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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뛰고 오겠습니다

I’ll be back running today

오늘도 뛰고 오겠습니다

Editor.Juhee Mun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심석용 / 33세

브랜딩 / 그래픽 디자이너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구조 오피스텔 9층 투룸
면적  36m²(10평)
전세 2억3000만 원

 

Room History

24세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 다세대빌라 2층 원룸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37만 원)
27세 영국 런던 스톡웰 아파트 플랫
(주세 40만 원)
29세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 다세대빌라 2층 투룸
(보증금 8000만 원, 월세 30만 원)

 

심석용이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 그는 가늠할 수 없는 앞날의 불안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뛰어야만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은 불현듯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없는 새벽 2시의 청계천을 매일 뛰고 돌아온다. 그때부터였을까? 몸이 기억하는 루틴이 리추얼이 된 것이. 뛰고 나서 맑아지는 정신과 평점심을 다시 느끼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에 심석용은 현관문을 나선다.



코로나19로 단축 근무를 한다고 들었어요. 디자인 작업에 미치는 영향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기업의 디자인팀에 있으면 다른 팀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업무의 반 정도 차지해요. 단축 근무를 하면서 미팅하는 시간이 제한되니까 아무래도 업무 자체는 조금 줄었고요, 디자인 작업량이나 시간 자체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는 것 같아요.


단축 근무의 고충을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회사에 있는 시간이 줄면서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진 건 있어요. 보통 주중에 약속이 없으면 바로 집으로 오는데, 퇴근은 5시지만 눈치를 보다가 5시 반쯤 퇴근하고 집으로 걸어오면 5시 45분쯤 돼요. 요즘은 걷는 동안 땀이 나니까 집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뛰러 나가요. 달리고 나서 집에 오면 7시쯤 되고, 저녁 먹고 정리하면 8~9시쯤 되는 것 같아요.


일하고 돌아와서 바로 뛰러 가는 게 가능해요?
서른 살이 지나고부터는 운동을 안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이전에는 술을 마시지만 않으면 기본적으로 건강했는데, 이제는 운동을 해야 건강이 유지되는 것 같아요. 일주일에 세 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근처 한강공원을 뛰려고 하는데, 퇴근하고 바로 가는 게 좋더라고요.


현관을 나서기 전에는 어떤 준비를 하나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스포츠 양말에 달리기용 운동화를 신어요. 애플 워치도 스포츠 밴드로 교체하고, 땀 때문에 에어팟이 빠져서 헤어밴드도 꼭 하고요. 나름 전문적이에요! 한강에 가면 바로 달리려고 엘리베이터 기다리면서 스트레칭도 하고요. 가면서 횡단보도를 한두 번 건너는데, 그때부터 뛰면서 들을 노래를 리스트업해두기도 하죠.


달리기는 언제부터 했어요?
본격적으로 한 건 대학생 때부터였어요. 2014년 2월부터 나이키 달리기 앱 기록이 있으니까 6년 반 정도 된 것 같아요. 당시에 《1Q84》를 너무 재밌게 읽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철저한 삶의 루틴을 알게 됐죠. 그때만 해도 창의적 일을 하는 사람은 변덕스럽게 살 것 같았는데, 자신만의 리추얼과 패턴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점이 멋있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하루키의 사진을 보는데 단단하고 옹골찬 느낌마저 들더라고요. 50대도 저렇게 단단해 보일 수 있구나, 나도 옹골찬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하며 뛴 게 한창 유학을 준비하던 때였어요.


사실 이번 기사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급을 피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음, 전형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는데‧‧‧.(웃음) 그때만 해도 체력이 부족해서 운동이 필요했어요. 건축과에서 그래픽디자인과로 전환해서 유학을 가려던 참이라 남들보다 더 해야 할 게 많았거든요. 포트폴리오 준비할 때는 매일 새벽 2~3시에 3~4km를 뛰고 돌아오곤 했어요. 한양대 옆 마장동에서 자취할 때인데, 집 뒤쪽에 청계천이 있거든요. 그곳을 뛰고 와서 샤워하고 앉으면 작업이 잘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작업하고 새벽 5~6시에 잠들고 그랬어요.


새벽에 자주 뛰었어요?
유학 준비할 때는 작업 시작 전에 준비운동하듯 달리기를 했어요. 뛰고 오면 하루를 리셋해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하루는 새벽 2시에 뛰고 들어와서 샤워하고 선풍기 앞에 앉았는데, 바람을 쐬고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보면서 수박바를 먹고 있었거든요. 빨간 부분을 다 베어 먹고 마지막 초록색 부분을 베어 무는데, 상큼함이 느껴지면서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왔어요. 그러곤 ‘지금 빨리 작업해야 해!’ 하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하루키가 홈런 공을 보면서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느낀 순간처럼 아주 비현실적인데요?
진짜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긴 하죠. 수박바의 당도나 선풍기 바람이 영향을 준 건 아닐 테니까요. 그런데 그날 작업이 너무 잘돼서 그 상쾌함을 느끼려고 똑같이 반복했어요.


