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mark wordmark

logo logo

당근잎이 데려다준 곳

The Place Where The Carrot Leaf Took Me

당근잎이 데려다준 곳

Editor.Hyuna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29세 / 이윤선

농부


Conditions

지역 충남 홍성군 홍동면
구조 상가주택
면적 165㎡ (50평)
월세  50만 원

 

Room History

 

17세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 오피스텔 복층 원룸, 7평(보증금 1000만 원, 월세 50만 원)
22세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다세대빌라 투룸, 15평(보증금은 동거인이 부담, 월세 20만 원)
23세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다세대빌라 투룸, 15평 (보증금은 동거인이 부담, 월세 20만 원
24세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원룸텔, 5평(보증금 1000만 원, 월세 30만 원)
25세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단독주택 별채 투룸, 15평(보증금은 동거인이 부담, 월세 20만 원)
25세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다세대빌라 스리룸 셰어하우스, 18평(보증금 1000만 원, 월세 70만 원)
26세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다세대빌라 투룸, 13평(보증금 500만 원, 월세 25만 원)

언젠가부터 젊은이들이 귀농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하는 귀농이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장소의 이동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실험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가만 귀를 기울이면 ‘홍성’이라는 도시 이름이 자주 들렸다. 홍성군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귀농·귀촌 정책을 펼치는 곳이다. ‘피가 끓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던 이윤선은 스물일곱의 어느 날 이곳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겼다. 우연히 밭에서 본 당근잎 때문이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곳 생활을 엿보다가 홍성까지 오게 되었네요. 윤선 씨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저는 지금 농장에서 일하고 ‘채소생활’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농장에서 자라는 작물과 여러 가지 작물을 모아 ‘채소 박스’를 판매해요. 올해 문을 연 상가 공간에서는 예약제 식사를 진행해보려고 준비 중이고, 앞으로도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을 진행할 생각이에요. 저는 단순한 취식을 떠나 음식을 먹는 경험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작은​ ​채소​’를​ ​기르는​ ‘​작은​ ​농장​’이라고​ ​쓴 걸 봤는데, 작은​ ​채소란​ ​어떤​ ​의미인가요​?
실제로 말 그대로​ ​작은​ ​채소입니다​.(​웃음​) ​우리나라는​ ​특히​ ​큰​ ​게​ ​좋은​ ​상품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빠르고 ​크게​ ​키우려고​ ​하는데,​ ​제가​ ​일하는​ ​농장에서는​ 작물을 ​덜​ ​생산하는​ ​대신​ ​다양한 품종을​ ​기르려고​ ​해요​. ​미국에서는​ ​이를​ ​마켓​ ​가드닝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Grow better, not bigger’​이고요​.

서울에서 오래 일하다 홍성으로 내려왔다고 들었어요. 서울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저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라는 대안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졸업 전에는 존경하던 연출가의 인턴으로 일했고요. 굉장히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실제로 일을 시작해보니 ‘이렇게는 못 살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연이나 무대 관련 일을 하면 프로젝트를 위해 사람들과 한 달 정도 동고동락해야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냥 일상을 살고 싶었거든요. 그 마음이 간절해져서 동생이 유학 중인 독일에 가려고 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10년 전에 만난 선생님을 다시 만나 홍성에 오게 된 거예요. 사람들에게는 그냥 당근잎 때문에 왔다고 하지만요.

