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mark wordmark

logo logo

12평, 씨앗 집사의 세계

39㎡, the World of Seed Butler

12평, 씨앗 집사의 세계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문혜성, 정태윤 / 36세, 36세

콘텐츠 기획자 & 도시 농부, 가구 회사 매니저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구조 다세대빌라 투룸
면적  40㎡(12평)

 

Room History

농부를 꿈꾸는 문혜성은 농업 공부를 하다가 씨앗의 매력에 푹 빠져 씨앗 집사가 되었다. 12평 집에 들어서면 다섯 칸짜리 선반이 보이는데, 그 위에는 색색의 씨앗과 이제 막 자라는 새싹들이 빼곡하다. 문혜성·정태윤 부부는 틈틈이 온습도계를 확인하고, 가끔은 눈도 못 뜬 채 분무하며, 작은 변화에 귀 기울인다. 터는 작지만 과연 농부의 마음이다. 문혜성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씨앗에서 뿌리가 나고, 줄기가 뻗고, 잎이 돋아나는 게 기특하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때로 울창한 한 그루 나무보다 작은 씨앗 한 알이 더 크게 보일 때가 있다. 그 씨앗엔 미래의 성장이 응축되어 있다. 나는 그들의 집에서 씨앗을 실컷 보았지만, 돌아서니 문혜성·정태윤이 씨앗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농부가 되기 위해 땅 바로 아래에서 싹틀 준비를 하고 있다.


건물이 깔끔하고 예뻐요. 집 소개 좀 해주세요.
혜성
저희 집은 콤팩트한 공간으로 방 두 개와 부엌 그리고 작은 발코니로 구성되어 있어요. 버려지는 공간 없이 두 명이 충분히 살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설계된 곳인데요, 식물을 들이면서는 조금 좁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이 협소한 공간에서 식물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사람에게 거슬리는 부분 없이, 식물에도 좋은 환경을 어떻게 꾸밀 수 있을지 말이에요. 제한된 환경 때문에 어렵기도 했지만 오히려 행운이라고 느꼈어요. 굉장히 창의적이어야 하거든요.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면서 저희만의 식물 생활 노하우도 생기게 된 거죠.

두 분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태윤 저는 스탠다드에이라는 가구 회사에서 브랜드 매니저를 맡고 있어요. 주로 제품과 멤버들을 사진, 영상으로 기록해 외부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지요.
혜성 친구와 둘이서 독립출판을 하다가 그 이후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했어요. 2019년도에 프리랜서로 전향했는데 그다음 해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지요. 그러다 예전부터, 정확히 말하면 9년 전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농업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마침 기회인 것 같더라고요. 해외 여러 사례를 보면서 동시에 도시관리사 자격증도 땄어요.



식물과 같이 산 지는 얼마나 됐어요?
혜성
얼마 안 됐어요. 식물을 잘 기르는 사람도 아니었고, 이전에는 식물이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어요. 이 친구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이 집에 오면서 식물을 많이 들이기 시작했죠. 왜 새집에 오면 식물 사고 싶어지잖아요. 저희도 그랬어요. 투자한다고 해서, 다른 분들은 더 비싼 걸 살 수도 있지만, 저희 기준에선 비싼 10만 얼마짜리 식물을 충동적으로 사기도 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식물을 키울 만한 환경이 아니니까 키우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론 ‘그럼 그런 환경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식물 선반과 식물등을 구입하면서 제대로 가꾸기 시작했어요.


아니, 근데 씨앗 발아하시는 분은 또 처음이에요.
혜성
친한 친구와 ‘씨드키퍼’라고 하는 씨앗 그로우 키트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시작한 건 아니고요, 하다 보니 사업이 되었어요. 유기농업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씨앗 공부를 하는데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어떤 초미립 종자가 식물이 되는 게 신기하면서 집에서 장난삼아 키워본 게 이렇게 됐어요. 씨앗 집사가 되어버린 거죠. 친구들도 신기해하는 것 같아요. 씨앗 발아하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던 터라 흥미로워하더라고요. 초반에는 모종 단계까지 키워서 친구들에게 자주 분양해줬어요.


