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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고 볶아라, 어른이 될 테니

Frizzle and Fry, Then You’ll Grow Up

지지고 볶아라, 어른이 될 테니

Editor.Hamin Kim Article / mixtape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잖아.”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고된 하루가 계속되면 ‘먹는 일’의 의미를 확대시키곤 한다. 어느 작가는 독서가 무릎을 꿇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활동이라 말하지만, 사실 뭐든 먹어야 무릎을 꿇든 두 발로 서든 하지 않겠는가. 물론 식사가 단순히 위장을 채우는 활동만은 아니다. 



지지고 볶아라, 어른이 될 테니,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황혼의 도시 포르투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 이때 얻은 최고의 결실은 레시피 없이도 할 수 있는 요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라곤 케첩을 버무린 달걀볶음밥 정도가 전부였다. 그야말로 요리 젬병. 그러다 대책 없이 빵과 밀가루가 주식인 외국에 살게 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물 없는 밥상에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토종 한국인이었으니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내 근처에 한인 마트가 있어 백종원 레시피를 따라 할 고추장 정도는 살 수 있다는 것. 정체불명의 국 요리를 숱하게 반복하고서야 나는 자부할 수 있는 필살기 하나를 장착했다. 바로 ‘적당한’ 소금과 진간장의 조화로 간을 맞춘 미역국.

차갑지 않으면 대강 익은 것으로 여길 만큼 미각에 둔하던 줄리언 반스는 중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함께 먹고 마시는 식탁의 숭고함을 깨달았기 때문. 정보를 텍스트로 다루는 작가답게 그는 100권이 넘는 요리책을 참고해 음식을 지지고 볶는다. 문제는 이놈의 레시피를 곧이곧대로 따라 한들(따라 하는 것도 불가능) 요리책에 실린 음식이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렇지만 그에게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변명거리가 존재한다. 레시피는 늘 ‘적당히, 한 움큼, 살짝’ 따위의 애매모호한 지시뿐이라는 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불친절로 허탈한 웃음만 자아낸다.

중년이 되어서야 요리 공부를 시작한 줄리언 반스가 추구한 경지는 무엇일까? 포르투의 부엌 한쪽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 레시피가 정의하는 ‘적당함’이란 사실 부엌에서 지지고 볶는 과정 없이는 발견할 수 없다. 처음 미역국을 끓일 때 가장 만만한 레시피를 곧이곧대로 따라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레시피는 내 입맛을 모른다. 물을 몇 번이나 붓고, 소금을 얼마나 뿌렸는지 모른다. 얼마나 더 우려야 그 오묘하고 깊은 맛이 날까, 하염없이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대여섯 번 도전한 끝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적당한’ 미역국이 탄생했다. 레시피는 모두 근사치라는 줄리언 반스의 말마따나, 부엌에서 얼마나 지지고 볶느냐에 따라 그 ‘적당함’의 기준이 만들어진다는 걸 확인한다.

“능력이 되면 요리를 하고, 아니면 설거지를 하라”는 말에 이제야 반기를 들어본다. 요리에 관심도, 솜씨도 없다고 스스로를 단정한 뒤, 갈릭 커터를 자처하고 마늘만 까대던 나를 반성한다. 그 모호한 ‘적당함’을 발견해가는 과정이 근사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시간이 아닐까 곱씹어본다. “내 입맛엔 말이지” 하며 양념장을 당차게 투하할 줄 아는 과감함이 어쩌면 자기를 돌볼 줄 아는 어른이 아닐까. 레시피대로 되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아주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주자. 우리의 어른 됨은 부엌에서 진행된다.








엄마 밥이 남긴 자국, <토스트>

어려서부터 우리 집 최고 보양식은 닭백숙이었다. 시험 기간이 되면 엄마는 큼지막한 시장 닭 두 마리를 잡아와 스테인리스 냄비에 닭백숙을 해주셨다. 엄마 손은 열 감지 기능을 잃은 건지 푹 삶은 닭다리를 냉큼 집어주거나 쉴 새 없이 닭고기 살점을 분해해 내 그릇에 쌓아 올렸다. 그땐 닭백숙 덕분인지, 엄마표 요리 덕분인지 거들떠보기도 싫던 물리책을 1시간 정도 훑어볼 에너지가 생기곤 했다.

