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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우리는 괜찮습니다

Anyway, We’re Good

어쨌든 우리는 괜찮습니다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28세 / 윤숙현

최소 한끼 셰프


Conditions

지역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동
구조 다가구주택 스리룸 셰어하우스
면적 105㎡ (32평)
월세  13만 원

 

Room History

 

21세 대전시 동구 자양동, 다세대 빌라 투룸, 전세 2300만 원
23세 경상도 칠곡군 왜관읍, 다세대빌라 투룸, 전세 2500만 원

 

목포의 구도심엔 각 지역의 청년들이 모여 사는 ‘괜찮아마을’이 있다. 실제 주소나 지명이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그들이 만든 조밀한 연결망을 이으면 마을 형태가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채식 식당 ‘최소 한끼’를 운영하는 윤숙현이 있다. 호방한 성격에 섬세한 재미를 추구할 줄 아는 그녀는 헨젤과 그레텔이 뿌려놓은 자갈을 따라가듯 호기심 따라 목포까지 왔다. ‘가벼운 실패’와 ‘충만한 도전’이라는, 왠지 반대되는 듯한 무게를 경험하며 9개월간 지냈다. 나는 그녀 덕분에 동네를 구경하며 괜찮아마을의 식구를 만났는데, 눈앞에서 KTX가 지나가는 듯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인사말을 들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혼이 나간 채로 기차에 앉아 생각했다. 만약 이 마을을 책으로 쓴다면 수많은 대화로 아주 두껍겠지만,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마무리될 거라고. “어쨌든 우리는 괜찮습니다.”





드디어 괜찮아마을에 오게 됐네요. 이곳에 온 계기와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저는 작년 8월에 왔는데, 사실 이 마을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단지 쉬어도 좋고, 놀아도 괜찮고, 실패해도 된다는 문구에 끌려서 왔거든요. 그 당시 저는 UI 디자이너였는데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재미와 흥미가 중요한 사람이어서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면서 매일 울었죠. 여기는 이름 그대로인 곳이에요. 사람들과 밥해 먹고 술 마시면서 자신의 상처를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해보고 싶었지만 고민이 되어 미루어둔 일을 하나씩 이뤄가도록 도움을 주는 마을이죠.

그런데 ‘마을’이란 게 규모를 뜻하는 건가요, 아니면 공동체를 상징하는 건가요?
공동체를 뜻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물리적인 마을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집을 포함해 작업실이 있고, 사람이 있고, 저처럼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각자의 생활 영역이 생기다 보니까 그것을 어우르면 한 마을이 구성되는 것 같아요.

작년 8월에 왔다고 했는데, 계속 이곳에서 산 거예요?
작년 12월까지는 여관을 개조해서 만든 셰어하우스 ‘우진장’에서 지내다가 지금은 친구 세 명과 살고 있어요. 괜찮아마을의 6주 프로그램을 마치면 혼자 사는 분도 있지만, 마을을 만든 ‘공장공장’ 식구나 프로그램에서 만난 친구들과 집을 얻어 함께 살기도 해요.

괜찮아마을에 목포 사람이 많나요?
아니요, 두세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각 지역에서 온 분들이에요.



숙현 님은 원래 어디에서 살았는데요?
저는 부산사람인데, 중학생 때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 왔어요. 인덕원 학원가 인근에 살았어요. 외식경영을 전공했는데, 학교 다니기 싫어서 사업을 시작했거든요. 도로공사에서 지원하는 청년사업에 계획서가 선정되어 휴게소에서 ‘푸틴’이라는 캐나다식 감자튀김을 팔았어요. 그런데 너무 닫힌 공간이기도 하고 일이 재미없어서 그만두었어요. 전 재미없는 일은 안 하거든요.

괜찮아마을의 존재는 어떻게 알게 됐나요?
마을 자체를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나 괜찮아마을에 갈 거야! 거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많아!”라는 거예요. 그때는 그냥 잘 갔다 오라고 인사만 했는데 점점 그 마을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결국 사이트까지 살펴보게 됐고 “무언가 해보지 못한 걸 해볼 수 있다”는 글에 홀려서 저도 따라가게 됐지요. 어차피 6주 뒤에 떠날 수도 있으니까, 재미없는 회사에 다닐 바엔 좋은 추억이나 만들고 오자 싶었거든요.

