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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권리를 지키는 일

Protecting ‘The Right to Protect’

지킬 권리를 지키는 일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28세 / 방정인, 홍윤희

그래픽 디자이너, 공간 디자이너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구조 다세대빌라 1층 원룸
면적 44.1㎡ (13평)
보증금  1500만 원
월세 60만 원

 

Room History

 

25세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다세대빌라 1층 원룸
(보증금 300만 원, 월세 30만 원)
27세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다세대빌라 1층 원룸
(보증금 1500만 원, 월세 60만 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속담은 이미 돌다리를 건너다가 삐끗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어릴 때 부모님에게 지겹게 들은 “어른이 되면 알 거야”라는 말도 이미 그들이 어린 시절을 겪어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경험이란 건 참 공평하게도 쓰든 달든 어떤 식으로든 성장에 도움이 된다. 그것이 비록 상처였을지라도. ‘둘셋스튜디오’의 방정인·홍윤희 대표는 작업실을 얻은 지 6개월 만에 건물주에게 2배의 월세를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때 이들의 나이 스물여섯으로, 사회 생초년생이었다. 2년이 지난 뒤 그들은 어떤 돌다리에 문제가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고, 아직 돌다리를 건너지 않은 이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안내판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두 사람에게 성장은 개인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둘셋스튜디오는 어떤 작업을 하는 곳인가요?
(정인) 둘셋의 둘은 2D(그래픽) 기반의 일이고, 셋은 3D(공간) 쪽 일을 뜻해요. 처음에 일이 없을 땐 작은 부분도 같이 생각하고 현장에도 같이 나가곤 했는데, 계속 클라이언트에게 일을 받다 보니까 이전보다는 역할이 분화된 편이에요. 제가 인쇄물 위주의 작업을 한다면 윤희는 공간 기획을 맡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따로 또 같이 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죠.

처음엔 두 분이 자매인 줄 알았고, 그다음엔 대학 동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정인) 저희는 계원예고 동창인데요, 이전에 분당의 입시 미술 학원에서 만났어요. 저는 원래 분당에서 살고, 윤희는 수원에서 살았는데 분당으로 유학 온 셈이었죠. 그때부터 같이 붙어 다니기 시작했어요.
(윤희) 미술부가 서양화, 동양화, 조소, 디자인 이렇게 네 분야로 나뉘었는데 둘 다 디자인반이었어요. 대학은 정인이가 이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저는 중대에서 무대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서로 학교가 다르지만 고등학생 때 놀던 무리랑 꾸준히 만나서 관계가 소원해질 일은 없었어요. 다만 졸업하고 나니까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무대 디자이너라는 포지션이 좀 애매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밑에서 어시스트로 일하자니 왠지 끌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 걸 해보자 했는데, 마침 정인이도 생각이 있다고 해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게 된 거죠.

그러면 여기가 첫 작업실인가요?
(정인) 아니요, 첫 작업실은 바로 옆 블록에 있어요. 저희가 정말 돈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까 보증금을 친구들한테 빌렸어요. 이미 직장 생활을 하는 자본이 있는 친구들에게 “우리가 나중에 갚을게”라고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죠.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가 30만 원이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렇게 저렴한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들어갔죠. 지금처럼 쾌적한 환경이 전혀 아니고 좁고 열악한 곳이었어요. 콘크리트 바닥이어서 밀리면 가루가 날리곤 했죠. 아무튼 그 좁은 곳에서 2년을 버티긴 했어요. 중간에 쫓겨날 뻔도 했지만.

거기가 문제의 젠트리피케이션 공간이군요.
(윤희) 저희가 2년 계약을 하고 들어갔는데 6개월 지났을 때인가, 갑자기 바닥에 A4 용지가 들어와 있었어요. 내용인즉, 건물주가 바뀌었으니 재계약할 날짜를 조율하자, 그리고 월세를 2배 올려서 받아야겠다는 통보 아닌 통보였어요. 처음엔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하면서 무시했는데, 빨리 대처를 안 하면 내쫓겠다는 2차 통보까지 받았어요. 그래서 부동산 할머니께 연락했더니 오히려 영업 방해하지 말라고, 그 건물주가 지방의 대학교수니 어쩌니 하면서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더라고요. 그때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주변 어른들한테 여쭤보기도 하고 도시재생지원센터에도 찾아갔죠. 다행히 그곳에서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상담을 해주시는 구본기 소장님을 연결해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인지하고 얼마 안 있어 월세를 내야 하는 날이어서 예정대로 30만 원을 입금하려고 했더니 계속 계좌번호 오류가 뜨는 거예요. 그저께까지 옆집 언니가 월세를 냈다고 들었는데…. 건물주는 완전 연락 두절이고. 아, 이 사람이 작정하고 내쫓으려는구나 싶었죠.

