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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닌 풍경

The Scenery That I Have

내가 지닌 풍경

Editor.Hyuna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30세 / 강민정

화가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구조 다세대주택 연립빌라
면적 28㎡ (8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45만 원, 주차비 4만 원

 

Room History

 

25세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다세대 연립빌라 옥탑방,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0만 원

 

원룸에 산다는 건 때로 방보다 창을 소유하는 일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창이 편집하는 풍경은 계절의 변화와 집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낸다. 강민정은 안산과 궁동산이 감싸는 연희동 언덕 끝 집에 산다. 3층 이상 개발이 제한된 이곳에서는 대지의 고저에 따라 들어선 집들이 볕을 고르게 나눠 갖는다. 그의 원룸 한 면을 차지하는 큰 창밖으로 몸을 내밀면 색색의 주택 지붕, 안산의 전경, 연세대학교 캠퍼스, 남산타워가 보이고 침대에 누우면 하늘이 가득 들어찬다. 강민정은 이 공간을 ‘안전한 야외’라고 부른다. 


민정 씨도 부산에서 대학을 마치고 올라온 지 꽤 됐죠. 서울살이 몇 년 차인가요?

대학교 졸업하고 스물다섯 2월 즈음 올라왔으니, 이제 한 5년 차네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계기가 있나요?

서울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직장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일단 서울에 올라왔고, 한 6개월 놀다가 스몰 웨딩 전문 회사에 취직했죠.
 

서울에 올라와서는 어떤 집들을 거쳤는지 궁금하네요. 

처음 올라왔을 때는 하남에 있는 이모 집에서 지냈어요. 아파트에 거주하셨는데 자녀가 없어서 방이 남았거든요. 그런데 회사가 상수역이어서 통근 시간이 1시간 40분 정도 걸렸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6호선 라인 근처 집을 알아봤고, 공덕역과 효창공원역 사이에 있는 연립빌라 옥탑층을 구했어요. 거기서 1년 살았죠.

보통 2년 단위로 계약하는데, 왜 1년만 살았나요?

1년 하고 어머니가 아프셔서 일을 그만두고 부산에 6개월 정도 내려갔어요. 그러다 서울에 있는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되면서 다시 올라왔죠.

민정 씨랑 안 지 3~4년 즈음 됐는데, 그동안 민정 씨가 부산에 다시 내려갈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을 몇 번 봤어요. 부산에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일도 있었는데 왜 다시 서울에 왔나요?

우선 저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조금 어렵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한데요, 제가 느끼기에 부산 사람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선택을 추구하는데 디자인에서도 이런 면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미 잘 만들어진 무언가를 레퍼런스 삼아 쉽게, 고민하지 않고 일한다고 할까요. 일종의 ‘치열함’을 느끼기 힘든 환경이죠. 그래서 조금 더 열심히 하고, 무언가 잘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서울에서 좀 더 지내보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는 민정 씨는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직업만 해도 여러 개예요. 웨딩 회사 직원, 영어 강사, 사진 스튜디오 직원, 포토그래퍼,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성인 취미 미술 강사···. 

저는 사실 더 많은 직업을 거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게 재미있거든요. 일하는 분야를 바꾸는 게 스트레스도 아니고요. 늘 새로운 걸 하고 싶어요.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도 다양한 일을 했거든요. 소품 사러 시장도 돌아다니고, 인테리어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컴퓨터로 디자인 작업도 하고, 손으로 뭔가 만들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스타일링도 하고. 이 모든 일이 책상에 앉아서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재미있었어요.



민정 씨네 집 밖 풍경이 참 좋아요. 이 보증금과 월세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풍경이 아닐까요? 이 집에 산 지 얼마나 됐죠?

이제 2년 좀 넘었어요. 연희동에 있는 회사를 다니면서 이사 오게 된 건데,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좀 충격적이었어요. 남학생이 살았다고 들었는데, 벽에 코딱지가 묻어 있더라고요. 진짜 놀랐어요! 그런데 동네 느낌도, 집밖 풍경도 너무 좋았어요. 사실 이 집을 보기 전에 연세대 후문 쪽에서도 집을 봤어요. 같은 연희동이지만 느낌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여기가 양지면 거긴 음지인 느낌?(웃음)
 

어쩐지 연희동이 조선 시대 초에 수도가 될 뻔했던 동네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여기 걸어오는 거, 거의 등산 수준이잖아요. 주차도 보통 일이 아니고요.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집이 마음에 든 이유는 뭐예요?

