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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길남빌라

Nameless Gilnam Villa

이름 없는 길남빌라

Editor.Hyuna Lee / Photographer. Juyeon Lee Knock, Please

이찬희, 이원희, 이준형

27,24,25세 / 밴드 '차세대' 멤버


Conditions

지역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구조 다세대주택 스리룸
면적 약 52㎡ (16평)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50만 원

Room History

25세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5만 원
(합정동 다세대주택 반지하 스리룸)

탁월함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돈을 ‘탁월하게’ 잘 번다거나, ‘탁월하게’ 유명하다는 말은 별로 하지 않지만, 한 시기를 자기만의 지혜로 헤쳐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주저 없이 탁월하다는 표현을 쓴다. 여기 탁월한 청년들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더딘 것은 괜찮아. 어떤 시기에 아빠는 친구들과 우리끼리만 아는 탁월함으로 한 해를 보냈단다.” 밴드맨이 되기 위해 감내하는 각종 노동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다부진 태도, 변기 물이 역류해 떠난 반지하 셋방도 헤어진 연인처럼 여길 수 있는 두둑한 정, 마감 임박 세일 상품에 집착할지언정 집에 온 손님에게는 뭐든 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청년들이 알려준 탁월함은 이런 거였다. 


우선 세 사람이 어떻게 같이 살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음악을 하려고 모인 건가요?

(찬희) 일단 저희는 같은 대안학교 출신이에요. 저는 다른 졸업생들이랑 홍대 근처에서 밴드를 했고, 원희와 준형이는 스쿨밴드를 하고 있었죠. 당시 저는 잘되고 있어서 학교 애들이랑 할 마음은 없었는데, 갑자기 밴드가 와해되면서 눈을 낮췄죠.(웃음) “너, 나랑 밴드 할래?” 하면 바로 올 수 있는 애들로 멤버를 꾸린 거죠. 음악적 취향 같은 것은 맞춰나가면 될 부분인 것 같아서요.

이전에도 밴드에서 베이스를 담당하는 친구를 포함해 넷이서 같이 동거했다고 들었어요.

(찬희) 저희가 전에 살던 집이 전국에서 제일 싼 곳이었어요. 합정역 1분 거리 스리룸인데 500만 원에 40만 원이었으니까요. 좋은 집이었는데 지난여름 변기에서 물이 역류해 정강이까지 찼어요. 저는 이미 자취도 10년 정도 했고 비위가 약한 편도 아닌데, 이건 안 되겠다 싶어 나왔죠. 근데 이 둘이 함께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며 제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는 거예요.(웃음) 그 집 보증금도 제가 낸 거였거든요.

세입자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사건이 생긴 거네요.

(찬희) 사실 반지하 생활도 그만하고 싶었어요. 반지하에 대해 좋지 않은 속설이나 선입견을 믿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어른 말대로 살아봐야겠다 싶어서 무리를 많이 했죠. 지상으로 올라왔으니까요. 저는 그 반지하 집에서 4년 살았어요. 그 전에는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샤워하고 나오면 얼음이 떨어지는 집에서도 4년 살았고요. 점점 사는 집이 나아지고 있으니, 인생이 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집이 서울이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을 텐데, 다들 일찍 독립했어요.

(원희) 사실 뭘 몰랐던 것 같아요. 본가가 도심도 아니었고, 이사를 자주 다니기도 했고요. 독립할 무렵에는 남양주에서 살았거든요.

(찬희) 다들 꿈 때문에 나온 거죠. 밴드 하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고, 되고 싶어서…. 홍대 근처에서 그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고, 술 마시고, 가까운 집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멋있는 것들만 생각하고 이면에 있는 고통은 생각하지 못한 거죠. 나와보니까 여기까지 왔네요. 하지만 월세가 두 배 올라도 부모님 집으로는 못 들어갈 것 같아요. 이제 어떻게 다시 들어가겠어요? 다 망나니들인데.(웃음) 

(준형) 저는 고향이 울산이에요. 만약 집이 서울이었다면 독립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나와 살아서 좋긴 하지만 월세가 너무 아깝거든요.


여기 보증금은 3000만 원이라고 들었어요. 꽤 큰돈인데, 어떻게 마련했나요?

(찬희) 보증금은 대출받았어요. 빚진 거죠, 뭐. 중학생 때처럼 부모님께 부탁드릴 수가 없어서. 3000만 원 학자금 대출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준형) 저희는 월세만 같이 분담하고 있어요. 찬희가 10만 원을 내고 나머지를 원희랑 나눠 내죠.

집이 크기와 방 개수에 비하면 월세가 저렴한 편이에요.

(찬희) 이 집의 임대인은 연희동, 연남동에 빌라를 12채 갖고 있는데, 시세를 잘 몰라요. 시세는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70만 원 정도로 알고 있어요. 처음에 중개업자가 임대인에게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 받자고 했대요. 요즘에는 그렇게 해도 나간다고요.

솔직히 말하면 집이 꽤 정돈되어 있어서 놀랐어요. 죄송하지만 남자 셋이 산다기에 카오스를 상상했거든요. 혹시 집안일에 각자 역할이 있나요?

