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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집중을 위한, 노 와이파이 존

No Wifi Zone for focus and Idea

사유와 집중을 위한, 노 와이파이 존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김규림 / 30세

문구인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구조 오피스텔
면적  89.25㎡(27평)
보증금 4억 원대(전세)

 

Room History

25세 서울시 관악구 중앙동
오피스텔 (전세 2억 원대)

 

김규림은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 다양한 일을 ‘집에서’ 잘 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4년간 다닌 회사를 관두고 1년째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의 말로는 백수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땐 누구보다 바쁜 사람 같다.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문구 관련한 책도 쓰고, 유튜브 영상까지 찍으니 말이다. 나는 그 많은 걸 잘 해내는 김규림이 궁금했다. 아니 그 일을 가능케 하는 그의 집이 궁금했다. 거실 옆 조그마한 방문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No Wifi Zone.” 통신이 단절된 공간에서 그는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 걸까?


랜선 집들이 영상을 봐서 그런지 집이 친숙하게 느껴져요. 1년 전 영상이니 많이 달라졌으려나요?
베트남에서 귀국하자마자 찍었으니까 1년 정도 됐겠네요. 제가 그 이후 1년 동안 백수 생활을 했는데, 집에만 머무르면서 필요한 걸 사 모았더니 확실히 물건이 많아진 것 같긴 해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잘 정리되어 있네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니까 정리를 굉장히 자주 하는 편이에요. 깨끗하게 보이려는 것보다 그냥 제 물건이 워낙 많으니까 다 돌아가면서 써줘야 효용이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계속 물건을 순환시키고 있는 거죠. 청소는 그렇게 열심히 안 하고 정리만 열심히 해요.(웃음)


요즘엔 자신을 소개할 때 뭐라고 말해요? 문구인? 유튜버? 프리랜서?
대부분 문구인이라 소개하고 있어요. 사실 가장 쓰고 싶지 않은 표현이 프리랜서여서, 그 용어 대신 백수 아니면 무소속 이렇게 표현하고요.


왜요?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왜요?
일단 프리랜서 자체가 일하는 것을 전제로 하잖아요. 저는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에게 1년 동안 쉬겠다고 선언할 때 모든 경제활동도 중단하겠다고 덧붙였거든요. 그런데 돈을 벌고 있으면 그걸 번복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하기 싫어서 최대한 일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제는 1년이 되어 슬슬 일하는 삶으로 돌아가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쉬는 게 너무 잘 맞는데, 또 일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어서 작은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면 너무 재밌더라고요. 이런 일이라면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싶었죠.


원래는 동생과 함께 살았다고 들었어요. 동생이 쓰던 방을 잘 사용하고 있던데요? 그 방을 ‘No Wifi Zone’이라 부른다고요.
예전부터 줄곧 통신과 단절된 삶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멀티가 진짜 안 되는 사람이거든요. 사실 멀티가 잘되는 사람은 굳이 와이파이를 쓰지 않을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어떤 일을 하다가도 메시지가 오면 집중력을 잃어서 일을 계속 놓치게 되더라고요. 그런 게 반복되다 보니 자꾸 저를 탓하는 거예요. “아, 너 진짜 집중력이 이것밖에 안 돼?” 하는 거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저를 탓할 게 아닌 거예요. 제가 최근에 어떤 책에서 “스스로를 재밌게 해줄 만한 환경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구절을 봤어요. 진짜 공감이 되더라고요. 왜냐하면 뭐가 안 된다고 해서 계속 나 자신만 탓하다 보면 자존감이 깎이고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없잖아요. 하다못해 포도알 스티커라도 준비해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거의 어르고 달래는 식이네요.(웃음)
그렇죠. “너, 글쓰기 싫어? 그럼 키보드 사줄게” 이런 식.(웃음) 노 와이파이 존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지금의 환경이 방해된다면 아예 와이파이를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마련하면 어떨까? 그럼 좀 더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해본 거죠.


그래서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나요?
나름대로 구획을 정했어요. 거실 책상에선 온라인 작업할 것, 예를 들면 레퍼런스를 찾는다거나 툴을 사용하는 작업을 하고요, 노 와이파이 존에선 좀 더 조용한 분위기에서 할 만한 일을 해요. 주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데, 책도 분야마다 성격이 다르잖아요. 좀 더 집중해서 읽어야만 하는 책은 거기서 읽는 편이에요. 소설 같은 책은 밖에서 읽고요. 노 와이파이 존엔 컴퓨터도 없어요.


노 와이파이 존을 만든 결과가 어떻던가요?
사유하는 힘이 길러지면서 저에 대해 더 알게 되었죠. 어떻게 일해야 하는 사람인지도 알았고요.


