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mark wordmark

logo logo

집밥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

The Meaning of the Word ‘Home Meal’

집밥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

Editor.Hanbyeol Jo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40세 / 이선영

작가, 차예사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구조 다세대주택 스리룸 3층
면적  44.28㎡(13평)
보증금 1억 원

 

Room History

20세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원룸(한 학기 120만 원 셰어)
21세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 원룸(전세 1500만 원)
22세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아파트(전세 2000만 원)
23세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연립 투룸(전세 5000만 원)
28세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연립 투룸(전세 5000만 원)
31세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연립 스리룸(전세 7000만 원)

 

 

12시 10분 전. 밥솥이 “치키 치키” 소리를 내며 밥 짓는 일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인덕션 위에서 보글보글 끓는 커리는 온 집 안에 이국의 향기를 풍기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집주인 이선영은 좁은 주방에서도 익숙한 동선을 따라 기민하게 행동했고, 위아래로 웍을 움직이며 빠르게 손을 놀렸다. “띵동!” 첫 번째 손님이 들어왔다. 아무도 마중하지 않았는데 혼자 척척 외투를 벗고 소매를 걷고 손을 씻었다. “뭐부터 할까요?” 채소 바구니를 받아 든 손님은 먹기 좋은 크기로 양상추를 뜯었고, 다음으로 도착한 손님은 그릴에 올려 닭고기를 구웠다. 하나둘 주방과 식탁은 손님으로 채워졌다. 이건 매주 주말 펼쳐지는 이선영의 집밥 풍경이다.




소셜 다이닝의 호스트로 활동하면서 ‘이작가’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요. 당연히 전업 작가인 줄 알았는데 매일 출퇴근한다고요? 그러면서 차예사이기도 하고요. 하는 일이 몇 가지인 거예요?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단행본도 쓰고 잠깐 드라마 작가도 했어요. 골프 매거진과 아웃도어 매거진의 에디터로 일하기도 했고요. 전업 작가만 하고 싶은데 수입이 충분치 않아서 현재는 부업으로 사무직 일을 하고 있어요. 주말엔 함께 밥 먹고 차 마시는 모임을 해요. 거기서 보이차 강의도 하고요. 또 ‘인사이트 게임’이라는 상담 방법이 있는데, 그걸로 상담 일도 해요. 그러고 보니 하는 일이 네 가지쯤 되는 것 같네요.

“싱글 라이프 20년 차”라는 말에서 내공이 느껴졌어요. ‘싱글 라이프’라는 전공 분야의 석사 학위 정도 받은 느낌이랄까요? 스스로도 20년쯤 되니 혼자 사는 삶도 살 만하다고 생각하나요?
돌아보면 혼란과 방황의 10년, 수행과 안정의 10년을 보낸 것 같아요. 웬만한 일을 겪은 지금은 석사보다는 박사가 된 느낌이에요. 충격적(?)이게도 혼자 사는 삶이 균형 잡혔다고 생각한 게 최근 들어서예요. 초반 10년이 생존의 기술을 닥치는 대로 익힌 시간이었다면, 후반 10년은 내면을 탐구하고 내가 추구하고 싶은 인생, 일상생활의 틀을 만든 시간이었어요. 첫 10년은 혼자 사는 게 너무 서럽고 외로웠고, 나중 5년은 괴로웠고, 가장 밑바닥인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서서히 회복되면서 이제는 혼자서도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처음 혼자 살 때 많이 서러웠어요?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어요. 그 전에는 내 손으로 직접 해본 것이 없다가 처음으로 부모님의 영향이 미칠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치다시피 나왔죠. 원래도 누구에게 기대는 것 안 좋아하고, 부모님께도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는 성격이라 혼자서 하려니 버거웠던 것 같아요. 기댈 곳도 없고 모든 걸 다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나니 마치 고아가 된 듯한 느낌이었어요.

