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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고향을 닮아간다

Resemble the Home of Plant

식물의 고향을 닮아간다

Editor.Jayeo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박상혁/ 30세

식물 콘텐츠 크리에이터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중구 순화동
구조 아파트 침실
면적 13.22㎡(4평)

 

Room History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식물을 키우는 사람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키우지만, 키우지 않는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키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정말이지 다양하다. 북향이라서, 반지하라서, 음지여서, 공기 순환이 되지 않아서, 안 그래도 축축하고 습해서 등등. 식물을 키우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기엔 공간적 한계 때문에 시작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박상혁을 만나 식물한테 좋은 환경이란 게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빛이 드리우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도, 습기가 축축한 늪지에서도 식물은 자란다. 절대적 조건이란 게 없으니 우리 집이 닮을 수 있는 식물의 고향을 궁리하면 되는 것.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도, 4평 남짓한 자기 방에서도 베란다 없이 식물을 무성하게 키워낸 그를 보면서 어쩌면 어딘가 있을지 모를 내 정원을 떠올렸다.


SNS 계정 프로필에 가장 먼저 보이는 문구가 “베란다 없는 실내에서 식물을 가꿔요”라는 말이에요. 그 말은 사실 식물 생활엔 베란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처럼 들리기도 했어요.
우리나라는 아파트 생활이 보편적이다 보니 베란다가 전통적으로 식물을 키우는 장소로 자리 잡았어요. 베란다가 없으면 식물을 키울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알게 모르게 생겨난 거죠. 하지만 꼭 베란다가 있어야만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식물은 종에 따라 잘 자라는 환경이 저마다 달라요. 제가 주로 키우는 열대 아메리카 식물은 추위를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베란다는 오히려 부적합해요. 반면 벚꽃, 튤립, 수선화처럼 추위를 반드시 겪어야만 꽃을 피우는 종이 있어요. 이런 식물은 베란다에서 사계절을 보내는 게 유리하죠. 그러니 베란다의 유무보다 어떤 식물이냐가 더 중요해요. 쉽게 말하면, 그 식물이 원래 살던 자생지를 떠올리면 돼요. 더운 곳에서 자랐는지,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 자랐는지 같은 거 말이에요.

식물이 원래 살던 고향을 이해하는 거네요.
맞아요. 식물 집사로서 어떻게 하면 이 식물이 나와 함께 더 오래 생존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리해야 하는 거죠. 물론 베란다의 장점도 커요. 외부와 연결돼 있으니 햇볕이나 바람이 더 쉽게 들어오거든요. 물 주기도 편하고요. 저는 모든 식물이 집 안에 있다 보니 물 받침대가 꼭 필요해요. 물을 줄 때 그 밑으로 빠져나가거든요. 큰 식물은 모두 욕실로 옮겨야 하고요. 하지만 베란다가 있었다면 물 빠짐 걱정 없이 샤워기로 한 방에 시원하게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 서식지를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어요. 바로 나의 생활 패턴을 파악하는 거예요.

생활 패턴요?
예를 들어 내가 직장인이고 야근이 많은 편에 속한다면, 물을 자주 주어야 하는 고사리나 유칼립투스는 키우기 어려울 거예요. 그보다는 물을 아주 가끔 주어야 하는 선인장 같은 종을 키우는 게 더 적합하거든요. 선인장은 겨울이 되면 스스로 단수해버려요. 물을 끊어버리는 거죠. 10월 즈음부터 이 휴지기가 시작되는데 3~4월까지 튼튼하게 잘 버텨요. 이렇게 내 사이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그에 맞는 식물을 골라 잘 키울 수 있거든요.

그런데 4평 정도 되는 방 안에 우거진 수풀을 이루기까지 가족에게 동의를 얻는 것도 일이었을 것 같아요. 거실에도 화분이 줄지어 있잖아요.
맞아요. 가족과 같이 살면서 그나마 제 방은 저에게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실은 다른 가족 구성원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방이 아닌 곳에 둘 식물은 가족의 동의를 얻거나 분위기를 살피면서 골라야 해요. 만약 룸메와 함께 사는 상황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신중하게 식물 생활을 했을 것 같아요. 식물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지만, 반려동물을 들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봐요. 나는 이게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데 누군가는 너무 싫어할 수도 있고, 내가 없을 땐 나를 대신해 그 사람이 돌봄 노동을 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더 많은 대화와 논의를 거쳐야죠.


