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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나의 집? 권태기 극복을 위한 쁘띠 리추얼

Petit Ritual to escape from house boredom

지겨운 나의 집? 권태기 극복을 위한 쁘띠 리추얼

Writer. Hyewon Kim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살면서 집에 이렇게까지 오래 머물러본 적이 있었나? 타의에 의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쩔 수 없이 길어지는 요즘, 나는 내가 집과 어색한 사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막상 만나면 할 말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서툰 연인처럼 말이다. 긴긴 시간 내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무료하게 지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나가서 재미있게 놀자고, 스스로를 달래며 흘려버린 지 벌써 6개월째다. 6개월이면 성미 급한 연인은 사귀었다가 헤어지고도 남을 시간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이 ‘때가 아니다’의 역사는 수험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좋아하는 오빠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나는 ‘이럴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애였다. 그리고 불행히도 서른한 살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때는 오지 않고 있다. 무려 11년째.

인생이 계절처럼 흐르는 줄 알았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힘든 시기를 버티면 적어도 두세 달은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즐겁게 해줄 일을 나중으로 미루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마음 놓고 행복해할 수 있는 때’ 같은 건 인생에 없다는 사실을. 행복은 계절처럼 큰 단위로 오지 않고 몇 달씩 지속되지도 않는다. 마감이 코앞이니 당분간만 우중충한 채로 지내겠다는 다짐은 영영 흐린 기분으로 살겠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 상황이 따라주지 않더라도 요령껏 시간을 내서 틈틈이 행복해야 한다. 작고 귀여운 기쁨이라도 모아야 일상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선배, 그거 알아요? 요즘 대학생들은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폰꾸(핸드폰 꾸미기)만 하는 게 아니라 논꾸(논문 꾸미기)도 한대요. 논문 쓰기가 너무 싫으니까, 거기에 스티커를 붙이고 그림을 그리면서 예쁘게라도 만든다는 거예요. 짠 하고 귀엽지 않아요?” 후배가 메신저로 전한 이야기를 들으며, 코로나19 시대의 갑갑한 일상에도 스티커처럼 귀엽고 반짝이는 구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갈 궁리만 하지 말고 일단 집이랑 알콩달콩 잘 지내봐야지.

최근엔 집 안 곳곳에 나만 아는 쁘띠 리추얼을 심어두었다. 타의로 망가뜨릴 수 없는 나만의 의식을 매일 성실히 실천한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이 작은 규칙에서 옅은 희망 같은 게 생긴다. 


 딱히 웃을 일 없는 일상에 굳이 심어둔 작고 귀여운 의식을 통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이 시기를 모두가 무사히 건너갔으면 좋겠다.

     

    

복도ㅣ노을 보기
2020년 2월 이전의 일상이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요즘, 내가 기르는 작고 귀여운 기쁨 1번은 ‘복도에서 노을 보기’다. 예정에 없던 재택근무를 하게 된 덕분에 우리 집의 유일한 자랑인 북한산 뷰 선셋을 실컷 누리게 됐다. 창문 밖이 붉어지면 아파트 복도로 나간다. 아끼는 컵에 좋아하는 음료(주로 술이다)를 가득 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높은 층에 사는 탓에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처럼 노을빛에 이끌려 나와 있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인다. 늘 같은 멤버들. 하도 자주 봐서 이젠 실루엣이 제법 익숙하다. 나는 이 모임을 ‘옥상 정모’라고 부른다.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들으며 준비한 음료를 천천히 마시다 보면 금방 해가 져서 어둑해진다. “한 잔 더!”를 외칠 겨를도 없는 그야말로 찰나의 기쁨이다. 행복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부스러기 같은 기쁨. 이렇게 별것 아닌 듯한 것들의 도움을 받아 일상을 견딘다는 게 매일 신기하다.


