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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조금 더 쉬운가요?

Is It Easier If It’s Two?

둘은 조금 더 쉬운가요?

Editor.Hyuna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양수현, 손현

32세, 36세, 프리랜스 그래픽 디자이너, 매거진B 에디터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양천구 목동
구조 아파트
면적 약 90㎡ (27평)
보증금 4억 1000만 원

Room History

수현

1세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
4세 서울시 구로구 고척동 아파트
17세 서울시 양천구 목동 주상복합 아파트

4세 파나마 파나마시티 아파트
7세 서울시 구로구 구일동 아파트
10세 서울시 양천구 목동 아파트
27세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아파트
31세 서울시 양천구 목동 아파트

검정치마의 <내 고향 서울엔> 앨범 커버에는 63빌딩과 여의도 시범아파트 모습이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는 삭막한 풍경일지 몰라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그 모습이 고향의 풍경일 것이다.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이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여느 연인과 조금 달랐다. 청첩장을 주기 위해 삼삼오오 만나는 모임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신 그들은 사직동 어느 고택으로 서로의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했다. 함께 가훈을 만들고, 두 사람의 역사를 같이한 이들의 얼굴을 오래 보며 축하를 나눴다. 그들은 어떤 공간에서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을까? 문을 두드린 곳은 1980년대에 지은 목동의 한 아파트였다.



2018년 5월 결혼 전까지는 두 분 다 부모님과 함께 사셨다고요.

(현) 걸어서 5분 거리에 본가가, 10분 거리에 처가가 있어요. 둘 다 결혼을 계기로 반강제적으로 독립하게 되었죠.
(수현) 고등학교 때 목동으로 이사 왔는데, 신혼집도 자연스럽게 같은 동네로 정해졌네요. 

블로그를 통해 수현 씨가 가회동 조부모님 댁에 대해 쓴 글을 읽었어요. 그 집에 애정이 깊어서 사대문 안에서 일하고 노포를 잘 아는 남자가 이상형이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수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북에서 내려오셨는데, 처음 터를 잡으신 곳이 가회동이었어요. 시골은 아니지만 제게는 명절에 가는 고향이었죠. 요즘엔 언제 가도 사람이 많은 동네지만, 당시만 해도 명절에는 텅텅 비어 있었어요. 삼청공원에 가고, 아빠는 약수터에서 물 받아 오시고, 집에서는 만두 빚고 녹두전을 해 먹던 추억이 있어요.
 

서울 사람에게 고향에 관해 물으면 딱히 그런 개념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가회동 가는 것이 수현 씨에게는 고향 가는 길이었다고 하니 신기하네요. 강 건너가 고향이라니.

(수현) 가회동 집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결혼 생활이나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상상했을 때 아파트보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거나 지역적 특성이 있는 곳을 꿈꿨어요. 아이가 커서도 유년을 기억할 수 있는 집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요.

그런데 지금 사는 목동은 사교육을 대변하는 동네잖아요.

(수현) 동네 카페에서 가끔 학부모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곳에서 내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나도 저런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학군을 떠나서 목동은 비교적 안전한 동네거든요. 의외로 이런 지역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또 부모님과는 큰길가의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지금 사는 아파트는 같은 목동이지만 커다란 단지 내에 있고 나무도 많고 생활하다 보니 좋은 점이 많더라고요.
 

오기 전 근처를 잠깐 걸었는데, ‘동네’라는 분위기가 들더라고요. 야트막한 산도 있고,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시는 분도 많고, 아파트만큼 키 큰 나무들도 있고요.

(현) 저는 건축을 전공했는데, 도시계획 수업 때 목동이 예시로 나온 기억이 나요. 목동이 1970~ 1980년에 조성된 동네인데,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보행자 도로와 차도를 분리했어요. 그래서 산책하기 좋죠. 

(수현) 지금 목동은 나무 목(木) 자를 쓰는데요, 원래는 칠 목(牧)을 썼어요. 유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목초가 풍부해 말을 방목하는 목장이 많았는데,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무가 많아서 한자가 바뀐 게 아닐까 싶어요.

부모님 댁과 가까워서 일부러 이쪽에 집을 구한 건가요?

(현) 양가 부모님이 여기서 오래 사셨고, 부동산도 잘 아셔서 도움을 받았어요. 저희 둘이 구하는 거랑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1980년대에 지은 오래된 아파트라 처음엔 벌레 문제로 고생을 좀 했지만, 벽이 두꺼워서 소음으로 고생한 적은 없어요.

(수현) 사실 둘이 알아볼 때는 남산, 버티고개 근처를 알아봤어요. 옛 동네로 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가격이 정말 만만찮더라고요. 목동은 매매가는 비싼데 전세가는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원래 목동 살던 친구들도 다른 동네로 이사 갔다가 다시 오는 경우도 많이 봤고요. 하지만 자가가 아니기 때문에 다음 집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어요.



올해 5월에 결혼하셨는데, 벌써 다음 집에 대한 고민요?

