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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만난 두 번째 오늘

The second today I’ve met through the record

기록으로 만난 두 번째 오늘

Editor.Jayeo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문예진/ 25세

크리에이터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구조 다세대주택 투룸
면적  42.9㎡(13평)
보증금 1억 2000만 원(전세)

 

Room History

22세 서울시 관악구 신대방동 신축 1층 원룸(보증금 500만 원, 월세 60만 원)
23세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오피스텔 4층 원룸(보증금 500만 원, 월세 55만 원)

 

소설가 김연수가 말했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난 뒤에 일기를 다시 보면 나를 객관화해볼 수 있다.” 어떤 기록은 스스로를 반추하는 시간을 통해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모양이다. 문예진은 매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이다. 여러 권의 노트와 사진기, 드로잉 북과 아이패드 등 숙련된 도구를 십분 활용하고, 오늘의 페이지를 잊지 않고 저장한다. 그는 몇 번째의 오늘을 보내고 있을까? 그의 집엔 아무도 모르는 타임 리프 기능이 있다.


세 번째로 이사온 이 동네에서 가능하면 평생 살고 싶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살던 곳과 어떤 점이 달라요?
지방에서 서울로 처음 이사 왔을 때 어디서 자취를 해야 좋을지 잘 몰랐어요. 알음알음 신대방동 집값이 저렴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렇게 자리를 잡았죠. 그런데 근처에 술집이 워낙 많다 보니 밤마다 경찰이 오고 싸움 소리도 들리더라고요. 그다음엔 옆 동네 신림동으로 갔어요. 두 번째 집은 평수가 더 넓어지고 술집도 거의 없었지만 바로 옆에 큰 도로가 있었어요. 음악을 틀지 않으면 소음이 절대 가려지지 않더라고요. 그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세 번째 집, 이곳으로 오게 됐는데, 이 동네는 엄청 고요해요. 창밖으로 울창한 나무가 보이고, 새들도 많이 마주쳐요. 이런 환경이 마음에 들어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요.

집 안 구석구석 식물이 많아서 집 안팎으로 숲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식물을 이렇게 많이 키우게 될 줄 몰랐어요. 독립하고 나서 처음으로 키우는 건데, 초반에는 엄청 많이 죽였어요. 고사리 식물 같은 건 아직도 어려워요. 개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명확하게 언제라고 정해둔 건 아니지만 매일 식물을 돌보면서 시간을 보내요. 틈날 때마다 눈에 닿는 식물한테 가서 오늘의 상태는 어떤지 확인하죠. 하루 중 제일 마음이 평온해지는 시간이에요.

책장과 소파를 거실 한가운데에 붙여놨어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처음 갔을 때 감각적인 공간에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책이 한데 모여 있고 그 옆에는 사람들이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소파도 마련해놓았잖아요. 그 차분한 질서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우리 집에도 이걸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막 설렜어요. 마침 거실에 아무것도 없던 터라 시도해볼 수 있었거든요. 책과 소파, 편하게 자리에 앉아 공간을 즐기는 사람, 그 장면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많이 샀죠.(웃음) 책장이랑 소파는 전부 새로 산 거예요.

예진 씨 SNS 계정을 보면 자기 공간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더라고요. 평소 집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는지 궁금해요.
편하게 바라보려고 해요. 인위적이지 않게요. 그냥 저라는 사람이 이 집에 동화되면 좋겠거든요. SNS에 올라오는 일상 사진들을 보면 세팅한 듯한 장면이 많아요. 식사 메뉴 옆에 읽지 않는 오래된 영문 서적이 있거나···.(웃음) 저는 그런 걸 좀 못 참겠더라고요. 저의 생활감이 그대로 담긴 것들로부터 편안함이나 자연스러움을 느낄 때 사진을 찍어요.



집 또한 거주자를 기록해요. 어디에서 가장 예진다움이 묻어난다고 생각하나요?
작업실요. 제가 하루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에요. 넓은 창도 좋고 식물, 커튼 등 모든 소품까지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집중적으로 쏟아 넣었어요. 가구 배치나 동선도 오로지 저한테만 맞췄고요. 그렇다 보니 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인 것 같아요. 또 사람들이 집에 올 땐 가구 배치를 바꾸어서 다이닝 룸으로 쓰기도 해요. 저의 사적 영역 외에 다양한 관계가 이곳에서 이뤄지죠.

