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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다른 문을 두드리는 사람

The Person Who Knocks Different Doors Everyday

매일 다른 문을 두드리는 사람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Article / reportage

최예슬은 대체로 말이 느리고 걸음도 느리다. 그런 성향에 비해 스케줄은 쉴 틈이 없다. 가만있어 보자, 그날 몇 번의 이동 수단으로 몇 군데 가서 몇 명의 사람을 만났지? 시간이 많지 않던 우리는 합정동-연희동-여의도동-연남동을 오가며 틈날 때마다 대화를 나눴다. 이쯤 되면 그의 직업이 궁금할 수도 있겠다. 그는 가정집·회사·요가원 등에서 방문 수업을 하는 요가 선생님이다. 이 일을 한 지는 10년이 넘었는데, 타인의 현관문을 두드린 지는 8년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홈핏, 피티닷컴, 유니몬 등 방문 트레이닝이 자리 잡기 훨씬 전부터 일을 해온 것이다. 이런 문화가 만연하지 않았을 당시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일을 시작했을까? 낯선 공간에 겁을 먹진 않았을까? 그의 수강생들은? 타인의 방문을 경계하며 언제나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던 내가 슬며시 문을 열어보고 싶어졌다.





수련의 아침을 여는 차 茶


사실 너무 피곤했다. 합정동 최예슬의 집에 아침 7시 50분까지 도착하기 위해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야 했다. 원래라면 발로 이불을 걷은 채 자고 있을 시간에 나는 차를 마시려고 그의 집에 갔다. 처음 초대를 받았을 땐 요가 선생님을 만나는데 차가 중요할까 싶었지만, 어쩐지 그 시간을 함께 누리고 싶었다. 우습게도 그역시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나도 비몽사몽. 서로 한 박자씩 느린 대답을 하며 그의 남편이 준비한 고수 홍차를 마시고 있으니 꼭 주말처럼 느껴졌다. 차를 몇 모금 넘긴 후 정신이 또렷해지고 나서야 그의 일과를 물었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서 보이차나 백차, 홍차 등을 마셔요. 남은 차는 텀블러에 담아서 수업 갈 때 가져가고요. 스케줄에 따라 일어나는 시간이 다른데, 오늘같이 9시에 수업이 있으면 7시쯤에 일어나요. 거의 매일 아침 수업이 있기 때문에 늦잠을 자진 못해요. 주말에는 보통 쉬려고 하지만 특강을 하거나 개인 수업 백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엄청 여유롭지는 않고요.”


나는 마음속으로 ‘엇, 생각보다 늦게 일어나네?’라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상상하는 요가 선생님은 어슴푸레한 시간에 비질하는 스님처럼 꼭두새벽부터 수련하는 모습이었으니까. 어쩌면 수련이라는 말을 졸음과 같은 고통을 감내하는 일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예슬이 말하는 수련은 조금 달랐다. “요가는 몸만 살피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살피는 것도 아니에요. 그 두 가지를 함께 살피는 작업이기 때문에 ‘수련’이라고 말해요. 운동이라고 하면 몸에 집중된 듯한 느낌이잖아요? 저는 요가란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삶을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인 거예요. 비건처럼요.” 나는 비건은 아니지만 베지테리언이다. 나 또한 누군가한테 이런 이념을 말할 때 유별난 선택이나 고통처럼 말하지 않는다. 음, 그제야 수련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냥 내 뜻대로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거구나!









타인을 향한 경계가 풀어지는 순간


우리는 차를 마시고 일어났다. 곧 연희동에서 수업을 시작해야 할 터였다. 출근 시간이어서인지 택시가 잡히지 않아 그의 남편 차를 얻어 탔다. 연희동 맨 꼭대기 언덕 단층 아파트엔 남궁교, 오현진 디자이너가 살고 있었다. 훈남 훈녀여서 눈이 즐거웠는데 수업이 진행되자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비단 커플뿐 아니라 최예슬의 표정, 말, 동작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분위기까지도 아름다웠다. 최예슬은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사바아사나 Savasana라고 휴식하는 동작이 있어요. 저에 대한 경계를 풀고 수련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동적이거든요. 사실 타인 앞에서 누운 채로 눈 감고 있기란 어렵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그 스위치가 탁 하고 전환되더라고요.”


그러게. 나도 그의 직업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경계’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집이라는 공간엔 내재된 친밀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안에서 낯선 사람과 색다른 경험을 나눈다고 하니 그만 이질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제가 처음 방문 수업을 한 건 2012년도인데, 그때는 지금처럼 직접 가서 요가를 가르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요가원에서 일하다 보니까 그런 기회가 아주 자연스럽게 오게 된 거죠. 처음엔 저도 사람인지라 낯선 공간에 가면 긴장하고 어색해했어요. 말도 잘 안 나오고요. 그런데 문제는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려고 그 낯섦을 감추려고 했다는 거예요. 지금은 이 공간에 대해서만큼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으니까 어떤 조도가 편한지, 온도는 괜찮은지 먼저 말해달라고 해요. 그게 모두를 위한 좋은 선택이거든요.”








당당한 행동으로 평판 앞에서 단단해지기


두 커플은 그런 최예슬과의 수업이 잘 맞는지 6개월째 배우고 있다. 어떻게 알게 됐냐고 물으니 전 직장 대표에게 소개받았다고. 그 대표는 최예슬에게 오랜 시간 동안 요가를 배운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 관계는 지인의 소개로 이어진 것인데, 생각해보니 나 또한 친구를 통해 최예슬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깨달으니 문득 궁금해졌다. 입을 타고 나의 이력과 몸값이 전해지는 것이 괜찮을까? 직장인은 때 되면 연봉 협상이라도 하는데 이렇게 암암리에 수업료가 공유된 경우엔 어떻게 하느냐 말이다.


