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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책에 비춰본 자기 돌봄의 기술

Lessons from the Green

식물책에 비춰본 자기 돌봄의 기술

Editor.Chanyong Park Article / mixtape

식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트렌드가 되면서 식물과 관련한 각종 에세이도 점점 많이 나오고 있다. 양적으로 많아진 건 물론 질적으로도 풍부하다. 전문 식물학자가 일반인을 위해 쓴 과학 에세이부터 시인이 글을 쓰다가 식물에 대해 느낀 점을 적은 예민한 글도 있다. 식물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기를 돌보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책을 모았다.


기다리고 적응하며 스스로를 깨닫는 일, 《식물의 시간》

생명이 있는 것과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는 건 인간이 지닌 위대한 특징 중 하나다. 그게 벌레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람은 어떤 생명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사실에서 뭔가 좋은 교훈을 찾아내 사람들과 나누곤 한다. 《식물의 시간》을 비롯한 여러 책에서는 모두 그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제한이나 고통에서 아름다운 것이 시작될 때가 있다. 《식물의 시간》 저자 안희제는 크론병에 걸려서 몸이 아프고, 실제로도 저자 소개에 스스로를 ‘아프고 약한’ 사람이라 적어두었다. 그는 아프고 약하다는 상황에서만 나오는 시선을 활용해 식물의 시간을 찾고, 기록했으며, 그 결과 식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그는 “약하고 느린 인간으로서 작고 연약한 식물들에게 이입”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드러나는 건 단순한 감정이입이 아닌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며 생긴 더 넓은 마음이다. “겉으로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어 보여도 나름대로 관찰하며 기다리고 물을 주는 것이 식물의 시간을 경험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섣불리 판단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서 식물의 시간에 적응하고 싶다”는 구절이 좋은 예다. 안희제의 말처럼 판단과 포기를 잠깐 넣어두고 적응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사람이 처음 보는 식물의 시간을 익힐 때처럼. 이렇게 나와 다른 규칙으로 돌아가는 세계를 깨달으면 나를 돌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안희제, 오월의봄








식물이라는 큰 세계를 통해 비춰본 나, 《식물이라는 우주》

꼭 내 몸이 아파야만 거기서 교훈이나 아름다운 감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어디서나 교훈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잘 키워두고 촉각과 시각을 세우고 있다면 자연을 포함한 세계 어디에서든 우리 삶에 적용되는 이야기와 교훈을 찾아낼 수 있다. 엔지니어나 과학자 등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종종 아주 아름다운 에세이를 쓰곤 한다. 한 곳에서 통하는 교훈이 다른 곳에서도 능히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이라는 우주》 역시 그런 책이다. 

저자 안희경은 ‘식물의 생장에 단백질 접힘 현상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식물학자다. 보통 사람이 식물의 생장에 단백질 접힘 현상이 미치는 영향의 아름다움을 알기는 어려울 테니, 안희경은 훈련된 학자의 눈으로 보통 사람이 식물을 볼 때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적어 내려갔다. 이 책에서 배우는 식물에 대한 교훈은 친절하면서도 심오하다. 식물이 어떻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지, 각각의 유전인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살아남아 어떻게 아직도 작용하는지 등 이런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하나의 씨 안에 식물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들어 있는 것처럼.
 

《식물이라는 우주》 같은 책을 읽다 보면 긍정적으로 내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각자의 생물이 모두 이렇게 기나긴 진화의 과정을 거쳤는데, 그에 비하면 내 작은 고민들은 얼마나 작은 것이었나 싶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큰 세상의 이야기를 쉽게 전달받는 건 과학 에세이의 매력이기도 하고, 그렇게 자신과 먼 심오한 세계를 느껴보는 것도 자기 스스로를 돌보는 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책을 봤지만, 정신은 이미 먼 곳으로 여행을 갔다 온 기분이랄까.

안희경, 시공사






관찰이 돌봄이 될 때, 《식물학자의 노트》


한 직업군 안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시점이나 캐릭터가 많이 달라질 때가 있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식물학자 안희경이 식물의 생장 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집중하며 간접적으로 자기 돌봄의 기술을 알려준 셈이라면, 《식물학자의 노트》 저자 신혜우가 전하는 식물 이야기는 과학적 엄정함을 갖추었으면서도 느낌과 결이 조금 다르다. 신혜우는 훈련된 과학자의 객관성에 기반해 식물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한층 더 와닿는 이야기로 식물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교훈을 전한다. 

저자의 남다른 시선에는 그의 기술과 배경도 한몫할 것 같다. 식물학은 원예학, 농학, 식물분류학, 임학식물학 등의 분과로 나뉠 수 있는데 신혜우는 그중 식물분류학을 전공했다. 식물분류학은 지구의 야생식물을 연구하는 기초 학문이다. 동시에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에는 본인이 직접 그린 식물 세밀화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식물이 자라는 현장에 가야 하고, 거기서 얻은 식물을 세심하게 그리는 작업. 이 세밀한작업을 하려면 남다른 집중력과 관찰력이 필요하고, 뭔가를 세밀히 관찰하며 그리다 보면 특정 대상을 뛰어넘는 통찰이 자연스럽게 생겼을 것이다. 
 

신혜우는 인터뷰와 책을 통해 식물이 연구와 관찰 대상이었다가 어느 순간 식물에게 위로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배우가 연극을 하며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감동을 받듯, 식물 입장에서 그 삶을 바라보고 감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식물학자의 노트》에서 이런 말도 한다. “식물의 세계에서 강하다는 건 힘이 센 게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적인 식물 사이에서 뭔가를 깨닫는 순간들이 모여 자기를 돌보는 마음에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신혜우, 김영사







식물과 시인처럼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시인만 볼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게 있나 싶다. 시인이 때로 예민하고 어떨 때는 조금 약하거나 까다로운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동시에 그러면서도 조개의 상처로부터 진주가 만들어지듯 조금 잘 상처받고, 조금 더 예민한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섬세한 관찰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시인은 예민한 눈으로 뭔가를 찾아내어 어떤 구절을 만들고, 그 구절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새겨져 누군가를 울거나 웃게 한다. 시인 이승희가 쓴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가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오늘날의 다른 책들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시인은 식물과 자신이 서로 모르지만 서로 좋아하니 괜찮다는 말로 식물과 자신의 관계를 깔끔히 정리한다. 이렇듯 저자는 논리를 덜어낸 부분에 직관적 시선과 표현을 넣어 왠지 공감 가는 구절들을 만들어낸다. 밤 새 글쓰기 작업을 하고, 아침이 밝아올 무렵 식물들을 보며 ‘너희도 밤새 이렇게 깨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과학적으로 식물에게 ‘깨어 있다’는 상태가 가능한지 아닐지는 이 글에선 중요치 않다. 시인이나 우리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은 그저 뭔가 푸른 것이 살아 있다는 싱싱한 상태를 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가끔은 그런 생각이 스스로를 돌보는 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우리도 가끔은 밑도 끝도 없이 무엇으로든 위안을 받고 싶을 때가 있고, 그런 위안으로 스스로를 돌보며 또 하루를 살아가곤 하니까.

이승희, 폭스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