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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내의 구조

The Art of Struggle

짠내의 구조

Editor.Hyein Lee Article / mixtape

지금의 20대에게 짠내가 나는 건 바다와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소금기 가득한 냄새를 맡지 않고서 바다에 도착하는 이도 있지만, 그들은 “바다로 향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철저히 과정을 생략했기에. 지금 소개하는 네 작품은 당당한 자태로 이제 막 바다에 도착한 이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성공기가 아닌 생존기인 셈이다. 



변화는 내 손으로, <은주의방> 

내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저장된 로코물은 <내 이름은 김삼순>이다. 물론 그때도 삼순이 캐릭터가 좋았던 거지 현빈이 좋았던 건 아니다. 최근 최종회까지 본 작품은 러브 라인이 없던 언론 드라마 <아르곤>. 이쯤 되면 짐작하겠지만 나는 불필요한 관계, 즉 꿋꿋이 살아가는 여성 캐릭터 옆에 굳이 돈 많고 잘생긴 남자를 붙이면서 흐름을 깨는 드라마를 싫어한다. 같은 이유로 이 드라마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셀프 인테리어’라는 주제가 없었다면 말이다.

29세 주인공 ‘은주’는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일주일간 씻고, 먹고, 자는 시간을 모두 합쳐 집에 있는 시간이라곤 18시간.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한숨처럼 하는 말은 “하‧‧‧집이다”뿐, 기절하듯 잠들고 다시 일어나서 회사로 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혁명이 작은 불씨에서 시작되듯, 은주는 팀장의 시비를 참지 못하고 퇴사를 고하고 만다. “못 하겠다. 진짜‧‧‧ 많이 참았다, 많이 참았어. 사람이 일주일을 못 자면 죽는데요, 제가 지금 철야 6일째니까 이 상태로 하루 뒤에 저 죽겠네요!” 그렇게 큰소리치며 회사를 나온 지 6개월, 은주의 방은 회사에 다닐 때보다 더 쓰레기 더미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은주는 생일을 자축하며 와인 코르크를 빼다가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온몸에 와인을 뒤집어쓴다. 문제는 그 와인이 벽에도 마구 튀었다는 것. 그 순간 은주의 머릿속엔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데‧‧‧. 다행히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친구인 ‘민석’과 함께 페인트로 얼룩을 덮으면서 위기를 모면한다.
이후 은주는 인테리어에 묘한 흥미를 느끼고 야금야금 세면대와 싱크대를 고쳐나가며 난생처음 혼자의 힘으로 공간을 가꾸고 일상을 바꾸는 경험을 한다.

“처음엔 조명이 바뀌고 방이 달라 보여서 마냥 신기했는데. 지금은 방이 달라지고 내가 변하는 것 같아서 좋아. 나도 원했나 봐. 내가 변하는 걸.”

나도 그 변화를 안다. 방 안의 노란 조명, 어쩌다 받은 꽃 한 송이, 계절마다 바꾸는 이불 커버 등 일상의 작은 보폭이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고시원에 살아도, 원룸에 살아도, 전셋집에 살아도 집을 꾸미는 이유는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함이 아닐까? “아, 역시 우리 집이다!”




철없음에 감사하오, <스물>

세 명의 친구가 있다. 그들은 고등학교 때 한 여자를 두고 다투다가 친해져서 스물이 되어서도 단짝으로 지내고 있다(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남자는 영원히 애 아니면 개라고 했던가?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도 여자, 여자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어떻게 하면 여자와 잘 수 있을까 궁리하고, 간간이 청춘의 의무인 양 꿈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비율로 따지면 전자가 압도적.
정말이지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한숨이 푹, 인상이 빡 생기는데 어쩔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이때 이상하게 지는 기분이 든다). 왜냐? 대부분의 청춘이 청승맞고 찌질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른이 된다는 건 그 찌질함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잘 숨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아마 세 친구는 무언가를 숨기기에 눈앞에 있는 자유가 너무나 뜨겁고 숨 가빴을 테지.

사실 나는 영화 내용보다 세 친구의 집을 통해 각각 자라온 환경을 추측하는 재미에 빠졌다. 우선 외둥이인 ‘치호’는 능력 있는 부모와 함께 사는데, 워낙 두 분이 바쁜지라 혼자 독립한 거나 다름없다. 집 또한 그레이‧블랙 위주의 쇼룸 같은 곳으로, 창 너머로 파주 어딘가에 있을 법한 모던한 주택들이 보인다. 왈가닥 여동생이 있는 ‘경재’도 부모와 함께 사는데, 치호네와는 또 다른 부유함이 느껴진다. 뭐랄까, 잘사는 집의 온화함과 느긋함이 느껴진달까. 풍부한 빛이 들어오는 곳엔 식물과 나무 테이블이 있고, 그 너머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우리의 가난한 ‘동우’는 셋 중 유일하게 독립한 상태다. 최근 반지하로 이사한 가족(엄마, 둘째 남동생, 쌍둥이 남동생)을 위해 직접 짐을 나르고, 자신은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옥탑방으로 향한다. 나는 이상하게 동우에게 마음이 갔는데 아마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탓인 것 같다. 온갖 야한 농담과 실없는 대화 속에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도 동우의 한마디였다. 만화를 포기하고 큰아빠의 공장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날, 자신을 다그치는 치호에게 이렇게 말한다.