집에서 발아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데 어떤 노력을 하는지요?
혜성
관리를 하면 좋은데 그렇게 익스트림하게 맞추려고 하진 않아요.태윤 네, 엄청 섬세하게 가꾸진 않아요. 아무래도 저희의 생활공간이기도 하잖아요. 혜성 사실 씨앗은 종자마다 다르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20~25℃, 습도는 60% 정도가 되면 대부분 발아해요. 제가 하는 일이라고 하면, 스프레이 뿌려주고 온습도계 보며 환경을 유지해주는 정도예요. 계속 가습기를 틀고, 식물등은 못 해도 6시간 정도 틀어놓고요.
태윤 저희 집은 영역 구분이 확실해요. 식물 앞에 가습기가 있다면 여기 큰방은 전자 장비가 많아서 제습기를 틀어놓으려고 해요. 전자 장비는 습도가 높은 것보다는 건조한 게 좋거든요. 같이 공존하기 위해 마땅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혜성 아마 되게 멋진 집들 인터뷰하러 다니실 것 같은데, 이게 작은 집에서 식물 생활을 하는 리얼한 모습이에요. 찐이죠, 찐!


씨앗을 발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보람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혜성
자기 효능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씨앗이 발아하는 과정을 보면 갓난아이가 어린아이로 성장하는 것처럼 확확 변하잖아요. 단지 씨앗이라고 생각하던 것에서 뿌리가 나오고 줄기가 나오고 또 첫 떡잎이 나오고··· 대견하게 느껴져요. 뭐 어떤 경우엔 불량한 씨앗에선 발아가 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키워봤으면 좋겠어요. 그 변화를 보면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성취감이 크거든요. 거기서 힐링되는 것 같아요.


희귀 식물도 아닌 특이 작물을 키워보고 싶다고요? 왜 그런 것에 도전해보고 싶은지 궁금해요.
혜성 굉장히 특수한 게 있어요. 예를 들면 파인다이닝 같은 데서 쓰는 핑거라임 같은 거요. 얼마 전엔 키우기 까다롭다는 와사비 씨앗을 샀어요. 괜스레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제가 어떤 용도가 있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요. 쓰임 있는 거요. 물론 관엽식물도 쓰임이 있죠. 다들 쓰임이 있는 건데, 제 기준에서 좀 멀티유즈할 수 있는 것이 좋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키우는 씨앗이 다 먹는 게 됐어요. 근데 뭐, 보기에도 예쁘고 먹을 수도 있으면 좋잖아요.


그런 까다로운 식물을 키우는 재미도 있겠지만, 조금은 쉬운 식물이 있을까요? 할애할 시간이 많이 없는 사람을 위한 씨앗을 추천해주세요.
혜성
저는 가능하면 식물 키우는 데 시간을 들이라 말하고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없는 이에게 추천해본다면 스위트 바질요. 발아하기도 쉽고, 향도 좋고요, 무엇보다 막 나온 떡잎과 본잎이 오동통하니 정말 귀엽거든요. 시간 대비 성과가 좋은 씨앗은 콩이에요. 저는 신이 주신 작물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콩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발아도 빠르고 초세(식물의 생육이 왕성한 정도)가 강해서 지켜보는 데 지루함이 1도 없어요. 하지만 빠른 성장세에 맞춰 자리를 잘 잡아주는 것이 중요해요. 꼬투리에 콩이 잘 맺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고요. 다양하게 품종이 개량되어 여러 가지 콩 재배가 가능한 것도 재미 요소 중 하나예요.



식물이라는 존재가 집의 풍경을 어떻게 바꾼다고 생각하나요?
혜성
어떤 식물을 기르는가에 따라 집주인의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분이 반영되지 않을까요? 선인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관엽식물을 특히나 더 선호하는 분도 계실 거고요. 또 그 식물들이 집에 적응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연출될 수도 있겠네요. 집에 식물이 있으면 여러 가지가 바뀌는데요, 일단 면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좀 더 입체적이 된다고 해야 할까요. 위, 아래, 옆으로 뻗어나가는 줄기와 잎에 따라 시선의 분산이 다채로워지죠. 또 온도나 습도도 바뀔 수 있고요. 전반적으로 식물이 잘 자라는 집에는 평온한 고요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요.


