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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살아남기

Surviving in the Kitchen

부엌에서 살아남기

Editor.Hamin Kim / Illustrator.Subin Yang Article / clinic

어설픈 부엌살림으로 요리하는 데 주저하는 초보 자취러를 다독여드립니다.


김하민 / 내담자


• 직업: 에디터

• 거주지: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 특징: 위장이 좋지 않아서 맵고 기름진 자극적 음식을 피하려고 하지만, 수 년 동안 형성된 식습관이 한순간에 변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요나/ 상담자


• 직업: 요리사.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제철 작물을 공부하고 있다. 때때로 ‘재료의 산책’이라는 팝업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요나의 키친》, 《재료의 산책》, 《집다운 집》을 출간했다.

• 거주지: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 특징: 섭식 장애를 겪은 뒤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식사 시간을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고 이야기한다.






생존 요리부터 시작합시다 •


대학생 때 처음 자취를 시작하고 집에서 요리를 해 먹으려고 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적잖이 당황한 적이 있어요. 생각해보니 그동안 누가 해준 밥만 먹었더라고요. 부엌에 서 있는 제 모습이 낯선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저처럼 처음 요리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이것만 있으면 웬만한 요리가 가능하다’ 같은 필수 조리 도구가 어떤 게 있을까요?

우선 밥솥이 기본이죠. 밥은 모든 음식의 기본이니까요. 굳이 밥솥이 아니어도 깊은 냄비로도 밥과 국 모두 만들 수 있어요. 고기 요리는 구워 먹기만 하면 되니까 프라이팬만 있으면 충분해요. 그중에서도 깊이감이 좀 있고 넓은 프라이팬과 웍 중간 정도의 제품을 추천해드려요. 볶음 요리를 할 때 재료 탈출도 방지할 수 있고, 심지어 찌개 요리도 가능해요. 채소 요리 같은 경우 찜기가 있으면 좋고요. 뚜껑을 닫을 수 있는 냄비와 그 안에 넣을 수 있는 채반만 있으면 돼요. 사실 전자레인지에 돌릴 수 있는 건 다 찔 수 있거든요. 감자, 무, 당근 등 채소를 잘게 다져서 물을 붓고 수증기로 익히면 진짜 맛있어요. 찐 다음에 구워 먹어도 좋고요. 그 외에 기본 조리 도구는 도마, 그릇, 칼 등이 있겠네요. 하지만 한꺼번에 이것저것 다 사려고 하면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집들이 선물로 친구들한테 하나씩 선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답례로 친구를 불러 요리해주면 추억도 만들 수 있고 여러모로 괜찮지 않을까요?

요리를 해보니 대부분 음식에 양파나 대파, 마늘 같은 채소가 늘 기본적으로 들어가더라고요. 그런데 필요할 때마다 사는 게 귀찮기도 하고, 제가 원하는 만큼의 ‘소량’은 잘 안 팔던데, 채소는 어떻게 관리하나요?

간편하게 먹고 싶으면 소량 포장된 깐 양파, 깐 마늘이 좋아요. 그런데 조금 절약하고 싶거나 신선도를 따지자면, 껍질에 싸여 있는 걸 추천해드려요. 일단 양파나 마늘은 오래 보존할 수 있어요.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껍질이 막아주고 있거든요. 보관은 곰팡이 방지 차원에서 바람이 잘 통하는 망에 넣어두거나, 서늘한 곳에 두는 게 좋아요. 하지만 저는 소량으로 포장된 채소를 선호하진 않아요. 소분하는 과정에서 세척, 절단하면 신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채소는 있는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먹기 바로 전에 손질하는 게 핵심이에요.

‘이것만 있으면 된다!’라는 만능 양념장 같은 게 있을까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특별 맛간장이 있어요. 우선 간장에 다시마, 버섯, 무, 말린 고추를 넣고 냉장고에 보관해두면 간장에 맛이 배요. 다시마, 버섯, 무는 마른 상태일수록 좋아요. 수분이 빠진 상태에서 재료가 간장에 불어나면 훨씬 깊은 맛이 배거든요. 특별 맛간장은 간장이 들어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대체할 수 있어요. 간장 달걀밥 먹고 싶을 때 비벼 먹어도 되고, 어묵탕이나 미역국, 소고기뭇국 등에 국간장으로 사용해도 좋아요. 양념장은 종류에 따라 실온 혹은 냉장 보관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 여름이 굉장히 습하고 기온 변동이 심하다 보니 웬만하면 모두 냉장 보관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매일 요리하는 게 아니면 재료를 보관하는 기간이 길어지잖아요. 자주 사용하는 재료 중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재료는 뭐가 있을까요?