일기방ㅣ매일 일기 쓰기
꼭 가고 싶었던 잡지사 면접을 시원하게 말아먹은 20대의 어느 날, 나를 대형 문구점으로 데려간 언니가 말했다. “마음 변하기 전에 하나 골라.” 나는 잠시 기뻐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 주제에 무슨 브랜드 노트야. 나중에 진짜 글 쓰는 사람 되면 그때 사줘.”
“지금은 가짜 글 쓰는 사람이냐? 인생은 장빗발이야. 좋은 장비가 있어야 좋은 글을 쓰지. 일단 사.”

나는 그 뒤로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언니가 사준 노트를 꺼냈다. 여전히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있지만, 어쨌든 좋은 노트에 손 글씨로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은 되었다. 그렇게 일기를 쓴 지도 10년이 넘었다. 딱히 쓸 말이 없어도 오늘의 기념품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매일 썼다. 이번 집으로 이사 오면서는 아예 일기를 쓰기 위한 방을 따로 만들었다. 일기는 문구 브랜드 미도리에서 나오는 여행자 노트에 모나미 153으로만 쓴다.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고작 일기일 뿐인데 이 야단을 부리는 게 남들 눈엔 우스워 보이려나. 어쩔 수 없지. 

일기를 쓰면서 내 인생은 예전보다 단정해졌다.
해야 하는 일에 끌려 되는 대로 살다 보면 함정에 빠진 것처럼 막막해질 때가 있는데, 그런 순간마다 일기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몇 살까지 일기를 쓰게 될까?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일기를 계속 쓴다면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 있을 텐데. 매일 일기 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거실ㅣ좋아하는 물건 가까이 두기
돈에 대한 궁리를 유독 오랫동안 미뤄왔다. 특별한 의도 없이 적극적으로 벌지도 쓰지도 않았다. 취직을 해서 매달 월급을 받게 됐지만, 내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띄어도 우물쭈물하다가 무기력하게 흘려보내곤 했다. ‘예쁘지만 비싼 것’보다 ‘못생겨도 저렴한 것’을 계속 선택해나갔다. 우리 집은 이렇게 사 모은 불만족스러운 물건들로 가득했다. 곰팡이가 핀 형광색 욕실 슬리퍼, 등받이 한쪽이 부러진 의자, 햄버거 먹고 사은품으로 받은 컵. 너저분한 것들로 채워진 집이 싫어서 툭하면 떠났다. 그 불만족의 원인이 돈 쓰는 법을 몰라서였다는 건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알았다.

밥그릇, 칫솔, 탁상 거울, 집에서만 쓰는 안경. 매일 쓰는 것이 아름다워야 일상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언제까지 예쁜 카페나 근사한 숙소로, 비일상으로 도망칠 수는 없으니 일상을 가꿔야 한다. 언젠가 형편이 넉넉해지면 구질구질한 물건들을 싹 다 버리고 근사한 삶으로 건너가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생엔 어려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집을 짓는 제비처럼 작은 만족을 주는 물건들을 차곡차곡 모아야 하는 건 아닐까.

요즘은 물건을 살 때 가성비가 아니라 그것과 함께할 미래를 가늠해본다. 매일 이걸 손으로 쓸어보며 얼마나 기분이 좋아질지 상상한다. 돈으로 기분을 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고 내 손에 들어온 예쁜 물건은 아끼지 않고 바로 써버린다. 

서랍에 고이 보관한 물건은 힘이 없다. 일상을 바꿀 수 있는 건 매일 쓰는 물건이라는 걸 이제 안다.





김혜원

2019년까지 주간지 <대학내일>에 글을 썼다. 지은 책으로는 <작은 기쁨 채집 생활>, <어젯밤, 그 소설 읽고 좋아졌어>, <여전히 연필을 씁니다(공저)>가 있다. 20대 내내 스스로를 의심하며 괴로워했고, 서른이 다 되어서야 내 안에도 정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 모자란 인간이지만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은 덕분에 이렇게 밥벌이를 하며 산다.
“저런 애도 먹고사는데···”에서 ‘저런 애’를 맡아 모두에게 힘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