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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도 나랑 살아

Live with Me Even in the Next Life

다음 생에도 나랑 살아

Writer.Daun Chung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이 글의 반은 나의 하얀 고양이 ‘제제’ 옆에서, 나머지 절반은 지인이 임시 보호 중인 까만 개 ‘스텔라’ 옆에서 썼다. 제제는 종종 노트북 위에 드러누워 자판을 이리저리 함부로 치다 갔고, 스텔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자다가 조용히 근처에 와서 못다 잔 잠을 마저 잤다. 만일 이게 글이 아니고 뜨개질이라든가 아니면 쿠키를 굽는 일이었다면 어딘가에서 길고 가는 하얀 털과 짧고 부드러운 까만 털이 발견될지도 모른다. 


나의 첫 반려동물

태어날 때부터 집에 동물이 있어서 동물과 함께 사는 일상이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처음 동물과 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개든 고양이든 동물에 큰 관심이 없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지구에 사람만 산다고 생각했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굳이 (대체 왜!)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알고 지내는 개나 고양이도 없었고, 살며 마주칠 일도 많지 않았다.

서른이 넘어 만나 결혼한 남편이 고양이를 좋아했다. 고양이와 살고 싶다고 하길래 무심히 말했다. “담배 끊고 1년 반 지나면 키우게 해줄게.” 정말 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한 말도 아니었고, 진지한 제안도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은 정말로 금연에 성공했고, 어느 날 고양이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서울 마장동 빌라 주차장에서 발견한 하얗고 털이 긴 어린 고양이. 남편의 지인이 구조한 뒤 함께 살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가족을 찾던 중이었다. 나는 기왕이면 예쁜 고양이와 살고 싶었고, 4개월 정도 되었다는 하얀 고양이는 몹시 예뻤다. 

하지만 아무리 동물에 대해 무지하다 해도 예쁘다고 같이 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아는 언니에게 조언을 구했다.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헤어질 때 힘들다는 것만 빼면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 좋은 점뿐이야.”

그때 언니의 고양이 ‘나라’가 많이 아팠다. 언니가 하고 싶었던 말은 헤어지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니의 말에서 “좋은 점뿐이야”라는 부분만 골라 들었다. 병들고 늙어 세상을 떠나는 건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였고,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는 아프지 않았다. 나라는 얼마 뒤에 세상을 떠났다.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 생각하면 언니의 슬픔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제제와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바빴다.


사고뭉치 고양이 제제

제제는 예뻤지만 그야말로 사고뭉치였다. 테라스에서 키우던 채소들을 물어뜯고 흙에 배변을 해 모두 죽였으며, 쓰레기통을 뒤져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곤 했다. 걸핏하면 변기 비데 버튼을 눌러대 화장실은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고, 탁자에 컵을 두고 자리를 비우면 어김없이 건드려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걸을 때마다 쫓아다니며 종아리를 깨무는 통에 다리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계속 이어져 괴로웠다.
하지만 제제가 우리 집에 온 건 우리의 선택이고, 그렇다면 제제가 아니라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분을 치우고, 쓰레기통은 뚜껑이 열리지 않는 것으로 다시 샀다. 변기 뚜껑은 꼭 닫고 다니고, 컵이나 비닐은 그때그때 치웠다.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며 우리는 천천히 서로 적응해나갔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제제와 경기도에서 살다가, 제주도로 이사했고, 다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살다가 다시 제주도로 왔다. 6년 반이란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 나는 제제가 내 전생 같고 후생 같고 내 다리 같고 팔 같다. 그러니까 제제는 내가 되었다. 내가 사랑한다고 가장 많이 말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일곱 살 제제는 여전히 사고뭉치지만 건강하다. 한 번도 병원 갈 일이 없었던 건강하고 명랑한 고양이와 우리는 박력 있게 살았고, 살고 있다.


불쌍한 동물이 너무 많아, 망했어

주차장에서 발견한 하얀 고양이가 ‘우리 제제’가 되고부터 다른 동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지구에 인간만 사는 게 아니었다. 길고양이가 주변에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처음엔 “어, 저기 고양이가 있네” 했다가 언젠가부터 고양이를 만나면 부리나케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 캔을 사다 따주었고, 그러다 가방에 아예 간식을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고양이뿐 아니라 떠돌이 개도 많이 만났다. 기회가 될 때마다 사료라든가 먹던 빵, 고구마 등을 나눠주었다. 먹고 바로 떠나는, 아니 내가 먼저 떠나야 편하게 먹는 고양이와 달리 개들은 옆에 한참 앉아 있다 가기도 했다. 동물 친구가 점점 많아졌다.
이름 부를 동물 친구가 많아진 건 좋은 일이지만, 그 친구들은 대부분 사정이 좋지 않았고, 아팠으며, 돌아갈 집이 없었다. 농약을 먹고 죽기도 했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 해외 입양을 보내며 공항에서 울기도 했고, 어렵게 주인을 찾아준 개가 잘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전전긍긍하는 밤을 보내기도 했다. 아픈 고양이 한 마리를 살려보겠다고 집으로 데려오기도 했지만, 며칠 만에 황망히 떠나보내는 경험도 했다. 사정이 좋지 않은 동물과 정이 들 때마다 “망했다”고 넋두리를 하곤 한다. 

