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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면 함께 살겠어요

If I Were You, I Would Live Together

당신이라면 함께 살겠어요

Editor.Hamin Kim Article / mixtape

집은 개인의 사소함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그 사소함에는 개인의 취향부터 작게는 생활 습관까지 포함된다. 누군가와 함께 살기로 결정하는 순간, 우리는 이 사소함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를 더욱 깊이 알게 될 뿐 아니라 여태 알지 못한 자기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같이 살고 싶은 동거인의 유형이 등장하는 다음 네 편의 영화는 사소함이 만들어낸 근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며드는 온기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진심이란 게 있다. 사랑하는 연인을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보내는 이의 눈빛, 오랜 세월이 흘러 만난 친구가 건네는 악수. 그런 의미에서 반드시 말을 해야 상대의 맘을 알 수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오히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소소한 것을 더 많이 공유할수록 우리는 상대의 진심을 알아차리기 쉽다. 그 상대가 반드시 사람이 아니어도 말이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은 홈리스 제임스 보웬과 길고양이 밥의 운명 같은 만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임스는 마약중독자라는 이유로 가족마저 포기한 외톨이 같은 존재다. 버스킹을 통해 벌어들인 동전 몇 푼으로 간신히 하루를 버텨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재활 센터의 도움으로 임대주택에 머물게 된 제임스. 목욕하던 중 자신의 집에 정체 불명의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온 걸 발견한다. 제임스는 딱히 갈 곳 없어 보이는 길고양이 밥에게 먹이를 주면서 이 둘의 운명 같은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제임스와 밥이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집’이라는 데 있다. 제임스는 벌거벗은 상태로, 밥은 허기진 상태로 서로의 민낯을 확인한다. 이들은 어떤 조건을 가지고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다. 자기 밥벌이하기에도 벅찬 제임스와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밥. 이들에겐 그저 자기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이들은 가장 은밀한 공간인 집에서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간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은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 보완적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자기 목숨 부지하는 것조차 벅차던 제임스는 밥과 함께 지내면서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고,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갈 의지가 생겼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제임스에게 밥은 재활치료사도 고치지 못한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 은인인 것이다.
살다 보면 우연히 우리 삶에 들어와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만남이 있다. 평생 잊지 못할 만남이 있는 반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만남도 있다. 그중 가장 치명적 만남은 집에서 마주한 관계가 아닐까?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재활치료사도 고치지 못한 제임스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한 은인이 바로 길고양이란 걸.





나를 먹이는 일 <줄리&줄리아>
양념 얹은 고봉밥 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스테이크와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연어샐러드가 있는 식탁, 한편에는 먹으면 금방 배가 부르는 조그만 알약 한 알이 오른 식탁. 오늘 저녁 당신의 식사 메뉴를 선택한다면? 아마 대다수는 전자를 택할 것이다. 매번 끼니 때우는 게 고민인 나조차 그렇다. 그러나 먹음직스러운 음식 이면에는 늘 번거로운 조리 과정이 있다. 레시피 검색부터 시작해 장보기, 재료 손질과 정리, 설거지까지. 생각만 해도 너무나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다. 심지어 이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한다면? 하여 난 마지못해 알약을 택하겠다. 그런데 <줄리&줄리아>를 보고 있으면 그 잠깐의 귀찮음도 이겨낼 만한 열정이 생기는 듯하다.
<줄리&줄리아>는 요리가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소소한 행복을 그린다. 미국인 줄리아 차일드는 외교관 남편을 따라 프랑스 파리에서 살게 된다. 말도 전혀 통하지 않는 이국에서 그녀가 찾은 유일한 행복은 바로 요리다. 그녀의 일상은 매일 오전 요리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식사 때가 되면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이 전부다. 그녀만의 색다른 요리는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보는 이의 식욕을 자극한다. 더욱이 줄리아 특유의 콧소리와 오버스러운 몸짓으로 유쾌한 식사 분위기를 주도한다.
줄리아가 차린 윤기 흐르는 음식에 호탕한 그녀 웃음소리를 얹으면 그야말로 완벽한 식사 시간이다. 더 이상 게으름도, 귀찮음도 없다. 그녀와 함께라면 장보기도 앞장설 것이며,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겠다. 그리고 배 채우기에 급급하던 내 지난날들에 사과한다. 공허하던 내 밥상아 정말 미안하다. 마른반찬 몇 가지로 허기를 달래던 내 뱃구레야 미안하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우리가 먹는 것이 자신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좋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 나처럼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먹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라고. 시간 들여 먹는 거 이왕이면 매번 색다르고 영양가 넘치는 음식이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또 음식에 대한 연이은 감탄이 메말라가는 식욕에 오아시스가 되어줄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나는 배부른 일상을 꿈꾸며 솜씨 좋은 요리사 친구 한 명을 집으로 초대한다.




