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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어른이 된 집

The House of a Grown Up

이른 어른이 된 집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20세 / 이윤지

경호원


Conditions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구조 다세대빌라 옥탑 원룸
면적 49.5㎡ (15평)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5만 원

 

Room History

 

이윤지는 열아홉 살에 독립했다. 집을 채우고 가꾸기 위해 편의점 야간 알바, 카페 알바, 약국 알바, 음식점 홀서빙, 도장의 보조 사범 등으로 일했다. 성인이 되면서 바로 경호원으로 취직했다. 그녀는 이미 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이제 고작 스물인 나이지만 스물여덟인 나보다 많은 경험을 했다. 나는 자그마한 옥탑방에서 알뜰하게 살아가는 이윤지에게 괜한 어른으로 남고 싶어 촬영 틈에 이런 말을 전했다. “저도 사회생활을 일찍 한 편인데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데 윤지 씨는 이미 너무 많이 안 것 같아요. 그 장점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것을. 저는 다 큰 후에 알았거든요.” 



집 내놓았다면서요? 석 달째 안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웃음)
직장이 성남에 있거든요.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려서 집을 내놓았는데 보러 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걱정이에요. 지금 이사철도 아니지만, 여기 사람들이 옥탑방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한 3~4팀 정도 보러 왔는데,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 등 다양했지만 대부분 여성이었어요.

다락방같이 아늑한 느낌이어서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저 어릴 때 이런 데 사는 게 로망이었어요.
맞아요. 저도 옥탑방에 대한 로망으로 선택한 거예요. 사실 구조가 불편하기도 한데 나름의 매력은 있어요. 층고가 낮아서 아늑한 분위기가 있거든요. 이전엔 남자 혼자서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과는 완전 다른 느낌이었어요. 어둡고 쿰쿰했죠. 그래서 업체 불러서 벽지 바꾸고, 직접 창문 시트지 붙이고 커튼도 달았어요. 지금도 곰팡이 자욱이 있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졌죠.

그런데 에어컨 성능이 좋은가 봐요. 보통 옥탑방은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춥다고 하잖아요. 여긴 엄청 시원하네요.
사실 오신다고 해서 어제부터 틀어놓은 거예요. 빨리 안 시원해지거든요.(웃음)

저는 가까운 평내호평역이 있는 줄 모르고 도농역에서 택시를 타고 왔는데, 여기저기 개발되고 있더라고요.
네, 거기가 다산 신도시거든요. 이 동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시골 같은 느낌이지만, 평내호평역이 근처에 있서 나름 개발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CGV는 없지만 메가박스는 있죠.(웃음) 여기서 서울 다니기도 편리해요. 강남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있어서 길만 안 밀리면 서울까지 금방 가거든요.

그런데 차 있어요?
아니요, 면허도 없어요. 저 나이가 어려요.

어릴 것 같긴 했는데… 어떻게 되는데요?
스무 살요.(웃음)

스무 살요?! 엄청 일찍 독립했네요.
사실 독립은 열아홉 살 때 했어요. 집안 사정이어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에 어머니랑 같이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들어가서 살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도망가시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집을 떠안게 됐는데… 알고 봤더니 빚이 있더라고요. 이자 갚는 것도 힘들어서 이럴 바에는 집을 팔고 일찍 독립하자고 해서 어머니랑 따로 살게 됐어요. 그런데 어머니도 이 근방에 살고 계세요.

성인이 되기도 전에 독립했는데 살아보니 어떻던가요?
뭐, 저는 편해요.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요. 다 같이 살 때도 집안일은 거의 다 제가 해서 먹고사는 덴 문제가 없어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이곳에서 나고 자랐나요? 남양주는 어떤 곳이에요?
네, 저는 남양주가 살기 좋다고 생각해요. 공기도 좋고,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이 잘 보이잖아요. 어디서든 산을 볼 수 있는 것도 좋고, 전체적으로 한적한 편이에요.

