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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문제로 바닥 친 자존감, 어떻게 하죠?

My Self-Esteem Issues

집 문제로 바닥 친 자존감, 어떻게 하죠?

Editor.Hamin Kim / Illustrator.Subin Yang Article / clinic

열악한 주거 환경에 의기소침해진 이들을 위한 자존감 처방전.


김하민 / 내담자


• 직업: 에디터

• 거주지: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 성격: 지나칠 정도로 자기 성찰에 열심이다. 특히 요즘 홀로서기를 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버겁다고 느낀다.






허용회 / 상담자


• 직업: 심리학도. 《자존감 높이려다 행복해지는 법을 인증 당신에게》, 《게으른 사람들의 심리학》, 《당신은 심리학에 속았다》 저자

• 거주지: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 성격: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걸 일로 여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건네기까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편이다.






• 주거 현실 앞에 고개 숙인 자존감 •


독립하고 고시원에서 3개월 정도 산 적이 있어요. 퇴근 후 집에서 편히 쉬어야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데, 고시원 침대에 누워만 있다 보면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회의감이 들 때가 많더라고요. 아등바등 애쓰는 제 모습이 짠하기도 했고요. 주거 환경 때문에 의기소침해지는 제가 비정상인가요?

심리 치료 상담사가 환자를 대하는 첫 번째 단계가 환자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자각하도록 유도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즉시 해결책을 주는 게 결코 효율적 방법이 아닌 거죠. 현실을 똑바로 인지했을 때 비로소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솔루션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심각한 중증 환자는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과하게 현실을 부정하거나 엉뚱한 탓을 하면서 방어기제를 무리하게 사용하곤 해요. 주거 환경 때문에 의기소침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그걸로 충분히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오히려 문제를 인식하기까지 고민해온 스스로에게 셀프 칭찬을 해주세요.

한번은 제가 홀로서기 하면서 겪는 온갖 어려움을 부모님 탓으로 돌리고 있더라고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전셋집에서 시작하는 친구들이 부러우면서 샘이 났나 봐요. 맞아요, 저 불효자예요.

남 탓을 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게 결코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불평하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해요. 사회심리학에 ‘귀인이론’이라는 게 있어요. 결과에 대한 원인을 어디에 둘 것인가 분석하는 거죠. 예를 들어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떤 사람에 대해 성공의 원인을 가정 환경에 둘 것인가, 아님 개인 능력에 둘 것인가 판단해보는 거예요. 부유한 가정 환경이 한 개인의 성공에 주요한 원인일 수 있지만, 동시에 유일한 원인은 아니잖아요. 다양한 원인을 일일이 따져보는 것이 객관적으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요. 마찬가지로 저는 열악한 주거 환경 때문에 불평이 나온다면 오히려 여러 가지 탓을 해보면 좋겠어요. 부모님 탓도 해보고, 친구 탓도 해보고, 사회 탓도 해보세요. 일방적으로 어느 하나만 탓하고 있으면 결코 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요.

‘열심히 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버티고 있어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20, 30평 좋은 집에 산다고 자존감이 급상승할 거 같진 않다는 거예요.

집이 바뀐다고 자존감이 나아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면 떨어진 자존감의 원인이 집에 있지 않다는 거죠. 어쩌면 집 때문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싶었던 건지 몰라요. 실제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데, 그 사실을 직면하는 게 두려워서 외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사실 자존감은 환경과 조건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옷, 자동차, 집을 사더라도 나보다 더 좋은 걸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저절로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높은 자존감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중요한 건 자존감을 무작정 높이는 게 아니라 들쑥날쑥하는 자존감을 관리하는 거예요.

저를 포함한 또래 친구들 모두 ‘집’에 대한 비교 심리가 심한 거 같아요. 이유가 뭘까요?

심리학자 매슬로 Maslow의 5단계 욕구 중 가장 기본 단계에 생리적 욕구라는 게 있어요.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인 의식주에 대한 욕구가 바로 생리적 욕구에 해당해요. 그런데 여기서 한번 생각해볼 내용은 기본 욕구 대부분이 집에서 해결된다는 점이에요. 더불어 밀레니얼 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집을 먹고 자는 공간의 의미를 넘어 자기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집이 엄청 비싸다는 거예요. 당장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거죠. 이런 상황에서 집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비교가 극명해지고, 상대적 박탈감 정도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반지하에 살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어요. 그런데 그 안에서 나름대로 집을 근사하게 꾸며놨더라고요. 이처럼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진취적으로 환경을 개선해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뭘까요?

‘사람은 변하는가’라는 가설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해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학창 시절에 내성적이던 친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외향적으로 변했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음주 운전 한 번 한 사람은 계속한다”라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캐럴 드웩 Carol Dweck이라는 심리학자는 ‘사람이 바뀐다 바뀌지 않는다’라는 논제보다 ‘바뀔 수 있다고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관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어요. 어떤 걸 믿느냐에 따라 적극성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바꿀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변명을 하며 합리화하겠지만,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변화의 주체가 돼 행동을 해요. 열악한 집에 살지만, 환경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친구는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이겠죠. 사실 현실 자체는 단번에 바뀌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어떤 게 더 나은 마음가짐인지 분별하는 건 각자의 몫이죠.

SNS에 집 인테리어 자랑하는 콘텐츠가 많아요. 그렇게 방 꾸미기에 열심인 사람들의 태도를 ‘자신의 환경을 개선하는 진취적인 상태’로 보는 게 맞는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집을 꾸미는 것’으로 보는 게 맞는지 헷갈려요.