(찬희) 제가 요리 담당인데요, 편집증이 심해요. 냉장고에 조금 남은 재료도 바로 처리해야 하고, 장도 무조건 제가 봐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원희) 대신에 설거지는 저희가 하고요.

생활비는 모두 균등하게 내나요?

(찬희) 제가 장을 보면 내역서를 보내고, 각자 얼마씩 내는 식이에요. 생활비 명목으로 얼마씩 걷을 수도 있지만, 수입이 다 다르니까 사정에 맞게 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밴드 활동이 곧장 먹고살 만한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텐데, 활동하지 않을 땐 무슨 일을 하나요?

(준형) 저는 서빙하고 있어요. 매드포갈릭 딜라이트점에서 일하는데, 오시면 두 배로 드립니다.

(원희) 저는 또보겠지떡볶이에서 서빙해요. 큰아버지 도와서 천막 치러 다니기도 하고요.

(찬희) 얘 큰아버지가 제 아버지예요. 친척 관계거든요. 저도 아버지랑 전국을 돌면서 트럭 운전도 하고, 인터뷰로 수익이 생길 때도 있고, 지금은 안 하지만 예전에는 건반이나 하모니카 레슨을 오래 했어요.

각자 여자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오고, 특히 찬희 씨는 이들 6명 밥 먹이는 게 일이라고요. 거의 <남자 셋 여자 셋>을 방불케 한다고 들었어요.

(찬희) 사실 6인 가구라고 보시면 됩니다.(웃음) 거의 소규모 식당을 운영하는 거랑 비슷해요. 쌀도 급속도로 떨어지고, 달걀 한 판이 네 번이면 끝나요. 또 공연 뒤풀이도 보통 집에서 하거든요. 여기 생맥주 기계도 있으니까요.

맥주 케그가 있는 집은 정말 처음 봐요. 혹시 얼마 만에 동이 나요?

(찬희) 3주나 한 달 정도? 초창기에는 3일이나 이틀 만에 먹은 적도 있어요.



여자 친구분들은 다들 각자 자취하는 건가요?

(찬희) 네, 다 따로 살아요. 제일 오래 머무는 여자 친구도 절대 들어와서 살라고 하진 않아요. 손님으로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괜찮은데, 암묵적으로 경계선을 그어놓는 거죠. 아무리 오래 머문다고 해도 집주인은 저희 셋이고, 그들은 손님인 거죠. 경계가 무너지면 마찰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집에 있다 보면 사소한 일로 싸우는데, 손님은 사실 어떻게 행동해도 상관없거든요.

일도 생활도 같이 하는데, 아주 조금이라도 지겨운 마음은 없나요? 친구 사이에서도 종종 권태기가 생긴다고 하잖아요.

(준형) 각자 방이 있고, 밥을 차려 먹어도 꼭 다 같이 먹어야 하는 건 아니라 괜찮아요. 다들 개인적인 성향이라 크게 부딪치진 않는 것 같아요.

이렇게 같이 살고 여럿이서 북적이는 집에 있으면 외로움이 해소되기도 하겠지만, 일정 분량의 고독은 여전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고독은 어떻게 해소하나요?

(찬희) 생각해보니 항상 사람들이 있으니까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고, 뭔가 제대로 판단이 안 되고 넘어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원희는 뭔가 많이 필요한 게 없는 인간이에요. 갓김치랑 캔맥주, 유튜브만 있으면 돼요. 고독도 까먹는 스타일이에요.(웃음)



집에 피아노와 녹음 기기가 있는데, 작업을 집에서 하나요? 다세대주택이라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게 많을 것 같은데요.

(원희) 보컬 녹음은 해가 떠 있을 때만 하고, 나머지는 전자 음향 기기라 소리가 크진 않아요. 나름 눈치도 보고 있고요. 그래도 아직 항의받은 적은 없어요.

(찬희) 이번 앨범도 다 집에서 녹음한 거예요. 저희가 매뉴얼을 만들었어요. 누가 오면 다 없는 척 하자고.(웃음) 사실 여기 딱 이사 왔는데 옆집에서 개가 정말 시끄럽게 짖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오히려 기뻤죠. 저기선 개가 짖고, 우리는 기타를 치니 이건 좀 비벼볼 만하다!

옆집 말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고 있나요?

(찬희) 희한한 사람이 진짜 많아요. 조폭으로 추정하는 분, 젊은 화가도 사는 것 같고요. 심지어 건물 이름도 없어요. 주소도 그냥 203호입니다.

같이 살면서 이야기하기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면요?

(찬희) 불편해도 그때그때 다 이야기해요. 싸우지 않는 사이가 제일 불안정한 것 같아요. 짜증도 내고, 화도 다 내고. 다만 밴드 일이 엮일 때는 조심스럽죠. 누군가에게 너 음악 관련해서 뭐 하기로 해놓고서 왜 유튜브하고 있냐고 터치할 때가 있거든요. 껄끄러운 주제이지만 그것마저도 다들 얘기하는 것 같아요.

얼핏 보면 서로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라는 규칙이 있나요?

