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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핸드 워시가 없는 집인데 한번 보시겠어요?

No Aesop’s in this house, wanna look?

이솝 핸드 워시가 없는 집인데 한번 보시겠어요?

Writer. Keith S. Kim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친구가 얼마 전 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 해서 구경을 갔다.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오래된 아파트인데, 예산에 맞는 인테리어업체를 아직 찾지 못해 입주가 미뤄지게 생겼다고 했다. 벽지가 누렇게 뜨고 장판에 먼지가 굴러다니는 걸 보니 이사 나간 지도 꽤 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요새 이 동네에서 집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인데 용케 괜찮은 델 구했지.” 친구는 이 집의 잠재력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리기 위한 계획을 짜듯 침대를 이쪽으로 놓을지 저쪽으로 놓을지 5분마다 결정을 뒤집었다.

화장실 불을 켜자마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것도 없는 구식 욕실 세면대에 ‘이솝’ 브랜드 핸드 워시가 고고하게 놓여 있었다. 아직 휴지도 없는 화장실에 5만 원짜리 물비누부터 가져다 놓다니. 웃기긴 했지만 친구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집 상태가 어떻든, 이사가 얼마나 피곤한 일이든 그 예쁜 갈색 병 꼭지를 꾹 누르면 나오는, 라벤더와 시트러스가 절묘하게 섞인 향을 들이마시며 따뜻한 물거품으로 손을 닦는 동안만큼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예쁜 집에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는 걸.

이솝은 호주의 코즈메틱 브랜드지만 한국에서는 인테리어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 꾸미기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마땅히 화장실에 이솝 핸드 워시를 놓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인스타그램을 켜고 #이솝핸드워시로 들어가본다. 요즘 느낌 따라 각진 세면대 위, 진회색 줄눈으로 타일을 붙인 벽 앞에 이솝 핸드 워시 한 병이 덩그러니 놓인 사진을 수만 장은 족히 구경할 수 있다. 이솝보다 향이 더 독특하거나, 기능이 더 뛰어나거나, 가성비가 나은 핸드 워시는 많겠지만, 이솝 것만큼 ‘이 집 주인은 요즘의 공간 취향을 가진 사람입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선언하는 대체품은 없다.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하기 전인데도 혼자서 ‘예쁜 집!’을 항변하고 있는 기특한 갈색 병. 이솝의 시그너처 매장에서 이 병 하나를 데려오려면 5만 원이 들지만, 수많은 인테리어 소품 가게와 온라인 숍에서 이솝의 갈색 병과 흑백 가로줄 라벨을 비스무리하게 흉내 낸 디스펜서 공병을 5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고 있다. 간혹 리모델링한 모텔에 가면 이런 이솝 느낌의 공병에 샴푸와 보디 워시를 담아둔 걸 볼 수 있다. 굳이 그 공병을 고른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약간 측은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으로 묵게 된다.



고백하건대 나 또한 과거에 그런 마음으로 갈색 공병을 집에 들인 적이 있다. 자존심상 이솝의 라벨까지 따라 한 제품은 아니었다는 것을 꼭 밝혀야겠지만, 비슷한 느낌을 원했음을 부인할 입장은 아니다. 나는 그것도 2개를 사서 하나는 탈모 예방 한방 샴푸를 소분해 욕실에 두고, 다른 하나에는 주방 세제를 소분해 부엌에 놓고 썼다. 그러다 이사할 때 하필 둘이 뒤바뀌는 바람에 상쾌하게 세제로 머리를 감아버리기도 했다. <이솝 우화> 같은 일이다.

누적 다운로드 수가 1500만 회 넘는 국민 인테리어 앱에 들어가면 집 꾸미는 사람들이 다 모여서 온라인 집들이를 하고 있다. 명실상부 오늘날의 젊은 한국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예쁜 집의 상상도를 확인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원룸부터 널찍한 아파트, 마당 딸린 단독주택까지 모든 종류의 집들이가 올라온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다들 내 집을 꾸미는 일에 얼마나 진심을 다하는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내 공간을 꾸리니 청소도 집안일도 즐거워졌어요.” “집을 가꾸면 그 안정감이 다시 저를 가꾸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계속해서 이곳저곳 집들이를 구경하다 보면 내가 본 집이 이 집인지 저 집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벽지와 바닥재, 타일 같은 것도 비슷하지만 각종 소품이 한곳에서 고른 듯 일관된 느낌이다. “이 집도 방문을 없애고 둥근 아치를 만들었네. 아까 그 집처럼 바닥에 마티스 드로잉 액자를 세워두었네. 식탁마다 달려 있는 루이스 폴센 펜던트 조명은 다들 좋은 조건에 공동 구매를 한 것일까?”


온라인 집들이에서 100점을 맞기 위해 기출문제 위주로 공부한 사람들의 집 같기도 하다. 공식대로 꾸민 집 사진에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서려 있다. 그 집들은 분명 예쁘다.


“누구나 예쁜 집에 살 수 있어.” 얼마 전까지 그 인테리어 앱 화면에 뜬 문구였다. 나는 그 문구가 마케팅 관점에서 감탄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안 예쁜 도시 속 안 예쁜 사무실에서 각박한 삶에 치인 뒤 안 예쁜 지하철을 타고 안 예쁜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가는 현대인이 헛헛한 마음으로 앱을 켰을 때, 귀여운 일러스트가 “누구나 예쁜 집에 살 수 있다”고 말을 건넨다니!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그러나 실제로 내 집을 꾸며보니, 온라인 집들이를 기준 삼아 나도 예쁜 집에 살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피곤하고 끝없는 욕심인지 절감하게 된다. 저 집들이에 나오는 저 자재가 내 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저 사람이 한 대로 인테리어를 하려면 공사비가 배로 들 수도 있다. 미니멀리스트 집들이 사진처럼 스타일링해놓고 산다는 게 막상 해보면 내 성격에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기도 한다.

   

저 집과 내 집 사이 간극을 메우겠다고 더 많은 집들이를 보면 볼수록 그 간극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제정신으로 내 집을 꾸미려면 랜선 집들이를 그만 다녀야 한다.

      

집을 고치고 꾸며가면서 살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집들이다운 집들이는 하지 않고 있다. 집 꾸미기가 도무지 끝난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틈틈이 이것저것 손보고, 옮기고, 매단다. 지금 우리 집 화장실 세면대에는 이솝 핸드 워시 대신 노란색 다이알 항균 비누가 놓여 있다. 1970년대에는 최고급 미제 비누였지만 지금은 인기가 바랬다. 아마도 너무나 확실한 향과 너무나 강한 세정력 때문에 반듯하긴 하지만 도무지 은은한 멋이라곤 없는 친척 어른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대착오적 느낌이 좋아 박스째로 사서 몇 년째 쓰고 있다. 혹시 또 모르지, 언젠가 집 꾸미기가 끝나 나도 온라인 집들이를 하는 날에는 이솝 핸드 워시를 놓아야 할지도.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지금 비누를 계속 쓰지 않을까 싶다. 기성품이 된 것만 같은 마음에서 슬쩍 물러나본다.

  

        

     

    

   

김괜저

사진, 글, 디자인 등을 생산하는 사람. 텀블벅에서 일하고 블로그 ‘괜스레 저렇게’를 운영한다. 《연애와 술》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