“회복됐다”는 말에서 암울하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냈어요?
전세금을 사기당하고, 귀농해 실패하기도 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방황하기도 했죠.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건 서른 즈음이었어요. 단행본을 제작하기 위해 캐나다에 1년간 취재를 간 적이 있어요. 자동차를 끌고 밴쿠버에서부터 횡단을 하면서 캐나다 전국을 누볐죠. 현지 사람들도 신기해할 정도로 먼 길을 오갔고, 죽을 뻔한 경험도 했어요.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한국에 돌아오니 몸도 마음도 모든 게 엉망이 되어 있더라고요. 1년간 취재한 내용도 어마어마했는데 그 모든 걸 혼자서 해내려니 너무 힘들었어요. 버거운 현실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몰랐죠.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 살던 지인이 “차나 마시러 와” 해서 처음 보이차를 접했어요. 별 얘기도 안 했고요. 그냥 조용한 곳에서 차를 마신 것뿐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차를 접하고 나아지는 방법을 찾은 거군요?
차를 마시고, 명상을 하고, 잠시 절에도 다녀왔어요. 그런 것을 하나씩 시작하면서 서서히 괜찮아지는 길로 들어선 것 같아요. 저답게 쉬는 방법을 찾고, 또 쌓아온 거죠.

여기는 남산이 보이는 해방촌 뒷골목이에요. 갈색 벽돌집들이 빼곡히 올라선 곳 말이에요. 차를 타고 오가면서 멀리서 봐오던 이곳은 서울에 있지만, 서울 같지 않은 동네처럼 느껴졌어요.
이 동네에 이사 온 건 2007년쯤이에요. 그리고 2014년에 이 집에 들어왔죠. 전세금 사기를 당한 뒤 언니 집과 사촌 동생의 집을 전전하며 얹혀살다가 돈을 모아서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직장이 강남이어서 그 주변 집을 알아봤는데 못 살겠더라고요. 너무 비쌌고, 좁고, 삭막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산 주위를 찾기 시작했죠.

왜 하필 산이었어요?
글쎄요,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고 본능적으로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나 봐요. 산 근처, 자연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요. 마침 친한 친구가 이 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와서 보니 좋더라고요. 산이 감싸주는 듯한 안정감이 있고, 오래된 동네가 주는 특유의 분위기도 좋았고요.



보통 세입자는 2년 단위로 이사를 하잖아요. 그래서 10년 가까이 한 집에 머무는 게 신기할 정도예요.
짐도 많고, 지리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비교적 저렴하기도 하고요. 그것도 있지만 길이 2m짜리 테이블이 들어온 뒤부터 집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지금 이 방은 집에서 가장 큰 공간이라 테이블이 있기 전까지 침대와 TV가 있었어요. 우연히 테이블 맞춤 제작하는 곳을 알게 됐고, 오래전부터 로망이던 큰 테이블을 덜컥 주문했죠. 침대는 작은 방으로 갔고, 큰 방에 테이블이 자리하게 됐어요. 그러고 나니 많은 것이 바뀌더라고요. 테이블 주변으로 장이 들어오고, 거기에 다기와 차를 넣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손님을 맞고, 일도 하고요. 자연스럽게 이 테이블은 저의 모든 걸 담아내는 집 안의 정수가 됐어요. 제 생활의 중심, 우주의 중심이 된 거예요.

가구가 만족스러운 위치에 자리 잡고 공간이 완성되면서 저절로 삶의 방식도 만족스러워진 건가요?
네, 정말요. 테이블이 중심이 된 지금의 공간이 너무 만족스럽고 제 삶의 양식과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완성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싱글 라이프 20년 차인데 이제야 평온하다고 느끼는 것도 다 그 덕분인 것 같아요. 공간은 그저 물리적 개념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나의 방식을 찾게 되고, 그것을 공간에서 구현하면서 일상이 더욱 충만해지는 걸 느껴요.

이 방의 주인공이 테이블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거기에 더해 조명의 기운도 무시할 수 없는걸요.
눈을 자극하는 하얀 형광등이 아니라 노란빛의 조명을 켜요. 은은하고 약간은 침침하게요. 실제로 저희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이 공간에 오면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해요. 마치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 속 숨은 공간처럼요. 차분하고 은은한 공간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풀리는 거죠.