(수현) 계약이 끝나면 이사를 해야 할지, 여기서 계속 산다면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 요즘 저는 그런 고민을 해요.

현 씨는 건축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현) 중학생 때부터 가구 배치 바꾸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날 때마다 방 가구 배치를 막 바꾸어보고, 책장에 있는 책들 다 빼서 옮겨보기도 하고. 

(수현) 요즘도 그래요. 거실을 막 뒤엎어요.(웃음)

중학생치고는 독특한 취미인데요? 

(현)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의 공간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위협받은 건 아니지만 일종의 방어 본능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요. 성처럼 무언가를 쌓아놓고 그 안에 들어가면 편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머무는 공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만족감이 있었나 봐요. 그러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내가 해온 행위가 인테리어였고, 이를 포괄하는 건축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죠. 또 고등학교 때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i 전시를 보고 건축가를 꿈꾸게 됐어요. 지금은 에디터로 일하지만요.
 

두 분은 무용 워크숍을 통해 처음 만났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연인으로 발전했는지 궁금해요.

(수현) 공연을 준비하는 일이 겉으로는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자신을 꾸밀 수가 없어요. 트레이닝복 입고 땀 흘리면서 만나야 하거든요. 여러 사람이 모이니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지, 상대방과 호흡을 잘 맞추는지, 얼마나 상대를 배려하는지도 다 드러나요. 또 무용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을 써서 표현하는 예술이잖아요. 그런 모습을 통해 서로 알게 되었죠.

(현) 그러다 제가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내 처음 따로 만나게 되었지요.(웃음)

결혼 전 가족과 친구를 한데 모아 청첩장을 나눠주는 ‘청첩’이라는 행사를 진행하셨죠? 청첩장을 나눠주는 자리도, 결혼식도 가끔 기브 앤드 테이크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하던 터라 인상 깊었어요. 어떻게 기획하게 된 건가요?

(수현) 둘이 같이 청첩장을 만들고, 둘이 같이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스케줄 맞추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운경고택 雲耕古宅이라는 공간을 알게 됐어요. 처음엔 그곳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싶었고, 공간이 좋으니 하루 날 잡아서 친구들을 모두 불러서 청첩장도 나눠주고 다 같이 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기획했죠.



결혼을 준비하는 데 워낙 손이 많이 가고 일이 많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배우자가 직장에서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알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준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현) 한국에서 결혼 준비란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는 걸 뜻하죠. 부동산, 결혼식, 사진 촬영, 신혼여행, 그리고 저희는 직접 청첩장 주는 행사도 했잖아요. 안 되겠다 싶어서 준비를 트렐로(주로 회사에서 쓰는 웹 기반의 스케줄링 프로그램)로 했어요.(웃음)

(수현) 처음에는 그 프로그램 때문에 많이 싸웠어요. 저는 할 일이 쌓여 있는데, 남편은 굳이 ‘이걸 해야 해?’라는 태도로 나오고, 일을 정말 회사 업무처럼 주는 거예요. 매주 주말마다 데이트가 아니라 미팅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래도 해내셨네요!

(현) 사실 ‘청첩’ 행사를 준비할 때 저는 가회동 집에 대한 수현이의 추억이나 마음을 몰랐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한옥에서 야외 촬영을 하고 싶다는 줄 알고 수동적이고 방어적이었죠. 심지어 붓을 2개 놓느냐, 4개 놓느냐는 문제로도 싸웠거든요. 저는 건축을 전공했으니 제한된 예산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나가려 했고, 수현이는 공간에 대해 미술적으로 접근한 거죠. 오히려 본식은 정해진 매뉴얼이 있으니까 싸울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런 경험 덕분에 서로가 어떻게 다른 사람인지 이해하게 됐고, 이제는 많이 맞춰졌죠. 함께 사는 존재로서.(웃음)



처음 독립한 사람들의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데, 수현 씨가 신혼살림을 총괄했다고요?

(현) 수현이의 감각을 믿었거든요. 저도 취향이 있지만 크게 내세우고 싶진 않았어요. 대신 간접조명과 오디오를 놓을 공간이 필요하다고만 말했죠. 스피커는 장인어른께 물려받은 거예요. 이베이에서 당시 스피커 광고 포스터를 구해서 액자도 맞췄어요.

(수현) 집을 꾸미는 일로 싸우지는 않았지만, 현이 종종 집을 쇼룸처럼 세팅해놓는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쇼룸요?

(현) 제가 수현이를 907호 VMD라고 불러요. 집들이할 때도 손님들이 온다 하면 너무 예민해져서 집을 치우는 거예요. 화장실에 있는 생활용품도 예쁘지 않으면 다 서랍에 넣어놔서 제가 “집이 무슨 쇼룸이야?”라고 한 적이 있죠.

(수현) 그 후로 이 집에서 ‘쇼룸’은 금기어가 되었어요.(웃음)

두 분이 책 <며느라기>나 <나쁜 페미니스트>를 같이 읽는 모습을 봤어요.

