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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익어가는 계절

Season When Home Ripens

집이 익어가는 계절

Editor.Hyuna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황지수, 황재호

30세, 32세 / '경우의 수' 요리사, 회사원


Conditions

지역 서울 마포구 성산동
구조 다세대 빌라
면적 약 43㎡(13평)
보증금 1억 중반대

Room History

지수

24세 인천시 서구 공촌동 아파트
26세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셰어하우스
28세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원룸
28세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빌라

재호

24세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아파트
26세 경기도 수원시 율전동 원룸
28세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아파트
31세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빌라

애쓰지 않아도 계절은 변하고, 지나가고, 다시 찾아온다.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계절을 때마다 식탁 위로 불러내는 요리사가 있다. 부부의 베란다에는 푸른 무청과 귤껍질이 마르고, 선반에는 홍시와 감식초가 익어간다. 계절의 변화를 손끝으로 매만지는 그들의 작은 집에 쌓인 이야기가 궁금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수) ‘경우의 수’라는 요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종종 전 직장인 오가닉 레스토랑 ‘수카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재호) 저는 통신사에서 미디어 관련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어요.

지수 씨는 인터뷰에서 셰프라는 말을 잘 안 쓰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지수) 우선 요리사라는 말이 더 좋고, 아직 오래 일한 것 같지 않아서요. 그냥 ‘요리하는 사람’ 정도가 지금의 저에게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요.

집이 성산동인데요, 행정구역상 지명은 아니지만 성미산 인근에 사는 주민 중심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성미산 마을’이라 부르더라고요. 특별히 이 동네에 신혼집을 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지수) 저는 원래 마포구 연남동의 셰어하우스에 살며 매니저 일을 했어요. 그런데 공사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살기가 힘들더라고요. 조용한 주택가로 이사 가려고 여러 곳을 알아봤어요. 그러다 지인이 하는 성산동 책방에 놀러 와서 이 언덕을 둘러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렇게 인연이 닿아서 집을 구해 혼자 살다가, 신혼집을 구할 때 이 골목으로 이사 왔어요.

성미산 지역 커뮤니티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지수) 저는 요리하는 사람이라 늘 자연 순환 채소를 구하려고 해요. 그런데 이 집에서 생협이 가깝고, 조합원들이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더라고요. 마을 조합병원도 있고, 아직 자녀는 없지만 공동육아 커뮤니티도 잘되어 있고요. 도심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공동체라 좋았어요.




두 분은 집을 구할 때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요?
(재호) 저는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다 보니 지리적으로는 교통의 편리성이 제일 중요했어요. 두 번째로는 예산안에 들어오는 집을 찾는 거였고요, 세 번째로는 물 새는 곳 없고, 수압 세고, 보일러 잘되는 거?(웃음) 옛날에 살던 집에서 수압이 약해 괴로웠던 적이 있거든요. 한번 계약하면 2년은 살아야 하니까요.
(지수) 저는 주로 마포구 쪽에서 일하다 보니 친구나 동료들 대부분 이 근처에 있어요. 그래서 여기를 떠나는 건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집을 구하다 보면 부엌과 화장실이 문제인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저는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집을 구할 때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이 있나요?
(지수) 요리하려면 통풍이 정말 중요해요. 가정용 덕트는 사실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요리를 하려면 창문이 크고 맞바람이 칠 수 있는 구조여야 해요. 그런데 요즘 집 구조는 방을 돌아서 통풍되는 경우가 많아요. 또 1~2인 가구는 요리를 점점 안 하는 추세라 신축 건물은 주방을 일부러 작게 만든대요. 이런 집은 금액을 맞추기도 어렵지만, 사실 제 마음에 들지도 않아요.(웃음) 이 집은 부엌 창과 침실 창을 통해 통풍이 굉장히 잘돼서 좋았죠.
(재호) 사람마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 집을 구할 때 더 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모든 부동산 중개사가 개별 집을 정확히 알고 설명해주는 건 아니거든요. 이 집도 처음에는 언덕길에 있다고 안 보여주려 했어요. 그런데 지수가 이미 이 동네에 살고 있었고, 위치를 보니 괜찮을 것 같아서 보여달라고 한 거죠. 부동산 중개사의 말에 의존하는 것보다 여건이 맞으면 다 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동네를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겠네요.
(지수) 저는 낯선 동네에 가면 일부러라도 산책을 하려고 해요. 큰 나무가 있는지, 주변에 학교가 있는지 찾아봐요. 아이들이 있다는 건 먹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가정이 많다는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좋은 식자재를 파는 곳이 들어와요. 학교 주변은 비교적 안전하고, 유흥가도 없고요. 그리고 하교할 때 아이들이 뛰어가는 소리가 엄청 좋거든요.(웃음)




