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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1분과 당신의 24시간을 비교하나요?

If you compare your day with their blink

그들의 1분과 당신의 24시간을 비교하나요?

Writer. Lim Seoyoung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바야흐로 유튜버가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 ‘사’ 자 직업에서 연예인을 거쳐 유튜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희망 직종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이 흐름을 보면서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져간다고 느낀다. 유튜버가 되는 건 연예인이 되는 것보다 확실히 쉽다. 휴대폰이나 카메라, 영상을 찍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접근성이 좋다는 건 장점이지 유튜버가 되고 싶은 본질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유튜버의 삶을 갈망하는 이유는 ‘자유’에 있다고 본다. 연예인은 사 자 직업보다 속박은 덜하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반면 유튜버는 연예인보다 조금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자유를 누린다. 그들은 고용주이자 곧 고용인이기 때문이다. 이 직종의 최대 장점은 누구의 간섭을 받을 필요도 없이 나 자신을 표현하며 돈을 버는 삶일 것이다. 자유는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이 가장 골몰하는 가치인 데다 물질적 성공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이 더해져어느새 유튜버가 각광받게 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박탈감은 존재했지만 지금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유튜버는 ‘그냥자유롭게 놀기만 하면’ 금방 집도 옮기고 차도 사고 협찬이 물밀 듯 들어와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뜻 인생이 ‘쉬워’ 보인다. 아침 일찍 저기압으로 만원 버스를 탈 필요도 없고, 말이 안 통하는 직장 상사 앞에서 억지 미소를 지을 필요도 없다. 이해되지 않는 윗선의 지시를 따를 필요도 없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하고 전시할 뿐이다. 알람 없이 푹 자고 일어나 맛집을 찾아다니고, 멀끔하게 꾸미고 행사장에 가거나 친구들을 만날 뿐인데 돈도 들어온단다. 가히 새로운 시대의 판타지라 할 만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유튜버를 보면 가성비 떨어지는 인생이 자각되어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상대적으로 보면 노동하고 고생하는 시간에 비해 대가가 적어도 너무 적은 것이다.


현실보다 판타지에 가까운 브이로그를 보며 저렇게 매끄럽게 세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프리랜서’란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적 있는 이상적인 자유의 삶 아니던가. 인터넷만 켜면 자신의 삶을 전시하는 유튜버가 판을 치니 그 직업을 고민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나도 한번 뛰어들어봐?” “얼굴 팔리는 건 부담스럽지만 딱 1년만 버티면 뭐가 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막상 뛰어들기엔 특출한 재능이 없고 될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지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박탈감이 큰 시대다. 과거에는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며 주변 사람들과 비교했다면, 요즘은 전 세계 유튜버가 손만 뻗으면 닿을 듯 비교대상으로 널려 있다. 노력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시대라는 것도 박탈감에 한몫한다.


이전 시대와 가장 구별되는 지금을 대변하는 표어는 ‘노력의 무용함’일 것이다. 중·장년층이 청년이던 때는 대체로 노력이 배반하지 않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아졌다. 그러면서 세대 간의 불통이 생기고, 대를 거듭할수록 박탈감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의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세상은 상대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을 인지할 수 있고, 슬픔이 있어야만 기쁨을 인지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배경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은 타인을 볼 때 나와 다른 부분을 자연스레 인지하게 되므로, 비교하지 않겠다고 애쓰는 건 현명하지 않은 처사다. 억압에 관한 방어기제 이론에서는 흰곰 실험을 이야기한다. 10초 동안 흰곰에 대해 절대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그때부터 흰곰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살면서 한 번도 흰곰을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도 말이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려고 억제할수록 더 하게 되는 역설적 효과다. 따라서 비교를 대하는 첫 번째 자세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만약 비교를 하는 상황이 오면 지금 내 마음이 그렇구나, 하고 감정을 보내주면 된다.


또 열등감과 박탈감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행복도를 조사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2등인 은메달리스트보다 3등인 동메달리스트의 행복도가 더 높았던 것. 은메달리스트는 상향 비교를 하여 ‘조금만 더 하면 금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했고, 동메달리스트는 하향 비교를 하여 ‘하마터면 메달을 못 딸 뻔했어.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행복은 절대적 등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 위치가 내 감정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같은 위치에 있더라도 상향 비교를 하느냐 하향 비교를 하느냐에 따라 나의 행복도는 달라진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감정에 너무 몰입해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양면을 인식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유튜브나 SNS에서 타인의 즐거운 모습을 보면 우울해진다고 말하는 사람은 삶의 양면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한쪽 면만 붙들고 있는 것이다.

   

유튜버의 쉬워 보이는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1초 단위의 세세한 일상을 불특정 다수에게 무자비하게 평가받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인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마음 챙김(mindfulness)’이란 한 가지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총체적 관점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인지 과정을 뜻한다. 한쪽 감정만 붙들고 빠져드는 데서 괴로움이 오고, 양면을 동시에 자각할 때 고통은 소멸한다. 이러한 마음 챙김의 자세는 전체를 자각하려는 의도를 반복해서 인지함으로써 길러질 수 있다. 만물에 음과 양이 존재하듯 모든 사람은 그들이 먹는 달콤한 열매만큼의 고통을 반드시 겪는다는 것을 인식하면 박탈감으로 인한 괴로움이 덜할 것이다. 편집된 1분의 영상이 타인의 모든 것이라 믿고 나의 24시간과 비교할 경우 불행해진다. 무엇보다 노력한다고 다 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현명한 방식은 결국 받아들임이다. 있는 그대로의 내 현재와 싸우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고 살아가보는 것이다.

  

        

     

    

   

임서영

심리학 석사. 에세이《그럼에도 나를 사랑한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