메일로 귀농 계기를 물었을 때도 “당근잎이 그렇게 생긴 줄 몰랐다”고 답했어요. 당근잎이 어쩌다 홍성행을 재촉한 건가요?
지금 함께 일하는 교육농연구소의 박형일 선생님이 밭에서 캔 당근을 보여주셨는데, 당근잎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사실 당근에 잎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마트에서는 잎이 잘린 당근만 보니까요. 나름 재료나 요리에 관심이 많아 케이터링도 했는데, 그 잎을 보고는 여태껏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지요. 그때 독일로 도망치지 않고 홍성에 오면 내 문제를 직면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독일로 떠나는 게 ‘도망치는 것’이고, 홍성으로 오는 것은 ‘직면하는 것’이라고 느낀 이유는 무얼까요?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경제적 부분이나 저녁이 있는 삶을 생각했을 때 부족한 부분이 크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독일에 가면 다르지 않을까? 적당히 아르바이트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한 거죠. 제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또 다른 환상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독일이 아닌 홍성을 선택하는 일이 지금 내가 가진 이 문제를 직면하겠다는 의미로 다가왔지요. 홍성에서의 생활이 3년이 된 지금도 경제적으로는 가장 어려운 상황이지만,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요.



이사를 굉장히 자주 했는데, 잦은 이사가 ‘독일로 유학 가야겠다’는 결심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나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자신이 없었던 거죠. 아무래도 동생이 독일에서 유학 중이니 집 걱정은 덜해도 됐고요.

지금 사는 50평에 달하는 공간의 월세가 50만 원이라는 데 깜짝 놀랐어요. 홍성군 시내가 아니라면 집 구하는 방식도 다를 것 같은데, 어때요?
시골에서는 귀농한 사람이 직접 집을 구하기 힘들어요. 제가 사는 동네는 귀농인이 많은 편이라 이런 일에 도움을 주는 ‘마을활력소’라는 단체가 있지만, 부동산이 없어서 아는 사람을 통하거나 이장님을 통해 집을 구해야 하죠.

이장님이 정보의 핵심이군요.(웃음)
맞아요! 서울과는 정말 다르죠. 다른 동네에 사는 제 친구는 이 집보다 큰 평수에서 사는데도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 원만 내요. 대신 연세로 한 번에 내죠. 여기서는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에 평균값을 내기도 힘들어요. 집주인 마음이죠. 어떤 동네에서는 귀농인이 현지 물가를 잘 모르니 집 조건이 좋지 않은데도 서울 월세로 부르기도 하고요.

집이 상가 공간과 주거 공간이 이어진 특이한 형태인데요, 상가 공간 운영을 염두에 두고 구한 건가요?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졸업 전시를 마치고 바로 홍성으로 내려왔는데, 당장 살 곳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지금 같이 일하고 계신 선생님께서 집을 알아봐주셨어요. 주거 공간만 임대하고 싶었는데, 계약 조건이 상가 공간을 함께 임대하는 거였어요. 처음엔 부담감이 컸죠. 낯선 도시에 와서 적응하기도 힘든데 책임질 공간까지 생겼으니까요.

지금은 꽤 정비된 모습인데, 처음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이제 홍성에 내려온 지 3년 차인데, 얼마 전부터 상가 공간을 외부에 개방했어요. 사실 이 공간을 고쳐나가는 과정이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집도 비가 새서 전체 방수 공사를 해야 했고, 상가 공간을 정비하는 데도 많은 비용이 들었고요. 사실 도시에 살면 제가 돈을 내고 사람을 부르든 집주인이 해주든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딱히 말할 곳이 없더라고요.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뭐랄까 좀 서글픈 마음이 들었죠.



삶의 터전을 바꾼다는 건 단순히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 하는 일, 먹는 것 등 전반적인 모든 것이 바뀌는 경험이잖아요. 서울에서 홍성으로 오면서 윤선 씨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처음 홍성에 올 때 깊이 생각하고 내려온 게 아니라, 오히려 오고 나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평생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았는데, 이곳에 와서는 그럴 수 없었지요.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농사일을 하다 보니 제 리듬을 자연에 맡겨야 했죠. 첫해에는 몸도 많이 아팠어요. 그때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게 마음의 문제라고 치부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리듬이 달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프로젝트에 맞춰 몸을 끼워 넣고 밤에 작업하고 낮에 자는 게 일상이었는데, 여기서는 해의 리듬에 맞춰서 몸을 써야 하니까요. 거의 훈련하는 느낌이었어요.

