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mark wordmark

logo logo

베란다 정원이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Struggling with garden

베란다 정원이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Editor.Jeonghyeon Kim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에그 2호, 김지윤 / 41세, 38세

뮤지션(스탠딩 에그), 아트 디렉터


Conditions

지역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구조 아파트
면적  142㎡(43평)

Room History

37세, 34세 경기도 일산 아파트

케렌시아(querencia)라는 스페인어가 있는데,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 수 있는 안식처라는 뜻이다. 나 역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케렌시아를 꿈꾼다. 평온하고, 안락하고, 보기에도 근사한 공간. 어느 봄날에 찾아간 에그 2호·김지윤 부부의 집이 그랬다. 그들이 가꾸는 베란다 정원은 이상적인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곳은 그들의 경험에서 시작해 다른 이의 손에 의해 탄생한 공간이다. 전문가에게 식물 스타일링을 맡긴 것.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정원도 완벽한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그들은 식물을 가꾸면서 재미와 권태, 편안함과 불안함을 모두 경험했다.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쯤에서 나는 그들의 식물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지지고 볶고 동거동락한 이야기.


작년 2월에 포르투갈을 다녀왔어요. 베란다에 있는 정원도 그 이후로 만든 거라고요?
지윤 리스본에서 한 달 살기를 했는데요, 포르투갈은 유럽의 남쪽에 위치해 겨울에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따뜻하거든요. 그래서 식물들도 잘 자라고, 건축 스타일도 안팎의 구분이 적고 개방감이 좋아요. 테라스도 중요하게 여기고요. 거기서 느낀 따뜻함과 자연 친화적 느낌이 인상적이어서 그 분위기를 저희 집 베란다로 가져오고 싶었어요.


리스본도 베란다에 식물을 많이 놓는 편인가요?
2호 한국처럼 새시 있는 베란다 느낌보다는 외부로 뚫린 테라스 형태가 많아서 거기에 적게라도 식물을 두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내가 그런 풍경에 매력을 느낀 건데, 마침 한국으로 돌아올 즈음부터 코로나19가 심해졌어요. 집에만 있어야 하다 보니 그럼 아예 집에다 그 풍경을 들이자고 계획한 거예요.
지윤 처음에 남편은 “자연을 보고 싶으면 바로 앞에 있는 한강에 가도 되지 않냐”라고 반대했어요.(웃음) 하지만 저는 익숙한 풍경이 아니라 유럽에서 본 그 이국적 그림을 원한 거라 강력하게 밀어붙였죠.


식물 디자인 스튜디오 ‘슬로우파마씨’에 식물 스타일링을 의뢰했죠. 단순히 식물 추천을 넘어서 컨설팅까지 필요했던 이유는 뭘까요? 카페나 식당도 아니고 가정집에서 말이에요.
지윤 제가 눈으로 봐온 것들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그림 간의 괴리가 크니까요. 그전부터 소소하게 식물을 키워봤지만, 정말 마음먹고 근사한 플랜테리어를 하려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2호 남유럽이나 미국 서부 지역, 도쿄 같은 곳의 플랜테리어를 봤을 때 정말 멋있었거든요. 근데 그걸 그대로 여기서 재현하려고 하면 기후가 다르니까 쉽게 죽어요. 예쁜 룩과 우리 집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조건, 그 둘의 교집합을 전문가분은 잘 찾아주지 않을까 싶었죠.


식물 컨설팅 관련한 업체 중 슬로우파마씨를 선택한 기준이 뭔가요?
2호 7년 전쯤인가 슬로우파마씨가 론칭할 즈음부터 쭉 팔로해서 그들의 스토리를 알고 있어요. 당시만 해도 플랜테리어 붐이 일기 전인데요, ‘반려식물’로서 식물을 바라보는 진지한 접근법이라든지 신선하고 흥미로운 작업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후 행보들을 보면서 신뢰가 쌓이다 보니 이제 막 시작하는 업체에 비해서도 훨씬 노하우가 축적됐을 거라 생각했죠.