“왜 포기하는 사람한테만 뭐라고 그러는데? 세상에 뭐 김연아, 박태환 같은 사람만 있냐? 포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

그 진지한 대화도 얼마 안 갔지만 나는 그들의 철없음에 안심했다. 세상을 다 안다고 자신하는 어른도 어린 친구에게 배움을 얻기도 하니까. 무지를 무지로 받아들이는 용기, 경험을 방패 삼지 않는 떳떳함, 세상을 향한 끊이지 않는 호기심‧‧‧. 다음의 성장마저 눈에 그려지는 어른에게도 스물의 마음은 필요하다.






고시원이라는 여로, 《쩜오라이프》

우리 동네 큰 도로 옆에 고시원이 하나 있다. ‘리빙캐슬’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건물은 단조롭고 오래됐다. 1층엔 시종일관 유행가를 틀어놓는 휴대폰 가게가 있고, 그 오른편에 자그마한 돌출형 테라스가 있는데 고시원 사람들은 그곳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멀뚱히 하늘을 바라본다.
커다란 화분 사이로 그 얼굴을 흘깃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따지자면 원룸, 주택, 아파트 중 지금의 내 상황과 가까운 주거는 고시원이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곳의 세계는 나와 멀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런 내게 《쩜오라이프》는 고시원의 삶은 가난한 사람들의 최후 수단이 아닌 개인의 꿈을 위한 거처로, 그곳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이 이어진다고 말한다.

만화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재주’는 그 메시지를 엄마가 전수해준 레시피를 통해 전달한다. 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읽히는 건 그림이라는 이유보다 고시원이라는 특수성을 배제하고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건 ‘무화과’ 편이다. 무화과가 어떤 맛일지 늘 궁금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포기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큰맘 먹고 1만 원어치를 산다. 생으로 먹고, 잼을 만들어 먹으며 무화과의 맛을 실컷 음미한 뒤에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는 무화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가격은 절대적이고 경험은 상대적인 거니까, 나에게 이번 경험은 보물 같은 거야.”

고백하자면 20대 초반의 나도 무화과를 보면서 입맛만 다실 뿐 쉽사리 사지 못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다기보다는 무화과를 포기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 떠올랐고, 사실 그보다 ‘무화과를 사는 나’를 원하는 거지 진짜 맛이 궁금한 건 아니었다. 아마 주인공도 고민만 하던 것을 실천해보는 ‘경험’을 산 건지도 모른다. 고시원 생활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 주인공은 가벼운 통장 사정으로 고시원을 택했지만, 공동생활이라는 불편함 속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음으로써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경험했다. 누군가는 괄시하고 동정하는 곳에서 떳떳하게 자기 몫을 다해 산 것이다. 나는 그 덕분에 부를 이어받는 사람보다 가난을 책임지는 사람에게 더 큰 힘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리빙캐슬을 지나가면서 함부로 그들의 삶을 점쳐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모두가 들어야 할 혼잣말, 《혼자를 기르는 법》

나는 이 책을 펼치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보통 ‘기른다’는 표현은 자신보다 어리거나 연약한 대상을 돌보는 뜻에서 쓰지만, 사실 인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스스로 깨우치고 습득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꾸 꼰대가 되는 것은 교육 대상에 ‘남’만 있지 ‘나’는 없기 때문이다. 자아 성찰만큼 인류에 좋은 도덕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정연의 만화는 좀 서글픈 성찰에 속한다. 20대 회사원으로서 느끼는 허탈과 무력감의 무게를 사회문제로 여기기도 하지만, 돌연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며 화살의 방향을 돌리기도 한다. 사실 이 만화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여성의 고단함을 말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좋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어떤 교훈으로 끝맺기보다 그저 상황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와 여운을 남긴다. 우는 얼굴보다 무표정에서 더 많은 슬픔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혼자를 기르는 법》의 주인공 ‘시다’도 대부분 무표정하다. 웃을 때라곤 햄스터 ‘윤발’을 볼 때뿐, 나는 시다의 표정에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표정이 압축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장녀 노릇을 강요하는 부모, 결혼과 출산을 의무처럼 여기는 친척, 무리한 노동을 요구하지만 기저에 깔린 차별을 숨기지 못하는 회사‧‧‧. 우리가 자꾸 무표정해지는 이유다.
시다는 야근이 일상인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며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이사한다. 나름대로 생활의 변화는 생겼지만 어쩐지 마음 상태는 나아지지 않던 날, 자신을 걱정하는 동네 친구 ‘해수’에게 덤덤하게 말한다.

“서울에선 무리해야 겨우 보통이 되니까요. 그래도 젊으니까 어떻게든 몸으로 막아보고 그런 게 많았는데 말이죠. 아무튼 지금은 제가 여기까지 밀려왔구나 싶으니까 다시 되돌리고 싶고 그래요. 느리긴 해도 전 제가 꽤 전진한 줄 알았거든요.”

나는 이 책이 작가의 혼잣말로 채워졌다는 생각을 한다. 꼭 누군가는 들어주길 바라는 넋두리 같은 것. 내 주변에 혼자 애쓰는 여성이 있다면 그녀의 혼잣말을, 혼잣말처럼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