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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평온의 집

The House of Anxiety and Peace

불안과 평온의 집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고지수

27세 / 영화 마케터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구조 다세대주택 스리룸
면적 약 86㎡(26평)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80만 원

Room History

24세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오피스텔 원룸,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80만 원
25세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다가구주택 원룸,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43만 원
26세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다가구주택 스리룸,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80만 원

가끔 여성의 눈을 보면 느껴지는 게 있다. 올곧고 단호한 시선과 마주하면 나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을 얻는다. 감히 ‘우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고지수는 내게 그런 여성 중 한 명이다. 고작 한 번 만났지만 지난 몇 년간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우리는 언젠가 만났을 거라 생각했다. 연애하는 기쁨, 창작의 고통, 인간이기에 느끼는 허무함, 그리고 여성으로서 존립…. 우리는 한 번쯤 길에서 무해한 얼굴로 만났고, 체중계 앞에서 실망한 얼굴로 만났으며, 공중화장실에서 불안한 얼굴로 만났다. 너와 나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 이야기로 귀결될 때, 원인은 끔찍할지라도 그 끝은 썩 괜찮을 거라고 믿는다.



지수 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문수 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온라인에선 보통 문수라고 불러요. 지수는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고, 문수는 고모부 이름이에요. SNS를 하다 보면 욕을 많이 먹잖아요. “쟤 누군데? 문수가 누구야?” 이런 식으로. 제가 고모부를 엄청 싫어해서 쓰게 됐어요.

고모부를 왜 싫어하나요?
사실 이것도 집과 관련한 이야기예요. 제가 전주에서 살다가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면서 친구네 집에서 지냈거든요. 슬슬 집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여동생이 아프면서 아빠랑 남동생은 전주에 있고, 엄마랑 여동생은 서울의 병원에 있게 됐어요. 상황이 어찌 됐든 집을 빨리 구해야 하는데 도움받을 사람은 없고…. 결국 아빠가 고모한테 부탁했어요. 고모가 좀 부유했거든요. 이름이 은실이에요, 은실.

아, 이렇게 실명제로 가나요?(웃음)
네, 은실과 문수.(웃음) 어느 날, 고모가 제 회사 근처의 가장 비싼 오피스텔을 계약했다고 하더라고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가 80만 원 정도인데 관리비까지 하면 거의 한 달에 100만 원이 나가는 집이었어요. 오피스텔에서 살기 싫었지만 고모가 매달 돈을 주겠다고 해서 수긍했죠. 그런데 고모가 해외여행을 가면서 연락이 뚝 끊긴 거예요. 이거 큰일 났다 싶어 엄마한테 얘기하려고 해도 동생이 아픈 상황이니까 말하기 곤란하더라고요. 다행히 고모가 돌아와서 30만 원인가 주시면서 같이 밥 먹자고 하는데, 그때 관계가 틀어졌어요. 당시에 제가 지하철을 잘 모르는 상태여서 좀 헤맸거든요. 그런데 차에 타자마자 고모부가 저를 보지도 않고 왜 이렇게 늦었냐며 고모한테 막 짜증을 내는 거예요. 그때 ‘이 새끼, 이것 봐라’ 하면서 문수라는 아이디를 하나 더 만들었어요. 고모보다는 고모를 대하는 고모부의 태도가 너무 싫었거든요.

영화 관련 일을 하는 거죠?
네, 이제 두 달 정도 됐는데 영화 홍보사 마케터로 일하고 있어요. 요즘엔 1월에 개봉한 <렉토>라는 영화를 홍보하고 있어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레이디 버드>를 홍보한 이력이 있는, 작지만 강한 회사에서 울면서 일하고 있네요.

