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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게 좋은 집은 나에게도 좋다

The healtchcare for me and my plant

식물에게 좋은 집은 나에게도 좋다

Writer. Elang Lim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식물이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들면서 나 또한 건강해졌다고 하면 그 말을 믿을까? 나는 식물 덕분에 일상의 독소를 뺀 삶을 살게 되었다. 십수 년간 프리랜서로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바로 루틴을 만드는 일이었다. 오전에 일어나 물 한잔 마시고 가볍게 스트레칭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을 자고 오후 늦게 일어나던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식물을 키운 후로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하나둘 건강한 루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단, 아늑한 이불을 박차고 거실로 나와 저녁 동안 답답했을 식물들을 위해 창문을 열어 집 안 공기를 모두 바꿔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식물들 곁에서 나도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멍한 머리를 천천히 깨운다. 환기를 통해 밤새 이파리 주위에 쌓여 있던 산소를 걷어주면서 식물들을 살짝 깨운 후에는 물을 한잔 마시고 식물들에게도 물을 주기 시작한다. 시든 이파리는 정리하고 먼지가 묻은 이파리는 닦는다. 비록 소소한 루틴이지만 식물의 호흡을 도와주는 동시에 나의 하루를 작은 성취감과 함께 시작하도록 도와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직장인이 모닝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같다.


저녁에는 또 다르다. 식물과 함께 살면 ON 또는 OFF가 분명하다. 식물이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간에는 이파리들이 좀 더 깊이 잠들 수 있도록 불을 끄고 나 또한 그들처럼 밤의 고요를 즐긴다. 그렇게 식물들 덕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기 시작한 후로는 자연스레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살아오면서 엉켜 있던 패턴을 식물이 하나둘 해결해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 집은 남향이다. 식물과 인간에게 모두 이로운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햇볕을 받은 식물은 인간에게도 이로운 기운을 준다. 자연스러운 순환이랄까? 가령 이렇다. 해가 가장 풍부하게 들어오며 통풍이 잘되는 거실 창가에 이파리가 큰 식물을 모아두면 식물은 습도를 내뿜고 공기를 깨끗하게 정화해준다. 내가 각 식물에 맞는 돌봄을 제공해주면 그들은 깨끗하고 촉촉한 공기를 되돌려주는 셈이다.


과거엔 그러한 기쁨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적당히 어둡고 서늘한 집을 선호하던 나는 계절 감각이나 자연과의 소통 같은 것은 어차피 도시에 사는 사람에겐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염세적인 사고에 둘러싸여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의 시간에만 길들여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막상 밝은 집에서 식물들과 매일을 함께하다 보니 내가 알던 나는 내가 나라고 생각해온 사람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혹은 내가 나라고 여겨온 사람이 어떤 순간부터 조금씩 변했을지도 모른다. 어둠의 아늑함보다는 빛의 찬란함을 좇아가고 싶은 날들이 시작되었고, 그동안의 ‘염세적인 나’는 햇빛에 조금씩 씻겨나갔다. 그렇게 20대의 마포살이를 뒤로하고 조금 더 밝고 고요한 나만의 요새를 찾아 강을 건너 지금의 집을 발견했다.




남향으로 앉은 이 집엔 밝은 거실은 물론 해와 바람이 가득한 테라스도 있다. 식물에게도 그렇지만 나에게도 더없이 좋은 환경. 나는 이곳으로 이사한 이후 삶이 정반대의 모양새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단 테라스가 생기자 신이 나서 여태껏 키우고 싶던 식물을 들여놓은 것이다. 집 안에서는 키우기 어렵다는 율마와 유칼립투스까지 쑥쑥 자라났다.


특별한 스케줄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외출이 흔치 않은 프리랜서에게 ‘테라스’라는 공간은 타인을 만나지 않고 자연과 연결되는 소중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지나는 미묘한 공기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식물에게 좋은 환경을 찾다 보니 남향으로 오게 되었고 테라스가 있는, 그러니까 자연의 풍부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삶을 추구하게 된 것. 그래, 생명체라면 응당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식물이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 같았다. 식물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과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 나는 고개를 잠시 멈추게 된다.


식물을 돌보는 즐거움은 그동안 내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즐거움이다. 암막 커튼이 드리워진 집에서 식물을 들이고 죽이고를 반복하던 시절에는 몰랐던, 정말 열심히 살리려고 노력하면서부터 조금씩 깨닫게 된 감정이 있다. 반려동물을 키울 때와는 조금 다르게 조용하고 정직한 기쁨이다. 식물들에게 정성스레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면 그들은 나의 정성에 답하는 듯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이파리를 내어주곤 했다. 혼신의 힘으로 피워낸 새 이파리에는 내가 집 밖에서 묻혀온 오염 물질을 희석하는 특별한 효과도 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집에는 나를 기다리는 새순이 있다. 낮 동안 따뜻한 남향의 햇살을 머금은 거실에서 식물들이 자랐고, 그 온기와 안온함에 기대어 나도 자랐다. 그리고 나와 식물들 사이에 믿음도 자라나기 시작했다.


뿌리와 줄기, 이파리와 꽃···. 그 작고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내 생각과 고민의 대부분은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라는 해답을 얻은 날도 종종 있다. 언제나 식물을 좋아했지만 이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살았더라면 지금처럼 식물을 많이 키우고, 자연에 대해 또 나에 대해 이만큼 고민하는 사람으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상쾌한 바람을 쐬고, 한낮의 뜨거운 볕을 쬐고, 제때 잠드는 건강한 삶의 패턴을 영영 몰랐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식물이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들어주며 생각한다. ‘비록 식물을 위해서이지만, 매일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쓸고 닦는다면 그것만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이 집에서 식물과 함께 성장한다. 줄기가 자라고 마음이 자라는 일이다.


   

  

        

     

    

   

임이랑

작가이자 뮤지션. 식물의 이야기를 쓰고, 식물의 사진을 찍고, 식물에 대해 말하는 사람. 저서로는  《아무튼, 식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가 있으며 EBS FM <임이랑의 식물수다>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