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mark wordmark

logo logo

햇빛의 순환을 알고 있다면

If you know the cycle of the sun

햇빛의 순환을 알고 있다면

Editor.Juhee Mun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김파카 / 34세

일러스트레이터


Conditions

지역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구조 다세대빌라 3층 투룸
면적  52㎡(15평)
전세 2억4000만 원

 

Room History

30세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오피스텔 3층 원룸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30만 원)

김파카의 첫 자취 집은 북향이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씩 들인 식물이 30여 개로 불어나기까지, 그는 수많은 식물을 만나고 떠나보냈다. “모든 사람과 다 친구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어떤 식물은 저와 맞지 않았던 거라 생각했어요. 저와 잘 맞는 식물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 여겼어요.” 언뜻 들으면 쿨한 대답 같지만, 그가 5년간 식물에 들인 관찰과 실험의 시간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빛이 부족하다는 북향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는 집을 관찰하고, 햇빛의 순환까지 계산해 식물을 두었다. 내가 만난 그는 어쩐지 식물을 다루는 데 무언가 터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카 님은 언제부터 식물을 키웠나요?
5년 정도 됐어요. 몬스테라나 선인장, 립살리스 등 대부분 키운 지 오래된 식물들이죠. 어제는 집 안에 식물이 몇 개나 있는지 세어봤는데요, 30개쯤 되더라고요.


식물을 이렇게 많이 키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인테리어 관련 회사를 퇴사하고 이곳저곳에 놀러 다녔는데, 꽃집이나 화원·농장 등에 가니까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웃고 있더라고요. ‘일을 하면서도 웃을 수 있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지요. 저도 그렇게 일하고 싶어서 식물에 관심을 가지면서 빠져들었죠. 지금은 식물과 관련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도 하고, 작은 브랜드도 운영하고 있어요. 그렇게 식물을 키우면서 5년이 지났어요.


5년이면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그동안 키운 식물도 처음보다 많이 자랐겠어요.
그렇죠. 정말 신기한 일이에요. 햇빛이 적은 집에서 5년간 살았거든요. 식물들이 서서히 풍성해졌어요. 그동안 꽃 피우는 애들도 있었고요.



첫 집이 북향이었다고요. 햇빛이 적게 드는 집이라 식물을 고르는 것부터 제약이 있었을 것 같아요.
네, 아무래도 키울 수 있는 식물에 제한이 있죠. 대부분 관엽식물을 키웠어요. 보통 식물을 봤을 때 잎이 얇고 작으면 키우기가 무척 까다롭고 어렵거든요. 몬스테라나 립살리스 같은 관엽식물은 잎이 두툼하고 넓어서 수분을 저장하기 때문에 잘 자라요.


실제로 북향집에서 식물을 키워보니 어땠나요?
북향집은 직접광이 들지 않거든요. 그런데 한 줄기 빛이 들어서 뭔가 했더니 건너편 아파트에 드는 햇빛이 반사돼서 들어오더라고요.(웃음) 빛이 적으니까 당연히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을 줄 알았어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실험을 해보려고 식물을 하나씩 뒀는데 생각보다 적응을 잘하더라고요. 물론 죽은 애들도 있고요. 지금 여기 있는 식물들이 거기서 살아남은 애들이에요.


식물이 죽어도 계속 키운 이유는 뭐예요? 식물을 키우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일까요, 아니면 무던한 성향일 수도 있겠고요.
식물이 시들어서 죽으면 당연히 마음이 아프죠. 그런데 친구를 사귈 때의 마음과 비슷한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을 다 친구로 사귈 수 없잖아요. 잘 맞는 친구도 있고 아닌 친구도 있으니까요. 그런 것처럼 이 집에서 시든 식물은 나와 잘 안 맞는 친구였나 보다 생각하고, 나와 더 잘 맞는 다른 친구를 찾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더 많은 식물을 실험해보고 싶었고, 잘 지내보려 노력했죠.


