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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간과 가장 가까운 불빛

The Light Closest to Us

어쩌면 인간과 가장 가까운 불빛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43세 / 박은주

과외 교사


Conditions

지역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구조 복도식 아파트 4층
면적   66.1㎡(19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30만 원

 

Room History

 

31세 대구시 북구 복현동 소형 아파트 1층(보증금 500만 원, 월세 25만 원)

 

 

박은주의 집은 어두운 가운데 밝았다. 커튼이 쳐져 있어 전체적으로 어둑하지만 다양한 모양새의 노란 불빛이 곳곳의 안위를 살폈다. 나는 누군가의 동굴에 초대된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긴밀한 이야기를 품은 동굴. 네 시간 남짓 그곳을 둘러보면서 인간 태초의 집을 떠올렸다. 편의나 실용을 따지기 전에 본능적 욕구를 따라 먹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나열해놓았을 어떤 공간. 박은주의 세계는 수납되지 않을 만큼 크고, 어둠에 잠식되지 않을 만큼 밝았다.



저희는 주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니까 최대한 밝은 환경에서 사진을 찍거든요. 그런데 이런 분위기의 집은 처음이어서 신선하네요.
제가 어둑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주로 간접조명과 초를 켜놓고 있어요. 그때 생기는 물체의 그림자를 좋아하거든요. 초는 향도 좋지만 불을 붙였을 때 각기 다른 식으로 녹는 게 매력인 것 같아요.

아무리 좋아한다고 한들 생활의 불편함도 있을 것 같은데, 천장 조명보다 여러 개의 작은 전등을 켜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시신경이 70% 가까이 손상된 데다 비문증과 난시가 심해서 자연광이 강한 환경을 좋아하지 않아요. 은은한 빛이 편하죠. 언젠가 의사 선생님이 어려운 용어를 쓰면서 시신경이 여기도 죽고, 저기도 많이 죽었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잔뜩 겁먹고 이제 어떡하냐고 물었는데, 다행히 제가 예민한 편이어서 관리만 잘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느냐고, 완전 실명인 줄 알고 놀랐다고 좀 큰소리 냈죠.(웃음) 그런데 제 생각엔 과외를 하면서 계속 책 보는 일을 하니까 더 안 좋아진 것 같아요.

저는 주로 틴 케이스나 유리에 담겨 파손될 염려가 덜한 향초를 써요. 얇고 기다란 양초는 관리하기 어렵지 않나요?
맞아요. 그 초가 정말 실용적이지 못한 게 값에 비해 오래 못 가거든요. 이사할 때는 얼마나 애를 먹었는데요.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귀하게 여기는 걸 먼저 가져가라고 해서 초를 챙겼는데, 짐 옮기면서 망가뜨릴까 봐 전전긍긍했어요. 촛농이 제 마음처럼 굳지 않아 만족스러운 흐름을 찾기 어렵거든요. 실용성을 따진다면 차라리 큰 향초를 쓰는 게 나아요. 하지만 얇은 초만이 주는 만족감과 안정감이 있지요.

좋아하는 초와 조명의 유형이 있나요?
밀랍 초를 좋아해요. 요즘엔 오브제 캔들이 유행하지만 쓰기도 너무 아깝기거니와 모양의 틀이 잡혀 있어서 상상하는 맛이 덜해요. 밀랍이 비염에 좋다는 얘기가 있어서 더 자주 사용하는데, 은은한 색감과 벌집 질감이 매력 있죠. 조명은 주로 빈티지 제품을 사용하는데요, 초와 마찬가지로 딱 떨어지는 디자인보다 세월이 느껴지는 것을 선호해요. 매끄럽고 유려한 것보다는 먼지와 빛으로 바랜 느낌을 좋아하는 편이죠. 태양의 고도에 따라 자연광이 달라지듯이 제 공간도 저만의 색감으로 비치길 바라요.

초는 명상 효과도 주잖아요. 은주 님은 노란 불빛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나요?
초가 주는 한정적인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때론 조금은 비싼 스톱워치가 아닌가 싶어요.(웃음) 초가 타는 동안엔 명상을 하거나 음악을 집중해서 듣거나 짧은 시를 읽어요. 타다 남은 초는 그 시간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 생각 자체도 낭만적이네, 아니네 하면서 혼자 기분을 내는 편이에요.