그런데 입시 경쟁의 한복판인 학원가와 목포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잖아요. 처음 왔을 때 이 도시를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해요.
되게 촌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목포역에 내리면 엄청 큰 글씨의 간판이 많잖아요. 읍내 느낌이랄까? 그런데 첫날에 공장공장의 공장장(대표님)이 구도심을 구경시켜줬는데 되게 괜찮은 거예요. 워낙 옛날 분위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집의 형태와 색감이 예쁘게 느껴졌어요. 여기 84세 할머니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서 커피랑 떡을 파는 ‘한마을떡집’이 있거든요. 투어 왔을 때 그 할머니께서 말씀을 너무 재밌게 해주셔서 더 끌렸죠. 한 번쯤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동체’라는 건 동전의 양면 같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힘을 받으면 성장할 수 있지만, 적응하지 못하면 소외되기 십상이잖아요.
애초에 단타로 생각했어요. 마을에서 6주 살아보고 별로면 독일로 이민 가려고 했어요. 한마디로 가벼운 마음이었죠. 솔직히 짧은 만남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쉽게 잘해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꾸준히 사려 깊고 착했어요. 누군가 마음 상하는 일 없도록 서로 배려했어요. 지금도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 회의도 해요.

마을 회의 좋네요. 주로 어떤 얘기를 나누나요?
떨어져서 일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요즘 무엇이 고민인지··· 그런 이야기를 나눠요. 최근엔 마을을 잘 이어나가기 위한 고민에만 묶여있는 것 같아서 ‘우리 스스로 재밌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도전방’이라는 오늘의 목표를 채팅방에 올린 뒤 수행하는 일을 해요. 때로 익명의 편지를 쓰기도 하고요. 저희도 저희가 재밌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탐구하고 있지요.

사실 저는 괜찮아마을 소개글에서 “무엇이든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문장이 비현실적으로 와 닿았거든요. 그런데 여기 현실로 이룬 사람이 있네요.
맞아요. 그런데 제가 이곳에 온 것도 좀 비현실적이잖아요?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사람이 굳이 목로로 이사 올 일은 별로 없잖아요. 그리고 목포로 사람들을 부르는 것 자체가 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럼 그럴 바에 비현실적인 동네에서 살면서 뭐라도 해보자 싶더라고요. 저는 몸을 던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최소 한끼’는 어떤 과정을 통해 열었나요?
처음 괜찮아마을에 와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발표할 때, 소수자에 관심이 많아서 채식에 대한 장벽을 낮추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채소 요리도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만들고 싶다고요. 그런데 마침 한 친구가 사람들이랑 느긋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심야 식당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누군가에게 좋은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하고, 또 어떤 친구는 몸이 안 좋아서 3년 동안 채식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네 명이 모여서 채식 식당을 열게 됐어요.

그럼 공동대표인 건가요?
대표는 한 명이에요. 서로가 공동대표의 이점을 느끼지 못하고, 각자의 전문 영역이 있다 보니까 그 역할에 몰두하면 좋겠다 싶어서요. 대표는 우리 네 명 중 가장 어린 민지라는 친구예요.

이제 막 가오픈 시기가 끝났죠?
네, 다음 주부터 정식 오픈을 하고요. 그런데 오픈하기 전에 1월부터 4월까지 되게 힘들었어요. 지옥이었죠. 돈이 없다 보니까 인건비를 줄이려고 거의 모든 걸 저희가 했어요. 타일 붙이고, 도장하고, 페인트칠하고···. 체력적으로 힘든데 브랜딩도 생각해야 하고 음식 테이스트도 해야 하니까 서로 예민해지더라고요. 그때 생각하면···.(웃음)

짧게나마 가게를 운영해보니 어떻던가요?
처음에 저희가 너무 잘될 줄 알았어요.(웃음) 목포에 젊은 층을 사로잡을 만큼 브랜딩이 잘된 채식 식당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지인들의 바람도 한몫했고요. 목포는 오픈발이 심하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저흰 또 그 얘기 듣고 “아, 사람이 너무 많은 건 싫은데” 하면서 홍보를 거의 안 했죠. 우리는 우리의 리듬대로 가자면서.(웃음)

그놈의 리듬!(웃음)
그러게요. 그 리듬을 따르다 보니 손님이 안 오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이틀이 지나니까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본격적으로 홍보를 시작하고, 지인도 소환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손님이 늘어나고, 주민도 관심을 가져주더라고요.



