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mark wordmark

logo logo

일기가 된 사진들

Photos that became a diary

일기가 된 사진들

Editor.Juhee Mun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임정온 / 30세

교직원


Conditions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구조 다세대빌라 투룸
면적  30m²(9평)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5만 원

 

Room History

22세 경기도 남양주시 고시텔
(월세 30만 원)
23세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다세대빌라 옥탑방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0만 원)

 

며칠째 사진 용량이 부족하다는 휴대폰 알림 메시지가 자꾸만 뜬다. 사진 앨범 최근 항목에는 1만7000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다. ‘언제 다 정리하지’ 하는 아득함이 밀려올 무렵 임정온을 만났다. 그의 잘 정리된 사진첩은 마치 기름칠해 관리한 톱니바퀴처럼 가뿐하게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임정온은 캐주얼한 기준으로 여러 루틴을 만들어 실행하는 사람이다. 퇴근길 도보 콘서트, 월요일에만 커피 마시기 같은 루틴으로 일상의 행복을 채취하는 사람. 어쩌면 스쳐 지나가는 마음일지 모르지만, 그를 만나고 나니 아득하기만 하던 사진 정리가 아주 쉽게 느껴졌다.


정온 씨의 독립 출판물 《세 번째 빌라》를 읽고서 이 집에 오게 됐네요. 여기가 그 세 번째 빌라인가요?
두 번째 자취 집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세 동의 빌라가 붙어 있는 곳이었는데, 외부에서는 두 동만 보여요. 세 번째 빌라를 아는 사람은 안쪽에 사는 사람이나 택배 기사님밖에 없었죠. 그곳의 비밀스러운 점이 좋아서 붙인 이름이에요. 첫 번째 집은 고시원이었고, 두 번째 집은 빌라 옥탑이었어요. 여기가 그 세 번째 빌라는 아니지만, 세 번째 집이긴 하네요.


교직원으로 일하는 건 어때요? 요즘 코로나19로 학교 분위기도 어수선할 것 같은데요.
교직원은 모두 출근하고 있어요. 학생들도 한 학년씩 번갈아 가면서 등교하고 있고요. 보통 오전 8시 40분쯤 출근해서 오후 4시 40분쯤 끝나고, 야근도 거의 없어서 크게 어긋나는 일 없이 비슷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퇴근이 빨라서 저녁 시간이 여유롭겠어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집에 오면 무척 바빠요. 요리해서 밥 먹고, 치우고 정리하면 2시간은 족히 걸리고, 청소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거든요. 그걸 다 하고 나면 1~2시간 정도 여유롭게 남는 것 같아요.


정온 씨 블로그만 봐도 집 안에서 활동하는 양이 만만치 않아 보이거든요. 여러 루틴 중 특히 한 달에 한 번씩 사진 정리하는 게 눈에 띄더라고요. 언제부터 매달 사진 정리를 시작했나요?
사진 정리를 한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아요. 열일곱부터 나이순으로 폴더가 있으니까요. 그때는 지금보다 사진양이 적어서 느슨한 주기로 정리했는데, 스무 살이 되고 아이폰 3G를 가지면서 늘어난 사진양에 따라 본격적으로 매달 정리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거의 10년 동안 쉬지 않고 한 거네요?
처음에는 ‘다들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찍은 사진을 다 갖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주변에 안 하는 사람이 더 많더라고요.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정리하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그럼 지금 휴대폰에 들어 있는 사진은 몇 장이에요?
잠깐만요. 휴대폰 켜서 볼게요. 캡처한 사진 빼고는 100장 언저리 되는 것 같아요.


와, 그것밖에 없다고요?

네, 한 달 사이에 찍어둔 사진 외에는 휴대폰에 저장을 안 해요. 휴대폰 사진첩 자체는 가볍게 두고요. 요즘은 드라이브 앱으로 언제든 사진을 열어볼 수 있으니까 앱을 다운받아서 쓰고 있어요.


왠지 휴대폰 자체도 가벼워 보이는 것 같아요. 사진 정리는 주로 어떻게 해요?
일단 제가 기계를 불신하기 때문에 똑같은 사진 파일 하나를 세 곳에 넣어요. 최근에 외장 하드가 망가지긴 했지만 컴퓨터, 외장 하드, 웹하드를 쓰고 있어요. 우선 나이와 월별로 폴더를 분류해두고요. 사진을 넣을 때는 파일 이름을 일일이 다 바꿔요. 보통은 파일명을 날짜로 하는데,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일로 찍은 사진은 파일명에 추가 정보를 적어요. 예를 들면 ‘2020-07-001 강원도’처럼 나중에 강원도만 따로 검색해서 볼 수 있도록요.