벽면에 드로잉과 일지가 많이 붙어 있어요. 언제부터 일상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나요?
중학생 때부터인 것 같아요. 그때부터 일기를 거의 매일 썼어요. 초등학생 때는 숙제로서 일기를 쓰잖아요. 그땐 정말 하기 싫어하다가, 오히려 아무도 시키지 않을 때 스스로 쓰기 시작했어요. 오늘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도 컸는데, 아마 그때부터 오랜 습관으로 자리한 것 같아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에는 블로그를 했어요. 딱히 주제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평범하고 일상적 내용을 담았죠. 워낙 제가 건망증이 너무 심해서 이렇게 안 하면 다 잊어버려요. 기억하고 싶은 걸 기록에 의존하는 거죠.

일기를 쓸 때 하루 중 기록할 만한 일과 아닌 일을 구분하는 기준도 있나요?
웬만한 건 다 기록하려고 해요. 오늘 어딜 갔고, 무얼 했고, 뭘 먹었고, 누굴 만났고. 하지만 감흥을 느낀 것 위주로 적어요. 단순히 ‘웹서핑을 했다’는 쓰지 않지만, ‘웹서핑을 하던 중에 이런 걸 보았고 이런 교훈을 얻었다’는 남기는 거예요. 되돌아볼 때 반성하거나 지금의 나를 일깨워주는 것,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을 남기거든요.

예진 씨의 아이패드 다·꾸를 처음 봤을 때 놀랐어요. 엄청 톡톡 튀더라고요. 다·꾸에 ‘나’를 표현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을까요?
거창하게 뭐가 있는 건 아니고요. 음··· 좋아하는 것을 막 몽땅 넣으면 그게 자기가 되는 것 같아요. 작업실에 대해 말한 것과 비슷한 결인데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모여 결국 나를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다·꾸를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에 무조건 보기 좋은 걸 넣어야 한다고 몰두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 어디에 넣을까를 고민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혼합한 형태의 ‘뉴트로(new+retro)’가 각광받고 있어요. 디지털 매체인 아이패드에서 여전히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 질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아이펜슬로 글 쓰는 건 아직 이질감이 느껴져요. 굿노트에서 다·꾸를 하려고 아무리 오리고 잘라도 진짜 종이의 손맛을 따라오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아이패드의 ‘프로크리에이트’라는 드로잉 앱은 아날로그 질감이 잘 느껴져요. 펜슬에 힘을 주는 정도에 따라 강약 조절도 되고, 그림 그리는 느낌이 좋아서 실제 종이에 대고 하는 것보다 좋더라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이패드 말고 노트에도 다시 기록을 해요. 이중 기록인 거죠.

     


그 말은 아이패드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걸까요?
그렇다기보다는 제 성향인 것 같아요. 아직은 아이패드를 쓴다는 이유로 노트를 완전히 놓을 수 없겠더라고요. 왠지 아이펜슬로 쓰면 머릿속에 제대로 저장이 안 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아이패드로 간략하게 정리하고 디테일한 건 다이어리에 써요. 하지만 이게 아이패드를 안 쓰겠다거나 포기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너무 편하거든요. 기록의 편리가 엄청나요.

각각의 장단점을 골고루 활용하겠다는 거네요?
맞아요.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고 하면 뭘 선택할지 모르겠어요. 미팅할 때 비주얼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는 아이패드가 잘 맞아요. 또 손으로 급하게 쓰려고 하면 생각하는 속도를 글씨가 못 따라가니까 자연스럽게 찾게 되고요. 다만 혼자 곰곰이 생각하면서 섬세하고 자세하게 기록하는 건 일기장이나 노트가 좋아요. 장단점이 확실하게 나뉘어 있어요.

데이비드 색스의 저서 《아날로그의 반격》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가 레트로를 찾는 건 복고 트렌드가 귀환했기 때문이 아니라, 디지털의 반작용 때문이라고 해요. 온 만물이 디지털화하니까 오히려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아날로그에 환호한다는 의미인데요,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청 공감하고 동의해요. 이제는 터치 한 번으로 많은 걸 쉽게 얻을 수 있잖아요. 제가 성격이 엄청 급한데, 언젠가 턴테이블을 선물받았어요. 요즘은 적게는 한 번, 많게는 열 번의 터치만으로 원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턴테이블로 노래를 들으려면 LP를 고르고, 부착시키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또 10초 정도를 기다려야 해요. 어렵게 얻은 만큼 기쁘더라고요. 노래를 듣기 전, 이런 일련의 과정이 하나의 의식이 되니까 노래를 듣는 의미도 더 커진 거죠. 평소였으면 답답해했을 텐데 그게 제 유일한 숨구멍이 됐어요. 기록도 그래요. 여전히 손을 더 움직여야 만족스러운 게 있으니까요.