저는 걷는 게 힘들지 않아요. 가끔 무겁게 장 볼 때 빼면요. 아, 연희동은 교통편이 좋지도 않죠. 오전 시간에는 버스 타고 가는 것보다 홍대까지 걸어가는 게 더 빠를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이 동네에 정이 들어서 이제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살 수 있을까 종종 생각하곤 해요. 사실 교통이 불편한 점도 일할 때는 불편하지만, 제 삶만 놓고 봤을 때는 별문제가 없거든요 오히려 이런 불편함이 존재한다는 게 좋아요.

듣다 보니 민정 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의 요건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집을 구하러 다닐 때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여러 집을 보게 되잖아요. 그럴 때 종종 사람 비참해지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집은 꺼리게 돼요. 뭔지 알죠?(웃음) 낡은 걸 떠나서 ‘생존’의 현실이 묻은 집은 피하고 싶었어요. 또 바람이 잘 통하고, 빛이 잘 드는 집을 구하고 싶었어요. 빛이 감정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요인이니까요.
 

지금 사는 집이 딱 그런걸요. 살아보니 어떤가요?

높은 언덕에 있고, 창이 넓은 집이라 계절마다 빛이 다르게 드는 걸 잘 알아차릴 수 있어요. 봄에는 커튼을 치지 않고 잠이 들면 아침에 침대 머리맡에 빛이 들기 시작해서 얼굴까지 비쳐요. 눈이 부셔 잠에서 깨는데 그 기분이 굉장히 좋아요. 그런데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역시 빛도 들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또렷하게 보이는 남산타워도 보이지 않아요. 그럼 기분이 조금 가라앉지요. 어릴 땐 개의치 않았는데, 요즘엔 흐린 날이 싫더라고요.


저는 아침에 설핏 잠에서 깼을 때 벽에 비친 빛의 모양을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계절마다 화단의 풀이 자란 정도에 따라 늘 달라지는데, 그 점이 이상하게 안심이 된달까요. 민정 씨에게 위로를 주는 시간대의 빛과 풍경도 있을 것 같아요.

불면증이 심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자주 밤을 새우다가 창밖으로 해 뜨는 걸 지켜봤어요. 그러면 하늘이 매일매일 너무 새롭게 아름다운 거예요. 하늘을 맞이하는 게 너무 기뻐서 마음이 다시 좋아지곤 했어요.
 

부동산 공인중개사 할아버지랑 친하게 지내던데, 뭔가 특별한 연이 있나 봐요. 

우선 이 집도 공인중개사 할아버지가 하시는 부동산에서 구했고요, 사무실도 할아버지네 부동산에서 구했어요. 제가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 스튜디오 공간이 있던 상태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공간을 구하는 단계에서 합류했거든요. 연희동에서 스튜디오로 쓸 주택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라 회사 대표님이랑 부동산에 자주 갔죠. 그렇게 공간을 구한 뒤 오가며 부동산에 들러서 종종 수다도 떨고 그랬어요.

연희동의 가장 좋은 점은 뭐예요?

우선 맛있는 빵집이 너무 많아!(웃음) 폴앤폴리나, 피터팬제과점, 쿠헨브로트에 자주 가요. 동네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쉽게 누릴 수 있어서 행복하죠. 저는 출근이 늦은 편인데요, 오전에 일찍 나가서 매뉴팩트 카페에서 책 보다가 출근하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고향인 부산에는 큰 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가 없어요. 웨딩 회사에서 일할 때 평창동에도 자주 갔는데, 연희동은 더 지대가 좋고 걷기 좋은 동네 같아요. 집 바로 뒤에 있는 산책로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 동네를 사랑하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해요. 주택 뒷마당인 듯 숨어 있는 길인데,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요. 언제 걸어도 마주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마치 개인적인 정원인 것 같아요.

저는 연희동의 겨울이 좋아요. 행인들 보라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일부러 밖에 설치해두는 집이 있거든요. 다른 계절에는 집마다 꽃 피는 시점을 기다리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뭔가를 가꾸는 풍경을 계속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더라고요.

