 베란다까지 있는 집보다 작았지만, 내 계획은 크고 넓었다. 일단 주말에는 마음껏 잘 것! 쉬는 날에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살 땐 주말마다 형제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나는 대충 식사를 하고 나와 카페를 전전해야 했다. 이제는 그럴 일이 없으니 마음껏 자고 일어나 집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영화도 마음껏 보고, 친구들도 불러서 술을 마시고, 무엇보다 여자 친구와 더 편하게 먹고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몸이 찌뿌드드할 때는 유튜브로 폼롤러 강좌를 틀어놓고 스트레칭을 따라 했다. 방에 있던 책상과 소파를 옮겨 나만의 유튜브 스튜디오를 만들고 촬영한 적도 있다. 직접 요리해서 먹는 일에도 재미를 붙였다. 그러면서 집에 대한 투자도 늘어났다. 어머니가 챙겨주신 프라이팬, 냄비, 칼 등을 치우고 유튜브에서 본 조리 기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음식이 더 맛있어진 건 아니지만 만족감은 높았다. 이사할 때 처음 산 32인치 TV를 처분하고 55인치 스마트 TV를 들였다. 내 집이 훨씬 더 좋아졌다.


회사 선배가 쓰다가 나한테 넘긴 작은 이케아 소파도 더 비싸고 크고 푹신한 소파로 바꿨다. 소파에서 잠드는 일이 늘어났다. 매트리스만 놓고 살다가 침대 프레임을 들였고,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까지 선물받았다. 창가 쪽에서 책을 읽고 싶어서 빌트인 책상이 있는데도 작은 책상을 또 하나 샀다. 책도 읽고, 글도 썼을 뿐 아니라, 음악을 틀어놓고 이 책상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나로서는 비싼 월세를 내고 사는 만큼, 9평 반의 넓이를 최대한 써먹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활은 꽤 순탄하게 이어졌다. 왜 진작 집의 다양한 쓰임을 몰랐을까, 후회가 되기도 했다. 더 빨리 나 혼자 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더 오래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과 시간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사부작’거리며 살았다. 하지만 평온한 나의 독립을 방해하는 듯 자유는 얼마 안 가 끝나고 말았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부터다.


하루의 대부분을 밖에서 보낼 때는 몰랐다. 혼자 사는 집이란 출근과 동시에 사람의 집이 아니다. 옷을 벗어 던져놓고, 설거짓거리를 남겨놓아도 출근을 하고 나면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집에만 있다 보면 곳곳에 숨어 있는 먼지까지 눈에 띈다.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카페나 월정액을 내고 쓰는 작업실에 갈 수 있었다면 그럴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가 격상되면서 집을 피해 달아날 수 있는 곳은 자동차밖에 없었다.


집에서만 일하고, 집에서만 먹고, 집에서만 노는, 그러니까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모든 생활을 집에서만 하다 보니 난 내가 만들어놓은 공간의 실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소파를 뭐 하러 이렇게 큰 걸 샀을까? 이 좁은 곳에 왜 굳이 책상을 또 하나 들여놓았을까? 침대 프레임이 없었어도 잠을 자는 건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9평 반은 나의 수많은 자아가 복닥이며 살기에는 비좁은 곳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집에 계속 뭔가를 욱여넣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아무런 불편 없이 집에서 하던 활동을 하기가 싫어졌다. 괜히 무기력해졌다고 설명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은 나처럼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자신의 집을 바라볼 것 같다. 집은 그대로인데, 그곳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진 탓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밖에서 하던 활동을 집에서 시도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그 많은 활동을 하기에 지금의 집은 꽤 불편하다고 느낄 것이다. 9평 반보다 작은 공간에 사는 사람은 당연하고, 32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집들은 처음부터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원래 밖에서 많이 살았기에 안에서 사는 시간도 좋았던 거였다. 쿠팡의 ‘로켓 배송’이 있고, 배달의민족의 ‘번쩍 배달’이 있고, 왓챠와 넷플릭스가 있는데 집에만 있는 생활이 왜 불편하냐고? 원래 그런 것에만 의존하며 살지 않았으니 불편할 수밖에. 인간이 밖에 나가지 않으면 경제가 무너지고, 관계가 약해지며, 몸이 축난다. 야심한 새벽 동네 친구와 만나 24시간 감자탕집에서 소주를 마시거나, 주말 낮이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기도 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인간은 집에서만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집이 단순히 자고, 먹고, 씻는 곳이거나 머지않은 미래에 부를 안겨줄 투자 대상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해줬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자신만의 집을 꿈꾸는 시간도 늘어났을 것이다. 

        
나 역시 지금 집이 9평 반의 오피스텔이 아니라, <서울에는 우리 집이 없다>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집이었다면 이런 시국에도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수많은 자아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도록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설계해 지은 집이 있다면 말이다.

다른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팬데믹 이후에는 지금의 집을 떠나는 일이 예전보다 더 많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모든 공간을 다 갖춘 집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집을 찾고 싶은 생각이 커졌을 테니까. 마침 2021년이면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계약이 만료된다.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서 좀 더 넓은 곳을 알아봤다. 아직은 나온 물건이 없단다. 그래서 나는 자동차라도 좀 더 크고 넓은 걸 사볼까 생각 중이다. 거리의 자동차에 갇혀 있더라도, 가끔은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19가 일깨운 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욕구일지도 모른다. 더 크고 좋은 집에 대한 꿈은 곧 그만큼 더 좋은 생활에 대한 바람이기 때문이다.

        

     

    

   

강병진

어머니를 위해 작은 빌라를 샀다. 나를 위해 더 작은 오피스텔을 월세로 얻었다. 그 과정이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글로 기록했는데,《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란 책으로 탄생했다. 요즘은 남이 사는 집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