둘 다 아닐까요. 자기 자신도 보고 남들도 보라고 하는 거죠. 타인을 통해 이해받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건데, 저는 그게 전혀 나쁜 건 아니라고 봐요. 그렇게 해서라도 자존감을 지키고 건강하게 살려고 애쓰는 걸 비난할 수 없잖아요. 물론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이를 계기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아고라가 형성될 수도 있고, 자기 성찰의 기회로도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댓글 하나하나에 집착한다거나, 현실은 열악한데 보여주는 데만 급급하다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죠. 본인이 적당히 관리할 수 있다면 SNS를 통해 집을 자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 슬기로운 자존감 관리법 •

저서 《자존감 높이려다 행복해지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에서 돈, 권력, 명예가 건강한 자존감에 이르는 왕도가 아니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자존감이란 게 자신이 어느 곳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마음가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자존감 문제,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자존감에도 종류가 있어요.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자존감과 인식할 수 없는 자존감이 존재해요. 인식할 수 있는 자존감은 개인이 어느 정도 합리화함으로써 자기방어가 가능하지만, 무의식 속에 있는 자존감은 인지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대처 방안이 없어요. 겉은 괜찮다고 하지만, 속은 썩어 곪아가는 이유가 바로 이 둘이 부딪치기 때문이에요. 이걸 자존감 불일치라고 해요. 그렇다고 자존감 불일치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느냐? 그건 아니에요. 환경을 재조정하는 방법이 있거든요. 주변에 자신을 응원해주는 타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회사에 내 자존감에 생채기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퇴근한 후 무너진 자존감을 세워줄 친구들을 자주 만나세요. 사회적 지지를 받으면 우리 모두는 쉽게 쓰러지지 않아요. 반대로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임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라도 거부해야 합니다.

주변에 자존감을 지켜줄 만한 모임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돈을 내서라도 자존감 모임에 등록해야 하나요?

그렇지 않아요. 심리 치료 목적의 모임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사소한 일상을 나누는 모임이면 충분해요. 일상적 대화를 하면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곧 자존감 문제를 다루는 시작이거든요. 물론 만나면 자기 하소연만 하고 신세 한탄만 하는 모임이 있을 수도 있어요. 중간에서 이를 관리하는 전문가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핵심은 ‘내 이야기’에 집중하는 겁니다. 독서 모임이든 스터디 모임이든 모임의 성격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분명 안 나가는 것보다 나가는 게 자존감 향상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혼자 있을 때 자존감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자존감은 무작정 높이는 것보다 관리하는 게 중요해요. 추천하고 싶은 방법 중 하나로 자존감의 원천을 다양화했으면 좋겠어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대단해 보이는 한두 가지를 하는 것보다 사소하지만 자주 누릴 수 있는 게 훨씬 많으면 좋거든요. 대쪽 같은 갈대 하나는 쉽게 꺾이지만, 바람에 부대끼는 갈대는 잘 꺾이지 않는다 하잖아요. 한두 가지에 좌절했다가도 ‘괜찮아, 나한테 힘이 되는 또 다른 소중한 것이 있어’라고 믿으면 어느 하나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돼요. 또 하나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보세요. 정말 하찮아 보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면 다 적어보세요. 주말에 치맥 하면서 축구 보기, 고전 게임하기, 새벽 늦게까지 동네 산책하기 등등. 별거 아닌 것 같은 것이 차곡차곡 쌓이면 이게 나만의 무기가 될 수 있어요.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사람, 그걸 직접 실천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잘하는 걸 해야만 자존감이 높아지나요? 사실 못하는 걸 자꾸 하면 오히려 짜증만 나고, 짜증 내고 있는 자기 모습을 보면 또 한심스럽게 느껴지곤 하잖아요.

본인 스스로가 가치와 의미를 느낄 때를 곰곰 생각해보세요. 시험을 잘 보거나, 돈을 많이 벌 때만 자존감이 높아지지 않아요. 내가 누군가에게 건넨 한마디로 힘을 얻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할 때도 자존감은 높아질 거예요. 봉사 활동도 좋은 방법 중 하나예요. 제 대학원 동기 중 정말 부러운 친구가 한 명 있어요. 평일에는 지도 교수님께 연구 실적이 좋지 않아서 호되게 지적을 받아요. 하지만 주말에 봉사 활동을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자신만의 가치를 발휘해 재빠르게 원상 복귀되는 친구예요. 자기 시간과 수고를 들여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존감은 관리할 수 있어요. 결코 능력이나 실력과 상관없어요.

결국 모든 게 생각하는 방식과 태도에 달렸네요. 혹시 개인적으로 작가님께서 추천하는 마음가짐 같은 게 있을까요?

‘자기 자비’라는 개념이 있어요. 자존감은 주관적 판단이 더해지지만, 자기 자비는 어떠한 판단도 개입되지 않아요. 그냥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거죠. 우린 항상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 살아요. 하지만 나아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거예요. 나 자신과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했을 때 오히려 더 좋은 길이 보일 거라 생각해요.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인형에 자기 이름을 붙여 이야기해보세요.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고민을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거예요. 우린 신기하게도 남 고민에 대해서는 슬기롭게 조언하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착하지 못해요. 저는 자신을 타자로 객관화했을 때 성숙한 대처 방안이 떠오를 거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