맞아요. 주택 정원의 아름다움을 담 너머로 쉽게 누릴 수 있는 동네죠. 조금 과장하면, 날씨가 좋은 날엔 출근길도 산책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니까요. 동네 분들도 대부분 친절하시고요. 사진 스튜디오에 일할 때는 이웃 사람들이랑 인사하고 지내다가 집에 초대받기도 했어요.
 


혼자 사는 여성은 특히 집을 구할 때 치안을 간과할 수 없어요. 여성이 혼자 살기 좋은 동네의 조건, 집 주변 환경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관건인 것 같아요. 우선 술집이나 노래방 같은 유흥업소가 많은 곳은 밤에 확실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로등이 적은 어두운 골목길도요. 연희동에는 상대적으로 유흥업소가 적고, 전 대통령들이 살아서 주기적으로 순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리고 집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고요. 이런 점이 사는 데 상당히 안심돼요.

주방 상부장에도, 벽 곳곳에도 그림과 글, 사진 등이 많이 붙어 있는데 꼭 액자 같기도 하네요.

벽에 뭔가 붙이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요. 특별한 사진이 생기거나 기분 좋은 엽서를 받으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벽에 붙여놓는 편이에요.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계속 보고 싶은 것들이라 가끔 읽어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집에서 산 지 꽤 되어서 지금 붙어 있는 것들이 ‘현재의 나’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럼 과거의 민정 씨를 대변하는 거라고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인터뷰를 수락하고 집을 둘러보니까 ‘내 집이 과연 나를 대변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은 항상 현재의 제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과거의 나였던 것 정도의 느낌이랄까. 어떤 상황이 발생해서 몇 가지 짐만 가지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상상해봤거든요. 그런데 꼭 챙겨야 할 만큼 소중한 것이 딱히 없더라고요.(웃음) 물건을 챙긴다면 책이나, 직접 만든 도자기, 편지 정도. 
 

지금 사는 집이 과거의 총합이라면 민정 씨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요?

연희동 주택가를 걷다 보면··· 꿈이 여기저기 널려 있죠.(웃음) 음, 다음에 제가 살게 될 집은 과거의 총합으로 인식되는 집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집이면 좋겠어요.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특히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의자(팔걸이가 달리고, 깊숙하고 부드러운 의자)와 커튼 그리고 카펫이었다. 그는 직접 실내장식을 했는데, 이유는 ‘권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저도 그의 대답을 빌려 ‘권태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을 돕는 (넓은) 집’이라고 정리해볼게요.



저는 민정 씨가 그리는 그림을 좋아해요. 그런데 그림을 보다 보니 공간을 그린 그림이 많더라고요. 추상적인 그림에서도 ‘공간 분위기’가 느껴지곤 했어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공간을 그리는 게 재미있어요.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 중에서도 특히 빛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빛은 늦은 오후의 빛이에요. 그림자가 너무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은 빛, 아직도 ‘한낮’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빛요. 그런 빛은 이야기의 한중간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직 한창 무슨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시간대, 그 시간에 존재하는 어떤 공간인 거예요. 창을 통해 늦은 오후의 빛이 들고 있으며, 어딘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죠. 마치 영화의 인서트 컷처럼 장면 전후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싶은 그림을 제가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요. 처음엔 공간만 그렸는데 최근에는 사람을 넣고 있어요. 등장하는 사람도 한낮의 중대한 사건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언제고 사건에 뛰어들 수 있죠. 그런 이상한 지점, 경계에 있는 듯한 뭔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집에 사는 일이 민정 씨가 그리는 그림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지금 사는 동네와 집은 그림에 직접적인 영향보다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 같아요. 좀 더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거나, 편안하게 해준다거나 하는 요소요. 분명 제가 이 동네를 좋아하고, 집에서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으니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름 가까워지는 계절이면 아침 해가 침대까지 들어오고, 창을 열고 누우면 하늘이 한눈에 들어와요. 저는 특히 집의 모든 창을 활짝 열고, 즐겨 듣는 음악을 틀어놓고, 그림을 그리는 순간을 좋아해요. 창을 활짝 열고 있으면 안전한 야외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구조 다세대주택 연립빌라
면적 28㎡ (8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45만 원, 주차비 4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