손님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주말마다 손님을 초대해 함께 밥 먹고 차 마시는 모임을 하고 있죠.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자취방에서 요리를 많이 했어요. 학교가 외진 곳에 있어서 배달도 식당도 마땅치 않았거든요. 그래서 직접 큰 솥에 국을 한가득 끓여서 친구들을 먹였죠. 저희 엄마가 또 손이 커요. 냄비를 하나 보내줬는데 정말 큰 냄비가 온 거예요. 그걸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어릴 때 어깨너머 본 대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물은 이만큼 넣었지. 고기는 이만큼 있었지” 하면서 만들면 기본이 5인분 정도 되더라고요. 그럼 친구들이 와서 함께 먹는 거예요. 이후로도 종종 친구들을 초대해 밥을 차렸지만 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지난 4월 ‘남의 집 프로젝트’란 걸 알게 됐어요.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커뮤니티 플랫폼인데, 그곳을 통해 모임을 한 이후 지난 11월부터는 거의 매주 주말마다 손님을 초대했어요. 우리 집에 오신 분들의 누적 인원수가 350명 정도 되더라고요. 가정집치고는 꽤 많죠?(웃음)

와, 어마어마하네요! 그러니까 결국 친구들의 밥상을 차려주던 경험과 자취20년 경력이 쌓여 소셜 다이닝의 호스트까지 된 거네요. 오늘은 어떤 손님들이 오나요?
제 보이차 강의를 들은 분들인데 5개월 동안 매달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는 시간을 가졌어요. 강의가 끝나고도 계속 모이고 있죠. 오늘은 6명, 내일은 8명이 와요. 목포에서도 오고 일본에서도 오고요. 한 상 든든히 먹은 뒤에는 보이차를 마셔요.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고 많은 이야기를 해요. 그렇게 한바탕 잘 놀고 나면 “좋은 기운 얻어서 또 한 주 버틸 수 있겠다”고들 말씀하세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저는 손님을 초대하는 게 부담스러워요. 맛이 있어야 하고, 음식의 생김새도 누추하지 않아야 하며, 집도 정리해야 하고···. 누군가를 초대하면서 생기는 고민이 너무 많잖아요.
“허섭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는데”, “이건 너무 없어 보이지 않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죠. 저도 처음엔 그런 것으로 잠시 망설였는데, 결국 제 생각이 만들어낸 두려움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자격지심, 여러 가지 부정적 생각들은 알고 보면 내가 정해놓은 쓸데없는 기준이 만든 거예요. 누군가의 삶과 비교하지 않고 내 삶에 대한 환상을 벗겨놓으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 감사하고, 와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돼요. 잠깐의 걱정과 두려움 같은 건 사람을 초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느끼는 마법 같은 경험에 견줄 것이 못 돼요.

적게는 6명, 많게는 10명을 위한 음식을 차리는 일은 보통이 아닐 것 같아요. 그 많은 걸 매주 하면 힘이 들 법도 한데요.
제가 요리를 하고 있으면 손님들이 하나둘씩 할 일을 찾아 소매를 걷어붙여요. 그래서 일부러 일거리를 만들어놓을 때가 많죠. 전을 부친다거나 채소를 다듬는다거나 고기를 굽는다거나 하는 식이에요. 3~4명이 분업해서 만들면 금세 요리가 완성돼요. 좁은 부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기름 냄새 풍기고 있으면 꼭 명절 분위기가 난다니까요. 그런 경험이 저희에게는 너무 귀하고 소중한 것이에요. 순수한 정을 나누고 채우는 자리인 거죠.

혼자 먹는 메뉴와 손님들과 함께 먹는 메뉴는 조금 다를 것 같아요.
혼자 먹을 땐 남은 재료를 쉽게 소진할 수 있는 덮밥이나 볶음밥을 주로 해 먹어요. 집에 있는 웍을 자주 사용하는데, 각종 채소를 넣고 숨이 죽을 만큼 익힌 뒤 피시 소스로 맛을 내죠. 그렇게 하면 채소도 많이 먹고 피시 소스만으로도 풍성한 맛이 나거든요. 손님을 초대할 땐 때마다 달라요. 지난 모임에서 언급한 메뉴를 넣기도 하고 초대한 손님이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요. 오늘 만드는 것 중 청양고추를 더해 매콤하게 만든 닭구이가 있는데, 이건 손님 중 한 분이 좋아하는 메뉴라서 준비했어요. 그리고 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혼자서는 쉽게 먹지 못하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요. 싱싱하고 다양한 채소를 듬뿍 먹을 수 있는 분짜나 여러 명이 가야 시킬 수 있는 월남쌈, 밖에서 먹으면 비싸고 집에서 만들려면 엄두가 안 나는 마라샹궈도 있고요. 그리고 소셜 다이닝 ‘제철 미식단’을 통해서는 제철 식재료로 만든 풀코스 요리를 내기도 해요.

