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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 당신만 그런 거 아니에요

Corona Blue, You Are Not the Only One

코로나 블루, 당신만 그런 거 아니에요

Writer. Jiun Kim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아무렇지도 않던 일들이 괴롭고 귀찮게 느껴졌다. 매우 그렇다.
무슨 일을 하든 정신을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종종 그렇다.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매우 그렇다.

우연히 기사에서 우울증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를 보고서는 ‘그때 내가 우울증이었나?’ 하며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의 병을 앓았는지도 모른 채 지나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단순히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아니면 그저 ‘자연스럽게’ 낫나? 그 전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마음의 연고가 도처에 널려 있던 게 아닐까. 퇴근 후 요가하기, 동네 카페에서 라테 마시기,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까지 갔다 돌아오기, 친구들과 한잔하며 응어리진 마음 쏟아내기, 근처 산에 올라 아무 생각 없이 걷기•••. 나도 모르게 마음에 좋은 연고를 스스로 처방해온 것이다.

언제든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 좁아진 일상 반경의 단절감과 소외감, 쏟아지는 뉴스의 막연한 불안감. 오만 감정이 속 시끄럽게 하더니만, 어느 날 턱에서 딱딱 소리가 나고 목과 어깻죽지가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 들었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모두 스트레스와 깊이 연관 있는 부위라며, 코로나19 이후 일상 패턴이 바뀌었냐고 물어보았다. 비슷한 통증으로 병원에 오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마음을 몸으로 체감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잠이 안 오거나, 심장이 빠르게 뛸 때 비로소 “어딘가 이상한데?”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소중한 일상 속 연고들이 동나고 있다. 동네 요가원은 문을 닫았고, 카페나 술집도 예전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 거리를 걸을 수는 있지만 막연한 불안감과 마스크의 답답함을 피하기는 어렵다. 마음이 원래 취약하던 사람은 병이 깊어지기 최적인 환경에 처한 셈이다. 

   

‘코로나 블루’라는 현상도 가볍게 앓고 지나갈 것을 연고 없이 버티다 보니 새롭게 인식하는 마음의 병이 아닐까. 백신이 부족하다며 종일 세상이 시끄럽지만, 마음의 연고가 부족해진 현실이 때론 더 걱정스럽다.

     

일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사용해온 마음의 연고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꺼내는 창구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만날 공간부터 제약이 생겨 마음의 매연을 배출할 기회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뜻하지 않은 말과 행동은 자책의 굴레를 만들며 우울에 살을 찌우기도 한다. 또 다른 특징은 대개 머리를 쉬게 하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온종일 바쁜 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마음도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감각적 존재다. 자연에 파묻히면 소리, 냄새, 하늘 색깔이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비슷한 이유로 몸을 사용하는 다양한 활동은 마음을 건강하게 해준다.

        

다행히 두 가지 특징을 모두 지닌 연고가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마음을 꺼내는 연습이고, 머리를 쉬게 하는 운동이다. ‘명상’ 하면 자동으로 폭포 아래 눈을 감고 정좌하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게 아니고, 특별한 세팅도 필요하지 않다. 이 닦는 3분 동안에도, 틈틈이 눈을 뜨고도 명상을 할 수 있다. 처음부터 혼자 하는 활동이거니와 별다른 장비나 도구가 필요하지 않은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요즘은 밖에 나가지 않는 데다 항상 온라인에 접속된 채로 살아가다 보니 머리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든다. 다음 할 일을 계획하고, 하지 말아야 한 과거의 실수를 재생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생각이 쏟아진다면 잠시 딱 한 번만 숨을 느껴보자. 조절하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나보다 내 몸이 숨 쉬는 법을 더 잘 안다. 들숨, 날숨.

과거와 미래를 전전하는 우리를 숨이라는 도구를 통해 안전하게 지금 여기에 데려올 수 있다. 숨은 항상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명상은 근본적으로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이다. 우리는 타인에 관해 편집된 이야기를 듣지만, 나의 이야기는 전체 맥락까지 자세히 알고 있기에 쉽게 착각에 빠진다. 나의 고통이 저 사람의 고통보다 커 보이고, ‘나에겐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생각을 덥석 믿어버리기도 한다.

    

팬데믹 시대의 단절감에 압도될 때 가장 중요한 건 나 혼자만의 일도, 나만 느끼는 감정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누구나 불안과 두려움, 막연한 단절감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 시기도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소소한 마음의 연고 두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한 번 강도 높게 하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이 훨씬 큰 도움을 준다.

01 틈틈이 나에게 필요한 말 찾기
틈틈이 “지금 나에게 무엇이 필요하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나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먼저 줄 수 있는 사람은 내 가족도, 연인도 아닌 ‘나 자신’이다. 내가 나에게 필요한 말을 가장 먼저 찾아줄 수 있다.

나에게 필요한 말을 쓰려고 하면 처음에는 자꾸 다짐이 튀어나온다. 왠지 어금니를 꽉 깨문 듯한 말투로 “내일은 좀 더 일찍 일어나자!”라고 둥. 하지만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게 다짐일까? 나에게는 존중이 필요할 수도, 약간의 용기나, 귀여움 한 스푼이 필요할 수도 있다. 뭐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만 아득하게 감지되는 날에는 그저 “내가 널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되물어볼 수도 있다.

처음에는 따스한 말 한마디 하는 게 무척 유난스럽게 느껴지겠지만,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되어 먼저 필요한 말을 들려준다는 건 아주 현명하고 파워풀한 일이다. 친구가 나에게 그 말을 해주길 기다릴 필요가 없어지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02 하루의 끝, 감사 저널링
과연 ‘감사할 만한 일’이라는 게 있을까? 감사함이라는 건 아주 주관적이어서 저마다 다른 기준을 갖고 있다. 과장해서 말하면 모든 게 고마울 수도, 모든 게 당연할 수도 있다. 감사함을 느끼는 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연습의 결과이기도 하다. 더 많은 것에 감사하면 지금 내 곁을 지키는 것,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좀 더 즐겁게 누릴 수 있다. 나도, 내 하루도 감사함으로 충분해진다.

매일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고마운 사람, 고마운 일, 고마운 사물을 하나씩 적어본다. 포인트는 사소하게 고마운 것을 찾는 것이다. 머리끈도, 달도, 다시 파릇파릇 살아난 식물도, 우연히 알게 된 재미있는 앱도 내가 발견해주기만 한다면 빛나는 고마움의 대상이 된다.



     

   

    

   

김지언

‘왈이의 마음단련장’ 공동대표. 운동으로 몸을 관리하듯 마음도 아프기 전에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  인간들의 출근길이 바뀌길 꿈꾸는 왈이를 만난 후, 일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변했다. ‘왈이가 업어 키운 인간’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