다시 해도 그랬어요?
네, 포트폴리오 준비하면서 수박바를 엄청 사 먹었어요. 2+1으로요. 그만큼 유학이 절박했나 봐요.(웃음) 그때 하도 많이 먹고 질려서 이제는 안 먹어요. 지금은 새벽에 뛴다고 작업이 잘된다거나 하진 않아요. 지금은 그렇게까지 절박한 상황은 아니니까요.


요즘은 퇴근 후에 뛰잖아요. 새벽에 뛰던 때와는 어떤 점이 달라요?
그땐 늦은 시간에 작업하려니까 시간을 더 확보하려던 거라면, 직장인으로서 시간을 마치고 개인 작업하는 창작자로 모드를 바꿔주는 일종의 행위 같아요.


석용 씨는 달리기를 리추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리추얼은 긍정적 의미로 쓰잖아요. 제가 달리기를 한 건 유학 준비 시절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좋은 작업을 만들 수 없다는 압박에서 시작한 거라 리추얼로 해석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긴 했어요. 분명 루틴은 맞지만요. 리추얼 하면 괜히 의식적으로 절도 몇 번 해야 할 것만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찾아보니 생각한 것보다 리추얼의 의미를 더 광범위하게 쓰더라고요.


그 후로 벌써 6년이 지났잖아요. 서울에서 자취하는 동안 세 번 이사를 했는데, 매번 뛸 곳이 가까이 있었어요?
집을 구할 때 강변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한 점이었어요. 20대 초반에 학교 근처에서 자취할 때는 중랑천과 청계천이 있었고, 유학할 때도 운 좋게 템스강 바로 근처에 기숙사가 있었죠. 유학하고 돌아와서 직장이 없는 상태로 집을 구할 때도 컨디션이 썩 좋진 않았지만 찾아본 곳 중 2분이면 강변으로 갈 수 있는 곳을 결국 선택했고요. 이 집은 이직하면서 구했는데, 또 운 좋게 서울교와 가까운 곳에서 살게 됐어요.


석용 씨는 왜 계속 뛰어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면 작업 성과를 선명한 지표로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헛헛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물건을 몇 개 판매했는지, 환자를 몇 명 살렸는지 알 수 있는 일도 있지만, 디자인은 성과로 측정할 정확한 수치가 없거든요. 새로 오픈한 카페 작업에 참여해서 잘됐어도 공간이 좋은 건지, 그래픽이 좋은 건지, 커피 맛이 좋은 건지 하나로 꼬집을 수 없고 다양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맞물리기 때문에 늘 지원사격하는 느낌이 있어요. YG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앨범에 블랙핑크 노래가 있기 때문에 커버 디자인을 봐주는 거지, 커버 디자인이 예쁘다고 먼저 봐주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사람들이 예쁘다는 피드백을 해주면 뿌듯하지만, 내 성과라고 느끼는 부분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온전히 내 힘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달리기가 특별하게 다가온 것 같아요.


직업에서 느낄 수 없던 만족을 달리기에서 찾으려 했던 거네요.
네, 그렇죠. 나이키 달리기 앱 기록을 보면 7.00km, 6.01km 으로 소수점 자리가 항상 .00, .01 이런 식이거든요. 더 뛰지도 않았어요. 너무 힘들지만 이걸 해야 나의 하루가 잘된다고 믿으면서 어떻게든 뛰는 거라서요. 얼마 전에는 달리기용 운동화를 새로 샀는데, 퇴근하고 바로 뛰러 가니까 옷만 급히 갈아입고 양말은 깜빡한 거예요. 발목 양말을 신은 채 길들지 않은 새 운동화를 신고 뛰었더니, 5km쯤부터 뒤꿈치에 물집이 잡히더라고요. 그러더니 결국 물집이 터져서 피가 줄줄 났어요. 그런데도 7km를 목표로 뛰어야 하니까 양말을 벗고 운동화 구겨 신으면서 끝까지 달렸어요. 도저히 포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그게 그만큼 중요했어요?
네, 그렇게 해서라도 목표를 채워야겠더라고요.


왜요? 왜 그렇게 자기하고의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뛰는 속도나 호흡이 좋지 않더라도 이걸 해내야 내 안의 무언가가 계속 적립된다고 느껴요. 그렇게 적립된 보람이 모여서 결국은 제 삶을 버티게 해줄 것 같고요.