더 큰 흐름에 나를 맞추는 일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저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건 안 하는 편이었거든요. 본능적으로 재미를 느끼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해야 해?’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여기 와서 3년 동안은 사실 제가 하고 싶지 않은 일만 한 것 같아요.(웃음) 홍성에 내려온 후에는 제가 하고 싶은 일보다 제가 하는 일의 의미가 더 중요했어요. 예전처럼 작업을 시작할 때 ‘이건 무조건 해야 해’ 하는 피 끓는 느낌도 사라졌고요.

‘재미있고, 끌리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 방식이 어떤 면에서는 좋기도 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분명 한계가 있었을 거예요. 지금 ‘의미 있기 때문에 싫어도 나를 맞춰가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유익이 있다고 느끼나요?
현실을 사는 느낌이에요. 전에는 뜬구름을 잡으며 사는 느낌이었거든요. 현실에 발을 못 디디고 약간 붕 떠 있는 삶 같았어요. 그때는 일상을 부분적으로 느꼈다면, 지금은 일상을 아주 세밀하게 느끼고 있어요. 평면적이던 일상이 입체적인 모습이 됐다고나 할까요. 자연과 맞닿아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전과는 다른 아주 작은 변화에도 반응해요. 해가 일찍 뜨고 지는 것, 계절이 오고 있는 것, 무르익어가는 것 등을 느낄 수 있죠. 말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늘 거절을 못 해서 애매하게 말하거나 말끝을 흐리곤 했는데, 지금은 제 의견을 조금 더 명확하게 말하는 편이에요. 재미있고, 끌리고, 하고 싶은 일만 할 때는 타인의 반응을 많이 의식했어요. 이게 나에게만 재밌는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고요. 지금은 타인보다는 저 자신에게 집중하는 편이에요. ‘의미 있기 때문에 싫어도 나를 맞춰가는 법’, 문구만 보면 자기 자신을 더 괴롭히는 일 같지만 신기하게 저는 그 과정이 나를 알아가고 탐구하고 친해지는 시간이 되었어요.

꼭 열심히 단련하다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수도승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네요. 농사란 게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요.
지난 3년은 그랬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질 것 같아요. 그동안 배운 농사를 통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딱 그 전환기에 있는 것 같아요.



홍성이라는 도시는 꼭 작은 커뮤니티 같아요. 원주민뿐 아니라 이주민의 커뮤니티도 공고하고요. 윤선 씨가 거주하는 홍동면의 이웃은 어떤 분들인가요?
이곳 사람들은 마을에 무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도서관, 병원, 생협 등 다양한 협동조합을 직접 만드는 분들이에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행동하죠. 사실 저는 그렇게 도덕적인 사람도 아니고, 이상적인 사람도 아니라 같이 일하다 보면 불만이 생길 때도 있어요. 그리고 당장 먹고살아야 하니까요.(웃음) 하지만 그런 점을 떠나서 보면 ‘어떻게 저런 어른이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존경스러운 분이 많아요.

홍성에는 귀농한 젊은이도 굉장히 많은데, 삶의 어떤 부분을 나누고 있는지 궁금해요.
2018년에 청년 농업인·귀농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사업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농업으로 먹고살기 어려운 터라 지원 사업이 많거든요. 그때 만난 친구들과​ 친해져서 공동 텃밭도 가꾸고, 일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누죠. 다른 친구는 논농사를 하면서 소를 키​우기도 해요. 사실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친구들은 일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거든요. 저희끼리는 매일 “살아남자”, “버티자”라는 얘기를 해요.