지금까지 유튜버 그랜트로서의 상혁 씨만 보았거든요. 본업도 식물과 연관된 일을 하나요?
원래는 광고∙마케팅 분야에서 일했어요. 지금은 일을 그만두고 잠시 유튜버로서 활동하고 있고요. 사실상 식물과 접점은 없는 분야였죠. 오히려 정신없이 일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영혼의 휴식처 같은 의미로 가드닝을 즐겼어요.

그럼 상혁 씨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식물과 바쁜 현생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맞췄어요?
식물에 물을 한꺼번에 주는 게 아니라, 식물별로 주기가 달라요. 그 전에 물이 정말 필요한지 흙 상태를 먼저 확인해야 하고요. 그래서 저는 구역을 나누었어요. 물을 주는 주기가 비슷한 식물끼리 모아둔 거죠. 그럼 때에 맞춰 물을 주면 되어 시스템적으로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더라고요. 아주 많이 몰리는 날에는 100개 정도 몰리는데, 그래도 2시간 정도면 마무리가 돼요. 하지만 직장에 다녔다면 지금만큼 신경 쓰진 못할 것 같아요. 물 주는 것 외에도 손 가는 일이 많기도 하고요. 바쁠 땐 감당할 수 있는 개수를 조절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식물 맞춤형으로 패턴을 조절한 거네요. 이렇게 해도 베란다가 없다는 이유로 실패를 맛본 적이 있나요?
많아요. 올리브나무나 허브 종류가 그랬어요. 이 친구들은 직사광선을 오랜 시간 쬐어주고 바람도 마구 불어야 좋은 종이에요. 사실상 마당에서 키웠어야 했죠. 하도 떠나보내니까 어느 순간부턴 죽음의 전조 현상도 알아차려요. 잎이 갑자기 후드득 떨어지면서 바짝 마르거든요. 이럴 때 사람들이 영양제를 주는 실수를 종종 하는데, 그러면 더 빨리 죽어요. 뿌리는 인간으로 치면 심장과 같아서 무리가 가거든요. 잘 성장할 땐 영양제가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죠.

식물을 죽이면서 배운 교훈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리 예뻐도 저희 집 구조와 잘 맞지 않으면 들이지 않아요. 마음을 내려놓는 거죠. 그 식물과 잘 맞는 집에 사는 어느 누군가 키우는 모습을 멀리 지켜보면서 만족해요.


베란다 유무를 제외하고도 북향이나 반지하처럼 다양한 공간적 한계도 존재해요. 내가 아무리 규칙적으로 관리할 자신이 넘쳐도 의지가 구조적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조금 의문이 들어요.
사실 실내 식물이라는 건 없어요. 원래 식물이란 게 야생에서 자라는 거잖아요. 다만 실내에서 키우더라도 환경을 받아들이는 스펙트럼이 넓은 친구들을 실내 식물이라고 칭하는 거예요. 우리가 알기로 산세비에리아는 가장 대표적인 실내 식물이거든요. 그런데 산세비에리아의 자생지는 아프리카예요. 엄청난 뙤약볕이 필요하죠. 하지만 어두운 곳에서도 잘 버티는 특징이 있어요. 햇볕을 좋아하는 동시에 어둠에서도 오랫동안 버틸 힘이 있기 때문에 집에서 흔히 키울 수 있는 거죠. 관엽식물은 생장등으로 반지하나 음지에서도 충분히 키울 수 있어요. 이제는 문명의 혜택을 빌려 의지를 구현하는 사람이 많아요.

상혁 씨도 그런 문명의 도움을 받았나요?
그럼요. 키우는 식물 크기가 작고 개수가 많지 않을 때엔 해가 그다지 부족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식물이 점점 커지고, 개수가 늘어나다 보니까 빛에 대한 경쟁을 하면서 서로 가리더라고요. 밑에 키가 작은 애들은 빛을 계속 못 받는 거죠. 그래서 생장등을 설치했어요. 이렇게 키우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요즘에는 실내에 온실장을 두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건 마치 예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런 모습을 보면 이렇게라도 식물 키우는 기쁨을 맛보며 교감하고 싶어하는 구나 느껴요.

