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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

Why Do We Live Together?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

Writer.Heewon Baek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친구의 존재는 끔찍한 사건도 재미있는 일화로 만들어줍니다.”

– 마사 누스바움,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중에서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산 지도 7년이 되었다. 친구가 메신저로 혹시 독립해서 같이 살 생각이 있는지 묻었고, 내가 이내 좋다고 답했을 때 우리는 삶의 경로를 아직 완전히 결정하지 못한 20대 중후반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는 삶의 경로가 완전히 결정되는 때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방향을 정해 열심히 노 젓는 30대 초중반이 되었다. 한 번의 이사를 거치며 생활 풍경은 그때보다 더 단정하고 복잡해졌지만, 삶은 여전히 불안하다. 다행히 친구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이 불안을 해볼 만한 모험으로 만들어주었다. 


나를 못 믿어도 너는 믿어

이런 장점을 미리 알고 있어서 친구랑 같이 산 건 아니었다. 그땐 그저 돈이 없었다. 혼자 살면 고시원 원룸에서 시작해야 했는데, 둘이 살면 그래도 방 두 칸짜리 ‘집’에 살 수 있었다. ‘친구랑 같이 살면 무조건 싸운다고 하던데’ 하는 노파심이 살짝 머리를 스쳤지만, 혼자 살기는 약간 무서웠고, 당시 부쩍 늘어난 엄마와의 신경전을 견디는 것보다는 차라리 미지의 생활에 도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한 인디 밴드 공연장에서였다. 작은 클럽에서 우리는 유일하게 교복을 입은 두 사람이었고, 그래서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진정한 우정이 시작되었느냐 하면 사실 그건 전혀 아니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 안부를 확인하다가, 대학 마지막 학기 무렵 우연히 마주쳐 도무지 취업과는 상관없는 각자의 전공을 비관하며 함께 술을 붓고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우리는 서로의 한심함에 실망할 생각이 없었다.


첫 번째 집은 곳곳에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았다. 큰 방 모양이 오각형이고 그중 한 벽엔 애초에 열 수 없게 설계한 창문이 달려 있다거나,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고 조리대가 절대 조리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거나 하는 등. 그래도 늘 어딘가를 바지런히 살피고 있는 집주인이 깔끔하게 관리한 티가 나긴 했다. 무엇보다 어떤 괴팍함도 용서가 되는 보증금이었다. 덩달아 따라온 장점은 도심이 가까워 주변에 맛집이 많다는 것.

독립 후 한동안은 밤마다 야식 파티를 열었다. 먹으면서 먹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다 보면 가끔 야식만 3차까지 이어지곤 했다. 한번은 한밤중에 평양냉면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차로 10분 거리에 24시간 영업하는 갈빗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둘이 심야 할증 택시를 타고 달려간 적도 있다. 텅 빈 평일 식당 홀엔 우리 둘뿐이었다. “어쩌죠? 밤에는 냉면 뽑는 기계를 끄거든요.” 우리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너무 역력했는지 종업원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결국 헛걸음이 아까워 새벽까지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니 애초에 이 시간에 택시까지 타고 올 일이야?” 배를 채우고 나니 뒤늦게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여름밤 공기는 어쩐지 후련해서 웃음만 나왔다.

사실 그해 여름에 내 삶은 썩 좋지 않았다. 아니, 나쁜 편이었다.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처럼 굴던 첫 회사는 연달아 프로젝트 비딩에 실패하자 계약 종료일 전날에야 재계약은 어렵겠다는 통보를 했다. 어쩌다 쉽게 얻은 일자리여서 어쩌다 그만두고도 별 아쉬움은 없었지만, 막 집을 나온 터라 막막함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단기 알바를 전전하며 이력서를 돌리고 면접 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건 농담의 나날이기도 했다. 수많은 저녁 우리는 각자 방 문턱에 앉아서 깔깔 웃었다. 내가 오늘 만난 면접관이 얼마나 젠체하는지, 친구의 직장에 새로 들어온 후임이 얼마나 황당한 질문을 했는지 흉내 내면 그날의 당혹스러운 순간들이 가장 웃기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가끔은 그렇게 웃다가 아주 먼 기억까지 돌아가는 밤도 있었다.

세상에 나를 들여보내달라고 요청하다 보면 부작용처럼 따라오는 자잘한 모욕감들이 먼지처럼 웃음에 쓸려 나가곤 했다. 그럼 나는 잘 자고 다음 판을 깨러 나설 수 있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내가 집에 돌아가면 마주하는 얼굴이 엄마도 아니고, 배우자도 아니고, 친구였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자와 함께 살았다면 나는 나의 한심함에 미안해했을 것이다. 상대의 짐이 된 것 같은 죄책감을 덜려고 무리하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을지 모른다. 엄마에게 이런 내 모습을 보여줬다면 속상함 섞인 잔소리를 늘어놓았겠지. 밖에서도 매일이 부딪침인데 집에서도 쉴 수 없다면 내가 그 시기를 빨리 헤쳐나올 수 있었을까?