일기 이외의 기록물도 궁금해요.
여행을 가면 시간이 많으니까 드로잉을 많이 해요. 나중에 그림을 다시 보면 그 장면이 바로 생생하게 떠오르더라고요.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타투를 하고 있어요. 꼭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편의 타투로 남긴 지 3년째예요. 작년엔 제가 조금 힘든 시기를 보냈거든요. 마치 절벽 끝에 내몰린 심정이라, 절벽에 서 있는 사진을 타투로 새겼어요. 제가 직접 찍은 사진을 도안으로 쓰고요.

기록물이 또 다른 기록물로 전환되는 거네요?
맞아요. 그리고 자고 일어나자마자 그날 꾼 꿈을 쓰는 꿈 노트도 있어요. 대학생 때 좋아하던 사람이 꿈에 나온 적 있는데, 그 스토리를 남기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비현실적 이야기가 많으니까 나중에 영감을 주기도 하더라고요. 레시피 노트에는 그간 만든 음식의 레시피를 적는데, 누구랑 먹었고, 그 상황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구체적으로 써요.

    


이렇게 많은 걸 기억하고 적어내다니, 부지런함이 필수 요소일 것 같아요.
아뇨, 저 게을러요.(웃음) 소파에 누워서 휴대폰만 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그런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내가 너무 쓸모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래서 뭐라도 적어서 남기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모든 걸 일일이 기억하는 게 복잡하다는 사람도 있어요. 왜 이런 꾸준한 기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록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기회이기도 해요. 그 과정을 통해 나의 행적을 되짚어볼 수 있으니까요. 계속 쓰고 생각하면서 자기만의 길을 찾기도 하고요. 또 나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도 있죠. 저는 글을 쓸 때 가장 꾸밈 없이 저를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유튜브 같은 경우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니까 의식하게 되거든요. 근데 글은 저만 혼자 덩그러니 남으니까 더 개별성을 가감 없이 담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 습관으로 가장 크게 얻은 게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만의 브랜드가 생긴 거요. 가장 큰 수확이에요. 좋아서 시작한 일이 어느새 저의 포트폴리오가 되었더라고요. 제 기록물을 보고 많은 분이 공간 디렉팅이나 영상, 사진 등 다양한 작업을 요청해주세요. 그 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 했어요.

너무 귀찮지만 하루를 남기고 싶은 사람이 도구의 힘을 빌린다면 어떤 게 좋을까요?
뭐니 뭐니 해도 카메라 아닐까요? 사진은 글보다 힘이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긴 글이 아니더라도 사진 한 장만 있으면 ‘이때는 내가 뭘 했었지’, ‘내가 어디를 갔었지’ 하고 그 당일의 모든 일과가 생생하게 떠오르잖아요. 기록이 당장 귀찮거나 어렵다면 사진을 찍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예진 씨의 패브릭 제품도 직접 촬영한 사진을 이용했죠?
맞아요. 하루는 원단에 관한 책을 읽는데 ‘원단에 프린트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패브릭이라는 물성을 이용하면 사진 속 피사체를 색다르게 나타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때 마침 한강 사진의 반응이 좋았어요. 그래서 하늘거리는 시폰 느낌의 원단에 한강 사진을 출력했어요. 바람이 불어서 펄럭일 때마다 강물의 일렁이는 느낌이 들도록요.

이 세상엔 금손보다 똥손이 더 많을 거예요. 작업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금세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뭘 먼저 해보면 좋을까요?
마음에 드는 누군가의 작업물을 따라 해보는 거요. 모방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그게 자신의 실력이 돼요. 이제 그만큼은 할 수 있다는 의미죠. 시간이 점점 지나면 자신감도 붙죠. 일단 기틀을 다지고 자신의 색깔을 점점 더 드러내보세요. 그리고 좋은 사례를 많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구조 다세대주택 투룸
면적  42.9㎡(13평)
보증금 1억 2000만 원(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