그러면 과거를 회상할 때 도움이 되나요?
사실 여행을 간다고 해도 카페 가고, 바다 가고, 밥 먹으러 가니까 비슷한 사진만 찍거든요. 예뻐서 찍은 바다 사진이지만 강릉에서 찍었는지, 고성에서 찍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어느 시기에 찍은 사진인지 알기 위해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죠. 물론 사진이 잘 정리돼 있어서 다른 추억을 우연히 발견하는 즐거움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아쉽지는 않아요. 바지 주머니에서 공돈 발견한 기분 같은 건 없어도 두 번째 서랍 안에 2만 원을 넣어두었다는 걸 아는 게 제겐 더 큰 기쁨인 것 같아요.


사진은 파일을 지워버리면 다시 복구하기가 어렵잖아요. 어떻게 과감하게 삭제해요?
기억력 감퇴인지 몰라도 어떤 일을 떠올리려면 사진을 봐야 기억이 나거나, 혹은 사진을 봤는데도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가끔 있더라고요. 이래서 사진이 중요한가 싶다가도 어차피 기억도 안 나니까 이래서 필요 없는 거구나 싶기도 해요. (전 남자 친구) 폴더를 한번 빡세게 지운 일이 있었는데 그때 다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던데요. 약간 물건과 비슷한 것 같아요. 많아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잖아요. 그런데 한두 번 버리면 또 쉽게 지우게 되더라고요.


과감하게 지운 분명한 계기가 있긴 했네요. 전 애인의 사진을 지우냐 마느냐는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그 시절에 나를 지운다는 생각에 망설여지는 건 부정하기 어렵지 않아요?
저는 무조건 지워요. 제 독사진은 남기지만요.(웃음) 수백 장의 사진을 미련 없이 지우고 나서 보니까 생각보다 괜찮은 거예요. 오히려 인연이 끊긴 사람의 사진까지 내가 가진 용량을 써야 하나 싶더라고요. 어쨌든 데이터라 하더라도 그 공간도 내 것이고 자리도 내가 내는 것이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내 공간에 나와 닿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 남아 있는 게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 것 같아요.


되게 철학적인 얘기네요. 사진을 비우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죠. 저 자신이 계속 자리 만들기를 하는 것 같아요. 현재 내 옆에 남은 사람들과 내가 가진 것들을 잘 보기 위해서요. 과거의 일에 집착하는 편이라, 몇 년 전 일이 불현듯 떠올라서 생각이 깊어지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도 과거 일들이 떠오르는데, 시각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 뭔가 남아 있다면 더 쉽게 과거에 매몰될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런 게 싫어서 지워야 할 부분은 지우고 새로운 자리를 만든 것 같아요.


이제껏 지운 사진 중 아쉬운 것은 없어요?
그동안 지운 것 중에는 없는 것 같아요. 사진을 옮기려다가 실수로 삭제했을 때 땅을 치고 울긴 했고요.


앞서 사진은 때로 부질없기도 하다면서, 땅을 치고 운 이유는 뭐예요?
왜 울었을까요? 거의 2시간을 울었는데‧‧‧. 너무 일상적인 사진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평범한 일은 기억이 잘 안 나잖아요. 그 한 달이 아주 좋진 않았지만 불평할 일도 없었거든요. 사진을 봐야 이번 달에 뭘 먹었는지, 산책하면서 어떤 구름을 보고 어떤 꽃을 봤는지 알 수 있는데, 그게 사라져버렸다는 게 마치 내 기억이 날아가버린 느낌이 들어서 화가 나고 속상했던 것 같아요.