‘제철 미식단’요?
이를테면 싱글 소셜 다이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주제를 제철 재료로 잡은 거예요. 혼자 사는 사람은 제철 식재료를 쉽게 챙겨 먹을 수 없어요. 한번 사면 양이 너무 많아 처리할 엄두도 안 나고, 어떻게 해 먹어야 할지 잘 모르기도 하고요. 하지만 함께 모여 먹으면 실컷 즐길 수 있죠. 지난겨울엔 굴·과메기를 주제로 했고, 8월 말쯤에는 성게를 주제로 모이기도 했어요. 성게 한번 배불리 먹어보자는 마음으로 성게김말이, 성게덮밥 등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함께 먹었죠. 가장 맛있을 때 다양한 방법으로 같이 먹는 자리예요.

오늘 식사 모임은 12시에 만나 6시까지 이어진다고요. 밥 먹고 차 마시기까지 넉넉히 2시간이면 충분하지 않나요?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하루가 다 가요. 어떤 땐 정오에 만나 저녁 11시를 넘기기도 하는걸요. 함께 모이면 이야기에 굶주린 사람들처럼 대화를 나누게 돼요. 왜 그럴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서로에 대해 편견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것 같아요. 오래 만났던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아는 내용이라고 흘려듣거나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고 듣잖아요. 그런데 처음 만난 사람들은 모든 게 처음이라 경청해주고 그대로 받아들여요.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20대부터 40대 중반까지 나이대도 다양한데, 같은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눠요. 어떤 친구에게 고민이 있으면 각자의 삶에서 겪은 경험과 정보를 더해주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화에 살이 붙어요. 그때 저는 테이블 맨 앞에 앉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어쩜 그렇게 이야기들이 척척 맞춰지는지, 꼭 대화로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그런데 굳이 왜 ‘사람들’이에요? 좋아하는 사람과 단둘이 먹으면 더 깊이 있고 편하고 재밌을 것 같은데요.
여러 사람이 편안하게 만나다 보면 애쓰지 않아도 서로 알게 되면서 가까워지는 게 분명 있어요. 단둘이 있을 때는 말이 끊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여럿이 만나면 그런 노력이 줄어들게 돼요. 내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으면 되는 거고요. 그 시간이 반복되다 보면 일대일로 대화를 나눈 것처럼 깊이 있는 이야기와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생각보다 여러 사람이 만나도 꽤 깊은 이야기를 하게 돼요. 보통은 어느 정도 심리적 방어선이 있는데, 이 집에 들어서면서 그런 것을 내려놓는 거죠.

함께 밥 먹고 관계를 맺는 일은 집 밖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그런데도 꼭 ‘우리 집’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집이 해방촌 뒷길에 있어서 지인들이 경리단 맛집을 많이 물어봐요. 저는 10년 넘게 이 동네에 살았지만, 솔직히 잘 몰라요. 식당에 가면 원치 않는 자리에 앉아야 하고, 편하지 않은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하죠. 줄이 길게 서 있으면 비켜줘야 할 것 같고, 그렇게 되면 밥 한 끼 편하게 먹기 힘들더라고요. 마음 편히 먹고 즐길 수 없는 식당은 괜히 쫓기는 느낌이 들어 잘 안 가게 돼요.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외식을 안 해요. 집에서 함께 먹으면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쉬고 싶은 대로 쉬고, 떠들고 싶은 대로 떠들고, 오래도록 머물러도 되잖아요.

혼자 사는 사람에게 ‘집밥’은 ‘혼밥’을 연관 검색어로 떠올리게 되는데, 선영씨에게 ‘집밥’은 조금 다른 의미일 것 같아요.
여럿이서 왁자지껄 맛있는 거 먹는 거요. 그래서 최고로 행복한 거요. 집밥은 제가 가장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 중 하나예요. 정말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어요. 비싼 파인다이닝을 먹으면서도 뛰지 않던 가슴이 소박한 집밥만으로 쉽게 설레고 감동을 느끼게 되니 말이에요. 제게 집밥은 행복이고 배려며, 정성이고 결국 사랑의 표현이에요. 제가 지은 밥을 먹으면서 “와~” 하는 사람들의 감탄사를 들으면 주체할 수 없이 행복해져요. 그런 것들 때문에 혼자 살면서 끊임없이 집밥을 짓고 사람들을 모으나 봐요.(웃음)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구조 다세대주택 스리룸 3층
면적  44.28㎡(13평)
보증금 1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