손질 안 한 감자, 고구마, 호박, 당근의 경우 실온에 한 달 정도 두어도 괜찮고요. 신선 식품 중 두부는 유통기한이 2주이지만 쓰고 남은 것은 물을 빼고 냉동실에 얼려놓으면 언제든 다시 사용할 수 있어요. 게다가 두부는 얼리면 단백질 함량이 높아진다고 해요. 그중에서도 제가 추천하는 조합은 달걀과 두유예요. 우선 달걀은 유통기한 2주보다 일주일 더 보관할 수 있어요. 게다가 프라이, 오믈렛, 스크램블 등을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재료인데, 여기에 두유를 첨가하면 담백함이 배가돼요. 특히 달걀말이의 경우 물을 1이라고 봤을 때 4분의 1 정도만 두유를 넣고 섞으면 고소한 맛이 나요. 거기에 시금치나 당근, 호박 등 남은 재료가 있으면 잘게 썰어 넣어도 좋고요. 두유의 유통기한은 일주일 내외인 우유와 달리 4개월이에요. 게다가 소량 팩으로 살 수 있고, 실온 보관도 가능하니 냉장고 공간도 아낄 수 있어요. 만약 요리 용도로 두유를 사려고 한다면 설탕이나 올리고당 함량이 적거나, 거의 안 들어간 제품이 좋아요.

“One Source Multi Use”라는 말이 있잖아요. 하나의 재료로 다양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을 것 같아요.

감자를 이용해 변형 가능한 메뉴가 많아요. 간단하게 쪄서 먹거나, 기름에 튀겨서 먹는 방법도 있지만, 서브로 곁들여 먹기 좋은 재료예요. 감자샐러드 같은 경우, 우선 감자를 자르고 랩을 씌워 찐 다음 으깨요. 그리고 스팸이랑 양파를 썰어 넣고 마요네즈와 소금, 후춧가루를 뿌리면 반찬으로 먹을 수도 있어요. 감자를 으깬 상태에서 간단하게 감자전도 만들 수 있어요. 전분가루와 소금만 넣고 섞은 다음에 프라이팬에 부치기만 하면 돼요. 으깬 감자에 오이나 참치를 넣으면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을 수 있고요.

처음 요리를 배우는 사람은 ‘감’이라는 게 없잖아요. 이러한 ‘감’을 기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조합’을 중심으로 레시피를 보는 게 좋아요. 요리 관련 책이나 영상을 자주 보면 재료와 양념의 조합이 눈에 익을 거예요. 요리를 직접 하지 않고도 맛을 예상해 볼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레시피를 곧이곧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어요. 특히 레시피 계량법은 가끔 방해가 되기도 하거든요. 가령 설탕 2큰술, 간장 종이컵 1컵이라고 쓰여 있는데, 계량 사이즈는 각 조리 도구마다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정리해보면 레시피로 조합을 참고하되, 계량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나 더, 내가 먹고 싶은 메뉴 레시피를 찾아보세요. 자신의 입맛과 상관없는 황금 레시피를 먼저 공부할 필요는 없어요. 떠돌아다니는 레시피를 따라 한들 요리에 흥미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면 요리 실력도 늘기 힘들어요.



부엌과 친해지기 •

요리에 흥미를 가지려면 부엌과 친해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자꾸 실패하다 보니 자신감이 안 생겨요. 그냥 무턱대고 지지고 볶으면 실력이 느는 걸까요?

부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말고는 왕도가 없는 것 같아요. 난장판이 되어도 좋아요. 《미쉐린 가이드》 별 받자고 요리하는 게 아니잖아요. 익숙해질 정도로 자꾸 하다 보면 어느새 손이 빨라지고, 몸에 착착 붙는 느낌이 들 거예요. 사실 부엌은 집에서 실패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에요. 잠자거나 씻을 때 실패하지 않잖아요. 시행착오가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실수가 줄어들고 실력이 늘 수밖에 없죠.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너무 한꺼번에 많은 걸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끼 차려 먹는 걸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면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경우가 많거든요. 반찬 세 가지에 국 끓이는 건 초왕 요리 고수들이 하는 거예요. 이제 갓 요리에 입문한 분이라면 한 가지 메뉴 혹은 하나의 재료에 집중해보세요. 예를 들어 “난 이번 달에 국을 마스터하겠어” 하면 다양한 국 요리 레시피를 공부하는 거죠. 비슷하게 이번 달 재료는 미나리다 싶으면, 전도 붙여보고 국도 끓여보고 밥에도 넣어 먹는 거죠. 이렇게 차근차근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요리에 대한 자신감도 생길 거예요.