갑자기 궁금한데, 그냥 길을 지나가다가도 괜찮아마을의 멤버를 만나지 않나요?
맞아요. 괜찮아마을 사람들이 20명 정도 되니까요. 식당을 가도 만나고, 다이소를 가도 만나죠. 제가 서울에 있었으면 핫 플레이스를 돌아다니느라 동네에 있을 틈이 없었을 텐데, 목포에선 딱히 그런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요즘엔 제 방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집순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숙현 님처럼 꿈을 실현한 분이 더 있을까요?
그럼요. 바다가 보이는 집을 개조해서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고,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 공간을 총괄하는 매니저 친구도 있고, 도자기 작업실을 운영하는 친구도 있어요.

괜찮아마을 역시 완전한 공동체일 순 없겠지만, 기성세대의 공동체 질서와 확실히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음, 굳이 질서라고 하면 서로의 나이를 묻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꼰대질하지 않는 것? 서로의 사생활에 집착하면서 파고들지 않아요.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 회의를 하는 것 빼고는 그냥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전부인 것 같아요.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 경제활동을 하는지요?
지금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일이 되게 많아요. 서울이나 수도권에선 업체 자체가 많은데 목포 같은 소도시는 딱히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제의가 들어오면 각자 능력에 맞는 일을 해요. 그런 식으로 <매거진 섬>이라는 잡지도 만들었고요. 덕분에 자신의 능력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지요.

함께여서 힘을 얻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맞아요. 일단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죠. 백수로 있을 때나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떤 사람들은 “그건 네가 찾아 나서야 하고, 그걸 못 하는 네가 한심한 거야”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당신이 지닌 능력이 있는데 아직 발휘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용기를 주고, 일단 해보라고 사기를 북돋아줘요.



지금의 사회가 청년들의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나요?
실패요? 음, 저 자체도 누군가의 실패를 재단하는 걸 되게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애초에 엄마 아빠한테 “서른다섯 살까지 내 마음대로 살 거니까 건들지 마!”라고 주입식으로 얘기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도 “그래서 어떻게 살려고 해?”라는 식의 반응은 없었어요.

서울에서의 실패와 지방에서의 실패가 무게가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서울에서 실패하면 보는 눈이 많아서 더 쪽팔리지 않을까요?(웃음) 일단 관심도가 다르잖아요. 그거 빼고는··· 실패하면 실패하는 거죠, 뭐.

만약 괜찮아마을이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어, 그럼 질타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어휴, 실패자들!” 이러면서. 저희가 가끔 네이버 뉴스 기사에 뜰 때가 있는데, 댓글 반절이 이런 반응이에요. “진짜 사회에 적응 못 하는 애들이 다 지방에 내려가서 산다.” 혹은 “그런 걸로 합리화하지 마라.” 아마 서울에 살았으면 그런 질타가 더 많지 않았을까요? 눈치도 많이 보고요.

마을을 운영하는 데 지방이라는 특수성이 도움이 좀 됐겠네요?
어느 정도요. 왜냐하면 서울에선 이미 모든 분야에서 과포화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그릴 수 있는 도화지가 많은 것 같아요. 새롭게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은? 괜찮아마을이 지방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무작위 대상으로 하는 위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에세이 서적만 봐도 힐링, 괜찮아 등 위로의 단어들로 점철되어 있잖아요.
맞아요, 저도 별로 안 좋아해요. 애초에 관심도 없고요. 왜 자꾸 억지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솔직히 그런 것들이 완전히 위로해준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냥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여기도 ‘괜찮아’마을이잖아요.
이게 좀 모순적인데, 그때는 제 마음이 힘들어서 그런지 그렇게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웃음) 어차피 친구도 같이 가니까 좀 편할 거라 생각했죠.

이 마을은 무엇이 괜찮다고 말하는 걸까요?
저희끼리도 논의를 많이 했어요. 괜찮지 않은데 왜 괜찮다고 말하느냐 하면서.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고, 괜찮아도 괜찮은 거라고. 우리가 어떻든 결국 다 괜찮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한 거라고.

숙현 님이 할머니가 되면 이 마을을 어떻게 회상할 것 같아요?
그냥 별난 사람들 모여서 살았던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마을 사람들이 목포를 떠나지 않는 건 ‘연대’라는 이유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디 가서 이렇게 개성 강하고 착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잘 먹고, 잘 살았다고 떠올릴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동
구조 다가구주택 스리룸 셰어하우스
면적 105㎡ (32평)
월세  13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