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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뼛거리지 않고 돈 이야기 하는 법

How to Talk about Money without Hesitation.

쭈뼛거리지 않고 돈 이야기 하는 법

Editor.Hyein Lee / Illustrator.Jiin Chung Article / clinic

돈 이야기 꺼내는 상상만 해도 막 입꼬리가 완전히 딱 굳어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 


이혜인 / 내담자


• 경력: 6년 차 에디터

• 거주지: 경기도 안양, 25평 아파트에서 부모와 함께 산다.

• 특징: 얼마 전 엄마로부터 2년 이내에 집을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다.

• 성격: 집에서나 큰소리 내지 밖에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바보, 돈 받아야 할 곳이 많지만 돈 이야기 못 하는 소심녀.






윤이나 / 상담자


• 경력: 12년 차 작가, 《미쓰윤의 알바일지》, 《둘이 같이 프리랜서》 저자, 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 작가

• 거주지: 서울시 마포구, 베란다는 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4층에서 지인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 특징: 보증금 없는 생활을 위해 거주지를 자주 옮긴다. 프리랜서 생활 중 최근 2년 남짓한 기록을 담은 책 《둘이 같이 프리랜서》를 보면 총 다섯 곳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 성격: 자기 자신의 삶 외에 책임지는 것을 싫어하지만, 민폐 끼치는 것은 그보다 더 싫어하기에 큰 불편 없이 공동 주거가 가능하다. 돈 이야기는 싫어하기 때문에 오히려 빨리 해치워버린다.






돈 이야기 하는 건 왜 이렇게 부끄러운가? •


작가님의 책 《미쓰윤의 알바일지》를 보고 큰 위로가 됐어요. 책의 첫 문장이 “원고료 떼먹힌 프리랜서를 아시오?”예요. 저는 아직까지 떼먹힌 적은 없는데, 반년 뒤에 받은 적이 있어요. 어제도 한 잡지사에 원고료 언제 들어오느냐고 독촉했어요. 아, 그거 기분 진짜 안 좋아요.

저는 100만 원 남짓의 돈을 떼어먹힌 뒤 소송을 진행한 일이 있는데, 최종적으로는 받지 못했어요. 그래도 소송한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아요. 책에 기록할 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이런 경우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으니까요. 원고료나 외주 비용은 당사자가 챙기지 않으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무려 12년 차인 지금도 꼭 두세 달에 한 번은 원고료 독촉을 해요.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다 보니까 저는 저절로 ‘프로돈돈러’, 그러니까 프로페셔널하게 “돈 돈” 하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나름 냉철한 성격이라 생각하는데 돈에 관해선 그렇지 못해요. 요구하는 게 마땅한 상황인데도 돈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이 부끄러워요. 왜 유독 돈 이야기는 불편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걸까요? 

돈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두렵죠. 어색하고 불편하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돈을 앞세우고 숫자에 대해 말하는 일이 체신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원고료는 큰 액수가 아니니까 ‘이 정도의 금액을 독촉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사실 돈을 지급하는 쪽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은데, 프리랜서 같은 경우는 우선 일을 시작하는 게 급급해서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돈 이야기는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하기가 더 힘들답니다. 무조건 처음부터 말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아요. 불편하고 어려운 단계를 빨리 넘어가야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 ‘프로돈돈러’가 됩시다!
 

언젠가 작가님에게 과외받은 학생이 수학 시험에서 43점을 맞아서 일을 관두게 됐잖아요. 학생 어머님은 화가 많이 난 상태였는데, 작가님은 더 받아야 할 과외비 얘기를 꺼냈다고요. 영화였으면 저 일어나서 박수 쳤을 겁니다.

그땐 정말 절실했으니까요. 그 돈이 없으면 당장 다음 주에 학교에 갈 차비도 없고 점심도 못 사 먹고,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다음 학기 등록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용기까지 갈 것도 없고 일단 필요하니까 말하게 된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구두계약을 통해 돈을 지급하기로 한 거잖아요. 학생의 성적이 떨어진 건 아쉽지만 떨어지면 돈을 안 줘도 된다는 계약을 한 적은 없거든요. 그렇다면 상대에게 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거죠. 