친구는 가끔 나의 한심함에 기꺼이 동참해주기도 하면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원해주었다. 그건 그가 웃기고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우리 사이가 친구라는 데도 기인했을 것이다. 우리는 무척 가깝지만 부부처럼 한배를 탄 운명 공동체는 아니다. 보증금과 월세, 공과금을 함께 부담하고 소모품을 함께 구입하며 식재료를 나눠 먹는 사이일 뿐, 기본적으로 자기 삶은 각자의 몫이다. 사랑이 때로 서로를 걱정거리로 만든다면, 우정은 우리를 가장 취약한 순간에조차 서로의 비빌 언덕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근본 없는 자신감은 없어도 서로에 대한 근본 없는 믿음은 있었기에 다음 페이지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두 개의 자기만의 방

방 두 칸짜리 집에서 또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하면서 베란다와 소박한 거실이 생겼다. 서로의 생활이 느슨하게 섞이는 공용 공간이 넓어지면서 혼자서는 만들어내지 못했을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이 더 잦아졌다.
지난해 여름 어느 날에는 집에 왔더니 거실 구석에 폼롤러가 서 있었다. 그래서 며칠 뒤 나는 두툼한 요가 매트를 주문했다. 아침 또는 저녁에 가벼운 맨몸 운동을 하는 낯선 풍경이 추가되었고, 가을엔 친구와 함께 동네에서 필라테스 수업을 받았다. 힘을 주면 몸 어딘가가 단단해지는 감각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봤다. 혼자서는 어지간해선 안 할 일이었다.
어느 날 선반을 열어보면 못 보던 향신료가 있고, 내가 보고 싶어서 식탁에 프리지아를 꽂아두면 뜻밖에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대단치 않은 순간들이 쌓여 삶이 예기치 못한 모습으로 조금씩 풍요로워져 갔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각자의 방에서 혼자 보낸다. 함께 사는 동안에 서로의 방문을 허락 없이 열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조심한다기보다 그냥 이게 자연스러워 그렇다. 이런 성격들이니 아마 타이밍이 맞지 않았더라면 분명 각자 혼자 살았을 것이다. 짐작건대 나는 가끔 지치면 스스로에게 응석을 부리다가 생활을 무너뜨리는 악순환에 빠졌을 것만 같다. 그래도 이 삶이 최선의 행복이라고, 이런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겠지.

우리가 함께 사는 우연이 벌어진 건 내게 참 행운이었다. 나는 내가 이 생활을 통해 더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믿는다. 놀이터 미끄럼틀 밑부터 중앙도서관 해외 문학 계간지 코너까지, 30년 인생 내내 홀로 숨을 공간 찾기의 달인이던 내가 각자의 방이 있는 둘의 집에 살면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침잠하는 고립이 아니라, 필요할 때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안전한 고독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정의 적당한 온도를 누리며 친구와 함께 사는 일은 희한하게도 완전히 홀로 있거나, 가족과 함께 살 때보다 더 자신다운 모습에 가까워지는 과정이었다.


나의 행복을 위해 

언젠가는 각자의 집을 찾아 떠나게 될까? 그럴 리 없다고 확언은 못 하겠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혼자서도 여유롭게 살 수 있을 만큼 부유해지는 것보다 함께 사는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을 더 자주 생각한다.


동네를 산책하다 방이 많을 것 같은 주택을 보면 자꾸 내부를 상상해보게 된다. 아마 너무 익숙해진 모양이다. 커튼을 새로 사면 감탄해줄 동거인이 있는 생활에, 종종 밤 산책을 권할 친구와 함께 사는 삶에.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사는 집에 대해 구상하는 일이 1인용의 집을 상상하는 것보다 재미있다. 한두 사람을 위한 빌트인 아일랜드 테이블보다 친구를 초대해도 넉넉한 6인용 식탁을 둘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 1인용 안락의자보다 3인용 소파를 찾아보는 것이 더 즐겁다면 그 삶을 향해 나아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아, 제도가 없어 좀 번거롭고 성가시다는 문제가 남아 있긴 하다. 대한민국 민법상 우리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니다. 서로의 보호자 역할도, 생활 동반자 역할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친구의 존재가 불합리한 제도와 싸우는 일도 창조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즐거운 과정으로 바꿔주는 바람에, 우리는 우리 삶을 문제로 삼기보다 사회문제를 고쳐보는 쪽으로 힘을 쓰기로 했다.
그 첫 번째 활동으로 결혼하지 않고도 가족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팟캐스트 <우리에겐 조금 먼 가족이 필요해>를 다른 여성 동거 가구 친구들과 발행하고 있다. 2회에서는 《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캐런 루이즈 진 지음) 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실용적이고 유쾌한 책에 여성 친구들 간의 동거 생활을 아주 간단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 있어 마지막으로 적어본다. “더 적은 돈으로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맞다, 그 뿐이다!




백희원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나 기후변화 저성장 시대에 도시에서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로서 충실히 행동하며, 그 이상으로 충분히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 여성생활미디어 Pinch에 ‘동반생활일지’ 연재, 팟캐스트 <우리에겐 조금 먼 가족이 필요해> 진행, 책 《기본소득 말하기 다시 기본소득 말하기》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