어떤 이유로 경호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는지 궁금해요.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태권도는 초등학교 1학년, 합기도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취업 전까지 했거든요. 선수 생활도 하다 보니 꿈이 이쪽으로 굳어지더라고요. 저는 합기도 선수였는데, 우리나라에서 합기도 선수의 비전이 크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어요. 선수로 성공한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거기서 또 잘돼야지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요. 저는 돈벌이가 우선이었기에 성인이 되자마자 경호 일을 시작했어요.

주민센터에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람의 신변을 보호하는 건가요?
회사에서 일을 받으면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는데, 저는 성남 내 주민자치센터 한 곳에 고정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일하는 근무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어요. 주민센터에는 민폐 끼치는 분도 찾아오고, 정신이상자나 출소자를 대해야 할 때도 있거든요. 욕설을 뱉는 사람은 기본이고 심하면 칼을 들고 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제지하고 내보내는 일을 하죠.

경호 일에 따라 복장이 달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KOREA GUARD라고 쓰인 검정 옷은 텍티컬이라고, 일명 테러복이라고도 불러요. 현장으로 설명하자면 주로 콘서트나 페스티벌에서 테러복을 입고요, 총회 같은 격식 있는 자리엔 정장을 입기도 하는데, 위험한 경우가 있어서 넥타이를 매지 않기도 해요. 잡고 목을 조를 수 있거든요.



지금 제 앞에는 경호복이 보이는데, 뒤편에는 화려한 플라워 프린트 원피스가 있네요. 본래의 취향이라고 볼 수 있나요?
아니요.(웃음) 둘 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좀 반전 있게 살아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렇지만 아직 확고한 취향은 없는 것 같아요. 평소 일할 땐 경호복을 입다가 일 없을 땐 저런 원피스를 입기도 하죠. 저는 남들과 다른, 평범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남들과 같아 보이는 게 싫었어요.

제가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자주 하는 상상이 있거든요. 취객이나 범죄자가 나타나면 절도 있는 동작으로 제압해서 뉴스에 나오는 건데요, 그 장면 속 저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있어요. 겉모습은 조용하고 연약해 보이는데 사실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거죠. 아마 여성의 일반 이미지를 뒤집고자 하는 욕망인 것 같은데, 이제껏 윤지 씨가 생각하고 겪어온 여성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주어진 성 역할을 거부하고 싶었어요. 여성이라고 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죠. 그런 이유로 운동을 꾸준히 했고요. 간혹 여자가 무슨 이런 일을 하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오히려 그런 말을 한 상대에게 뛰어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주려고 해요. 아마 이러한 생각은 어머니한테 물려받았을 거예요.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도와주셨거든요. 항상 저한테 먼저 물어봐주시고 독립심을 길러주셨죠.

경호원 교육을 받을 땐 어땠나요? 남녀 간의 ‘어쩔 수 없는 체력 차이’라는 게 존재하던가요?
체격, 그러니까 키나 몸무게에 따르는 차이는 분명 있지요. 그런데 저는 그런 차이를 별로 못 느껴요. 만약 차이가 있으면 뛰어넘으려고 노력했고, 또 항상 뛰어넘었거든요. 경호원이 되기 위해선 신입 경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교육생의 성별을 분류해서 가르치진 않아요. 그래서 차별 없이 동등하게 배운 것 같아요. 제 친구 중에 페미니스트가 있어서 나름 그쪽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하지만, 이 주제엔 정확한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운 좋게 편견 없이 자란 것 같은데, 어릴 때 얘기를 들으면 어머니가 저를 낳고도 딸이라는 이유로 친가 쪽의 무시를 당했다고 해요. 남성 중심의 문화가 아직도 만연하기 때문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 같기도 해요.

아니, 무슨 스무 살이 이렇게 생각이 깊어요? 제가 그 나이 땐 아무것도 모르고 헤벌쭉하면서 지냈는데?
아니에요. 저 말도 잘 못하고….(웃음) 아무튼 감사합니다.