근데 끝이 또 씁쓸하더라고요. 그 15만 원을 던지듯 주었다고요.

학부모 입장에서는 ‘애 수학 성적 떨어뜨려놓고 뭘 잘했다고?’ 이런 느낌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국어는 올랐는걸요.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노동의 대가는 잘해야만 주는 게 아니잖아요. 잘할 때 주는 건 보너스죠.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계약된 노동을 이행했다면 그 대가는 당연히 지급해야 해요. 우리 사회는 가끔 이 원칙을 까먹는 것 같아요.




집 구할 때 피할 수 없는 돈 이야기 •


집 구하는 일을 생각하면 중개 보수(복비) 계산법이라는 게 따로 있지만, 사실 중개인이 부르는 게 값이잖아요. 이삿집 차량 부를 때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정해진 기준이 딱히 없는 인건비는 실랑이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 역시 흥정하는 걸 어려워하지만 위와 같은 경우엔 미리 알아보고 적정선을 정해놔요. 이삿집 차량을 부를 경우 요즘은 이사 관련 앱이 많잖아요. 거기서 미리 견적을 내보고 비교해요. 하지만 통화로 문의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할 말과 궁금한 점을 미리 정리하면 얼굴 보고 있지 않으니까 더 정확히 말할 수 있거든요. 저는 이런 방식으로 이삿짐 차량을 불렀는데, 이미 책정한 가격이 적정선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혹시 속는 건 아닌가? 너무 큰 비용을 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한국 사회는 신뢰의 폭이 매우 좁기 때문에 언제나 이런 고민을 추가로 해야 해서 일이 좀 더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에요. 


사실 입주한 뒤에도 문제예요. 온갖 꼬투리를 잡고 보증금 떼어먹는 집주인도 많잖아요. 매달 전기세, 수도세를 불투명하게 청구하는 사람도 많고요. 세입자를 돈 나올 호구로만 생각하는 집주인도 만나본 적 있나요?

제가 만난 집주인 중 가장 이상했던 사람은 호주에서 만난 집주인이에요. 갓 호주 영주권을 받은 한국인이었는데, 심각한 정도의 결벽증이 있어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때마다 안쪽 전체를 닦아야 했어요.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 때도 가루가 튄다고 지적하곤 했죠. 다른 곳보다 세가 비쌌지만 집이 좋아서 이해하며 살아보려고 했는데, 다른 셰어하우스에서는 당연히 포함된 비용을 갑자기 내라고 하지를 않나, 친구를 부르면 안 된다는 규칙을 강조해놓고 자기 연인은 거의 살다시피 와 있지 않나, 문제가 정말 많았어요. 그때 어떤 계약이든 문서로 남기는 버릇을 들여야 하고, 계약서에 ‘뭘 이렇게까지’라고 느낄 정도로 자세히 써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집주인과 세입자는 갑과 을이 아니라 동등한 계약 관계인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간 자취 경험 중 ‘돈 이야기 할 때는 이런 식의 태도를 취해야 하는구나’라고 깨달은 경험이 있나요?