계좌를 없애면 어떻게 되는데요?
(윤희) 월세를 3개월 이상 연체하면 계약 기간에 상관없이 내쫓을 수 있거든요. 그걸 노린 거죠. 그때 소장님께서 제의한 방안이 ‘변제공탁’이었어요. ‘우리가 내고 싶은 돈이 있는데 그걸 건물주가 못 내게 막았다, 그러나 우리는 내려고 시도했다’는 것을 법원에 증명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건물주에게 공탁을 넣을 거라고 문자를 했더니 그제야 계좌번호를 알려주더라고요.
(정인) 저희가 공탁을 알아보는 와중에 구청에도 한 번 갔거든요. 어쨌든 용산구 안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니까 탄원서를 써서 보냈어요. 그랬더니 주무관 같은 분이 보고, 부동산 중개업자랑 건물주의 꿍꿍이가 심상치 않으니까 경찰 쪽으로 넘긴 거예요. 사실 그 이후에 저희끼리 해결을 해서 계좌를 받고 월세를 보낸 상태였는데, 한 달 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참고인으로 증언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거기까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그 사람들도 되게 혼이 난 거죠.

아, 왜 이렇게 흥미롭고 통쾌하죠? 웬만한 영화 못지않은데요?
(윤희) 그렇죠? 저희도 정말 다이내믹하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일이 그 정도까지 커질 줄은 몰랐는데 경찰에서 조사하니, 아니나 다를까 그 할머니는 자격증도 없으면서 직원으로 쓰는 사람의 이름을 빌려 계약한 거예요. 형사가 할머니한테 건물주랑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니까 인생 선배라는 대답이 돌아왔대요. 만난 지는 한 1년 됐다고 했대요.(웃음)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싶었지요.

그때 몇 살이었던 거예요?
(윤희) 스물여섯 됐으려나요? 아무것도 모를 당시에 사건이 터져서 어떻게든 쳐내고 쳐내고 해서 좋은 쪽으로 해결됐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야 바쁜 것도 아니고 가진 게 없으니까 이거라도 지키자는 심정으로 대항했지만,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어르신이나 저희 같은 사회 초년생은 눈뜨고 당하겠구나 싶더라고요. 사실 건물주도 그런 걸 알고 찔러보는 게 맞고요.



우여곡절 끝에 찾은 이 곳은 주거 형태여서 그런지 아늑한 느낌이에요. 밤샘 작업할 땐 이곳에서 쪽잠을 자야겠네요.
(윤희) 네, 집이 멀다 보니까 밤늦게까지 작업하다 보면 가는 게 귀찮아서 그냥 소파에서 자요. 창고에 베개도 따로 있어요.
(정인) 저희가 이사 오면서 바닥도 새로 하고, 창문도 확장하고 아늑하게 꾸미려고 노력했어요. 이전 작업실이 지긋지긋하고 또 대로 옆이어서 엄청 시끄러웠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사람이 사는 한가운데 있으니까 되게 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각자 집이 있지만, 이곳이 ‘서울의 집’이라고 생각해 소파도 놓고 테이블도 맞추고 샤워기도 바꿨어요. 이전 작업실엔 안 나갈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매일같이 나와요.

두 분의 집이 분당, 수원이라고 했는데 구태여 해방촌에 자리 잡은 이유가 뭐예요?
(윤희) 경리단이나 이태원은 알았지만 해방촌이라는 동네는 잘 몰랐어요. 그런데 앞서 말했듯 아무리 찾아도 그렇게 싼 곳이 없어서 무작정 계약한 거죠. 계약이 끝나고도 해방촌을 벗어나지 않은 이유는 미팅이나 현장에 가거나 재료를 사러 갈 때 유리한 위치이기 때문이에요. 강남, 강북 두 지역 모두 편하게 갈 수 있고 생각보다 이 동네에 택시가 많이 다녀요. 택시 기사님들의 지름길이거든요.(웃음)

그런데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려면 경쟁의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이 동네는 해방촌이지만 잠잠해 보이던데요?
(정인) 해방촌은 일단 오랜 기간 살고 있는 사람이 많고, 오르막길도 심해서 망원동이나 익선동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하게 일어날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 자세히 관찰하면 변화가 보이긴 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동네를 마치 트렌드처럼 옮겨 다니다 보니까 용산구 안에서도 경리단에서 해방촌으로 흐름이 바뀐 듯해요. 근처의 신흥시장도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방송되면서 상권이 활발해졌고, 저희가 체감할 때도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확실히 음식점이 늘었어요. 카페도 그렇고요.
(윤희) 제가 예전에 신흥시장 쪽에 있는 할머니 수선집에 인터뷰하러 간 적이 있거든요. 그 수선집 할머니가 1970년대 섬유 산업이 일어났을 때부터 가게를 하신 분인데 인터뷰하고 얼마 안 돼서 가게를 접으셨더라고요. 주변에 물어봤더니 건물주가 월세를 올려서 버틸 수 없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수선집뿐만 아니라 떡집, 정육점, 곡식 파는 곳도 사라졌어요.