(수현) 결혼 전에는 여자라서 특별히 억울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데, 오히려 결혼 후에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시부모님이 잘해주셔도 가끔 서러운 일이 생기고, 엄마도 보고 싶고요. 다행히 현이 이런 방면에 관심을 두고 배우려는 사람이고, 주변 친구들이 관련 책을 사주기도 해서 같이 읽었어요. 아직 자녀는 없지만 식구가 느는 일이 제 커리어나 우리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현) 저는 에디터나 저널리스트로서 경력이 있으니 일로서도, 개인적으로도 인식하게 된 부분이 많았어요. 아직도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지만, 배운 걸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현 씨가 글을 쓸 때 수현 씨를 처 妻라고 지칭하는 것도 그 연장선인가요?

(현) 그렇죠.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결혼 후 뉴스레터 쓸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수현이를 지칭할 때 뭐라고 쓸지 모르겠더라고요. 찾아보니 아내는 원래 안사람을 뜻하는데 안사람, 바깥사람은 성 역할이 구분된 단어니 엄밀히 말해 적절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부인은 상대방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그것을 대체할 만한 중립적 단어가 없다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인식이 바뀌지 않으니 언어적으로도 적당한 호칭이 없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한 단어가 처 妻예요. 사실 이 호칭을 일상에서 사용하기는 힘들어요. 글 쓸 때는 처라고 쓰지만 부를 때는 이름을 부르죠. 친구들에게도 일부러 이름을 부르도록 알려주고요.

 


낯선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남의집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셨죠?

(현) 네, 저희는 ‘남의집 청첩’이라는 주제로 결혼을 준비한 이야기를 들려드렸어요. 친구를 모아 놓고 함께 놀면서 청첩장을 나누어주는 ‘청첩’ 행사를 기획한 수현이가 발언자로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제가 제안했지요. 행사는 잘 마쳤는데 당사자로서 정리를 잘 못한 것 같기도 해요.

(수현) 결혼을 준비하는 분, 남자 친구와 결혼을 고민하는 분, 결혼 때문에 결국 헤어지게 된 분 등등 다양한 분이 오셔서 이야기를 나눴죠.

엄연히 두 분의 공간이지만 타인에게도 열려 있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현) 요즘 세대에게 결혼은 선택이 되었지만, 고민은 오히려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부부가 의견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둘이서만 얘기하다 보면 어떠한 생각에 갇힐 수도 있잖아요. 이런 기회를 통해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아예 제삼자에게 제공한 거죠.

집에서 집으로 새로운 인연이 이어지네요. 곳곳에 애정이 묻어나지만, 두 분은 어떤 방식으로 집을 사랑하나요? “이런 게 정말 사랑하는 방식이야?”라고 할 만큼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아요.

(수현) 프리랜서로 일하는 저는 집에서 누리는 시간이 현보다 더 많아요. 보통 낮에 혼자 있을 때는 모든 소리를 꺼요. 조용해지면 새소리,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소리가 들리거든요. 조용한 집에서 가만히 눕거나 앉아서 찬찬히 집을 봐요. 창문 밖도 바라보고요. 그게 이 집을 사랑하는 저만의 방법인 것 같아요.

(현) 이 집에는 수현과 저만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간의 공기를 채우는 것들에 틈틈이 관심을 주고 있어요. 특히 제가 챙기는 화분 3개가 있어요. 모두 선물 받은 화분들인데요, 평일에는 따로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주말만이라도 물과 햇볕을 챙겨주려고 해요. 이들의 상태를 통해 집의 생기를 느끼곤 하거든요. 여담이지만 가끔 수현이 집을 비울 때면 앰프의 볼륨을 높여서 화분들과 함께 음악도 충만히 듣고요.



첫 독립을 한 두 사람이 꾸린 첫 공간이잖아요. 두 분에게 이 집은 어떤 의미인지, 함께 산 지 반년이 지난 지금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궁금해요.

(현) 며칠 전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Iwona Chmielewska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동화책 《두 사람》을 우연히 읽었어요.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함께여서 더 어렵고 함께여서 더 쉽습니다.” 이 집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산 공간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물론 저희 소유의 집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겠죠. 그리고 그때는 두 사람이 아니라 세 번째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요. 이제 막 함께 산 지 반년이 지난 수현에게는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적어도 아직은 함께여서 많은 부분이 더 쉽다고 느끼거든요.

(수현) 첫 독립이지만, 가족에서 가족으로 이동한 독립이라 혼자보다는 둘이라서 수월했어요. 매주 화요일이면 퇴근 후 함께 분리수거를 하고, 월말이 되면 관리비를 챙기고, 집을 나설 때 모든 불을 끄는 일까지, 사소하지만 첫 독립이라 습관이 형성되기까지 실수도 잦았고요. 제가 놓치는 부분을 조용히 챙겨주는 현이 있어 아주 든든해요. 마지막으로 저도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삶의 부부로서, 한집을 꾸려가는 동료로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양천구 목동
구조 아파트
면적 약 90㎡ (27평)
보증금 4억 100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