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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게임

Real Property Game

부동산 게임

Writer.Uijung Chung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돌이켜보면 모든 게 다 운이었다. 외국계 기업과 중견 대기업에 일한 적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서울 시내 아파트를 구입해 대출을 갚아나갔다. 조용하고 깨끗한 아파트 단지는 살기 좋았다. 근처에 큰 공원과 작은 공원, 큰 병원과 작은 병원, 학원, 학교, 지하철역 등 모든 게 있었다. 두 사람의 딸은 아파트 안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축조했다.

서울의 아파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운을 불러들인다.

조용한 공간과 경제적 지원 아래 나는 부모를 따라 서울 시내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자 중산층의 별빛이 더욱 반짝거렸다. 내 손에는 물이 새는 반지하, 장롱으로 가린 곰팡이 벽, 세입자를 우습게 보는 집주인을 만나지 않을 카드가 있었다. 우아하게 카드를 선택하고, 겸손하게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하면 되었다. 취업하기 어렵다고 하던 졸업 학기에도 막연히 잘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여차하면 집에 들어가면 되지. 잘 안 되면 집에 있지 뭐’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었다.

대학은 나의 운을 직시하기에도, 나의 불운을 관조하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같은 외고를 나와 자기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졸업 때까지 학비를 대고 취직을 지원하는 부모가 있었다.
우리 집은 깔끔한 집을 구할 운은 있었지만,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할 운은 없었다. 부모님이 고민하다 선택하지 않은 아파트 단지는 지하철역 개통 소식과 함께 억 단위로 가격이 올랐다. 아버지는 어느 집안처럼 사업을 벌이다 망했고, 어머니는 당연한 듯 계속 일하면서 처음 산 아파트만은 지켜나갔다. 


20대가 겪는다는 주거난의 실체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와 사회·정치 서적에서 간접경험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직접적으로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주거 불안에 크게 시달렸다. 어떻게든 취직을 하고 매월 꼬박꼬박 돈을 모으리라, 보증금을 모을 때까지 부모님 집에 붙어 있으리라 결심했다. 반생 동안 발판이 되어준 부모님의 아파트는 이제 기운을 다하는 중이었다. 폐렴에 걸린 노인처럼, 녹물이 쏟아지고 가끔 스프링클러처럼 수도가 터지곤 했다. 놀이터에는 점점 노는 아이들이 없어졌다. 반상회에서는 재건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나는 스스로 재건축까지를 독립의 유예기간으로 잡았다.  

졸업 전 마지막 학기에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 입사 확정이 날 때까지 아무도 연봉을 말해주지 않아 교육이 끝난 뒤에야 내 연봉이 얼마인지 알았다. 직장을 다닌 지 2년째 되던 크리스마스이브에 학자금 대출 잔액이 0원이 되었다. 통장은 가벼웠고 마음도 가벼웠다. 이제 돈을 모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하고 싶다는 여행과 남들이 가지고 싶다는 물건은 내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재생산 노동은 원 가족에게 맡긴 채 매일같이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서울의 방 한 칸 보증금이 나올지 계산기를 두들기고, 월급을 소중히 모아 100만 원을 200만 원으로, 200만 원을 500만 원으로 합쳐갔다. 피천득의 <은전 한 닢>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이 방 한 칸이 가지고 싶었”다.
 

어느 정도 보증금을 모았다고 생각했을 무렵, 독립을 연습하고 싶은 마음에 친구가 비운 집에 임시로 들어갔다(안정을 원하는 아파트 키드는 독립도 공부하고 연습해야 하는 게임으로 생각했다). 큰길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현관 없이 바로 집 문이 있었다. 문을 열면 하수구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방을 얻었다고, 이제 거기서 자고 올 일이 많을 거라고 집에 이야기했지만, 어쩐지 발길이 내키지 않았다. 오래된 아파트가 그리워졌다. 깨작깨작 밥을 해 먹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씩 쓰다 계약 기간이 끝났다.
 

그 무렵부터 저축예금 외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돈이 모이는 속도가 너무 더뎌 보였다. 당시 나는 혼자 해결해야 하던 공간 꾸리기의 어려움-하수구 청소를 어떻게 할 것인지, 위험한 위치에 있는 집에서 어떻게 안전을 강구할 것인지, 멀리 있는 마트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장을 볼 것인지 등-을 그저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으로 여겼다.
비혼주의자로서 결혼하지 않고 어떻게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20대까지는 계산기를 아무리 두들겨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혼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던 마음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동산 보증금을 보면 전폭적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다. 당시 누군가 결혼하자고 손이라도 내밀었다면 덥석 잡았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고 30대가 되었다. 20대 때보다는 불안한 맘이 덜하다. 투자가 성공한 것도 아니고, 폭발적으로 연봉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것, 정규직이 된 것 이후로 세 번째 운이 찾아온 까닭이다. 여성주의 문화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만난 친구는 여러모로 죽이 잘 맞았다. 때마침 그도 독립하길 원했고, 같이 월세를 내고 공간을 나눠 쓰면서 반독립을 시작했다.
지금은 결혼이 아니어도 안정적인 하우스메이트 관계가 가능하다는 걸 경험을 통해 늦게나마 알아가고 있다. 혼자 모은 돈은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둘이 모은 돈을 합치면 얻을 수 있는 공간이 훨씬 늘어났다. 이래서 다들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동맹을 맺는구나!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은 뒤 부동산 정보 앱을 자주 봤다. 검색 조건은 주로 홍대와 합정 인근, 월세는 30만 원 이하, 주차 가능 여부에 해당 없음을 체크했다. 세간살이가 어지럽게 널린 반지하, 누런 장판, 오동나무 관만 한 크기의 샤워 부스를 넘기고 나면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몇 년이 지나 이제는 검색 조건이나마 ‘매매’에 놓고 아파트를 본다. 검색 지역은 경기도까지 넓어졌다. 어느 지역이 내 생활에 맞을지 공상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대단지여야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흠칫 놀라곤 한다.
 

어떻게 보면 잭팟도 올인도 비극도 없는 평안한 게임 중이다. 부모님의 아파트는 이제야 재건축 논의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직 자식이 결혼을 안 할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종종 아파트를 팔고 나면 얼마 정도는 결혼 자금 형식으로 떼어주겠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나는 도리질을 치며 제발 당신의 노후에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속으로만 생각한다. 내심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 운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부모가 중병에 걸리는 순간, 형제자매 중에서는 자매가 병든 부모를 떠안을 확률이 높다.

내 운이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얼마나 공고했는지, 또 반대로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이었는지 이제는 얼핏 안다. 

어느 순간 나는 새롭게 생겨난 불운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부동산의 선택일 수도, 건강상의 문제일 수도, 관계의 단절일 수도 있다.

어머니는 가끔 “모든 게 복이다”라고 말하며 《성경》을 읽는다. ‘복’이라는 단어에는 모든 운이 절대자의 은총에 힘입어 생겨났다는 뜻이 담겨 있다. 복이라면 기쁘게 받으면 그만이지만, 운이라면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게임이 부모 세대부터 오랫동안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믿기지 않는다. 내가 그 게임에 참여할 생각이 든다는 것도. 이 게임은 최대한으로 불공정하고 많은 부분을 운에 의지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의문을 가지고도 패를 내려놓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앉아 있다. 내년부터는 청약이라는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예정이다.

정의정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낮에는 <채널예스> 기자, 밤에는 퀴어 페미니스트 책방 꼴을 지키는 ‘꼴키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