결과적으로 어떤 점이 만족스럽던가요?
2호 정원이라는 건 그냥 풀 몇 포기 갖다 놓고 키우는 거랑 아예 다른 거잖아요. 보이는 것만 따져도 풀들의 높낮이나 컬러 배합, 다른 수종 간의 조화 같은 여러 요소를 갖춰야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니까요. 그런 큰 그림을 잘 잡아주셨고, 베란다 환경도 꼼꼼하게 체크해서 이런저런 제안을 주셨어요. 가령 올리브나무는 보통 서울에서 키우기 어렵다고 하는데, 저희 베란다의 일조량이나 온도 조건을 보시더니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자랄 수 있다고 알려주셨거든요. 덕분에 올리브나무를 잘 키우고 있죠.


안 그래도 궁금했어요. 한국의 일반 베란다가 식물을 키우기에 괜찮은 환경인가요? 꼭 정남향이 아니거나 베란다 면적이 넓지 않은데도 잘 키우는 분이 많더라고요.
지윤 단순히 좋다, 안 좋다로만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집집마다 환경이 워낙 다르고 식물 입장에서도 선호하는 조건이 다르니까요. 예를 들어 저희 집도 정남향이라서 베란다에 햇빛이 정말 잘 드는데, 오히려 그래서 잎이 타버린 친구들도 있어요. 직사광선이 비치는 창가 쪽은 다육이나 선인장 같은 고온 건조한 지방의 식물을 둬야 했던 거죠. 같은 장소라도 국소적 환경에 따라 거기에 맞는 식물을 배치하거나, 그 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컨설팅받은 걸 지속적으로 유지·관리하는 건 두 분의 몫이죠. 보기에 근사한 플랜테리어가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을 것 같은데요.
지윤 처음엔 식물을 키우면서도 어떤 원리로 물을 이만큼, 이 정도 주기로 줘야 하는지 그 논리적인 과정을 몰랐어요. 그래서 전달해주신 가이드라인을 정직하게 따랐죠. 자세히 알려주신 식물별 관리법을 노트에 다 받아 적고, 그 후 엑셀에 정리해서 ‘식물 물 주기 표’를 만들었어요. 계절마다 날씨마다 수십 가지 식물이 물을 흡수하는 양이 다 다르거든요. 식물 이름과 물의 양을 정확히 기록해놓은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대로 따라 하다 보니 점점 패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대략적인 원리가 파악되더라고요. 이제는 식물과 화분 크기만 봐도 ‘음, 쟤는 지금 봄이니까 물을 몇 리터쯤 먹겠군’ 이런 감이 와요.
2호 초반에는 둘 다 철저히 수치에 의존했죠. 물을 줄 때마다 표를 보고 “재스민은 주 1회 얼마, 홍콩야자는 열흘에 한 번 물은 얼마···” 식으로 하나하나 체크하면서.(웃음) 이제는 이 친구들이 어제랑 오늘 어떻게 상태가 달라졌는지 체크하는 게 가능해요.


 

베란다 정원 때문에 생긴 예기치 않은 환경의 제약, 그것 때문에 포기한 것도 있을까요?
2호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거? 특히 이파리 수가 많은 것은 하나하나 확인하고 닦다 보면 생각보다 정말 오래 걸려요. 그래서 저는 반려견 ‘망고’를, 아내는 식물을 주로 케어하는 걸로 역할을 분담했어요. 그리고 환기 때문에 늘 창문을 열어놔서 좀 쌀쌀할 때가 있는데, 그래도 덕분에 공기 순환이 잘되고 에어컨도 거의 가동 안 하는 건 좋네요. 아, 장기간 집을 비우는 일도 어려워졌어요.


