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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 같은 행복이 모인 곳

Happiness Gathered Like Pebbles

자갈 같은 행복이 모인 곳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32세 / 백승은

그래픽 디자이너


Conditions

지역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구조 오피스텔 투룸
면적  73.7㎡(22평)

Room History

 

21세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오피스텔
22세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오피스텔
23세 캐나다 벤쿠버
24세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오피스텔
25세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오피스텔
27세 영국 런던 스튜디오

 

백승은의 집을 되새길 때 엉뚱하게도 해변이 떠올랐다. 창밖 너머로 고층 건물이 떡하니 보이는데도 그러한 감상이 남은 건 첫째, 백승은이 자신의 청정 구역을 잘 가꾸었기 때문이고(깨끗함과는 별개의 의미) 둘째, 찬장과 바닥 구석구석에 자리한 물건이 크고 작은 자갈 같았기 때문이다. 그 풍경은 마치 어린아이의 주머니를 살펴보는 것과도 같았다. 사탕 껍질, 꽃잎, 구슬 등이 뒤섞여 있는 주머니는 분명 아이가 좋아하는 것만 담아놓았을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좋아하는 것의 이유를 묻는다면 의아한 표정만 짓겠지만 말이다. 백승은도 마찬가지다. 취향이라 불리는 것엔 관심이 없고 그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 바빴다. 우리의 대화는 초인종 소리에 두 번 끊겼다. 택배 박스를 들고 오는 그녀의 표정이 아이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속수무책으로 해맑은 시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방탄소년단 콘서트가 취소되었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괜찮은가요?
뭐, 어쩔 수 없죠. 괜찮아요. 사실 티켓팅도 실패했거든요. 다음에 당첨될 수 있다고 좋게 생각해야죠.


제 친구는 프랑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콘서트 당첨이 되어 공항에서 바로 가려고 했대요. 정말 매가리 없는 앤데 이런 열정 처음 봐요. 승은 씨는 원래부터 좋아하는 것에 거침이 없는 편인가요?
무언가를 사거나 행동할 때 호불호가 명확한 것 같아요. 저는 예쁘다, 별로야 딱 두 가지로 구분해서 결정하거든요. 분야 같은 건 안 가리고요. 어릴 때부터 고집이 셌어요. 난 이걸 하지 않겠다 하면 끝까지 안 했거든요. 부모님 입장에선 기르기 힘들셨을 거예요. 남동생, 여동생이 있지만 셀프 외동처럼 자랐지요.


덕질하려면 돈이 참 많이 들죠? 팬 사인회에 가려면 앨범도 여러 개 사야 한다고요?
안 가면 됩니다.(웃음) 방탄소년단도 좋지만 그보다 저에게 집중하는 편이에요. 어차피 덕질도 저 좋자고 하는 거잖아요. 저를 희생하면서까지 좋아하고 싶진 않아요. 쿨한 것보다 내가 먼저다 이거죠.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 인터뷰는 아니지만 왜 그들이 좋아요? 승은 씨의 취향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을 듯해서 물어요.
방탄소년단은 신인 때부터 좋아했는데요, 글쎄요… 예쁘고 귀엽다는 이유가 다예요. 보면 기분이 좋으니까요. 솔직히 아이돌이 보여주는 모습을 좋아하는 거지 그들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좋아할 수밖에요. 저는 방탄소년단 중에 RM을 좋아해요. 얼굴이 제 취향이라서요.


이 토마토 램프(Parra x Case Studyo ‘Give up Tomato lamp’)도 RM이 사용하는 것이라 들었어요. 찾아보니 중고로는 70만 원 정도 하더라고요.
어, 정말요? 팔아야 하나? 제가 살 때는 50만~60만 원대였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 발견했을 땐 회색이 아니라 빨강, 파랑 에디션이었는데 불을 켜보니 진짜 토마토처럼 빨갛더라고요. 너무 강렬해서 포기했는데, 한국의 어느 가게에서 회색 버전으로 팔더라고요. 그건 예뻐서 샀어요. 물론 방탄소년단 멤버가 샀다는 말에 혹한 부분도 있지만 예쁘지 않았다면 사지 않았을 거예요.



평소에 물건을 자주 사잖아요. 방금도 택배 하나가 왔고요. 어떤 것을 무리해서 산 적은 없나요?
저는 무리해서 사는 건 없어요. 일단 카드 할부는 잘 안 하고, 비싼 물건을 사고 싶으면 현금을 모아서 구입하는 편이에요. 소비로 인해 괴로워지고 싶진 않거든요. 소득수준보다 과한 소비를 하면 나중에 짐이 되고 계속 마음이 불편하잖아요. 막 엄청 비싼 물건에 관심이 많지도 않고요. 저의 예산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다고 판단하는 물건은 금방 포기하는 편이에요.