<씨네21>에서도 일하지 않았나요?
<씨네21>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서울에 올라온 거예요. 콘텐츠사업팀과 취재팀에 있으면서 영상 취재를 다니고, 선배들이 시키는 일을 했지요. 그렇게 1년 반 정도 다니다가 계약 문제도 있고, 돈 쓸 곳은 많은데 받는 돈이 너무 적은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사실 영화도 찍고 놀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렇게 바라던 그 시간들이 엄청 힘들었어요. 소속되지 않았다는 불안감도 있고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도 많았거든요. 보내주신 질문지를 보니 탈조선 이야기가 나오던데, 그 탈조선을 엄두도 못 낼 만큼 병원비가 많이 나왔어요. 신경정신학과에 다녔는데 약값이 너무 비싸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쓴다고 들었어요.
네, 요즘도 쓰고 있어요. 영화는 연출로 먼저 시작했고 전공은 문창과였는데, 1년 다니다 학교를 그만뒀어요. 그때 저희 교수가 안도현 시인이었는데 문재인 캠프 때문에 구속되기도 하고, 수업에 안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어요.(웃음) 매번 이상한 사람이 와서 시나 읽으라고 했죠.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이기도 했고요. 잘 안 맞았어요.



블로그에서 술, 남자, 페스티벌 같은 단어가 들어간 글을 본 기억이 있어요. 요즘 이 세 단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요?
사실 건강이라는 개념이 세 단어를 이겨먹은 것 같아요. 건강이라고 하면 신체와 정신, 두 부문이 있을 텐데 저는 후자를 말하는 거예요. 일단 판단이 가장 많이 바뀐 것 같아요. 페스티벌에서 술 마시고 남자를 만난다고 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만지면 예전엔 ‘아, 이런 게 페스티벌인가?’ 하고 넘어갔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찾는 것이 많아졌고, 남들이 권하는 걸 거절할 수 있게 됐어요.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얼까요?
아무래도 요즘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됐고, 경험에서 오는 것도 있겠죠. 그리고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많이 겪은 이야기라 자연스레 습득한 것 같아요.

최근에 속옷 브랜드 인에이 촬영을 했잖아요. SNS에 자신이 뚱뚱하기 때문에 ‘민소매와 비키니를 입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했어요.
그 이유는 한 가지인 것 같아요. 스스로한테 자신이 없었고, 한국에선 그런 시선이 흔하잖아요. 뚱뚱한 사람이 앉아 있으면 저기 엉덩이 좀 보라고 하고. 뭐 심지어 저조차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그 화살은 저를 향해 있더라고요. 그래서 자신을 더 가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막연히 ‘그냥 사회가 그래’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민소매와 비키니를 입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를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지수 님의 20대는 어땠을 것 같나요?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해봤어요. 저는 중학교 때 2년간 따돌림을 당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따돌림시킨 친구의 잘못도 있지만, 따돌림 당하는 자신을 책망하는 게 더 괴로웠어요. 누구보다 저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민소매나 비키니 이야기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여전히 친구에게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겠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저의 태도가 바뀌었을 것 같아요.



다시 집 얘기를 해볼까요? 서울에 온 지 얼마나 되었나요?
2016년 6월에 왔으니까 2년 조금 넘었죠. 당산동 오피스텔에 있다가 연희동 주택에서 살았어요. 처음 오피스텔에 살 땐 뭔가 사람 사는 집 같지 않아서 거부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만큼 완벽했던 집도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아주 작은 7평짜리 집이었는데 엄청 쾌적하고 경비실도 있었고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살아보고 싶어요. 고모부는 밉지만요.

처음에 혼자 살다가 룸메이트가 생긴 건가요? 보통은 그 반대의 경우가 많잖아요.
사실 저는 누구랑 같이 살 생각은 전혀 없고, 같이 살면 힘든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거든요. 지금 룸메이트는 춤추고 놀면서 서너 번 인사하던 사이였는데, 이 친구가 먼저 같이 살자고 제안했어요.너무 친하거나 아예 모르는 사이면 고민했을 텐데, 오히려 잘 알지 못하니까 서로 원할 때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친구랑 대화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 방에서 문 닫고 있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냥 친구가 저 방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받아요. 알게 모르게 의지하고 있나 봐요.

이 집은 2년 계약인 거예요?
네, 그런데 입주하자마자 집주인이랑 크게 싸웠어요. 처음엔 집주인이 김치도 주시고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셨는데 점점 간섭이 지나친 거예요. 그래서 저희도 “김치 너무 맛있어요. 다음에 또 주세요” 하다가 “아, 이러지 마세요”가 되어버렸죠. 사실 이 집은 고양이를 키우면 안 되는데 저희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거든요.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괜히 더 화낸 것도 있고요. 그런데 집주인이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친구를 데려오려면 40만 원을 더 내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설프게 싸울 바에는 아예 미친년인 걸 보여주자 작정하고 매일 밤 친구랑 번갈아가며 전화해서 싸웠어요. 그랬더니 다시는 건드리지 않는데 김치도 없죠.(웃음) 여기 오자마자 새 집 같다고 했잖아요. 저희 이사 오기 전에 한 2000만 원인가 들여서 리모델링을 싹 하셨대요. 그래서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하신 것 같아요.