식물 들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내 집이 어떤 여건인지 파악하려고 할 때 첫 번째 해야 할 작업은 무엇일까요?
빛의 방향을 보는 거요. 단순히 햇볕이 얼마나 들어오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향에서 들어오는지를 아는 거예요. 집이 남향이라 하더라도, 어떤 방은 남서향인 식으로 같은 집에서도 다른 방향이 있거든요. 북향과 북동향도 비슷한 듯 보이지만 아주 달라요. 북향은 해가 아예 들지 않고요, 북동향은 아침에 잠깐 들거든요. 또 방향만 볼 게 아니라 주변에 해를 가리는 건물은 없는지, 고층인지 저층인지, 창문은 얼마나 큰지를 살펴보면 더 건강한 식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어요.

많은 2030 세대는 사실 테라스나 베란다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식물 생활을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식물은 무엇인가요?
몬스테라요. 비교적 키우기 쉽거든요. 오랫동안 물을 못 주는 상황이 되어도 오래 버텨요. 게다가 위험하면 전조 증상을 바로 보이기 때문에 골든 타임도 잘 잡을 수 있죠. 해충에도 잘 버티고 성장력도 좋아서 곁에서 바라보는 즐거움도 커요. 또 영화 <레옹>에 보면 레옹이 항상 들고 다니는 화분 있죠? 그게 아글라오네마라는 식물이에요. 거의 빛이 들지 않거나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친구죠.

좁은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꿀팁이 궁금해요!
비교적 금세 크는 식물이 있어요. 그러면 공간을 생각해서 가지치기로 줄기를 잘라내서 다른 작은 화분에 정리하면 다시 작게 만들 수 있어요. 아니면 미니어처 종으로 규모를 작게 구성할 수도 있고요. 아파트나 주택, 빌라 같은 경우는 바깥 길가에 내놓고 키울 수도 있잖아요. 공간의 특징을 명확하게 이해해서 최대한 공간적 창의성을 발휘하는 게 좋아요.


고백하자면 침실 정글을 처음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와, 습하겠다!’였어요.
거실에 있는 식물 위로는 천장에 곰팡이가 아주 살짝 생겼어요. 그런데 제 방은 거실보다 훨씬 크기도 작고 식물도 훨씬 더 많은데 곰팡이가 생기지 않아요. 신기하죠? 환기를 잘해서 그래요. 낮에는 서큘레이터로 계속 공기 순환을 시키니까 결로가 생기지 않거든요. 물론 막 물을 주고 난 직후에는 좀 습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금세 괜찮아져요. 제가 비염이 있거든요. 방에 들어가면 코가 안 막혀요. 자연 가습기예요. 저한텐 이런 좋은 점이 있답니다.(웃음)

독일 시사 주간지 <포쿠스>에서는 “이국적이거나 희귀 식물을 찾는 연령이 대부분 30세 이하의 젊은층이다”라고 밝혔어요. 왜 MZ세대는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식물을 발굴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걸까요?
남들이 흔하게 키우지 않는 식물이라는 특별함을 만끽하고 싶은 듯해요. 식물이 아니더라도 어떤 취미든 컬렉터가 있잖아요. 수집 욕구요. 그게 큰 것 같아요. 또 식물이 얼마나 예뻐요. 한 번도 보지 못한 원시적인 비주얼의 식물을 보면 자연의 원형이 떠오르기도 하거든요. 마음에 요동이 치죠. 그런 이유에서 2030 세대가 희귀 식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코로나19를 계기로 2030 세대의 식물 구매율이 급증했어요. 2020년 2분기, 20대의 새싹 재배기 구매율이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했다고 해요. 5060 세대의 증가 수치가 0.5%인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거든요. 왜 이렇게 식물에 환호하는 걸까요?
많은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데 식물은 유일하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저에게 솔직하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죠. 그 정직함을 느끼면서 명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많다는 걸 알았잖아요. 그럴 때 복잡한 감정을 잊고 유일하게 투명하고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식물을 보면서 정화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식물 생활을 통해 상혁 씨 일상에 생겨난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길을 걷다가도 자연을 더 세심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길목에 있는 나무들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거든요. 길바닥에 있는 이끼부터 꽃나무까지 자연을 일상 속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느끼게 되었어요. 또 식물과 함께하면서 24절기에 맞춰 생활하게 된 것도 큰 변화예요. 정말 신기하게도 절기에 따라 날씨나 해의 미묘한 변화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거든요. 처서만 되면 그 어떤 혹독한 폭염도 한풀 꺾여서 ‘처서 매직’이라고 하잖아요. 아무래도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며 절기에 따라 햇볕의 방향과 양을 세심하게 관찰하다 보니 자연스레 습관이 된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중구 순화동
구조 아파트 침실
면적 13.22㎡(4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