가족과 살던 집에서는 취향대로 꾸미며 살 순 없었을 테고, 지수 씨는 요리사이니 특별히 꿈꾸던 부엌이 있었을 것 같아요.
(지수) 저는 일하면서 틈틈이 그릇을 많이 모았어요. 자취할 때는 그릇 사진도 인스타그램에 자주 올렸고요. 그런데 먼지가 자꾸 쌓이니까 유리장에 넣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죠. 싱크대도 컸으면 했고요. 지금 집에서는 이런 바람을 조금씩 이뤄가고 있죠.
(재호) 지수가 혼자 살던 집에서는 부엌이 작아 식탁이나 오븐을 놓을 공간이 없었어요. 사실 이 집도 평수는 비슷하지만, 구조가 훨씬 잘 나온 편이죠. 지수가 요리를 하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부엌을 내주고, 대신 저는 침실 옆 작은 방을 얻었죠.(웃음)

작은 방은 온전히 재호 씨 공간이군요. 피아노도 있네요?
(재호) 제가 좋아하는 게 많거든요. 게임도 하고, 음악도 듣고, 직접 뭘 만들기도 하고, 공부할 때도 있고요. 긴 책상을 하나 뒀는데 나름대로 반은 노는 공간, 반은 공부하는 공간이에요.

이 집에서 두 분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지수) 식탁에서 같이 밥 먹고 얘기하는 걸 가장 좋아해요. 또 여름에는 침실 창밖으로 나무가 가득한데요, 누워 있어도 나무가 다 보이고 빛이 들어와요. 그땐 참 행복하죠.



저는 부엌은 어쩐지 은밀한 살림처럼 느껴져 친구들이 와서 요리할 때 도와준다고 해도 그냥 있으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지수 씨는 친구들과 함께 요리하는 과정을 굉장히 즐기는 것 같더라고요. 장점이 뭔가요?
(지수) 같이 하면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나와서 좋아요! 저도 일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하는 걸 좋아하지만요. 친구들이 왔을 때 하는 요리는 일이 아니니 긴장을 놓는다고 할까요.
(재호) 그런데 저는 못 하게 해요.(웃음)

왜요?
(지수) 부엌은 제게도 굉장히 사적인 공간이에요. 다만 주변 친구들은 다 저와 일을 해보거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가능한 거죠. 주방 도구도 다 성격에 맞게 관리하고, 제자리에 넣어둬야 하는데 ‘남편이 함부로 쓰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서요. 그래서 설거지도 잘 못하게 해요. 유리그릇이 많아서 깰까 봐요.(웃음)

생일날 아버지가 미역국 레시피를 적어줬다는 글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처음 요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지수) 우선 아빠도 요리사이시고요, 엄마는 아빠를 만나면서 요리를 배우게 됐어요. 엄마도 엄마 스타일의 요리가 있고, 아빠도 아빠 스타일이 있어서 각자 식당을 운영하신 적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어릴 때 주말에 친구들을 못 만났어요. 주말이면 항상 아빠가 좋아하는 식자재 시장에 가서 같이 장을 보고, 요리도 했죠.

저는 지수 씨가 ‘작업’이라고 표현하는 재료 손질이나 단순노동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게 어릴 때부터 이어진 거군요.
(지수) 네, 사실 아빠가 하는 작업과 제 작업은 조금 다르지만, 모습은 비슷하죠. 아빠가 요리하면 저랑 동생은 재료를 다듬으며 주방에서 놀았어요. 세끼를 그렇게 직접 하면 하루가 다 가고요.(웃음) 근데 그게 저한테는 익숙한 일이었어요. 그렇게 자라서 요리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 프로젝트에 집중한 이유도 궁금해요.
(지수) 당시 결혼 준비도 겹치고, 일을 조금 쉬고 싶기도 했어요. 또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하면 안정감은 있지만 스스로 개발하거나 성장하기엔 한계가 있거든요. 일할 때는 가게에 어울리는 메뉴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다행히 ‘수카라’는 비슷한 취향의 요리를 할 수 있었던 곳이지만, 저에게는 더 파고들 시간이 필요했어요. 제 요리를 포트폴리오처럼 모아놓은 게 ‘경우의 수’인데, 요즘 이 작업에 집중하며 만족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 계절에만 나는 재료와 그 계절에만 만끽할 수 있는 맛이 있으니 요리하는 사람에게는 계절의 감각이 더욱 예민하게 작용할 것 같아요.
(지수) 맞아요. 그 시기를 놓치면 재료를 구할 수 없고, 맛있게 저장해야 하니까요. 저는 달력에 그 달에 나오는 재료를 미리 써놓고 주문하는 편이에요. 농부들과도 계속 연락해야 하니 달력이 항상 꽉 차 있죠. 결혼 준비하면서 한 3개월을 부엌에 얼씬도 안 했거든요. 그런데 되게 불안했어요. 몸은 편하긴 한데 먹을 게 없다는 생각을 하더라고요.



휴대폰도 없고, TV도 없고, 함께 나눌 음식과 맥주 한 잔이 놓인 식탁 사진이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지수) 사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되도록 밥 먹을 때는 휴대폰을 꺼내지 않으려 하죠.
(재호) 저는 통신사에서 일하니까 휴대폰을 손에 계속 쥐고 있는 게 습관이에요. 사실 전 큰 TV도 두고 싶었고, 잠들기 전에도 유튜브를 보거나 미국 드라마를 보는 편이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변했죠. 요즘은 굉장히 일찍 자요.