그 적은 햇빛으로 지금까지 잘 키운 게 대단한데요, 어떤 노하우가 있었나요?
햇빛이 없는 곳에서 식물을 키우려면 기본 조건의 순서가 달라져요. 보통은 물> 햇빛 >환기 순으로 관리한다면 환기> 물> 햇빛으로 순서를 바꿔서 관리하죠. 식물을 관찰하면서 물의 양과 주기를 달리하고요. 환기를 하고 햇빛의 순환을 이용하는 거죠.


햇빛의 순환은 어떻게 파악하는 건데요?
일단 온종일 집에 있는 시간에 파악할 수 있어요. 우리 집이 동서남북 중 어느 방향인지 확인하고 창문이 어디로 뚫려 있는지 봐요. 햇빛은 동쪽에서 남쪽을 통해 서쪽으로 가니까 아침에 밝은 쪽은 동쪽이고, 항상 밝은 쪽은 남쪽이며, 해가 지는 쪽은 서쪽이 되죠. 지금 집은 북동향인데요, 아침에 햇빛이 많이 들고, 점심쯤 되면 밖은 밝아도 집은 캄캄한 느낌이에요. 그리고 서쪽으로 해가 질 때 3~4시쯤 살짝 햇빛이 들어와요. 계절이 바뀌면 시간이 달라지고요.


그 순환에 따라 파카 님이 하는 일도 있나요?
계절이 바뀔 때 주기적으로 식물 위치를 바꿔줘요. 동쪽에 있는 애들은 아침에 쨍한 햇빛을 받으면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거든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빛을 덜 받는 식물들과 자리를 바꾸죠. 보통 집 안은 사계절 내내 온도가 비슷하니까 위치를 바꿔도 식물에 무리가 가진 않아요.


이 집처럼 적은 빛이 들더라도 잘 활용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리창에도 빛이 걸러지거든요. 유리창을 열고 방충망까지 열면 더 많은 빛을 받을 수 있어요. 음··· 그리고 지금 생각나는 건데요,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 보면 집 안에 식물이 가득하잖아요. ‘어떻게 세팅했을까?’ 유심히 관찰했어요. 단순히 영화 세트로만 꾸민 걸까 했는데 소름 돋는 부분을 발견했죠. 천장에 있는 조명에 거울을 잔뜩 붙여둔 거예요. 사이드미러처럼요. 아파트 빛이 반사돼서 저희 집에 들어온 것처럼 빛이 반사돼 식물을 비추더라고요. 분명 집 안에서 식물을 가득 키우는 사람들에게 자문을 받았다고 느꼈어요. 영화 속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싶어요.


식물을 키우기에 풍족한 환경에 살면 좋은데 사실 그렇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도 많잖아요. 제가 사는 집도 그렇거든요. 파카 님이 쓴 책에 식물을 키우기에 부족한 환경이어도 자신 있게 말하는 분위기면 좋겠다는 부분이 있어요. 무엇을 느껴서 그렇게 쓴 건가요?
식물을 고르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접하는 정보가 대부분 ‘물 많이 주고 햇빛을 많이 쬐어주라’예요. 그런데 우리 집은 늘 햇빛이 적은 환경인 거죠.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어요.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빛이 없는 곳이면 웃자라고, 그런 곳에서 키우지 말라’는 뉘앙스를 풍기잖아요. 식물을 아끼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거지만, 정작 제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물어볼 곳이 없더라고요. 그런 이유에서 쓴 거예요. 제가 관찰하면서 직접 알게 된 정보를 네이버 포스트에도 쓰고, 브런치에도 쓰면서 정보를 공유했어요. 그게 책으로 나왔고요.


아무래도 북향에서 사는 사람들은 식물 키우기를 겁내잖아요. 남향집과 북향집일 때 식물 집사들은 어떻게 다른 태도를 유지해야 할까요?
만약에 제가 집에서 먹을 걸 주는 요리사라면요, 남향에 있는 애들은 잘 먹고 잘 커서 뭐든 많이 줘도 돼요. 물도 많이 주고, 햇빛도 충분히 받아도 되고요. 식성 좋은 애들인 거죠. 북향에 있는 애들은 강제적으로 소식을 해야 해요. “우리 집은 풍족하지 않으니까 적응해야 해” 하면서요. 북향집의 식물들은 부족한 환경에서 적응하니까 아낌없이 퍼주다가는 어느 날 죽고 말아요. 그걸 이해할 필요가 있죠.