규칙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나요?
저는 남이 규칙을 정해주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데, 또 스스로 규칙을 만들면 깨버리기도 해요. 노 와이파이 존 같은 경우는 저에게 너무나 필요한 규칙이어서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지만, 정말 필요에 의한 게 아니라면 보통은 규칙 없이도 즐겁게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 방에서 와이파이 써도 되죠.(웃음) 기술적으로 차단한 게 아니기 때문에 가끔 잠자기 전에 누워서 드라마도 보긴 하는데, 취지만은 잃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직장인 88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더니, 코로나19로 10명 중 6명이 재택근무를 했다는 통계가 나왔어요. 생각보다 많은 수가 재택근무를 경험한 것인데 갑작스러운 변화이다 보니, 집이 일터가 된 것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만약 규림 씨가 회사원이었다면 집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바꾸었을 것 같나요?
친구들이 다 재택근무를 하니까 덩달아 저도 재택근무를 하는 느낌이긴 했어요. 그런데 4년 동안 잠만 잔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하려니까 너무 졸린 거예요. 낮인데도. 바로 뒤에 침대가 있고 하니 얼마나 고민되었겠어요. 그래서 가구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어요. 최근에 의자를 제작했는데 일부러 등받이가 없는 것으로 했어요. 다른 가구를 살 때도 약간은 불편한 것으로 골라 적당히 긴장하면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고요. 제가 퇴사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건 커다란 테이블을 제작한 거였어요. 그런 식으로 일의 중심이 되는 가구부터 바꾸었어요.


노 와이파이 존처럼 공간을 분리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가도 ‘원룸에 사는 사람들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코로나19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질 수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집은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할까요?
“우리 집은 원룸인데?” “노 와이파이 존이 따로 없는데?” 이렇게 말하시는 분이 많은데, 사실 노 와이파이 존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공간보다 사실 그 규칙, 그것을 왜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거잖아요. 꼭 공간을 분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으로도 구분할 수 있거든요. 나는 1시부터 3시까지 와이파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고, 아니면 내가 이 책상에 앉으면 이걸 하고, 어떤 걸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도 있지요. 회사에선 눕지 않는 것이 당연한 규칙이지만 재택근무할 때면 예외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집에서 일할 땐 각자의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이케아 매출이 큰 폭으로 늘었대요. 전년 대비 32.6% 정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집과 홈 퍼니싱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 한몫했다고 해요. 규림 씨는 어때요? 무언가를 더 구입했나요?
굉장히 많이요. 이케아 얘기를 듣자마자 정말 그랬겠다 싶었어요. 밖으로 나가면 외부 자극들이 들어오잖아요. 어디 카페에만 가더라도 새로 나온 메뉴 혹은 굿즈들을 발견하게 되고요. 지금은 그런 게 어려우니까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소비로 계속 자극을 주는 것 같아요. 일단 저부터 일상의 변주를 주는 도구를 많이 구입했어요. 주로 조그마한 집기를 샀는데 원래 것과 교체하면서 저 나름대로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규림 씨는 팬데믹 이후 집의 역할과 의미가 변화했다는 것을 느끼나요?
네. 그런데 개인적으로 팬데믹 때문인지, 무소속 생활 때문인지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변하긴 했어요. 사실 둘 다 비슷한 상황이긴 하죠. 어쨌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거니까요. 그런데 팬데믹 이전에 집은 그저 쉼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니까 삶이 된 느낌? 일부였다가 내 안에 통째로 들어와서 전체가 된 그런 느낌이에요.


저는 일하는 자아와 휴식의 자아가 완벽히 분리된 사람이에요.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얄짤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놀죠. 규림 씨의 머릿속에도 어떤 파티션이 있나요?
아니요, 전혀 분리되지 않아요. 완벽한 일체형이에요. 저는 워라밸이라는 단어에 늘 공감하지 못한 사람이었어요.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삶이 일이고 일이 삶인 사람. 이번에 외주 일을 받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어요. ‘아, 나는 일체형 인간이구나.’ 종일 그 생각만 하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어, 대박 이러면서 메모를 남겼거든요. 물론 재밌어서 그렇게 하는 거겠죠? 만약 라이프에서 워크를 뺀 나머지 시간이 진짜 라이프라고 한다면 일하는 시간은 그냥 아까운 시간이 돼버리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더 저를 비참하게 만들어서 제가 재밌는 일을 찾고자 했고, 그게 아닌 상황이라면 세뇌를 시켜서라도 일하는 나, 쉬는 나 모두 행복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규림 씨는 팬데믹 이전에도 집에서 일했잖아요. 재택근무 선배로서 조언해줄 팁 같은 것이 있을까요?
저는 일단 일하기 전에 실내복으로 갈아입어요. 잠옷 말고 실내복요. 이런 거 있잖아요, ‘어? 이걸 입고 있는데 네가 감히 침대에서 잠을 자?’(웃음) 옷을 갈아입는 행위 자체가 일의 시동을 거는 것 같고, 커피를 내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그 기준으로 일을 딱 시작하거든요. 결국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지만요.


마지막으로 김규림에게 2021년의 계획을 물어보면서 인터뷰를 마치고 싶어요.
지금은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하고 있는데, 당장은 12월에 개인 전시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아마도 재밌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구조 오피스텔
면적  89.25㎡(27평)
보증금 4억 원대(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