<토스트>는 한 소년이 샌드위치조차 어설프게 만드는 엄마와 “보나페티 bon appétit!”를 연발케 하는 새엄마 사이에서 이른바 ‘엄마 밥’의 의미를 되새기는 영화다. 아홉 살 나이젤은 동화책 대신 요리책을 읽을 정도로 음식에 열성이지만, 엄마의 모든 요리는 통조림으로 완성된다. 가끔 통조림으로도 한계를 느낄 즈음, 엄마는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바로 짭짤한 버터와 갓 구운 식빵 한 조각, 이른바 토스트 요리. 통조림 덕에 맛에 대한 역치가 낮아진 걸까. 나이젤 입맛에 엄마표 토스트는 정말이지 최고였나 보다.
 

“아무리 일을 망쳐도 토스트를 만들어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바삭한 껍질 아래의 부드러운 빵을 베어 물면 따듯하고 짭짤한 버터 맛에 항상 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기흉으로 세상을 떠난다. 매번 “멍청아!”라고 나무라기만 하는 불같은 성격의 아빠와 달리 엄마는 유일하게 자기 맘을 헤아려주는 소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주 충격적이다. 엄마의 부재는 나이젤의 밥상을 한층 더 초라하게 만든다. 아빠는 “아프리카 애들은 파이 하나로 오른팔을 바꾼다더라”며 조리가 덜 된 음식에 불평하는 나이젤을 꾸짖는다. 엉성한 아빠표 요리로 미각이 점점 굳어져갈 즈음,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할 가정부가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포터. 시키지도 않은 양말을 꿰맬 정도로 그녀는 집안 살림의 척척박사다. 하지만 나이젤에게 포터는 요리를 필살기로 엄마 자리를 꿰차려는 불여우일 뿐이다. 무엇보다 통조림과 토스트 외에 딱히 할 줄 아는 요리가 없던 엄마와 달리 고급 레스토랑 후식으로 나올 법한 레몬머랭파이를 뚝딱 대령하는 포터가 그저 씁쓸하면서 못마땅하다.
 

서울살이 10개월 차. 가끔 엄마가 조리, 분해, 분배해주는 닭백숙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니, 거의 매일 먹고 싶다. 이따금씩 고향에 내려가 엄마한테 닭백숙을 해달라고 조르는데, 요리가 지겨워진 걸까, 엄마는 자꾸 ‘오리 27년’에 데려간다.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끝내주는 포터 부인의 음식을 먹으며 나이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토스터 기계가 요리사였던 토스트를 왜 그리워했던 걸까? 포터 부인의 레몬머랭파이는 감탄하게 만들지언정 감동을 자아내진 못했다. 엄마의 토스트는 미안함, 사랑, 포용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재료로 영혼에 자국을 남겼다. 레몬머랭파이가 토스트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리라는 제동 장치, <리틀포레스트>


마감이 코앞이면 점심시간도 사치일 정도로 시간에 쪼들린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를 원천 차단한다. 몇 달 전 잡았던 약속도 취소하기 일쑤다. 송구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조급한 상황이 되면 스스로를 다그치게 되고, 그만큼 시야가 좁아지는 건 감수해야 한다.

영화의 주인공 혜원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취준생이다. 편지 한 통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아등바등 살아왔지만, 현실은 먼저 입사 시험에 합격한 남자 친구한테 축하한다는 말도 건네지 못할 정도로 처참하다. 냉장고의 바짝 말라버린 사과 두 쪽과 얼마 남지 않은 마른반찬 통이 혜원의 고단한 도시 생활을 대변한다. 지칠 대로 지친 혜원은 대책 없이 도망치듯 고향 집으로 내려간다.
 