“아픈 동물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그들에게 마음을 쓰고 시간을 쓰고, 가끔은 돈도 쓰는 건 고생스러운 일이니까. 자꾸만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니까. 나 하나 편하게 사는 걸로 치면 모를 때가 더 좋았다.





모모가 떠난 뒤

최근 들어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만일 6년 반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결정할까?” 나는 내 고양이 제제와 함께 사는 게 정말 좋지만, 지인이 주차장에서 구조했다는 하얗고 털이 긴 어린 고양이가 제제라는 이름의 내 고양이가 되기 전이라면, 어쩌면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사실 이 질문은 나의 둘째 고양이 모모를 떠나보내면서 처음 하게 되었다. 모모는 세 살 때 우리 집에 왔는데 그때 몸무게가 3kg이 채 되지 않았다. 우리 집에 오기 전에 주인이 두 번 이상 바뀌었다. 한 번은 이사 간다고, 한 번은 출산 때문에 모모는 버려졌다.
모모는 사소한 것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고양이였지만, 우리 집에 살면서 점점 놀라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밥도 잘 안 먹고 잠만 잔다고도 했는데, 우리 집에 와서는 사료도 잘 먹고 잘 뛰어다녔다. 제제와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심하게 싸우는 일도 없었다. 최소한 10년 넘게 평생 함께 잘 지낼 거라고 생각했고, 결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모모는 우리 집에 온 지 1년쯤 되었을 때 갑자기 떠났다.

아침까지 괜찮았는데 저녁에 집에 와서 보니 체온이 조금 높은 것 같았다. 얼음을 옆에 대주고 하룻밤을 보냈는데, 여전히 열이 내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병원으로 데려갔고, 병원 세 군데를 옮겨가며 이러저러한 치료를 받았다. 췌장염인 것 같다고 했고,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며칠 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나의 불안을 들켰다

나는 모모가 떠나기 전까지 고양이는 평생 사는 줄 알았다. 어느 날 나보다 먼저 떠날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럼에도 떠나지 않을 줄 알았다. 아주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의 유일한 고양이 표본인 제제는 건강했고, 병원 신세 한 번 지지 않았으며, 그래서 나에게 고양이는 건강한 동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침까지 멀쩡했다가 저녁에 아플 수 있고, 며칠 앓다 떠날 수도 있는 게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약한 동물이었구나, 아프면 죽을 수도 있구나, 그러니 나는 이제 어찌해야 하지.

모모의 아픔과 죽음은 나의 몰랐던 감정을 건드렸다. 사람마다 가장 취약한 감정이 있을 텐데, 나에게 그것은 불안이었다.”

모모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불안에 휩싸여 아슬아슬하게 며칠을 보내다 모모가 떠났을 때 아주 짧은 시간, 모모를 잃을 것이라는 불안이 사라진 마음에 고요가 찾아왔음을 느꼈다. 슬펐지만 불안하진 않았던 시간. 그러나 그 고요는 곧 제제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바뀌었다.

집 구석구석에 소독약을 뿌렸다. 잠깐 앉았다가도 다시 벌떡 일어나서 가구에도 벽에도 천장에도 소독제를 뿌렸다. 모모가 전염병을 앓다 떠난 것도 아닌데, 미친 사람처럼 소독에 집착했다. 제제를 지켜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하루 종일 제제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고, 볼일이 있어도 서둘러 돌아오곤 했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제제가 아플까 봐 겁이 났다. 제제의 작은 숨소리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불안은 영혼을, 일상을 잠식했다.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모모 이야기가 나올까 봐 무서웠다. 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겪으면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사람이라는 것도 모모를 잃고 나서야 처음 알았다. 그러는 동안 내 곁을 떠난 사람도 있었다.

불안에 침몰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보낸 시간이 흐르고, 모모가 떠난 지 서너 달쯤 지나자 비로소 불안이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하루에 한 번씩 제제 체온을 체크하고 호흡수와 심장박동수를 확인한다. 하룻밤 이상 집을 비우지 못해 서울에 볼일이 있어도 아침 비행기로 갔다가 저녁 비행기로 다시 내려온다. 그리고 깃털처럼 가볍고 호기심 많던 나의 고양이 모모 이야기는 여전히 누구하고도 잘 하지 못한다.

 

다음 생애는 처음부터 내 고양이로 태어나

불안의 시간들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제제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 것을 후회했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그만큼 지독했다. 그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내가 불안했다는 이야기,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 만약 6년 반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동물과 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 제제가 나와 함께 사는 마지막 동물이 될 거라는 이야기.
하지만 제제와 스텔라 옆에서 이 글을 쓰는 동안 내 가여운 작은 고양이 모모와 내 곁에 잠깐 왔다 황급히 세상을 떠난 붕이가 줄곧 옆에 함께 있어주었다. 미국으로 입양 가서 잘 사는 만옥이도, 주인 찾아간 잔잔이도 잠깐 내 마음 곁에 앉아 있다 갔다. 

그 아이들에게 말했다. 다음 생애는 처음부터 내 고양이로, 내 개로 태어나라고. 고생하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게 해주겠다고.

그러니 “만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결정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이번 생은 망했다. 아무래도 다음 생도 망한 것 같다.


정다운

바르셀로나 생활기 《바르셀로나, 지금이 좋아》, 남미 여행기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그리고 제주도민 인터뷰집 《제주에서 하고 살지? 등을 썼다지금은 제주에서 살고 있으며, 걷고 보고 듣고 쓰는 삶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