(원희) 내 방은 내 공간이다.

(준형) 방문이 잠겨 있으면 열지 않는다. 혹은 노크를 한다. 방에 들어가면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예의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찬희) 아무래도 각자 여자 친구가 있으니까 민감한 부분인 것 같아요. 뭐 민망할 수도 있고.(웃음) 우선 먹은 식기는 바로 설거지하는 게 원칙입니다. 남이 먹은 건 안 하더라도 내가 먹은 건 해야죠. 또 제가 샤워할 때 변기에 물 묻는 걸 싫어해요. 앉았을 때 습하면 안 돼요. 한 가지 더, 제가 밥을 차렸으면 3분 안에는 나와야 해요. 엄마 마음이 이해가 가요. 저는 아침을 다 해주거든요. 먹는다고 했는데 3분이 지난다, 그럼 기분이 와… 특히 면 요리는 식감이 중요하거든요. 이런 무심함이 힘들어요.

연남동처럼 자취 인구가 많은 동네도 좋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어디서 살고 싶나요?

(찬희) 한남동요. 제가 허영심이 많거든요. 지금은 홍대 쪽을 좋아하진 않아요. 원래는 라이브 클럽 주변 거리를 좋아했지만, 이제 슬럼가처럼 변했어요. 그걸 알아차린 순간부터 거리가 싫어졌고, 여기 오는 사람들도 싫어졌어요. 그런데 저는 그 사람들에게 표를 팔아야 해요. 그런 간극이 견디기 힘들죠. 음악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저는 진짜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 틈새에서. 그래서 좀 조용한 동네로 가고 싶어요.

(원희) 홍대 쪽이나 연남동을 지나다니면 길을 걷다가도 사람들의 기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제가 기를 잘 빨리는 사람인데, 가끔 감당하기 힘들기도 해요. 저희 부모님이 지금 의정부에 사시는데 거기는 엄청 조용하거든요. 가보니 사람도 없고 편안한 느낌이더라고요. 서울에서도 인적은 드물고, 길은 넓고, 조용한 데서 살면 좋겠죠.

(준형) 저는 메세나폴리스요.(웃음)



차세대 음악을 들으면 ‘날티’를 잃고 싶지 않다는, 영영 철없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사실 다들 너무 철이 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찬희) 맞아요. 원래 사람이 강조하는 게 자기 약점이라 생각하거든요. 전 어딜 가도 “날티가 좀 난다?” 하는 말은 쉽게 듣거든요. 그렇게 보이려고 연구해왔고요. 어디 들어가면 괜히 뭐를 막 발로 차요. 근데 사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마음도 그렇지 않죠. 제가 농담을 자주 하는데, 웃기는 코드도 냉소밖에 없더라고요. 나이가 많지 않으니 웃길 수도 있겠지만, 제가 하는 말이 사실 어떤 시절의 향수 같을 때도 있어요. 요즘은 되게 차분해요. 커피 마시면서 넷플릭스 보다가, 나그참파(향)나 피워볼까? 이러고, (웃음) 저는 담배, 음악, 책 이거면 돼요.

왜 그렇게 날티가 나고 싶은 거예요?

(찬희) 날티 나는 록밴드 이미지가 상업적으로 실패한다는 걸 믿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돈을 많이 못 벌어봤으니까, 아직 믿고 좀 해보려는 거죠. 사실은 철이 들었다기엔 민망하고 좀 노쇠했어요. 힘이 빠진 거죠.(웃음)

<디렉토리> 매거진은 함께 사는 존재에 관심이 많아요. 여러분에게 함께 사는 존재란 무언지, 궁극적으로 집에서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찬희) 저한테 얘네들은 반려동물에 가까운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키우게 되었는데, 정도 들었고, 이제 와서 유기견 보호소에 맡길 수도 없고.(웃음) 매일 껴안고 살지는 않지만 일상이 되어 좋아요. 집에 바라는 건, 자유. 있을 때 자유로운 느낌이면 좋겠어요. 저희 가훈도 있어요. ‘낙낙~한 집’. 저는 돈이 여유로울 때도 계산적인 편이에요. 괜히 무엇을 사도 마감 임박 세일 상품을 사고. 그래도 손님 오면 커피, 음식, 먹고 싶은 거 다 내주려고 해요. 집을 사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전에 살던 집은 꼭 헤어진 사람 같아요. 사랑이 식어서.

(원희) 이 친구들은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지 않도로 해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생활에 긴장을 주는 사람들이죠.

(준형) 가족 같다는 생각을 해보려고 했는데(웃음), 그냥 친구들이에요. 온전히! 내 집에서 지내는데 꼭 시트콤 찍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이 제일 좋아요. 일단 반지하에서 올라왔고,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이 집에서 나갈 때는 성공해서 꼭 메세나폴리스로 가고 싶네요.

빌라 이름이 없다고 했는데, 이참에 이름 하나 붙이면 좋겠네요.

(찬희) ‘길남빌라’ 이런 거 좋지 않냐, 얘들아.



Conditions

지역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구조 다세대주택 스리룸
면적 약 52㎡ (16평)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5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