애초에 인간은 LED처럼 오래 지속되는 창백한 빛보다 자그마한 노란 불빛과 더 친밀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동굴에서 불을 피우며 살았잖아요.
저는 생활 속에서 ‘집중’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LED 등은 집 안 구석구석을 환히 밝힐 수 있지만, 그 점이 제겐 오히려 방해가 되죠. 적당히 어두워야지 집중할 수 있는 부분이 도드라지고 덜 산만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간접조명을 애용하는 것 같아요. 날마다 다른 광선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과하게 밝은 조명은 그걸 알아차리기 어렵게 만들어요. 많은 사람이 빛 공해 속에서 살고 있어서인지 우리를 편하게 하는 것들이 가끔씩 과하다는 건 모르는 것 같아요.



조명도 쓰임에 따라 밝기와 위치가 달라질 텐데, 은주 님만의 조명 사용 방법이 있을까요?
별다른 건 없어요. 조명 위치는 조금씩 달라지는데, 일단 책을 많이 보기 때문에 서재에 집중한 편이에요. 저녁에 들어오면 샤워와 부엌 정리를 마친 뒤, 서재와 침실에만 불을 켜놓아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해요. 책을 읽을 땐 한 곳으로만 집중되면 너무 밝으니까 비스듬한 각도로 두고 보조등을 켜놓죠. 조금 어둡지만 활동하기엔 적당해요.

SNS에서 본 은주 님 집이 카페처럼 느껴졌어요. 노란 조명 아래 카페 못지않은 메뉴가 등장하던데, 그걸 ‘우주인 커피’라고 부르더라고요?
제 별명이 우주인이어서 지은 이름이에요. 아마도 과외를 시작하고 어린 친구들과 놀면서 천진한 점을 배운 게 아닌가 싶어요. 저와 수준이 딱 맞아요.(웃음) 커피는 좀 희한하게 생겼지만 그냥 카푸치노예요. 다른 점은 시나몬 가루나 코코아 가루를 기침이 나올 정도로 뿌린다는 거예요. 향이 진하게 나는 걸 좋아해요. 가루가 불규칙하게 흩날려 있는 것도 좋아하고요. 사물이나 우주 자체도 불규칙하지만 거기서 어떤 규칙을 탐구하는 게 공학자들이거든요. 수학도 마찬가지고요.

홈 카페 초심자를 위한 추천 도구가 있을까요?
도구보다는 지구력이 필요해요. 커피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 지 3~4년이 넘어가면서 제게 어떻게 커피를 만드냐고 묻는 분이 늘었어요. 그런데 사실 별다른 것 없이 거품 만들어서 올리면 되거든요. 방법을 알려드리면 한번 해볼 수는 있지만 계속하지 않으면 자기 것은 되지 않기에 꾸준히 하라고 말씀드려요. 어느 카페 사장님은 그걸 ‘일상의 장인’이라고 표현하시더라고요. <스모킹>이라는 영화를 보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인물이 나와요. 하루하루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아는 것이죠. 저희도 살아가느라 바쁘잖아요. 나이가 들면 특정 장면만 기억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고 여기고요. 저는 하나의 루틴을 위해 커피를 만드는 거예요.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그 하루의 주인공도 어김없이 나라는 것을 각인하는 거죠.



커피를 만들며 일상의 힘을 확인하는 것 외에 또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다들 하고 싶은 사치가 하나둘씩은 있잖아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소소한 사치 말이에요. 저에게 홈 카페는 정성스럽게 만든 커피로 하루를 대접하는 느낌이에요. 간혹 손님을 위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저 자신을 위해 마련하는 시간이거든요.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위로가 돼요. 그게 혼자 살면서 저를 다루는 노하우인 것 같아요. 그 덕에 타인을 더 유연하게 대할 수 있는 것 같고요.

자신의 삶을 상냥하게 음미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쉴 때는 주로 무얼 하나요?
카페에 가거나 책과 영화를 봐요. 보시다시피 제가 뭘 수집하는 걸 좋아해서요. 책, DVD, 테이프, 영화 티켓 등 좋아하는 건 다 모으는 편이에요. 저 책들도 아무렇게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만의 방식으로 배열한 거예요. 읽은 책과 앞으로 읽을 책,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시리즈별로 묶어놓고, 또 재미없는 책은 잘 안 보이는 데 놓았어요.

