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mark wordmark

logo logo

아마도 지하철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

Wanting to Be Nearby the Subway Station

아마도 지하철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29세 / 최연정

포토그래퍼


Conditions

지역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구조 복층 오피스텔
면적 56㎡ (17평)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50만 원

 

Room History

어느 날 동갑내기 친구가 독립했다. 그 애는 아빠의 공장을 개조한 집에서 살다가 구로로 왔는데, 이 오피스텔을 보고 나서 바로 내게 전화를 했다. “지하철역에서 비 한 방울 안 맞고 집에 도착할 수 있어. 빛도 뜨거울 만큼 많이 들어오고.” 나는 얘가 또 허풍이네, 하면서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놀러 가보니 정말 진짜였다. 현관문을 열면 지하철이 내려다보일 만큼 역과 가깝고, 오후 4시쯤이면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친구는 이사를 오면서 두 번 다시 가지 않을 것 같은 회사에도 취직을 했다. 불안한 20대 프리랜서의 시간은 저물고 잔잔한 서른이 오는 걸까? 나는 지하철역과 가까워진 친구의 삶을 응원하기로 했다.



저번 주에 처음 출근했지? 2년 반 만에 다시 직장에 다니니 어때?
지금 정확히 일주일 됐는데 너무 가기 싫어. 여러 가지 내부 사정 때문에 합격 연락을 받기까지 5개월 정도 걸렸거든. 그러다 보니 처음에 불타오르던 열정도 점점 식더라고. 나이가 드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귀찮기도 하고.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힘들더라고.

왜 갑자기 회사에 지원한 거야?
되게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나는 자유로운 직업을 원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루틴이 필요했어. 2년 반 동안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거든. 물론 각자 생각하는 평범함은 다르겠지만, 아무튼. 처음 프리랜서가 됐을 땐 좋았지. 그런데 점점 갈수록 일이 안 들어오는 거야. 그렇게 되면 내가 나를 어필하며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또 안 되더라고. 그렇게 돈의 압박을 느끼면서 회사에 지원하게 됐지.

생각해보니 올해에 많은 변화가 있었네. 용인에서 살다가 첫 독립을 한 거잖아.
사실 독립엔 별 감흥이 없어. 지금 뭘 해도 감흥이 없는 상태야. 서울로 이사하면 뭐라도 열심히 하면서 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

하필 구로로 온 이유가 뭐야?
네가 만약 서울에서 자취한다고 가정하면 어디 마음 둘 곳이 있겠니? 생판 모르는 곳에 가느니 그래도 아는 사람이 사는 동네에 가는 게 낫잖아. 일단 구로에 오빠가 살기도 하고, 15분 거리에 친한 친구 두 명이 살고 있어. 내가 자취한 이유는 그 친구들의 공이 커. 자꾸 말로만 자취한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계속 꼬시는 거야. 사람은 좋은 집에서 살아야지 잘된다고, 당장 나오라고. 내가 거기에 속아 넘어간 거지.(웃음)

그리고 또 이유 있잖아. 백화점!
그건 농담으로 하는 소리였어. 백화점이 있어서 여기로 온 건 아니야. 구로에 왔는데 마침 백화점이 있는 거지.(웃음) 주변에 백화점이 많아. 가까이에 구로AK가 있는데 거긴 곧 없어질 거고, 좀 더 걸어가면 디큐브시티라고 큰 백화점이 있어.



딱 이 집만 보고 이사를 결정했잖아. 도대체 어떤 확신이 들었던 거야?
일단 인터넷으로 다 알아보긴 했지. 그런데 사기 매물이 많더라고. 부산에 있는 오피스텔을 서울 지역으로 설정해놓고, 또 연락이 안 되는 곳도 많았어. 그러다가 이 집을 발견했는데 딱 내가 원하던 곳인 거야. 일단 창이 크고 계단도 깔끔하게 들어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 옛날 오피스텔 스타일이긴 하지만 뭔가 일본 느낌이 나서 좋았어. 그래서 두 번 보고 계약을 했지.

네가 초역세권에서 산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어. 초역세권은 초비싸잖아. 그런데 2000에 50이면 괜찮은 건가?
완전 괜찮지. 원래 1000에 55였는데, 2000에 50으로 해주셨어. 다른 집은 여기보다 5만 원 정도 비쌀걸?

나는 너희 집에 놀러 가고부터 ‘아, 역이 가까우니까 좋긴 좋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 역세권에 사니 어떤 점이 좋데? 시간 절약을 할 수 있다는 이유 말고 또 다른 장점이 있어?
그치, 너무 편하지.(웃음) 일단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걷거나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아. 그리고 아무래도 역이랑 가까우니까 사람이 늘 많은 편이어서 저녁에도 무섭지 않다는 점? 무엇보다 여기에 없는 게 없어. 올리브영, 헬스장, 심지어 수영장도 있어.