그럼 식물들이 감당하기 힘든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특히 두 분은 창작자로서 예민하게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을 것 같은데요. 집에서마저 세심하게 관리할 게 많으면 지칠 것 같아요.
2호 밖에서 심란한 일이 생겼을 때 그걸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은 ‘꾸준함’인 것 같거든요. 모든 걸 던져놓은 채 가만히 있어서 평정심을 얻는 게 아니라,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나는 늘 똑같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루틴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힘 말이에요. 집에 와서 늘 하던 대로 식물을 가꾸는 그 꾸준한 일상이 오히려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지윤 저는 최근에 식물들을 다 무료 나눔해서 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이 생활이 주는 감흥과 소소한 즐거움이 좋은데, 평온한 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거든요.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새로운 걸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어느 정도 정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지금 삶에 익숙해지는 게 되레 불안감을 주나요?
지윤 집에 있는 시간이 늘고 식물 케어하는 데 품을 들이다 보면 점점 더 애정이 커져요. 근데 이 소박하고 안락한 생활에 대한 아름다움을 알아가면서 동시에 내가 원래 하던 예술과 창작에 대한 열정이 줄어드는 거죠. 자연스러움이 주는 행복과 위안을 느끼다 보면, 굳이 이렇게 치열하게 뭘 만들고 애써서 창작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거든요. 그래서 가끔은 평온한 나만의 공간이 생기는 게 오히려 숨 막힐 때도 있어요.


흥미롭게 들리네요. 현생에 치이고 힘들 때 그 어떤 것보다 힐링을 주는 게 안락한 집과 소소한 식물 생활인데, 어느 순간에는 그 평화가 갑갑함으로 바뀐다는 게 말이에요.
2호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이 나중에 가서는 권태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가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야 하고 삶 속에서 치이기도 해야 하는데, 지금 이런 안락한 공간에서 행복감을 누리고 있어도 되는 건가 고민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특히 지윤 님의 성향이 그런가 봐요. 새로운 것을 계속 치열하게 경험해야 하는 스타일요.
지윤 맞아요. 이 집도 식물도 저한테는 모두 과정이에요. ‘완성됐으니 이대로 똑같이 즐겁게 지낼래’가 아니라,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2호 저 같은 경우는 음악 일을 거의 20년째 하고 있거든요. 가끔은 ‘내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것이 있을까’ 하고 권태롭게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러면 또 집에서 누리는 소소한 기쁨들이 오히려 새로운 거예요. 창작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이렇게 되고···.(웃음) 아내가 저보다 욕심이 많아요.


언제 식물들과 함께하길 잘했다고 느껴요?
지윤 집이 아늑하게 느껴질 때요. 처음 시작은 시각적 아름다움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그 이상으로 집이 아늑하고 안락해요. 이 아파트가 저희 둘이 살기에는 되게 넓게 느껴졌거든요. 근데 식물들을 들이면서 저희 두 명과 망고 외에도 누군가가 살고 있는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생겼어요. ‘여기엔 얘가 있지’, ‘저기엔 쟤가 있었지’ 하면서 보게 되니까 공간 구석구석에 대한 애정도 더 커지고요.


식물들을 자주 살펴볼수록 집을 더 면밀히 관찰하게 되겠네요.
지윤 그렇죠. 상태를 체크할 겸 테라스도 매일 한 번씩은 가보니까요. 저도 모르게 집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꼼꼼히 들여다보게 돼요.


마지막으로 식물 생활을 위한 팁 혹은 주의 사항을 들려주세요. 베란다 없는 작은 집에서도 식물을 키워보고 싶은 저 같은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2호 먼저 본인이 어떤 성향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괜히 남들 하니까 나도 식물 키워야지 유행만 따라가는 건 좀 아닌 것 같고요. 식물에서 오는 편안함보다 번거로움을 더 크게 느낄 수도 있고, 어느 순간 식물 생활을 하는 게 답답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잖아요. 식물 키우는 게 무조건 좋은 거라는 생각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윤 저는 반대로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웃음) 저도 원래 뭘 키우고 관리하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막상 하니까 달라지는 게 있더라고요. 일단은 실내에서 일반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스폿을 찾고, 그곳을 각자 취향대로 아름답게 만들어 쑥쑥 성장하는 걸 지켜보세요. 그 기쁨으로 식물들 특성을 공부하면서 생장에 유리한 스폿을 늘려가면 어느새 집 안이 식물들로 가득 찰지도 몰라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구조 아파트
면적  142㎡(43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