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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그게 뭐라고!

What the Deposit!

보증금, 그게 뭐라고!

Editor.Hyeonsong Lee / Illustrator. Jiha Kim Article / opinion

진정한 인생의 시작은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한 순간이 아닐까? 순탄치 않았고 넉넉지 않았지만, 자립의 출발점이 된 우리의 보증금 마련 분투기.





“티끌 모아 언덕”

박정혜 (29세 / 패션기자)
사는 곳 :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구조 : 오피스텔 원룸 / 7평
집세 :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30만 원

저는 외동딸이에요. 부산에서 태어나 20대 초반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 전에는 한 번도 따로 산 적이 없죠. 지금 생각하면 무슨 패기였는지, 생애 첫 독립은 이왕이면 해외에서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선택한 게 워킹 홀리데이였어요. 스물세 살 무렵 토론토에서 저의 첫 독립 생활이 시작됐죠.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레스토랑에서 서버로 일하면서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묵묵히 견뎌내며 조금씩 돈을 모았죠. 그렇게 모은 제 쌈짓돈은 서울 생활을 시작할 때 많은 도움이 됐어요. 물론 부모님께서 조금 보태주시긴 했지만요. 티끌 모아 태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언덕 정도는 되었기에 제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어요. 



“사실 친구들에게는 말 못 했는데요”

장현호 (28세, 직장인)
사는 곳 :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구조 : 오픈형 원룸 / 11평
집세 : 보증금 500만 원/ 월세 26만 원

저는 중학생 시절부터 사격밖에 모르는 운동선수였어요. 하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선수의 꿈을 접고 군대를 갔다 왔는데 솔직히 막막하더라고요. 운동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돈을 모으다가 차라리 한곳에 정착해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포천에서 타지살이를 시작했어요.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보증금으로 썼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 타격이 있어서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돈이 없는 것보다 더 힘든 건 낯선 곳에서 느끼는 외로움이었어요. 친구들과 같이 노는 걸 인생의 낙으로 여기는 제게는 너무 힘들었거든요. 사실 티는 안 내는데 금요일 밤만 되면 서울로 가서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무척 들뜨곤 해요. 친구들에게는 비밀이에요. 놀릴 게 뻔한 놈들이거든요. 




“독립한 덕분에 직업을 찾았어요”

정강일 (29세, 요리사)
사는 곳 :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구조 : 분리형 투룸 / 15평
집세 :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50만 원

처음에는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과연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패밀리 레스토랑을 택했어요. 일하기 힘들다고 소문난 곳이지만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지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요리사라는 직업으로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차곡차곡 돈을 모으기 시작해 지금은 따로 나와서 살며 제가 번 돈으로 생활하는 중이에요. 사실 아직은 제 수입으로 보증금과 월세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부족해 친한 형님과 함께 살며 룸메이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에요. 전세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라 해두죠. 온전한 내 집을 마련한 날을 그리면서 말이에요.



“사리가 나올지라도”

이지은 (26세, 직장인)
사는 곳 : 서울시 광진구 화양동
구조 : 오픈형 원룸 / 11평
집세 : 보증금 2500만 원/ 월세 60만 원

독립을 하기 위해서 참아내야만 한 것은 부모님의 잔소리나 허리띠를 졸라매는 생활이 아닌, 싫은 직장에 꾸역꾸역 다니는 거였어요. 왜냐고요?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에 한해서 취업 후 1년이 지나야만 보증금 대출이 가능했기 때문이에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나 할까. 이 악물고 거지 같은 회사와 성격이 지랄 같은 상사 밑에서 인턴 3개월, 정직원 1년 이상을 버텼죠. 그 결과, 저는 성공적인 자취 생활을 시작했고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원래 혼자 지내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을뿐더러 음악이나 TV 등 소리가 서로 섞일 일이 없어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하지만 아침마다 돈을 벌기 위해 참고 출근하는 덕분에 몸에 사리가 착착 쌓이는 느낌은 있어요.




“시작이 반이라지요?”