뭐야, 그게 끝이야?
아, 역 안에 맛있는 게 진짜 많아. 내가 길에서 뭐 먹는 걸 안 좋아하는데, 역에서 포장해서 바로 가져와 집에서 먹을 수 있으니까 진짜 편하더라. 그리고 특히 구로역에 맛집이 몰려 있어. 이삭 있지, 부산어묵도 있고, 그 와플집 소프트아이스크림이 진짜 맛있잖아.



역세권인 점을 제외하고, 독립할 때 네게 가장 중요했던 점이 뭐야?
음, 용인에 있을 때 삶이 너무 지겨운 상태였어. 무슨 일이 일어나려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데, 무기력한 상태니까 계속 침대에만 있었던 것 같아. 변화를 줘야겠다고 했는데 그게 자취였던 거지. 내가 용인에 있을 때도 집을 예쁘게 꾸몄잖아. 그 이유가 영감을 받기 위해서였는데, 마음에 그런 여유가 없으니까 책상이나 서재에 가지 않고 침대에만 있게 되더라고. 그래서 공간이 분리된 복층 오피스텔을 찾은 거야.

왜 그렇게 여유가 없었을까?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채, 미래에 더 나은 내가 있을 거라 믿으면서 행동하지 않은 탓이지 않을까? 그냥 내 모든 행동에 확신이 없었어.

우리끼리 자주 하는 말이, 삶이 지겹다고 하잖아. 그런데 내 주변에 그런 친구가 꽤 있어. 아마 어느 정도 사회에 적응한 20대 후반이 느끼는 지겨움이나 번아웃 상태가 아닐까?
확실히 우리 나이대에 그런 게 있는 것 같아. 부모님 세대처럼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의 가치와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까 평범한 일상이 지겨운 게 아닐까 싶어. 그런데 내 주변에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가 거의 없고, 대부분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 너도 그렇잖아.

그런데 더 이상 찍고 싶은 사진이 없다고 했을 때 좀 놀랐어. 나는 글쓰기 싫을 땐 많지만 쓸 내용이 없던 적은 없었거든.
찍고 싶은 피사체가 더 이상 없게 된 거지. 어릴 땐 잘생기고 유명한 사람을 찍고 싶었는데 그걸 이루고 나니까 의미가 없더라고. 그래서 앞으로 여행 가서 사진을 찍거나 주변에 있는 것을 다시 찍어보려고 해.



나는 이 집의 뷰가 참 좋아. 앞쪽엔 상가의 주차장이 내려다보이고 뒤쪽 현관문을 열면 지하철역이 보이지. 너는 어떤 뷰가 좋아?
이 집이 북서향인데 노을이 잘 보이거든.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껴. 보통 여행을 가지 않으면 노을을 지켜볼 일이 거의 없잖아. 도시에 탁 트인 곳도 별로 없고, 또 사람들 많은 데서 혼자 넋 놓고 있으면 보기에 좀 그렇기도 하고. 그런데 여기 소파에 앉아서 보고 있으면 그냥 좋아. 그리고 창밖에 웨딩홀 보이지? 환할 때 보면 되게 어설퍼서 웃기다가도 저녁엔 노란 조명이 켜져서 나름 그럴싸해. 저기 탑 같은 데 한번 올라가보고 싶어.

가만히 누워 있으면 전철 소리는 안 들려? 차 소리도 많이 들리던데, 그런 것은 괜찮아?
전철 소리는 안 들리는데, 나는 오히려 차 소리 들으면 잠이 더 잘 오더라고. 완전 백색소음. 오히려 사람들 소리를 더 못 견뎌 하지.



두 달 정도 지내보니 구로는 어떤 곳 같아? 용인 집과 참 다르잖아. 거긴 엄청 조용했지.
처음엔 구로가 되게 더러운 곳일 줄 알았어. 그런데 거리가 생각보다 정돈되어 있고 깨끗하더라고. 그리고 혼자 살고 있는데 하나도 외롭지 않아. 퇴근하고 장 보러 가면 다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이더라.

출퇴근 시간이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며? 너무 힘들지 않겠어?
아, 그래서 고민이야. 회사 좀 더 다녀보고 괜찮다 싶으면 그쪽 동네로 집을 알아보려고. 다행히 여기가 1년 계약이라서.

마지막으로,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이야? 만약 그대로 실현된다면 너의 집은 어디쯤에 있고, 어떤 모습일 것 같아?
나는 아주 어릴 때 내가 되게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평범함을 깨닫고 또 그런 삶을 원하더라고. 그냥 좋은 사람 만나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 낳고 남들처럼 살고 싶어. 그게 가장 어렵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울창한 숲이 보이는 경기도의 전원주택에서 살면 좋을 것 같아.


Conditions

지역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구조 복층 오피스텔
면적 56㎡ (17평)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5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