시골에 돌아오자마자 혜원은 못 먹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먹어댄다. 얼어붙은 밭에 시들어 축 처진 배춧잎을 뜯어 국을 끓여 먹고, 으깬 팥과 쌀가루를 섞어 떡을 쪄 먹는다. 잠깐만 있다 올라가겠다던 혜원은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는 듯 좀 더 시골에 남기로 결심한다. 가을이 되자 혜원은 산속에서 떨어진 밤을 모아 밤조림을 만든다. 귀뚜라미 울어대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밤을 까고, 단맛이 배도록 밤중 내내 재워둔다. 다음 날 밤조림을 다시 끓인 뒤 이쑤시개로 먹기 좋게 겉을 걷어낸다. 그리고 또 한번 끓여 설탕에 절인 뒤에야 밤 요리가 완성된다. 얼핏 추측해보건대 대략 20시간 이상은 족히 걸린 듯하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지내며 혜원은 밥을 짓고 술을 빚는다.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던 혜원에게 요리가 건넨 위로는 무엇이었을까? 마감 기간이 닥치면 맛집에 가도 별 감흥이 없는 나처럼 도시에서의 혜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맛은 ‘합격’의 기쁨 말고는 없는 듯하다. 오히려 고시촌 거리의 컵밥과 유통기한 지난 편의점 도시락은 끊임없이 혜원을 다그치며 폭주하는 기관차로 길들인다. 단 한 치의 실수와 후퇴, 그리고 그 어떠한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못하게 말이다. 그러나 이 분노의 질주는 생뚱맞게도 ‘요리’라는 복병 앞에 멈춰 서게 된다.
 

그간 쌀만 씹어온 혜원은 이제야 밥을 먹는다. 위장만 채우면 내 원료도 채워질 거라 여긴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다지고, 지지고, 볶는 이 성가신 요리가 자기 연료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남들보다 조금 앞서가려고 애썼던 조급함. 어릴 적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요리 설교에서 삶의 힌트를 찾는다.

“기다려. 기다릴 줄 알아야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손을 움직여 엉킨 마음을 푸는 법, 《소년의 레시피》

분에 넘치는 선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살면서 한 번쯤은 위장과 쓸개를 꺼내줄 만큼 소중한 사람이 나타난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남은 생을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린 서툰 마음에 떠나보내는 인연이 너무나도 많다. 이 사람이 내 위장과 쓸개를 줄 만큼의 인연인지 저울질할 때도 있다. 진심이라는 배는 인연이라는 파도를 만나 정처 없이 일렁이지만, 고요한 바다의 등장은 예상하기 어렵다. 우린 얼마나 내 속마음에 솔직할까?
 

이 책은 요리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서툰 마음을 표현하는 열일곱 살 제규의 이야기다. 고등학생 제규는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고 정규 수업을 마치면 집에 돌아와 가족을 위해 저녁 밥상을 차린다. 생일 선물로 오븐을 사달라고 할 정도로 요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제규가 저녁에 밥상을 차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단지, 그냥, 그저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규가 가족애가 특출 나거나, 어려서부터 세상 모든 이치를 터득한 성인군자인 것은 아니다. 여느 또래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틈만 나면 엄마 몰래 게임하고, 열 살 어린 동생과 싸우기 바쁜 열일곱 살 소년이다. 고상한 점 한 가지를 들자면, 요리로 소중한 사람을 먹이면서 자기 자신도 모르는 마음을 발견해간다는 것.

제규는 요리를 통해 속 깊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만성위염으로 앓아누운 엄마를 위해 아들 제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소고기죽을 끓이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형이 제일 싫어” 하며 매번 토라지는 동생이 유치원 다녀오면 허기가 지지 않을까 하는 츤데레 형의 마음이 샌드위치에 담긴다. 밥 안 먹고 집 앞에서 기다리는 단짝 친구를 먹이는 게 자기 사명인 양 카프레제샐러드와 비빔국수를 만든다.

나조차 알 수 있는 복잡한 마음이 밀려올 때가 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대개 손을 놓아버리거나 멍을 때리기 일쑤다. 그러나 베일에 싸인 복잡 미묘한 감정이나 생각을 다룰 때, 우린 삶이라는 거대한 문맥을 읽어낼 줄 아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엉클어진 마음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에 주저하지 말자. 제규가 그랬듯 손을 사용해 채소를 다듬고, 고기를 볶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진심을 음식에 담아보자. 정갈하게 차린 요리에 정돈된 내 진실이 얹힐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