도시에 살면 귀농이나 시골살이를 낭만적으로 그리는 사람도 많아요. 젊은 여성 혼자 시골에 살아보니 어떤가요?
사실 여성 혼자라면 시골살이를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산책을 좋아하고 걸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인데, 여기서는 밤에 돌아다닐 수가 없어요. 집에 혼자 있을 때 사람 인기척이 들리면 별별 생각이 다 들죠. 처음 집을 수리할 때에도 일하시는 분이 여자 혼자 농촌에서 못 산다고 저더러 빨리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열심히 살겠다는 사람한테 왜 그러지?’ 싶었는데, 살아보니 낭만에 기대어 오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농사짓는 일은 정말 고되고, 바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않거든요. 물론 자연이 주는 여유가 있지만, 그건 길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존재해요. 시시각각 해가 변하고 빛이 변하는 것처럼요.

저는 사실 익명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도시를 좋아하는데, 시골에 살면 어느 정도의 익명성을 포기해야만 할 것 같아요.
다행히 이 동네는 귀농한 사람이 많아서 어느 정도의 익명성이 존재하지만, 원주민이 사는 동네는 분명 어려운 부분이 있죠.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웃들이 이야기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거나 집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사는 동네는 도시와 농촌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아요.



농부에게도 출퇴근 시간이 있나요?
새벽에 매일 농장에 가요. 요즘은 날이 더워져서 새벽 5시까지 가서 일하고, 오전 9시 전에 돌아와요. 한여름이 되면 새벽 4시에 갈 때도 있어요. 7시만 돼도 엄청 덥거든요.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농사를 통해 두 번 좌절을 겪었다고 들었어요.
좌절의 첫 번째 이유는 체력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쓸모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잘할 수 있는 게 아닌 일을 계속하다 보니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요.

지금은 어때요? 잘하지 못하던 실력이 좀 늘었는지, 아무것도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진 건지 궁금해요.
둘 다요. 처음 작물을 인스타그램으로 판매할 때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지금은 판매가 대부분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그동안 내가 한 일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런 데서 오는 뿌듯함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야 결과물이 조금씩 나오고 있거든요. 또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건 잊어버리고 제철 음식만 기다리게 돼요.(웃음) 저는 ​아직도​ ​시기마다​ ​작물 맛이​ ​다른 게​​ 너무 ​​신기해요.​ ​비트는​ ​봄가을에 ​​심는데​ ​봄에는 ​​잼이나 ​​시럽 ​​등​​ 디저트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당도가​ ​높고,​ ​가을에는​ ​후무스를​ ​만들기​ ​좋아요​. ​제가​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전혀 몰랐고​, ​느껴보지도​ ​못했을​ ​감각이죠​. ​사실​ ​농촌에​ ​와서​ ​여름이​ ​가장​ ​힘들었어요​. ​체력도​ ​빨리 소진되고​ ​더우니까요.​ ​그런데​​ 여름에 ​​나오는 ​​토마토와 ​​옥수수​​는 ​​정말 ​​맛있어요​. ​갓​​ 딴​ ​옥수수요​. 요즘은 ​​여름에​​ 몸이​​ 힘들었던​​ 건​​ 생각이​​ 안 나고,​ ​여름이​​ 되면​​ 옥수수를 ​​먹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어요​.



윤선 씨는 이제 수확기에 접어든 것 같네요. 윤선 씨가 일본인 노부부가 쓴《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라는 책에서 보고 느끼고 감동하는 것이 요즘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말 같다고 인스타그램에 쓴 걸 봤어요. 요즘 보고 느끼고 감동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집 앞에 밀밭이 있어요. 밀밭에 해가 질 때를 가장 좋아해요. 색이 변하는 모습이 정말 놀랍거든요. 여름에는 해가 길어서 7~8시쯤, 겨울에는 5시쯤 그 모습을 볼 수 있죠. 또 밀을 수확한 후에는 메밀을 심는데, 10월이면 하얀 메밀꽃이 피어요.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순간순간 변하는 풍경 자체가 지금을 살게 해주는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충남 홍성군 홍동면
구조 상가주택
면적 165㎡ (50평)
월세  5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