직접 차려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그런데 매일 요리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어요.

맞아요. 저도 모든 분에게 직접 요리해 먹으라고 함부로 말을 못 하겠어요.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요리에 흥미를 가져봤으면 해요. 단순히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 이상으로 요리가 우리에게 많은 걸 가져다줄 수 있거든요. 우선 요리하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요. ‘나 지금 뭐 먹고 싶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나에 대한 관심인데, 저는 이게 건강한 라이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봐요. 평일에 시간이 없다면 비교적 여유가 있는 주말에 미리 요리해두고 소분해서 보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저도 요리할 시간이 없거나 귀찮을 때 냉동실에 얼려둔 음식을 자주 먹거든요. 국 같은 경우 식혀서 작은 지퍼 백에 얇게 펴서 밀봉해두고, 밥도 잡곡밥·볶음밥 등 종류별로 얼려놓아요. 요리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1인분 양이 굉장히 애매해요. 같은 음식을 연달아 먹으면 질리기도 하고요. 억지로 해치우거나, 애매하게 버리지 말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만들어놓는 거죠.

저는 장이 좋지 않아서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바로 화장실에 가요. 조심해야 하는 건 아는데, 식습관이 한순간에 바뀌지 않더라고요.

저도 제 몸이 망가지는 걸 느낀 적이 있어요. 고기를 먹거나 간이 센 음식을 먹을 때마다 탈이 나는 거예요. 무얼 먹느냐에 따라 몸의 반응이 달라지는 걸 알게 되니까 본격적으로 먹는 데 신경을 쓰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밖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더라고요. 대부분 육식 위주의 자극적 음식이니까. 어쩔 수 없이 밥을 직접 해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여차여차해서 채소 중심의 식단 공부를 하게 된 거죠. 물론 제가 고기를 아예 먹지 않는 건 아닌데, 분명한 건 현대인이 고기를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먹고 있다는 거예요. 비율상 채소를 더 많이 먹어야 영양분이 적절히 흡수될 수 있거든요. 상추, 깻잎 몇 장 먹는 게 아니라 식습관에 채소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의미죠. 그런데 이건 의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평일 아침 혹은 저녁에 채식 위주로 먹다가, 다 같이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고기를 먹어야 균형 잡힌 식단이 가능한 거죠.

채소 요리를 상상하면 밍밍하고 맛 자체가 없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어쩌면 채소 자체에 무지한 것도 있지만, 채소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편견을 뒤집을 수 있는 채소 요리의 매력이 있을까요?

채소 요리는 철이 지나면 맛볼 수 없다는 게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돼지고기나 소고기, 닭고기는 365일 마트에 가면 언제든 있지만, 제철 채소나 과일은 그렇지 않잖아요. 물론 요즘은 하우스 재배가 활발해서 언제든 구할 수는 있지만, 철이 아닌 재료는 맛이나 상태가 별로예요. 그리고 채소 요리는 계절감을 느끼게 해줘요. “우리 작년 여름에 먹은 참외 맛있었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작년 여름 닭고기 맛있었지”라는 말은 어색하잖아요. 또 냉이, 쑥, 달래 같은 나물을 보며 따뜻한 봄이 왔구나 느낄 수도 있고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의식하면 지금의 상황을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몸이 가벼워지는 건 당연하고요.

싱싱한 채소 고르는 노하우 같은 게 있을까요? 고기 요리 대신 시도해볼 만한 채식 요리도 궁금해요.

일단 터무니없이 비싼 채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철이 아니거나 멀리 해외에서 온 재료일 가능성이 크죠. 소량 포장된 것도 되도록 피했으면 좋겠어요. 채식 요리의 핵심은 신선도예요. 생명력 대신 편리함을 택하면 채식 요리의 장점이 드러날 수 없거든요. 최대한 원물 상태 그대로 보존된 게 가장 좋아요. 제가 제안하는 건 흙이 묻어 있는 재료를 직접 손질해 먹는 거예요. 육식에 익숙하다면 버섯 요리를 한번 시도해보세요. 버섯을 반나절 정도 말리면 수분이 빠져나가 요리할 때 더 고소해요. 씹을 때 보다 부드럽고, 향도 좋아지고요. 버섯파스타는 일반 파스타 레시피처럼 채소 넣을 때 버섯을 넣고 빠르게 볶으면 돼요. 버섯전골의 경우 배추, 양파, 무 등 채소와 함께 끓이면 되는데, 이때 특별 맛간장을 살짝 넣으면 일반 맛간장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깊은 맛이 나요. 이것도 조금 힘들면 버섯과 간장 조금 넣고 버섯밥 한번 지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