매일 과외 수업이 있으면 쉬는 시간이 일정치 않겠어요.
제가 생각보다 많이 쉬어요.(웃음) 과외받는 애들이 절 보면 만날 선생님처럼 살고 싶다고 해요. 아, 돈은 저렇게 벌어야 한다고…. 저는 어릴 때부터 공황장애가 있어서 잠을 잘 못 잤는데, 나중엔 차라리 새벽에 일어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반강제로 아침형 인간이 되면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어요. 일찍 일어나면 할 게 없으니까 커피 마시고, 조조 영화 보러 가곤 했죠.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제가 또 이명증이 있어서 중간에 일어나면 ASMR를 틀어야지만 잠들 수 있어요.

강박증도 있다면서요?
에어컨을 못 달 정도로 소음에 민감한 편이고, 혹여나 떨어진 머리카락이 있지 않을까 열심히 쓸고 닦아요. 혼자 살기 때문에 제가 어지르지 않는 이상 괜찮을 텐데, 저 자신에게 물건이 많아도 잘 관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사용하지 않으면 수집의 의미가 희미해지니까요.



그런데 저 천장에 붙어 있는 종이는 뭐예요?
이 집에 들어올 때 아무것도 안 해줘도 되니까 월세만 싸게 해달라고 했거든요. 그 덕에 많이는 아니더라도 월세를 조금 조율할 수 있었는데, 워낙 오래된 데다 꼭 재건축하겠다는 의지로 보수를 하나도 안 해서인지 간혹 전기가 나가고 물이 샜어요. 물이 샐 땐 엄청나게 심란해서 주인아저씨께 말씀드렸더니 바로 “천장 공사를 해드릴까요?“ 하시더라고요. 비가 많이 오는 날엔 제가 연락도 안 했는데 오셔서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하시고요. ‘소 스위트’한 분이죠. 그런데 그냥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어요. 이전에 전기 공사도 해주셨고, 또 제가 ‘쫄보’라 돈이 많이 나올까 봐 걱정되기도 했거든요. 저 종이는 제가 알아서 해결한 현장입니다.(웃음)

저는 이 아파트가 작고 오래돼서 시골집처럼 정답다고 느꼈는데… 비싼 곳이라면서요?
사실 이 동네가 대구에서 집값이 가장 비싸요. 학군으로 따지면 서울의 대치동과 맞먹을 정도로 교육열이 심한 곳이거든요. 이 뒤쪽으로만 가도 학원, 공부방, 교습소가 쫙 깔려 있어요. 다들 놀라요. 이 비싼 땅에 이런 아파트가 아직도 있냐면서. 여기가 재개발 지역의 마지막 아파트예요. 막배를 탄 거죠. 그런데 과열 지구라서 그런지 쉽게 진행되는 것 같진 않더라고요.



이전 집과 지금 집의 큰 차이는 뭐예요?
이전엔 아파트 1층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높이가 생소하긴 해요. 높은 곳에 있으면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거든요. 그래도 4층에 산 뒤로 여태껏 잘 느껴보지 못한 다른 시선의 빛과 조망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아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괜찮은 산책로가 없다는 것 정도? 이전엔 아파트 근처에 강변 산책로가 있어서 많게는 10km까지 걷곤 했거든요.

일터이긴 해도 집에서 또 다른 집으로 가는 게 힘들거나 지겹진 않나요?
친구도 차라리 공부방을 하라고 얘기하는데, 저는 집과 직장이 같으면 좋을 것 같지 않아요. 할 깜냥도 안 되거니와 온전한 내 공간을 갖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종종 주변 사람들이 제 직업을 아르바이트로 여기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돌아다니며 일한다고 해서 직업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어쩌면 여러 집을 방문하며 다양한 가정을 경험하는 게 저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일에서도 재미를 찾는 편이에요.

보통은 나이를 먹으면서 추구하는 집의 모습도 달라지잖아요? 20~30대에 바라던 집의 모습은 지금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요.
저는 20대 때나 지금이나 추구하는 게 비슷한데, 점점 익숙함에 기대는 것 같긴 해요. 여행을 가서 호텔에 묵을 때도 며칠 지나지 않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제는 고급스러움이나 편리함이 안락함을 주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당황하는 제 모습을 보는 게 싫어요. 낯선 곳에서 얻는 긴장감이 분명 있는데, 집에 돌아오면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편하잖아요. 저에겐 손때 묻은 물건이 모여 있는 익숙한 상태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구조 복도식 아파트 4층
면적   66.1㎡(19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3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