장지혜 (25세, 웹 디자이너)
사는 곳 :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구조 : 분리형 원룸 / 8평
집세 :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5만 원

다들 하는 자취인데, 저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혔어요. 어차피 서울에 사니까 반드시 독립할 필요는 없었지만, 조부모님, 부모님, 언니, 동생 등 늘 북적이는 대가족 속에서 살아서인지 나만의 공간이 너무 필요했어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기에 스스로 자금을 모은 후에 다시 설득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웹 디자인을 하면서 돈을 모았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몇 달을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일하는 저를 보고 결국 부모님도 허락하셨죠. 아직 역세권과는 거리도 멀고 반지하에서 살고 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잖아요?



“아직 혼자서는 무리예요”

김종범 (30세, 포토그래퍼)
사는 곳 :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구조 : 복층형 투룸 / 10평
집세 :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75만 원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가 날이 갈수록 좋아져 늘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하는 포토그래퍼입니다. 본가는 대구인데 사진에 대한 꿈이 커서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친구와 함께 무작정 상경했어요. 솔직히 서울에 살기만 하면 모든 게 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더라고요. 생각보다 물가도 비싸고 직장도 마음먹은 대로 구해지지 않았지요. 다행히 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입사를 허가한 현재 직장 덕분에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이랄까요? 집도 말이 복층형 투룸이지 남자 둘이 살기에는 턱없이 좁은 공간이에요.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의 갈등도 있고요. 그런데도 왜 같이 사냐고요? 뭐든 혼자보단 둘이 낫잖아요.  




“자유는 대출금을 타고”

강성민 (27세, 마케터)
사는 곳 : 서울시 종로구 내수동
구조 : 원룸 / 21평
집세 :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80만 원

보통 평범한 남자들은 군대에 갔다 오면 20대 중반이 되지요. 거기에 학교까지 졸업하면 20대 후반 정도? 지금의 저처럼요. 솔직히 제 또래가 무슨 큰돈이 있겠어요. 취업을 하면서 독립을 결심했지만 역시 제일 큰 문제는 돈이었죠. 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돈으로는 보증금을 내는 것도 불가능해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부모님 신용 등급이 저보다 높아서 부모님 이름으로 신용 대출을 받고, 상환은 제가 해요. 조용한 공간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요즘 그 로망이 현실로 이루어져 매우 만족하며 지내죠. 대출금을 얻기는 했지만 자유도 얻은 셈이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가끔 싸울 때가 그리워요”

김윤지 (28세, 네일 아티스트)
사는 곳 :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구조 : 원룸 / 7평
집세 :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0만 원

저는 흔히 말하는 ‘딸 부잣집’의 첫째 딸이에요. 처음에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학교를 다니는 두 동생과 함께 살았어요. 한데 세 자매의 평화로운 동거는 몇 달을 넘기지 못했지요. 딸이 많은 집이라면 여자 3명, 그것도 자매끼리 함께 지내면 얼마나 자주 싸우는지 공감할 거예요. 하루가 멀다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싸웠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이유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문제로. 결국 지금은 세 자매가 따로따로 살아요. 이제 싸울 일 없고 조용해서 좋은데, 가끔은 좁은 집에서 복닥거리던 그때가 그립기도 해요. 




“꿈이 뭐길래”

이혜지 (27세, 방송 작가)
사는 곳 : 서울시 서대문구 망원동
구조 : 분리형 원룸 / 7평
집세 : 보증금 500만 원/ 월세 50만 원

꿈을 이루기 위해서 부산에서 서울로 온 지 2년 차인 직장인이에요. 서울에 대한 환상은 없어진 지 오래예요. 부산에서 직장을 구할 수도 있었는데 서울 생활을 결심한 이유는 직업이 ‘방송 작가’이기 때문이었어요. 미디어 계통은 확실히 지방보다 서울에 기회가 많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꿈꾸던 직업이라 고생은 좀 하지만 후회 없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집은 다른 보조 작가들과 함께 원룸을 구해 생활하고요. 좁은 원룸에서 모든 생활을 공유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도움 없이 제가 버는 돈만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뿌듯함을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