사진 정리를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었어요?
지금까지 최대 한 달 정도 미루긴 했어도 계속해온 것 같아요. 습관처럼 하는 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이제는 이 일이 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한 것 같고요. 때로는 과거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도록 제 자신을 건전하게 만드는 일기장 같기도 해요. 물론 쓰는 일기로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글은 쓸 때의 기분이 다 드러나잖아요. 그런데 사진은 이미지니까 그날 내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걸 찍으면 아름답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 조금 더 직관적으로 제가 보낸 한 달을 돌아보고 정리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소셜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하루에도 방대한 양으로 디지털 데이터를 만들고 있고, 그에 따라 기기가 발전함으로써 데이터를 넉넉히 저장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럼에도 우리가 사진을 정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전에는 막연히 집 자체의 평수가 넓으면 더 깔끔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엄청 많은 제 옷을 보고 있는데 그게 답답하게 느껴진 거예요. 넓은 평수에 산다고 해도 나의 습성이 그대로면 결국 똑같겠구나, 그럼 이건 평수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바꿔야 할 일이구나 깨닫고 그동안 옷도 많이 버렸어요. 사진을 저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용량의 문제가 아니라 소화하는 게 중요한 거죠. 내가 가진 것을 어디에 뒀는지 알고 필요할 때 바로 찾을 수 있어야 비로소 내가 가진 것, 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진첩 정리 외에도 정온 씨는 루틴이 많잖아요. 블로그에 쓴 아침 루틴을 봤어요. 눈뜨자마자 명상, 자리 정돈, 씻고 따뜻한 차 마시면서 아침 일기 쓰고 스트레칭하기. 이걸 통틀어서 ‘아침 굴렁쇠’라 부르던데 그게 뭐예요?
아침을 망치면 그날 하루를 다 망쳤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침부터 이 굴레를 잘 돌려야 오늘 하루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침 굴렁쇠라고 불러요. 통으로 성공한 건 손에 꼽는 것 같고요.(웃음) 오늘은 일기 못 쓰니까 일단 스트레칭한다, 우선 명상하고 씻는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지키려고 해요. 사실 아침 굴렁쇠를 완벽하게 지키려면 6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는 것부터 고비거든요.


저는 ‘월요 커피’ 루틴이 흥미롭던데 소개 좀 해주세요. 매일 커피를 달고 사는 사람으로서 왜 월요일에만 커피를 마시는지 궁금했어요.
원래 커피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서 자주 마시진 않는데, 출근하면 사람들이 다 믹스 커피를 타고 있어요. 냄새가 풍기니까 저도 따라서 자꾸 마시게 되더라고요. 공복 상태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몸에 안 좋으니까 룰을 정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 중 하루만 마시자!’ 이렇게 된 거예요. 룰을 정할 때 일주일 중 어떤 요일이 좋을지 먼저 정하거든요. 월요일은 일주일 중에 매번 힘든 날이니까 그날로 정했어요. 일요일에 잘 때 내일은 “커피 마시는 날!” 하면서 기분 좋게 일어나려고요. 요즘은 레모니카노를 마시는데, 레모니카노 마실 생각을 하면 월요일 아침이 기다려지기도 해요.


정온 씨는 본인이 부지런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게으르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하루가 피곤할 만해요.(웃음) 집에 있더라도 “늘어지면 안 돼! 또 뭔가 해야 해!” 하면서 활동량을 채우려고 하거든요. 물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도 있고요. 이제는 사람과 부대끼면서 제 활동량을 채우려 하지 않고 나와 스스로 노는 방법을 찾으려고 해요.


그 노는 방법에 ‘퇴근길 도보 콘서트’도 있는 건가요?
맞아요.(웃음) 반복되는 하루가 심심하지 않도록 계속 저 자신과 노는 거예요. 퇴근하고 걸어오는 길에 돌파고개를 지나요. 이름에서 느껴지듯 꽤 높은 4차선 도로의 고개인데 사람이 없거든요. 거기서 도보 콘서트를 시작하는 거예요. 먼저 이어폰을 끼고 엄청나게 크게 소리치듯 노래를 불러요. 버스라도 지나가면 아무런 일도 없는 척하다가 다시 방실방실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죠. 콘서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오늘도 충분히 활동한 기분이 들어요. 저한테는 하루에 할당된 차분함과 들뜸의 수치가 있는데, 들뜸 수치를 다 쓰고 왔으니까 ‘이제는 집에서 차분하게 차 마시면 돼’ 하면서 저를 조절해요.


혼자 잘 노는 정온 씨는 건강한 사람 같아요.
여러 가지 루틴을 지키는 동안 건강해진 것 같아요. 밥도 잘 먹고 정리도 잘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요. 가끔은 스스로 너무 사랑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해요. 밝고 건전한 느낌이 몰려오거든요. ‘지금 너무 좋다!’ 싶을 때가 불현듯 찾아오곤 해요.


하루하루 루틴을 갖는 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만든 룰이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 언젠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인 것 같아요. 잘 안 되더라도 ‘오늘 하루도 잘 굴려보자~’ 하면서 다시 시작해요. 그런 게 나로 사는 방법인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구조 다세대빌라 투룸
면적  30m²(9평)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5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