“뭐랄까, 저에 대한 평판이 입소문으로 오가는 것에 대해선 두려움이 없어요. 어떤 오해가 있다 하더라도 제가 떳떳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수업료도 1인, 2인, 3인 등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알려져도 괜찮고요. 그런데 수업료를 올리는 데엔 어려움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주시는 거니까 더 어렵고, 또 늦게 주실 땐 더더욱 말하기 힘들었죠. 저도 수업을 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제가 공부해온 것이 있고, 무엇보다 물가도 오르고 제가 교육받는 수업료도 올랐거든요. 여전히 같은 돈을 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씀드렸어요. 이러저러해서 수업료를 올려야 할 것 같은데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요. 그랬더니 다들 이해해주시더라고요.”







직업의 불안은 불안인 채로 껴안기


지금 코로나19의 여파로 많은 피트니스 공간이 문을 닫거나 쉬고 있다. 당연히 최예슬도 어려운 시간을 보낼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나는 그의 바쁜 스케줄을 따라가며 택시에서까지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드라이브 인터뷰? 우리는 그다음 수업을 위해 IFC몰로 가는 중이었다. 내가 물었다. “예슬 씨 일의 장점은 벌 수 있는 만큼 번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 불안정한 수익을 뜻하거든요. 이에 대한 불안은 없어요?” 잠시 고민해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불안하죠. 이전에 요가원 수업을 늘려서 회사원처럼 안정적으로 돈을 벌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요가원 중에서 돈을 늦게 주거나 사기를 치고 도망간 곳도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느낀 거예요. 회사원이라고 해서 이런 상황을 겪지 않을까? 그냥 그런 두려움을 껴안고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수강생들의 돈이 아깝지 않게, 듣고 싶은 수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에요.” 나는 현자 賢者를 보는 듯한 동경의 눈으로 또 물었다. “타인에 의해 일터가 바뀌고 일정이 바뀌는 건 괜찮고요?” 현자가 말했다. “괜찮아요. 안 괜찮으면 안 괜찮다고 말하거든요. 가령 이번 주엔 쉬어야 할 것 같다거나, 일정이 있다고 솔직히 말씀드려요. 정직하게 말하면 누구도 ‘너, 잘못됐어’라고 말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래요, 피곤할 수 있죠. 그럼 다음 달로 이월할까요?’ 하시죠. 사람은 서로의 선의를 믿고 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매듭이 이 자리에 있다


이번엔 그룹 수업이다. 이들은 최예슬과 1년 반의 시간을 회사에서 함께했다. 점심시간을 쪼개서 요가를 배우고 남은 시간에 간단히 식사를 한다. 높은 층고와 대리석 바닥으로 이뤄진 건물에 요가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무리를 보니 퍽 낯설었다. ‘역시 대기업은 복지도 좋은 건가?’ 생각했다가 “팀은 다르지만 배우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 선생님을 불렀다”는 얘기를 듣고, 오히려 더 신기한 관계처럼 느껴졌다. 무료도 아니고, 강요도 아니고, 오롯이 열정으로 이어진 사이라는 뜻이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은 수업 내내 화기애애했다. 고요한 느낌이 강하던 이전 수업과 달리 그룹 수업은 좀 더 활동적이고 힘이 넘쳤다. 그가 구성한 요가와 음악이 다르기도 했지만, 사람이 많아서인지 대화와 웃음이 잦았다. 나는 한 발짝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여고생 같다고 생각했다. 저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은 별개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요가란, 또 이런 관계는 참 건강한 거구나, 좀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최예슬이 말했다.


“수업을 준비하는 건 제 자신이지만, 그 순간의 에너지를 꽉 채우는 건 저분들이에요. 그렇게 1시간 동안 함께 사는 거예요. 절대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에요.” 여태껏 조심스럽게 말을 잇던 그가 단호하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수업 장소는‧‧‧

최예슬은 바쁘다. 얼마나 바쁘냐 하면 두 번의 수업을 마치고 두 번의 미팅을 더 할 정도다. 그런데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엄~청나게 바쁘다. 인스타그램은 기본이고, 유튜브로 가벼운 요가 동작을 나누고 있다. 팟캐스트도 하는데 수업 전에 수강생들에게 들려주는 글귀를 녹음하고, 그것과 관련한 글을 브런치에 올린다. 곧 온라인 수업도 공개할 예정이다. 나는 처음엔 앞서 말한 활동들이 홍보의 일부라고 생각해서 너무 힘들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최예슬은 또 다른 시각으로 말했다.


“저의 활동들이 홍보를 위해서라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정말 좋아하고 유용한 글‧사진‧요가를 공유하는 것뿐인데, 보는 사람들도 좋아해주셔서 고마운 마음이에요. 덕분에 저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고요.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 건 큰 결심이긴 했어요. 코로나19로 특강이나 대규모 행사가 취소되고, 앞으로 그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요가를 나누는 자리를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찰나에 좋은 기회가 들어와서 수업을 진행하게 된 거예요.”


긱 워커들의 특징인 걸까? 지금껏 만나온 긱 워커들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했다. 그렇다 할 소속 없이 수많은 이변을 겪으면서 살아남았기 때문일 테다. 그들의 또 다른 특징은 일을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게도 그 능력이 있다. 매일 다른 시간에, 변화하는 일터에서, 어떻게 하면 요가를 재밌게 또 오래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파도의 움직임 또한 바다의 일부인 것처럼, 그에게도 변화하는 환경과 마음을 받아들이는 게 일종의 수련이 아닐까? 아니 삶일 수도 있겠다. ‘어떤 것은 변화하기에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예슬을 보고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