보증금, 월세, 관리비 등은 어떻게 분배하고 있나요?
보증금, 월세는 반씩 냈는데 계약은 제 이름으로 했어요. 친구는 곧 나갈 예정이거든요. 다른 사람을 구해놓고 나간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남자친구를 계속 만나고 있으면 그 친구가 들어올 수도 있고요. 사실 이전에 에어비앤비도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집주인을 보니 그건 어려울 것 같네요.

자취하는 사람이라면 자유를 느끼는 동시에 두려움도 느낄 것 같아요.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더더욱요. 최근에 개봉한 영화 <도어락> 도 20~30대 여성 주거지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다루더라고요.
맞아요. ‘서울에서 믿을 건 내 집 하나야!’ 하지만 이제는 집조차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잖아요. 전에 살던 연희동 집은 오래된 주택이었는데, 경찰을 한 번 부른 적이 있어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택배인 줄 알고 나가려다가 뭔가 이상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거예요.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려서 창문 밖으로 눈만 내놓고 살펴봤더니 그 사람이 우리 집 쪽을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섬뜩했지요. 항상 무슨 일을 당하면 이렇게 해야겠다는 매뉴얼이 있었는데, 막상 겪으니까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경찰차를 타고 홍대 앞까지 외출한 적이 있어요. 그런 일을 한 번 겪으니까 모든 발소리에 민감하게 됐어요.

보증금이 싼 곳은 치안이 열악한 경우가 많잖아요. 그만큼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고요.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한데 또 모른 척할 수도 없어요. 당장 내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남자 친구 집은 반지하인데 화장실이 복도 쪽에 있어요. 그런데 남자 친구는 화장실 창문을 한 번도 닫아 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습기 찬다고. 그런데 저희는 그렇게 창문을 열어놓고 화장실을 못 쓰잖아요. 이게 서울이라는 지역이 위험해서 이렇게 긴장하는 게 아니라, 여성이 혼자 사니까 어딜 가나 위험 부담이 정말 크구나 새삼 느꼈어요. 거기에 대해 남자 친구랑 얘기하다가 결국 싸웠고요.(웃음)



초반에 살짝 언급한 부분인데, 탈조선 계획은 없는지요?
가족에 대한 애착이 큰 편이라서요. 그리고 한국의 여러 문제에 대해 힘든 부분도 있지만 한국에서도 못 찾은 답을 밖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분명 한국이어서 못 찾은 것도 있겠지만요.

집에서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요? 요즘엔 연애를 하는 것 같던데요. 배 아픕니다.
네, 연애합니다.(웃음) 그런데 이 집에 있을 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럼요, 이 집이죠. 설마 남자 친구 집이겠어요?(웃음)
아, 남자 친구 집이면 엄청 잘 말할 수 있는데.(웃음) 어, 이 집에 있을 땐 저기 소파를 되게 특이하게 놓았거든요. 오전 10시부터 11시쯤에 잠깐 빛이 들어오는데, 앉아서 책이나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해요. 그 시간 때문에 일찍 일어나기도 하고요. 만약 친구가 먼저 앉아 있으면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방에 들어가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현재에 만족하기 위해선 어떤 요건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개인이 아닌 사회 밑바탕엔 어떤 요건이 깔려 있어야 할까요?
우리는 자신을 갉아먹는 행위를 그만해야 해요. 마이너스는 되지 않아야 뭐라도 할 수 있잖아요. 제가 서울에 와서 충격을 받은 게 전주에선 신경정신과 다니면서 엄청 눈치를 봤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왔더니 애들이 서로의 병원을 공유하는 거예요. 여긴 의사가 어떻고 여긴 약이 세고…. 스스로 표현하고 노출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들을 줄도 알거든요. 그렇게 되면 흔히 첨예하게 대립한다고 여기는 젠더 이슈 같은 까다로운 문제까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구조 다세대주택 스리룸
면적 약 86㎡(26평)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8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