햇빛이 적은 곳에서 식물을 잘 키우려면 무얼 가장 신경 써야 할까요?
키워보려고 마음먹었다면 제일 중요한 건 물 주기 방법인 것 같아요. 식물에게 물은 우리가 밥 먹는 것과 같거든요. 소화를 시키는 과정이 햇빛을 보는 거예요. 햇빛이 적으면 소화가 원활하게 안 되니까 안의 흙이 마를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그래서 창문을 자주 열어 환기를 하는 거고요. 흙이 마르기까지 살피는 게 물 주기의 끝인 것 같아요. 그 사이클을 연습하면 식물을 잘 키울 수 있어요.



인터넷에 식물 이름을 검색하면 키우는 방법이 있잖아요. 그런 걸 따라 하다가 낭패를 보기도 해요.
일단 물의 양은 정해진 기준이 없다는 걸 알아냈어요. 장마였을 때 선인장을 밖에 둔 적이 있어요. 원래는 물을 많이 주면 안 되는 식물인데 죽지 않고 잘 자라는 거예요. ‘아, 물의 양이 아니라 물을 흡수하고 소화시키는 사이클을 알고 관리하니까 잘 자라는 거구나’ 알았지요. 흙이 말랐는지 매일 확인할 수 없다면 물을 주고 나서 환기를 자주 시키는 것만 잘해도 되고요. 그리고 물을 줄 때는 흙에 스며들 수 있도록 천천히 주는 게 중요해요.


주변에 식물 키우는 사람이 많잖아요. 요즘 세대가 식물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음, 자연스러웠던 게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되었기 때문인 게 아닐까요. 전에는 깨끗한 공기나 하늘이 있었고 봄이면 밖에 나가 뛰어놀던 게 자연스러웠는데요, 이제는 미세먼지나 오염된 물로 인해 누릴 수가 없어진 거죠. 부모님 세대엔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우리 세대에는 당연하지 않으니까 소중해지는 것 같아요. 날씨만 좋아도 기분 좋고, 꽃 핀 것에 감동하면서 식물에 관심이 커지는 것 같더라고요.


식물을 통해 배운 것도 있어요?
사람마다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인정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식물을 보면서 이제는 많이 받아들인 것 같아요. ‘나는 빠르지 않아. 지금 이 속도가 나의 최선이야’ 하면서요. 식물은 변함이 없는 것 같아도 1mm씩이라도 계속 자라고 있어요. 누가 잘한다 못한다 하지 않아도 계속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거죠. 그걸 보면서 나도 내 갈 길을 가면 언젠가 누가 와서 예쁘다 해주겠지 생각해요.


보통 식물을 많이 키우는 분들은 식물을 위해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이사를 하기도 해요. 파카 님은 그 조건을 크게 염두에 두진 않을 것 같아요.
이제는 환경에 따라 키우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했고, 까다롭지 않은 식물이 무엇인지 알았으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죠.


나중에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살고 싶은 맘은 있어요?
그럼요. 그런데 실내보다 마당에 햇빛이 잘 드는 곳이면 좋겠어요. 바깥에서 자라는 나무도 관찰해보고 싶거든요. 화분이 아니라 땅에서 바로 자라는 식물들요. 어떻게 자랄지 궁금해요.


퇴사 후 식물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보고 부러웠다고 했잖아요. 어때요, 파카 님의 표정은 그들과 닮아 있는 것 같나요?
저는 못 느끼는데 친구들이 좋아 보인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실제로는 매번 좋지만은 않지만요.(웃음) 뭐,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본 그들처럼 방향을 잘 잡고 살고 있구나 싶어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구조 다세대빌라 3층 투룸
면적  52㎡(15평)
전세 2억400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