지금 보이는 물건을 보면… 예산이 좀 높은 거 아닌가요?(웃음)
아니에요.(웃음) 돈을 잘 번다기보다 이런 걸 사는 게 너무 좋으니까 저축은 거의 포기하고 사는 거죠. 할부는 해봤자 2개월 아님 3개월 이상은 안 넘기려고 해요.


그럼 수입의 몇 퍼센트를 취향을 위해 사용하나요?
취향? 저는 그 단어가 너무 어려워요. 취향이라는 게 워낙 다양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먹는 것도 취향이고요. 굳이 따지자면 식비를 포함해서 수입의 80% 정도를 쓰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많이 쓰나?(웃음) 요즘엔 먹는 것에 돈을 많이 쓰긴 해요. 와인도 곧잘 마시고요. 그런데 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깊게 파고들진 않아요. 어떤 분은 좋아하는 게 생기면 연구하고 어떤 점이 좋은지 파헤치잖아요? 저는 정말 관심이 없거든요. 자주 가는 음식점이 있어도 입맛이 바뀌면 안 가고요, 한 브랜드의 옷을 줄곧 사다가도 스타일이 바뀌면 안 사요. 취향에 있어서는 되게 직관적인 편이죠.


단순하고 또 명확하네요.
처음에는 자주 이용하는 게 정해져 있다 보니 제가 그 브랜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아니더라고요. 브랜드의 일부를 좋아하는 거지 전체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걸 깨닫고부터 특정한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의미가 없어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취향은 금방 바뀔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꾸준히 이어지는 하나의 결이 있다면요?
귀여움요. 귀여운 게 최고다!



취향을 향유하는 데 어렵거나 두려운 부분은 없나요? 부모님의 눈초리나 친구의 질투를 받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아뇨, 그런 점은 없어요. 오히려 가족이 쇼핑할 때 저를 되게 신뢰해요. 동생들도 물건을 살 때 꼭 연락하고, 엄마는 제가 산 것을 똑같이 구입할 때가 있어요. 아마도 제가 디자인 공부를 했으니까 그러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가끔은 제가 무얼 많이 사면 부모님께서 집이 터지겠다, 물건에 깔려 죽겠다고 말씀하시긴 하지만 일단 제가 살 수 있는 선에서 사는 걸 아니까 크게 걱정하진 않으세요.


저희 엄마는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돈은 언제 모으냐”고 말씀해요. 그럼 늘 생각하죠. ‘지금의 소비를 아껴서 노후에 취향을 가꾸는 게 더 나을까? 나의 취향을 파악하지 못한 채 나이가 들어서도 뒤늦게 취향을 가꿀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는 걸 멈출 수가 없죠. 저도 걱정을 많이 하거든요. 갑자기 누워 있다가 ‘예순 살 넘으면 이 물건들 내다 팔면서 살아야 하나?’ 이러면서. 그런데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요. ‘이렇게 좋은 것을 많이 알아버렸는데, 나이 들어서 아는데 못 사면 얼마나 슬플까?’ 하고요.



SNS에서 소파 사진과 함께 “부자가 되어서 돌아올게···”라는 글을 봤어요. 아련하더라고요.
요즘 빈티지 가구에 관심이 많아진 친구들 덕분에 원오디너리맨션, GU 빈티지 등 다양한 숍에 갔는데, 마음에 드는 의자가 없더라고요. 분명 다 예쁘고 좋은데 제 마음에 들진 않았어요. 소파는 너무 크기도 했고 일단 가격이 무리였어요. 왕무리! 페인트칠 한 옛날 의자를 갖고 싶어서 결국 미국에 주문해서 샀죠. 지금 오고 있대요.


또 최근에 산 물건이 있나요?
큰 지출은 맞춤 제작한 책상? 잘 산 건 저금통이에요. 핀란드에 사는 한국 디자이너의 작품인데 1년 정도 찾아다녔어요. 핀란드로 여행 가는 친구한테 몇 번 부탁했지만 계속 못 구해서 포기하고 있다가 올해 갑자기 생각나서 다시 찾아봤어요. 작년에 루밍이라는 편집숍에 들어왔는데 품절이더라고요. 이메일로 문의했더니 3개월 뒤에나 입고된다고 해서 기다리겠다고 했죠. 그런데 마침 다른 사이트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드디어 입고되었다고! 덥석 사버렸죠.


구매 과정이 어려웠던 제품도 있을 것 같아요.
영국에 있는 매장과 오랫동안 이메일을 주고받아서 3개월 만에 받은 조명이 있어요. 산악용 로프 같은 긴 선이 매력인 제품인데, 만약 단 하나의 조명을 구입해야 한다고 하면 이것을 사야지 싶었죠. 이 르메르 팬츠도 사이즈가 없어서 못 사다가 마침 베를린의 어느 숍에 있어서 바로 구입했어요. 희소성 있는 스티치 색상 때문인지 친구들이 가장 많이 팔라고 하는 제품이에요.