‘안티-젠트리피케이션 캠페인’에도 참여했다고요. 어떤 일을 했나요?
(정인) 구본기 소장님이 그 캠페인에 참여하고 계셨는데 디자이너로 참여할 의향이 없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때 시간이 있기도 하고 궁금해서 자리에 나갔다가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는데, 문제가 생겼어요. 갑질 문제가 있었거든요. 저희와 소장님, 유음출판사, 이렇게 세 팀이 젠트리피케이션 매뉴얼이라는 소책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고 주최자라고 해야 하나? 참여자를 끌어모은 곳이 이래라저래라 간섭이 심했어요. 어느 정도 반영은 했지만 그래도 저희가 하고 싶은 부분을 지켜서 인쇄했어요. 그랬더니 아주 사소한 문제로 발간 취소를 하니 마니 하는 거예요. 이후에 많이 틀어져서 다 하차하고 저희끼리 다시 만들었는데 이번엔 고소를 하더라고요. 그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에게 소송을 걸었어요. 얼마 전에야 완전히 끝났어요. 참 별일 다 있었죠?(웃음)



그런 일처럼 두 분이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그 행동력이 어떤 도움이 되기도 했나요?
(정인) 쫓겨날 뻔하고 소송을 당함으로써 사회가 녹록지 않다는 걸 경험함과 동시에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면 그렇게까지 나쁘게 흘러가지 않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래서 좀 단단해졌지요. 면역력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윤희) 사실 일을 하면서도 내 뜻대로 안 풀릴 때가 많잖아요. 그런 걸 풀어가는 능력치가 생긴 것 같아요. 옛날에는 싸우는 것 자체가 무서운 사회 초년생이었지만, 지금은 일하면서 불편한 사람을 만났을 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됐어요.

갑자기 궁금한데, 친구들한테 빌린 돈은 다 갚았나요?(웃음)
(정인) 네! 여기 오면서 다 갚았어요. 두 명한테 빌렸는데 한 명한테 1년에 걸쳐서 갚고, 한 명은 그것보다 좀 더 걸리고. 아직도 그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죠.

저는 저와 비슷한 일을 하는 여성을 보면 꼭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일에 대한 ‘긴장’을 어떻게 푸느냐 하는 거예요. 큰일을 맡으면 긴장하지 않나요?
(정인) 완전 긴장하죠. 초창기엔 잃을 게 없으니까 대담했다면 지금은 괜히 아는 게 생기면서 더욱 졸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도 이제 3년 되어가니까 일의 규모가 살짝 커지는 시점인데, 예전엔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큰일 들어오면 못 한다고 할까?”라고 한 적도 있어요.(웃음)
(윤희) 저는 이런 식이에요. 밑져야 본전이다. 일을 맡은 이상 끝내야 하니까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 하자. 왜냐하면 이건 고민하면 할수록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주저하는 시간이 길수록 힘들어지고요.



페미니즘에도 관심이 있다고요? 같은 뜻을 추구하지만 그 안에서도 여러 결이 나뉘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어떻게 풀어내고 싶으세요?
(윤희) 안 그래도 올해 초에 극페미니즘인 친구한테 혼났어요. 아직 너는 성숙하지 못하다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스스로 진짜 페미니즘이라고 느낄 때 다시 와서 말하라고 하는 거예요….(웃음) 아,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정인) 저희가 우선 여성 작업자이고, 듀오라는 포지션 때문에 꾸준히 작업하고 입지를 다지는 그 자체가 어떤 활동이 되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요즘엔 워낙 페미니즘 관련해서 잘하시는 분이 많아서 처음부터 기획한다기보다 공감하는 작업물이 있으면 디자이너로서 참여하고 싶어요.

맞아요. 두 분이 꾸준히 일하는 자체가 의미 있는 운동이죠.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윤희) 저희도 일을 시작하면서 여자이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을 여러 번 마주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현장에 나가면 많은 남성이 “왜 이런 험한 일을 하냐”, “저리 가 있어라”, “성가시다” 등등 성차별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해요. 그런 편견 하나하나를 바꾸는 방법은 ‘이런 애도 있어요’ 하면서 저희 자체를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을 통해 낡은 시스템이 좋은 쪽으로 움직인다면 다음 세대가 원활하게 작업하고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정인) 모델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여성 작업자가 눈에 띄지만 처음엔 생각보다 정말 없었거든요. 멘토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이런 사람처럼 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선택지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꼭 저희가 아니더라도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구조 다세대빌라 1층 원룸
면적 44.1㎡ (13평)
보증금  1500만 원
월세 6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