재호 씨는 요리하는 사람을 만나서 생긴 변화가 있나요?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거나 혹은 요리 실력이 늘었다거나?
(재호) 사실 저는 요리를 당연히 먹기 위해 하는 일, 혹은 단순노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수가 요리하는 걸 지켜보니 요리도 일종의 예술이더라고요. 창의력을 요하는 일이고요. 그걸 깨닫고 관점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일부러 제가 지수한테 결혼할 즈음 휴식을 더 권하기도 했고요. 이 공간도 부엌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지수에게는 작업실이나 다름없으니 더 배려해주고 싶었어요. 지수가 원하는 요리를 하려면 여유가 필요할 거고, 사람의 마음과 분위기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1~2인 가구는 보통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재료를 사서 요리하려면 사 먹는 것보다 비쌀 때가 많고, 막상 재료를 사도 다 못 먹는 경우도 있죠. 1~2인 가구를 위한 팁을 줄 수 있나요?
(지수) 우선 저장법이나 발효법을 알면 재료를 낭비하는 일이 줄어요. 혼자 요리할 때는 적정량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일할 때는 계산해도 남을 때가 있거든요. 수카라에서 일하면서 재료 저장법, 발효법, 건조법 등을 많이 배웠어요. 특별한 건 아니고 남은 재료는 말리거나, 소금에 절이거나, 과일의 경우 잼을 만드는 거죠. 똑같은 재료도 다르게 맛보는 방법을 알면 버리는 게 줄어들어요.



지수 씨는 좋은 재료란 뭐라고 생각하나요?
(지수)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확인할 수 있고, 자연 순환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키우는 채소가 좋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과하게 먹으려고 하면 농업 방식도 달라져요. 사시사철 원하는 재료를 먹기 위해 하우스 재배를 시작하면 온실이 필요하고, 가스를 사용해야 하니 비용이 올라가고, 유통 방식이 바뀌고, 이런 재배 방식에 맞는 종자도 개량해야 하죠.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현대사회에서는 이미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일이죠. 이상적인 생각일지라도 자연의 흐름에 맞게 농사짓는 농부를 찾으려고 노력해요. 아직 작은 시장이지만 그 시장을 계속 찾아줘야 지속할 수 있으니까요.

듣다 보니 주로 장은 어디서 보는지 궁금해지네요.
(지수) 연희동 사러가마트나 성산동 생협을 주로 이용해요. 시장에서 살 때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는 알기 어려우니까요. 저도 몇 년 동안 꼭 유기농만 먹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많았어요. 요리할 때 재료 선택도 어려워지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잖아요. 지금은 농약을 공부하는 분을 만나 이야기도 듣고, 다양한 사람을 통해 제 안의 궁금증을 해소해가는 중이에요. 유기농이 무조건 안전하다는 생각도 위험하고, 요리사로서 재료를 어떻게 조리해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지 대응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땅을 모두 유기농 재배지로 바꿀 수도 없는데, 이전에는 제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한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알고 고를 수 있다면 좋지만, 여의치 않을 땐 안전하고 깨끗하게 조리해 먹으면서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외할머니께서 옷, 비누, 치약, 화장품까지 다 만들어 쓰시던 게 어릴 때는 불편해 보였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좋은 때가 찾아온 것 같다고 쓴 글을 봤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나요?
(지수)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동의보감》이었어요. 머리도 직접 자르시고, 옷도 만들어 입으시고, 직접 살구씨 기름을 짜서 화장품으로 쓰셨죠. 할머니가 쓰는 모든 재료는 아는 농부들에게 받으신 거고요. 어느 날은 방앗잎을 빻아서 소금이랑 섞어 치약을 만드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할머니를 놀렸어요. 할머니의 모든 시도가 성공하진 않거든요.(웃음) 그런데 실제로 치과에 안 갈 정도로 이도 튼튼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생선을 통째로 씹어 드시고 그랬어요. 저는 그냥 좋은 제품을 사서 쓰는 게 좋았는데, 나이가 들고 생각이 바뀌면서 그때 기억이 많이 나더라고요. 할머니가 어쩌면 굉장히 좋은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지니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집에서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어떤 요리 혹은 재료와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지수) 어제 보니 집에 무지개색이 다 있더라고요. 인테리어 소품이나 채소에도요. 저는 보통 차분하고 깔끔한 걸 좋아하지만, 색을 한꺼번에 사용하는 것도 좋아해요. 얼마 전에 제가 ‘채소와 허브 오케스트라’라고 이름 붙인 요리가 있어요. 올해 만든 요리 중 가장 행복하게 작업했고, 집이랑도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재호) 집에 항상 제철마다 다른 재료가 있어요. 사실 그냥 과일, 채소일 뿐인데 식탁이든, 선반이든 지수가 참 예쁘게 놔두더라고요. 지수가 요리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우리 집을 만드는 재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집이 계절마다 조금씩 변해가는 듯해요.


Conditions

지역 서울 마포구 성산동
구조 다세대 빌라
면적 약 43㎡(13평)
보증금 1억 중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