진짜 멋있다. 현관문 앞에 걸려 있는 저 메달들이 그렇게 딴 것이군요.
합기도는 호신술과 겨루기로 나누어서 보통 한 가지를 정해서 하거든요. 그래서 호신술 선수가 따로 있고 겨루기 선수가 따로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한 대회에서 두 종목을 모두 했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면 선택할 수 있는 주거 환경, 삶의 질이 달라질 것 같아요. 복도의 발소리, 창밖 너머의 그림자 등으로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죠. 경호원이라는 직업이 이 옥탑방을 고르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기도 했을까요?
아니요. 왜냐하면 제가 경호원을 하기 전에 이 집을 택한 거니까요. 집을 구할 때 저에게 안전은 중요하지 않고 취향에 맞는지가 가장 중요했어요.

한편으론 경호원이기 때문에 안전에 더 예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알아서 신경이 곤두설 것 같기도 하고.
집에 있을 땐 잘 모르겠는데, 밖에 있을 때 확실히 그래요. 지하철 같은 데서 잘 안 자고 상황을 지켜봐요. 치한이나 취객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앉더라도 주변을 눈여겨보게 되더라고요. 만약 불의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말로 제지해보고 안 되면 경찰을 불러야죠.

아까 제가 말한 상상처럼 바로 엎어치기를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아, 안 되죠. 단증이나 이수증이 있는 사람은 벌금을 두 배로 내고, 형량도 두 배로 받아요. 그래서 오히려 일반인보다 힘을 못 써요.



그나저나 쉬는 날이 일정하지 않아서 좀 힘든 점도 있겠어요.
네, 그렇죠. 저도 주말에 쉬고 싶고, 놀고 싶고…. 스케줄을 빼려면 2주 전에 말씀드려야 하고 정확한 사유도 말해야 해요. 그런데 이쪽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다 그럴걸요? 파견직이라고 볼 수 있죠.

지금 잘 살고 있지만 문득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있죠. 퇴근하고 불 꺼져 있는 집에 혼자 들어올 때. 물론 맞아주는 강아지가 있지만요.

왠지 일찍 가정을 이루고 싶어 할 것 같아요.
맞아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 사이가 안 좋은 걸 봐왔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착이 깊은 것 같아요. 정말 마음 맞는 사람과 생활 방식을 어느 정도 맞춰나간다면, 결혼이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보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거든요. 혼자 산다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

쉴 때는 주로 무얼 하나요? SNS를 보니 밤에 광란의 디스코 조명이 켜지던데요?
처음 이사 왔을 땐 친구들 불러서 그렇게 신나게 놀았는데, 이제 일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영화 보고, 요리해서 대접하기도 하고, 그런데 역시 제일 좋아하는 건 술이죠.

옥탑방에 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있을 것 같아요.
네, 있죠. 창문이 크진 않지만 아침에 빛이 잘 들어와요. 그리고 지붕 위에 올라갈 수 있거든요. 저녁에 비스듬히 누워서 하늘을 보면 별이 진짜 잘 보여요. 서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죠.



이 뛰어난 경관을 뒤로하고 어디로 이사하려는 거예요?
서울요. 아이러니하죠?(웃음) 근무지가 성남에 있지만, 대부분의 현장 근무는 서울에서 이뤄지거든요. 지역은 딱히 정해두진 않았는데, 우선 저렴한 동네의 역세권이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친구들끼리 서울의 전셋값이면 지방에선 집을 매매한다는 얘기를 종종 하거든요. 윤지 씨도 주변 친구들과 부동산에 관한 얘기를 하나요?
지방의 월세가 훨씬 싸긴 하지만 제 또래 중에 독립한 친구가 한 명도 없어서 그런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아요. 보통 부모님 댁이나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혼자 살아서 부럽다는 말은 종종 듣고요.

나이를 생각하면 그렇긴 하네요. 그럼 윤지 씨가 지방에 살기 때문에 월세 걱정을 덜 하는 대신 갖게 되는 불안감 같은 게 있을까요?
사는 동네나 월세에 대한 고민보다는 스무 살 때 이렇게 일만 하면서 지내도 되나 하는 고민이 있어요. 성인이 되자마자 취업을 한 거니까 그때 좀 놀아도 되지 않았을까 나중에 후회할까 봐서요. 지금은 바빠서 개인 시간이 없는 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구조 다세대빌라 옥탑 원룸
면적 49.5㎡ (15평)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5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