표정 있는 공간 <내 사랑>

나는 미적 감각이 다소 둔한 편이다. 모든 색은 RGB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그중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건 고작 무지개 색뿐이다. 다행히 사진 찍는 취미가 생겨 빛이 우리 삶에 주는 아름다움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사는 공간은 단조롭고 밋밋하다. 어둡고 칙칙한 색으로 온 방이 가득하다. 좀 더 세련되게 꾸며보고 싶다가도, 애초에 관심이 없기에 늘 제자리다.
<내 사랑>은 N극과 S극처럼 서로 다른 두 남녀가 만나 다름을 이해하는 이야기다. 생선과 장작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에버렛.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인지 덥수룩한 수염에 여태 노총각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줄 가정부를 찾는다. 마침 이를 지켜보던 한 여자가 구인 전단지를 붙이자마자 재빨리 떼어서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그녀의 이름은 모드. 모드는 선천적으로 관절염을 앓는 환자이자 따뜻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여성이다. 에버렛 집을 찾아간 모드가 접어놓은 구인 광고지를 건네며 그들만의 동거가 시작된다.
영화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점이 있다. 바로 모드가 에버렛과 함께 살면서 변해가는 집의 ‘색’이다.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에버렛 집에는 그저 먹고 자는 데 필요한 물건 말고는 없다. 그마저 어두운 빛이 도는 짙은 색이 대부분이다. 서툰 그의 성격처럼 그 어떤 디테일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모드가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벽을 채워가면서 건조하던 공간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새하얀 꽃들이 자리 잡고, 샛노란 나비가 날아다닌다. 그야말로 보암직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공간이 변하니 그토록 거친 에버렛 마음에도 소년 같은 순수함이 피어난다.
혼자 사는 나는 내 나름의 방식대로 적막을 없애보곤 한다. 추억 어린 사진을 이리저리 붙여놓기도 하고, 리듬감 넘치는 재즈를 틀어 외로움을 달래본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뭔가 엉성하고 부족하다. 그렇다. 나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공허한 구석을 빈틈없이 매워줄 세심함이 필요하다. 꽁꽁 얼어붙은 에버렛 마음을 녹여버린 모드 그림이 내게도 필요하다.







적당한 무게의 도움 <블라인드 사이드>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나는 이래저래 도움이 필요한 게 많다. 아무 연고 없는 서울에 올라와 2평 남짓한 고시원 침대에 누워 지금 당장 필요한 생필품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그런데 나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몇 명의 친구는 귀신같이 내 필요를 알아차린다. 그러면서 생활에 보태라며 쌈짓돈을 보내주기도, 필요한 물건을 사주기도 한다. 내게 그들의 친절은 언젠가는 되갚아야 한다는 ‘부담’보다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으로 다가온다. 참 고마운 친구들이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실한 우리네 삶을 위로한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추운 겨울, 반팔 티셔츠만 입은 채 거리를 배회하는 한 남자가 있다. 어린 시절 약물중독자 엄마로부터 격리되어 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자란 마이클이다. 그는 남다른 운동신경을 지녔으나 당장 의식주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형편이다. 따라서 운동은 자연스레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러나 그의 잠재력과 순수함을 알아보고 먼저 도움의 손길을 건넨 이가 있다. 바로 리앤이다. 리앤은 평생 가족과 살아본 적이 없는 마이클의 가족이 되어준다. 이전까지 누려보지 못한 푸짐한 밥상에 개인 침대, 그리고 자기 취향에 맞는 옷까지. 더 이상 마이클에게 그 어떤 부족함도 없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마이클 미래에도 꽃길이 펼쳐진다. 

매번 진수성찬까진 아니더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한 끼, 편히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침대, 신상까진 아니더라도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옷 한 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조차도 채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대개 사회 초년생에 해당하는 경우일 것이다.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아차릴 때 우린 본능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매번 자존심에 부딪혀 먼저 손 내밀기가 여간 쉽지 않다. 내심 먼저 다가오는 손길이 있길 기대할 뿐이다. 리앤이 마이클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처럼.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절실한 실정이지만, 우린 꽤나 고상한 도움의 손길을 바란다. 생계에 보탬이 되면서 동시에 우리 존재를 깎아내리지 않는 친절 말이다. 이 아슬아슬한 선을 넘어 괄시 대상이 되는 순간, 그 어떤 호의도 달갑지 않다. 초라해질 바에야 굶는 게 낫다며 불친절한 친절을 거부한다. 염치없음에도 우리는 품위를 지켜줄 그런 따스한 손길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