최근 3년 정도는 지인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예민한 지점이 있었어요. 지인이고 또 친구이기도 하니까 아무래도 돈 이야기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잖아요.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처음부터 잘 정리하는 게 아주 중요하더라고요. 저는 합정 쪽에서 친구와 같이 살다가 친구가 망원동에 집을 사면서 그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는데요, 이전 집보다 컨디션이 좋아졌으니까 월세를 올리기로 결정했거든요. 그런데 가서 보니까 제 방은 오히려 작아진 거예요. 저는 보통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이다 보니 공간이 좁으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사실 이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느낀 시점에 바로 대화를 해서 비용을 조절하거나 방법을 같이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제가 1년만 살 예정이었기 때문에 문제를 회피했어요. 그래서 1년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고요. 1년이든 한 달이든 돈 문제가 있다면 미루거나 회피하지 말고 바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솔직하고 정확하게 정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다들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잖아요. 그런데 작가님은 적금을 든 적이 없다고 하던데,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나요?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는 과연 우리 세대가 집을 살 수 있을까요? 영화 <소공녀>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와요. “집이 아니라 감옥이야. 이 집 한 달 대출이자가 얼마인지 알아? 100만 원이야. 그걸 20년 동안 내야 돼.” 전 돈을 모으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단지 집을 사기 위해서라면 영화 속 저 인물처럼 되는 거겠죠. 저는 저축하고 연금보험 꼬박꼬박 내는 일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적금을 붓지는 않지만 가계부를 기록하며 수입과 지출을 조절해서 남는 돈을 모으는 식으로 저축하고 있어요. 하지만 돈을 모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같이 잘 살지?’를 함께 고민하는 게 아닐까 해요. 대출이자 100만 원을 20년 동안 모으지 않고도 집을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걸 위해 나라와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뭐고, 또 어떤 제도가 필요할까? 저는 수입이 불규칙한 예술가로서 기본 소득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언젠가 이 이야기도 함께 해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돈이 나를 시험할 때  •

돈이라는 게 참 사람 관계를 미묘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친구랑 식사를 해도 누가 계산할지 뜸 들이는 게 싫어서 먼저 계산해요. 쩨쩨해 보이기 싫어서요. 일상 속 더치페이나 친구에게 돈 빌려주기 등에 대한 나름의 원칙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돈 이야기는 ‘바로 그 순간’에 합니다. 그러니까 돈을 내기 전에 “이건 내가 낼게. 네가 절반을 보내줘”라고 말하는 거죠. 만약에 정말로 사주고 싶다면 사주고 생색을 내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전 친구에게 목돈은 빌려주지만 적은 돈은 빌려주지 않아요. 목돈은 당연히 돌려주지만, 적은 돈은 흐지부지될 수 있으니까요. 목돈을 빌려간 친구들은 보통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더라고요. 거기서도 돈과 관계를 대하는 상대의 태도를 알 수 있어요.


예전에 가수 요조 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늙어서 잘 살려고 오늘의 아메리카노를 포기하지 말라”고요. 저는 그 말 하나 믿고 여태껏 왔는데 이 정도로 돈이 없을 줄은 몰랐죠. 이틀에 한 번은 포기할 걸 그랬어요. 

오늘의 커피는 오늘의 나를 살립니다. 그건 후회하지 말기로 해요. 음, 전 늙어서 잘 살 생각 대신 1년 뒤에 하고 싶은 일, 1년 뒤의 내가 누리고 있었으면 하는 것을 생각했더니 돈을 더 규모 있게 쓸 수 있더라고요. 먼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다가올 봄과 1년 혹은 2년 뒤의 나에 대해서는 생각해요. 이전에는 언젠가의 내가 살아 있기만 바랐다면 지금은 더 잘 살고 있기를 바라거든요.


엄마에게 2년 내에 독립하라고 통보받았지만, 당분간 가난할 전망이므로 부모님께 보증금을 빌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사실 이 문제를 위해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거예요. 

빌릴 수 있다면 무조건 빌리세요. 저는 20대에 정말 많은 일을 했고 그 경험을 후회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의 원칙은 ‘젊어서 고생은 절대 사서 하지 말자’예요. 세상에, 보증금이 적은 돈도 아니고 그 큰돈을 모두가 뚝딱 어떻게 구할 수 있어요? 부모님의 노후 자금을 갉아먹는 게 아니라면 기꺼이 받으세요. 받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자리에서 시작하세요. 조금 더 큰 집, 조금 더 따뜻한 집, 조금 더 공간이 잘 나뉜 집요. 거기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사세요. 전 그렇게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