그러게요. 저도 그 바지 사고 싶었어요. 신발도 참 많던데요?
신발 욕심도 많아서. 큰맘 먹고 산 구두가 있는데, 오직 졸업식을 위해서 구입한 거예요. 되게 불편해요. 발가락에 힘주고 딱 세 걸음 걸을 수 있어요. 10분 구두라고 해야 할까요? 그 순간만을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산 거예요. 사진에 발까지 나오지도 않는데 말이죠.(웃음) 맞는 사이즈를 찾으러 영국 백화점을 돌아다니다가 규모가 작은 백화점에서 산 기억이 나네요.



취향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실체가 없는 감각이잖아요.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치환해야지만 서로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는데, 가끔 그 행위가 지치진 않나요?
분명히 물건을 많이 사긴 하지만 소비에 진심으로 집착하진 않아요. 어릴 때는 의미 없는 유행을 따르기도 하고, 사고 싶은 물건이 사라질까 봐 전전긍긍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이미 가진 게 많아서인지 지금은 정말 사고 싶은 물건도 소수가 되더라고요. 이 저금통처럼요. 못 사면 못 사는 대로 또 까먹고 잘 지내요. 정말 인생을 관통하는 취향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취향은 저의 일부일 뿐이니까요.


이런 생각도 들어요. 취향을 제외한다면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
가치관? 그리고 미적 감각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예쁘다, 못생겼다고 판단할 수 있는 잣대? 그 기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건 이래서 예뻐, 이래서 싫어 하고 바로 솔직하게 평가하는 친구들과 더 쉽게 친해지는 편이에요. 누군가 부정적으로 반응해도 신경 안 쓰거든요. ‘그래, 네 눈엔 못생겼구나’ 이러고 끝이죠.


승은 씨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정말 많은 것을 봐야 할 것 같아요. 이 직업이 승은 씨 지갑에 어떤 죄를 저질렀나요?
쓸데없이 많은 것을 보고 사게 만든 죄!(웃음) 세상에 너무 예쁜 게 많은데 저는 그것들을 계속 봐야 해요. 애초에 안 봤다면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 텐데 말이죠. 그런데 클라이언트들은 항상 최선의 결과를 원하고, 저도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게 좋기 때문에 힘들진 않아요.


승은 씨는 누가 봐도 맥시멀리스트예요.(웃음) 미니멀한 삶을 꿈꾸기도 했나요?
그럼요. 저는 나라 단위로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한국에 있다가 캐나다로 갔고, 캐나다에서 다시 한국으로, 한국에서 영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죠. 가구 같은 건 포기하고 자잘한 생활용품을 박스에 포장해서 다니는데, 정말 죽겠더라고요. 이번에 영국에서 돌아올 때도 박스가 26개나 됐어요.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 짐을 줄이겠다 하지만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하죠. 이런 가위도 그냥 하나만 사면 되는데 저는 용도별로 사서 사용하고 있어요.


승은 씨가 생각하는 취향의 집이 궁금하군요.
좋아하는 것만 들어선 공간? 저는 집의 전체를 못 봐요. 아예 돈이 많으면 설계부터 잘 짤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그렇게 하진 못하니까 좋아하는 물건을 쌓아놓는 상태거든요. 저는 지금의 상태가 편해요. 다른 사람들은 정리가 안 된 집이라고 하지만, 제 눈엔 거슬리는 게 하나도 없어요.



방탄소년단 노래에도 ‘탕진잼’이라는 단어가 나오잖아요. 소비로써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이들을 호모 컨슈머스 Homo Consumus(소비하는 인간)라고도 일컫는데, 당장 행복하기 위해 자포자기하듯 소비하는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맞아요. 어느 순간부터 ‘와, 저 사람들 돈 엄청나게 쓴다’ 이런 반응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분들이 만족한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요? 아무래도 요즘엔 보이는 게 중요하잖아요. SNS를 계획적으로 하는 분도 많고, 그걸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도 너무나 많고요. 하나의 이미지메이킹 수단이 된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에 제가 맞다, 틀리다 하는 게 소용없지 않을까요.


저는 외출해서 아무것도 안 사면 마음이 허하거든요. 어릴 때는 에뛰드하우스에서 매니큐어라도 사야지 안심이 됐어요. 쇼핑 중독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매니큐어 사서 행복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런 행위에 긍정적인 편이에요. 자잘자잘한 행복이 모이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취향을 꿈꾸고, 취향껏 사는 것을 기대해도 될까요?
어, 모르겠어요. 취향의 정의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저는 자기가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행복이란 결국엔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키며 사는 거라 생각하고요. 취향을 찾는 분들도, 취향을 좇는 분들도 그 과정에 행복이 있다면 계속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구조 오피스텔 투룸
면적  73.7㎡(22평)