아름답다고 생각한 식물이 있는 집이나 정원이 있나요? 어떤 점이 아름다웠나요?
혜성
시부모님의 마당 정원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전원주택에 살고 계신데, 꽃과 허브를 잔뜩 심었거든요. 그냥 잡초인가 싶은 것들마저 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에요. 제가 앞서 말했듯 ‘Edible Garden’에 관심이 많은데, 정말 딱 그렇게 활용하고 계시더라고요. 식사 시간이 가까워지면 바로 마당으로 나가서 먹을 것을 채취해 오세요. 팜투 테이블의 진짜 모습이랄까요. 저는 삶에 딱 붙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정원과 인간의 관계가 매력적이라 생각해요.


그럼 그 집에 있고 이 집엔 없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혜성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수준의 물리적 넓은 공간요. 지금 집에서도 식물을 어느 정도 키우고 있지만, 아무래도 실내 텃밭은 실외보다 한계가 있거든요. 작물이 자라는 속도는 노지를 따라갈 수 없어요. 그리고 진짜배기 여유요. 흉내 내기 식의 슬로 라이프가 아닌, 이미 그렇게 살고 있어서 미처 본인들은 모르는 우아한 느림 같은 게 있더라고요. 집 앞마당에 나가 채취하는 과정까지 요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자세가 가장 다른 점 같아요.


반려식물이라는 말은 정말 많이 쓰지만, 저는 정말 식물이 ‘반려’처럼 느껴질까 궁금했어요.
혜성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시간대를 나누고 있으니 우리는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저희가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커튼을 젖히고, 식물등을 켜주니 그들에게도 날이 밝은 거죠. 물 샤워, 분갈이, 파종하는 날이 되면 또 다 같이 부산하게 지내고요. 비슷한 타임라인과 라이프스타일로 생활하다 보니 이게 가족 아닌가 싶어요. 돌봐야 하는 식물이 많다는 건 여유를 포기한다는 느낌보다 평소보다 좀 더 느리게 걷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라면 다섯 가지든 열 가지든 집안일을 다 끝냈을 시간에 저희는 여전히 식물에 물 주는 단 한 가지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식물의 성장이 혜성 씨가 성장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나요?
혜성
저는 마음이 다치면 늘 흙으로 간 것 같아요. 관계가 틀어져서 어떤 시점까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을 땐 장미를 돌본다거나 새벽에 텃밭에 나가 무언가를 심고 수확하며 시간을 보냈지요. 그렇게 한 달 정도 있다가 스스로 정리되면, 그다음 용기를 내서 친구들을 만나며 제 생각을 말하곤 했어요. 그게 저의 매뉴얼 같은 거였죠. 누군가한텐 그 과정이 독서가 될 수 있고 여행이 될 수도 있는데, 저는 허리 굽혀 식물을 돌보는 행위에서 위로를 얻더라고요. 죽은 잎을 떼어주고, 분갈이를 해주고, 스프레이를 뿌려주고··· 이런 돌보는 행위가 결국 저에게 돌아오는 것 같았어요. 흩어졌던 중심이 다시 저에게로 쏠리는 느낌이랄까요.


집에 한계가 없다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혜성
저는 계속 남편한테 집 지어서 살자고 말하고 있어요. 조금 외곽으로 나가서라도 우리 집을 짓자고요. 먹거리 숲(food forest)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즐겨 먹고 좋아하는 씨앗을 뿌려서 온갖 식용작물들과 과실수로 이뤄진 숲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인위적인 개입 없이도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에코 시스템을 갖춘 숲. 살면서 꼭 이뤄보고 싶은 프로젝트예요.


마지막으로 자기만의 정원을 만드는 방법이 있을까요?
혜성
PPL은 아니고요(웃음), 지금 친구와 개발한 씨앗 그로우 키트도 정원 식물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좁은 공간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정원을 만들 수 있는 키트죠. 저희 집 공간도 크지 않잖아요. 정원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정말 화려한 꽃과 나무가 있는 어떤 공간만을 정원이라 부를 것인지, 화분 하나 둔 테이블을 나의 정원이라 볼 것인지 본인 스스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굉장히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구조 다세대빌라 투룸
면적  40㎡(12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