지금까지 달리면서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나요?
디자이너가 아닐 때의 나 또는 건강한 삶을 살고 싶은 심석용이라는 사람을 더 인식하게 됐어요. 디자인 피드백이 좋지 않은 날이든, 일이 잘 안 풀리든 “그건 그거고” 하면서 일과 나를 조금은 분리할 줄 알게 된 것 같아요. 일에서 자아를 찾으려 하던 때를 지난 것 같기도 하고요. 또 다른 자아의 나로 마인드 컨트롤하는 법을 달리기를 하면서 알게 됐다고 생각해요.


달리기는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잖아요. 반복하는 것엔 어떤 힘이 있나요?
무엇을 해도 더 오래 진득하게 하는 힘이 길러지는 것 같아요. 체력도 그만큼 많이 좋아졌고요.


달리기하면서 지겹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어요?
뛰는 게 지겨운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애플 워치를 차고 에어팟만 있으면 음악도 듣고, 팟캐스트도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스트레칭을 하는 건 진짜 지겹긴 해요. 스트레칭은 달리기 앱 기록에 남지 않거든요. 동작을 열 번 했다고 해서 0.1km가 느는 게 아니고, 순전히 몸을 위해 준비하는 단계이자 마무리하는 단계니까요.


기록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저한텐 특히 그래요. 6년째 달릴 수 있던 이유가 하루 몇 킬로미터를 달렸고, 내일 몇 킬로미터를 달릴 거고, 이번 달에 몇 킬로미터가 남았는지 달리기 앱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아무것도 없이 그냥 뛰라고 했으면 아마 이 정도로 오래 하지 못했을 거예요.


달릴 때는 어떤 생각을 하나요?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직업에서 오는 생각의 피곤함을 디톡스해주는 것 같기도 해요.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나요?
아, 딱 한 가지 생각을 할 때는 있어요. 속도도 처지고 너무 힘들면 제 앞에 뛰는 분들과 올림픽에 나왔다고 생각해요. 저 사람은 일본 대표고, 나는 한국 대표로 나왔다고요. 어느새 나이키 마크가 한국 국기가 돼 있고, 독도 표시도 생기죠. 내가 금메달을 따야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럼 포기하고 싶지 않고 달릴 힘이 생기거든요. 진짜 웃긴 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게든 앞사람을 따라잡는다니까요.


아무 생각 없다더니 재밌는 생각을 하면서 뛰는데요?
여의도 쪽은 직장인이 많으니까 비슷한 나이대와 체격의 사람이 많아요. 아무리 속도를 내도 따라잡기가 쉽지 않죠. 그럴 때 혼자 애국자 마인드가 돼서 상황극을 펼치는 거예요.(웃음) 그러고 앞사람을 제치면 이겼다는 생각에 혼자 뿌듯해져요.


보통 한 번 나가면 몇 킬로미터 정도 뛰어요?
요즘은 7km? 꼴에 자존심이 있어서 걷는 건 카운팅 안 하고요. 절반 지점에서 딱 한 번만 쉬고, 10분을 넘지 않는 게 철칙이에요. 그냥 7km를 뛴다면 재미없고 지루할 텐데, 계속 제 나름의 룰을 만들면서 뛰면 게임처럼 접근이 되는 것 같아요.


잘 뛰는 방법도 알려주세요.
나만의 리워드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저한테는 잘 뛰면 작업이 잘될 거라는 목표가 있는 것 같아요. 나이키 달리기 앱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목표한 킬로미터를 다 뛰고서 완주를 누르면 “웰던~” 하고 메시지가 뜨거든요. 그게 너무 좋아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달리기 기록을 꾸준히 올리던데, 그게 기분이 좋아서 올린 거였어요?
네, 엄청 단순하죠?(웃음)


점점 상위 목표가 생기진 않나요?
물론 생겨요. 처음에는 대회에 나간다는 건 생각도 안 한 일인데, 요즘은 이왕 뛰는 거 나가보지 싶어요. 작년에는 친구들하고 10km 마라톤에 나가기도 했고요. 궁극적 목표는 마흔이 되기 전에 하프 마라톤에 출전해보는 거예요.


본인에게 달리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뿌듯함의 크기로 보면 일로써 얻는 게 가장 클 테지만, 매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달리기는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얻을 수 있으니까 직업적 자아로부터 압박을 덜 느끼게 하는 장치 같아요. 해방이라는 표현이 될 수도 있고요. 아니면 근본적인 성취가 부족할 때 그걸 채워주는 저만의 의식 같기도 하고요.


달리기는 언제까지 할 것 같아요?
글쎄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몇 살까지 뛰는지 보고 딱 그때까지 뛸래요.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도, 롤모델도 하루키니까요.


오늘도 뛰러 갈 거예요?
비가 적당히 온다면요. 날씨가 괜찮은지 봐야겠어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구조 오피스텔 9층 투룸
면적  36m²(10평)
전세 2억300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